2019년 4월호

‘탈출자’ 정광일이 본 韓美 대통령의 두 얼굴

트 “인권 무시하는 사람, 대통령 자격 없어” 文 “‘사람이 먼저’라더니 ‘북한이 먼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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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4-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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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2월 백악관서 트럼프 만난 탈북민 인권운동가

    • 트럼프 “올림픽 끝나면 고향 갈 수 있다” 말하더니…

    • “트럼프는 다른 나라 사람 인권 무시하는 대통령”

    • “文정부, 북한에 보낼 USB 내용 불법 사찰했다”

    정광일(56) 씨는 2018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탈북자 8명에게 사연을 들으면서 ‘망명자(defector)’보다 어감이 강한 ‘탈출자(escapee)’라는 표현을 썼다. 

    탈북민 8명은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북한은 살기가 어려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탈출한다”고 했다. 

    정씨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체인 대표 명함을 건넸다. 노체인은 2012년 그가 설립한 북한 인권 단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노체인은 북한 정치범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입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을 해요. 북한으로 외부 정보를 들여보내는 일도 하고요. 당신의 한국 국회 연설(2011년 11월)을 촬영한 영상도 북한에 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고맙다” “아주 멋지다”고 화답했다. 그의 회고를 더 들어보자. 

    “언론인을 다 내보내고 40분 넘게 대화했습니다.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다’ ‘북한 체제를 변화시킬 사람이 당신밖에 없으니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에 트럼프가 뭐라고 답한 줄 압니까. ‘올림픽이 끝나면 알 게 될 것이다. 당신들이 고향에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들 ‘뭔가가 있구나’ ‘일이 생기겠구나’ 기대가 컸습니다. ‘고향에 갈 수 있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요덕’에 수감돼 3년간 혁명화

    그는 “SNS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화가 나고 부끄러워서 내려버렸다”고 했다. 

    그는 함경남도 요덕군 15호관리소에서 2000년부터 3년간 노역(勞役)했다. 15호관리소는 한국에서 ‘요덕정치범수용소’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석방이 불가능한 완전통제구역과 석방이 되는 혁명화구역이 있다. 그는 혁명화구역에 수감됐다. 

    “일반 범죄를 저지르면 공민권을 박탈한 후 교화소(한국 교도소)로 보냅니다. 완전통제구역 그러니까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되면 인생이 끝난 거죠. 혁명화구역에선 사상교육을 시킨 후 내보냅니다. 제도를 비난했거나 신앙을 가졌거나 정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격리해 혁명화하는 곳이죠. 혁명화라는 게 육체노동을 하는 겁니다. 할당된 노동 총량을 못 채우면 식사 공급을 중단해요.” 

    그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간첩으로 지목됐다. 체포 당시 75㎏이던 몸무게가 10개월 만에 36㎏으로 줄었다. 

    “2003년 4월 12일 석방돼 13일 후 두만강을 건넜어요. 누명을 쓴 게 너무 억울했죠. ‘너희들이 간첩이라고 했으니 진짜 간첩이 돼주마’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인 목사를 도왔어요. 탈북민을 모집해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매달 40~50명을 베트남으로 보냈어요. 이듬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는 2009년부터 북·중 국경에서 북한으로 외부 정보가 담긴 영상을 들여보냈다. 2015년부터는 드론을 이용했다. 지금껏 USB 15만 개, SD카드 4만 개를 보냈다고 했다. 

    “아마존에서 드론으로 택배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해보기로 했습니다. GPS 좌표를 찍어놓으면 이륙 장소로 드론이 되돌아옵니다. 2015년부터 이듬해까지 드론을 이용해 외부 정보가 담긴 USB를 북한으로 보냈죠. 2016년 11월 중국 내 아지트가 습격당했습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는 작업하기 어려울 것 같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해 12월 북한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우리를 테러범으로 몰더군요. 엄청나게 협박했다니까요.” 

    그가 스마트폰에 저장해놓은 ‘우리민족끼리’ 논평을 보여줬다. “지구상 한끝까지라도 따라가서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릴 것이다”라고 써 있다. 북한 당국은 드론을 이용해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파괴하려 했다고 봤다.

    “아무렇게나 말하는 트럼프는 대통령 자격 없어”

    정광일(오른쪽) 씨는 2018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정광일(오른쪽) 씨는 2018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노체인은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와 함께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10명의 명단과 가족 증언을 담은 자료집을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 12일) 직전인 5월 30일 워싱턴에서 발표했다. 

    “명단과 가족 증언을 공개하면서 김정은에게 체제 보장을 제공하는 건 북한 주민들이 지금처럼 계속 살라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한국 정부는 관심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니 정상회담 때 자료집에 수록된 이들의 생사 여부만이라도 확인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자료집을 백악관에 전달했는데 그 뒤로 아무런 이야기도 없더군요. 저와 친분이 두터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대사직에서 사퇴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실망해서라고 봐요. 트럼프 대통령은 비전문가인 폭스뉴스 여성 앵커를 헤일리 대사 후임으로 지명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인사 아니었나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기대한 만큼 아주 크게 실망했죠.” 

