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제로페이’, 은행 10억 출연금 요구 일파만파

“朴 정부 미르·K재단 때와 뭐가 다른가”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07-2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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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로페이 SPC 설립에 시중은행 ‘돈줄’로 이용?

    • “출연금 내려니 불법성 고민, 안 내려니 불이익 두려워”

    • 정부의 제로페이 밀기, 일감 몰아주기와 똑같아

    • 공무원, 1년에 복지포인트 5만 원 이상 제로페이로 써야

    • 우리·신한銀 제로페이 이용률 가장 높은 이유

    • 세금으로 연명? 지금이라도 멈춰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최근 시중은행 등에 10억 원대 출연금을 각각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중기부는 ‘제로페이 간편결제추진단’ 명의로 IBK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과 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 공문을 보내 제로페이 전담 민간특수목적기업(SPC) 설립을 위한 출연금을 요청했다. 출연금은 법인 설립 후 기부금으로 처리해주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로페이는 서울시와 중기부가 만든 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으로, QR코드를 활용한 계좌이체 방식의 결제 서비스다. 소비자는 네이버페이와 페이코 등 기존의 간편결제 앱이나 은행 결제 앱으로 제로페이 가맹점에 비치된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스캔한 후 거래금액을 입금하면 된다. 가맹점주가 가맹점용 앱을 통해 이를 확인하면 거래금액이 소비자의 은행 계좌에서 가맹점주 계좌로 곧바로 이체된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카드사 수수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연 매출 8억 원 미만은 수수료가 아예 없고(0%), 8억 초과 12억 미만은 0.3%, 12억 초과는 0.5%다. 신용카드 대비 1%포인트 안팎으로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금융시장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정부가 결제시장에 개입해 수수료율까지 통제한다는 점에서 ‘관치페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결국 중기부는 제로페이 운영권을 외형적으로 민간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제로페이 전담 운영법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출연금’ 명목으로 시중은행들에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임·횡령 감수하고 출연금 내라?

    제로페이는 당초부터 이익을 낼 수 없는 사업구조다. 가맹점이나 소비자, 모두에게서 돈을 안 받거나 최소화하는 구조이다 보니 이 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따라서 민간기업이 제 돈을 들여가며 투자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제로페이 SPC 설립에 선뜻 나설 기업이 없다 보니 가장 ‘형편이 좋은’ 은행들을 투자자로 낙점한 것.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하나같이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중기부로부터 출연금 요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내부적으로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게 될까 우려해 공식적인 입장도 일절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중기부는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한다. 중기부 한 관계자는 “제로페이 SPC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주요사 10여 곳에 해당 공문을 보낸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출연금을 내고 안 내고는 각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금융업 종사자들은 “초등학교가 학부형들을 모아놓고 ‘자율’이라며 기부금을 걷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출연금을 낸다고 하더라도 근거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걷은 미르·K재단 출연금으로 훗날 대기업들이 얼마나 큰 고충을 겪었나. 제로페이 출연금도 향후 정권이 바뀌었을 때 금융 당국이 ‘왜 출연금을 냈느냐’고 하면 제대로 답변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은행이 얻게 될 실익이 거의 없어 난감하다”고 털어놓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들의 제로페이 SPC 출연금 납부에 대해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로페이 출연금을 담당한 최고 책임자가 배임 혹은 횡령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때가 있고, 그러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판단조차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제로페이는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은행 처지에서 보면 제로페이는 엄연한 경쟁 상대다. 현재 시중은행 대부분이 카드사를 계열사로 소유하거나 카드사업부를 갖추고 있어 제로페이와 업태가 겹친다. 그럼에도 경쟁은커녕 제 돈을 들여 상대 회사의 결제 시스템을 밀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은행권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경쟁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 정부가 나서서 밀어주는 업체와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심지어 그런 업체에 출연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금융위 해석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로페이 사용을 권장하는 것을 두고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정부는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업무추진비를 제로페이로 결제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 공공기관이 제로페이를 쓸 수 있도록 ‘지방공기업 예산편성기준’과 ‘지방출자출연기관 예산집행기준’을 개정했다. 