    그는 ‘두 얼굴의 트럼프’를 봤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만난 트럼프는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죠. 완전히 실망했어요. ‘자국주의’라는 게 있겠죠. ‘자기 나라의 이익만 보장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죠. 그러나 인권이란 인간이 가진 소중한 권리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이 미국 사람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까요. 트럼프가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른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아무렇게나 말하면 안 됩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웜비어 사건과 관련한 언급은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잖아요. 인권을 무시하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미국으로 송환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과 관련해 2월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그 사건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김 위원장이 이런 일을 허용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믿겠다”고 말했다. 

    - 한국 정부도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대가 없어요. 북한 주민들이 죽어나가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도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상존해온 것을 다 알아요. 다 알면서도 어떤 이데올로기에 따라 묵살하는 거죠.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 6명도 못 데려오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자기네 억류자는 석방시켰죠.” 

    그는 2016년 말 한국으로 돌아온 후 2017년 초부터 경기 연천군에서 풍선에 USB를 실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기상관측용 풍선 1개에 USB 200개가 들어가요. 6월부터 9월까지밖에 기회가 없어요. 한달에 기회가 1번만 올 때도 있습니다. 남풍이 분다고 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기류를 타야 합니다.” 

    - 요새도 풍선을 띄웁니까. 

    “정권이 바뀐 후 풍선은 무조건 못 하게 해요.” 


    “지금 정부는 사찰 안 한다면서요?”

    그는 강화도로 작업 장소를 바꿨다. 

    “2017년 9월부터 페트병에 쌀과 USB를 넣어 조류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냅니다. 초기엔 오류가 많았는데 어민들이 물때를 알려줘 지금은 좋아졌어요. 어민들이 처음에는 해양 쓰레기 만든다고 못 하게 했어요. 그런데 북한 어부들이 건져가는 것을 보더니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조류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어민들이 알려줬습니다.” 

    2L 페트병에 담긴 쌀은 1.2㎏가량이다. 

    - 왜 USB를 보냅니까. 

    “북한에 살 때 몰랐던 게 너무 많으니까요. 북한 주민들이 ‘밖’을 알아야 ‘잘못 살고 있구나’ ‘노예처럼 살면 안 되는구나’ 깨닫죠. 북한이 무서운 게 반항심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사회라는 겁니다. ‘비교해봐라. 너희처럼 사는 세상은 없다’고 알려주는 게 이 일을 하는 이유죠.” 

    - USB에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김정남(김정은 이복형)이 왜 암살됐는지를 다룬 영상도 있고요. 그런데 참…. 작년 5월엔 사찰까지 당했다니까요. USB 안의 내용을 검사했어요. 그거 불법 아닌가요. 지금 정부는 사찰 안 한다면서요. 불법이에요, 그거. 내용을 다 내놓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니 김정은 헐뜯는 얘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더군요. 표현의 자유는 어디 갔습니까. 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지 대한민국인지 모르는 어떤 나라에 사는 건가 느껴지고 그랬습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검열 사실을 알려 보도가 나오게 했더니 그 뒤로는 못 하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을 알리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정부는 사람이 먼저라더니 북한이 먼저예요. ‘사람이 먼저’는 ‘인권이 먼저’라는 소리와 같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가 덧붙여 말했다. 

    “김정남이 왜 암살됐는지를 다룬 영상은 KBS의 ‘시사기획 창’이라는 보도프로그램에서 방송한 것입니다. KBS가 만든 것인데 문제 될 게 있나요?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 영상도 담겼고요. 김정은의 호화 생활 등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상, 미국 대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영상도 있습니다. 하버드대, 컬럼비아대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것입니다. 북한 학생들의 삶이 다른 나라 학생들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게 목적입니다.”

    “인권을 가운데 놓으라”

    - 평화 분위기 조성과 남북 화해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해도 북한이 전쟁을 못 일으킵니다. 전쟁 나면 자신들이 궤멸된다는 것을 북한이 잘 알아요. 남북 화해? 필요하죠. 전쟁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화해도 필요하지만 사람이 먼저예요. 평화? 중요하죠. 그런데 사람이 노예로 살다가 죽는 평화는 필요 없습니다. 핵무기를 왜 폐기하라고 요구합니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아닙니까.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사람을 살리자는 것이고요. 인간의 도덕이나 인권을 가운데 놓고 얘기하는 게 옳습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습니까. 

    “죽어도 갖고 있죠. 강대국이 됐다고 주민에게 선전하지 않습니까. 핵을 없애면 주민에게 할 얘기가 없어져요. 미국 내 정치 상황 때문에 하노이에서는 그렇게 했지만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말렸어요. 엮였다고요. 딜을 할 게 있어야 딜을 하는 거 아닙니까. 트럼프랑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미국 친구들이 굉장히 싫어하더군요. ‘부끄러워’ ‘안 좋아해’ ‘싫어’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하겠다는 한국 정부도 한심하고요. 왜 북한에 매달리는지 모르겠어요. 남녀 간 애정행각을 할 때도 한쪽이 구걸하면 추접스러워집니다.” 

    그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카랑카랑했다. “인권을 가운데 놓으라”고 말할 때 특히 그랬다.



    송홍근 편집장

    송홍근 편집장

    Alex's husband. tennis player. 오후햇살을 사랑함. 책 세 권을 냄.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통일선진국의 전략을 묻다’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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