    기획재정부도 최근 업무추진비 등을 제로페이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국고금 관리법 시행규칙’을 고쳤다. 하지만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처럼 민간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는데 제로페이만 포함시킨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최근에는 결제시장 내에서 정부의 ‘간편결제 단말기 무상보급 행위’가 부당한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중기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포스기 30만 대, QR코드 리더 20만 대를 가맹점에 보급하겠다”고 하자, “정부의 단말기 지원정책이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상 금지된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부당한 리베이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고 시장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금융 당국은 2017년 8개 카드사가 공동으로 근거리 무선통신을 통한 간편결제 사업을 하려고 할 때, “NFC 단말기 무상보급이 여전법상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며 이를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신용카드 중심의 국내 결제 기반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낡은 규제를 정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여전법상 부당한 리베이트는 제공 주체가 카드사 또는 VAN사(카드결제 시스템 구축 업체)이고, 제공 목적 또한 대형 신용카드 가맹점과의 거래를 위한 경우에 해당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제공 주체가 공공기관이고 제공 목적 또한 소상공인 등의 카드수수료 경감 등 공익적 목적이라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권해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시금고 은행 제로페이 이용률 월등히 높아

    한편 서울시 소속 공무원들은 ‘제로페이 할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에 시·구청 직원들이 직접 동원되고 있는 탓이다. 서울의 한 구청 직원 김모 씨는 “부서마다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 할당이 있는데, 우리 부서도 마감 막판까지 개수를 못 채워 옆 부서에서 빌려 겨우 할당량을 채웠다”고 털어놓았다. 공무원 개개인에게도 제로페이 사용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김씨는 “1년에 몇 십만 원씩 지급되는 복지포인트 중에서 최소 5만 원 이상은 제로페이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로페이 사용자 대부분이 공무원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현재 자사 앱을 통해 제로페이 서비스를 시행하는 15개 은행 중 제로페이 이용률이 가장 높은 곳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다. 이 두 은행이 전·현 서울시금고를 담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5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제로페이 결제 건수와 금액은 2만6223건에 5억4202만 원으로 시중은행 중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신한은행이 1만1550건에 2억1633만 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IBK기업은행과 NH농협은행은 3개월 동안 결제액이 각각 3461만 원, 3177만 원에 불과했다. 

    결국 예전이나 현재의 시금고를 주거래은행으로 하는 공무원들이 제로페이 이용률을 끌어올린 덕분에 두 은행의 제로페이 실적이 월등히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울시 한 공무원은 “서울시금고가 신한은행으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 상당수 공무원이 우리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제로페이로 결제할 때 주거래은행 앱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나중에 복지포인트 사용 내역 소명이 편하기 때문이다. 현재 복지포인트는 ‘선(先)결제, 후(後)신청’ 방식으로 개인 신용카드나 현금, 제로페이 등으로 먼저 결제한 뒤 해당 내역을 내부 전산망에 입력하면 해당 금액만큼을 급여계좌로 돌려받는 구조로 돼 있다. 서울시 공무원인 이모 씨는 “제로페이로 결제한 내역을 복지포인트로 환급받으려 할 때, 제로페이 계좌가 주거래은행 계좌이면 영수증을 따로 첨부하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꼴”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여기 제로페이 되죠?'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제로페이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여기 제로페이 되죠?'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제로페이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반인 사이에서 제로페이 이용률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사용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제로페이를 쓰려면 뱅킹 앱을 실행한 뒤 QR코드를 찍고, 금액을 입력한 뒤 입금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은행 대부분이 자사의 앱 첫 화면에 제로페이를 심어놨지만 신용카드에 비해 불편한 게 사실이라 서울시 공무원을 빼고는 사용자가 별로 없다. 또 연결 계좌에 현금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그동안 서울시와 중기부, 금융 당국, 지자체 등 정부가 나서 제로페이 활성화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용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용 실적은 36만5000건, 57억 원으로, 홍보나 가맹점 유치에 쓴 예산 98억 원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심지어 소상공인조차 제로페이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만 보더라도,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곳이 많지 않다. 신용카드 포스기를 마련해두지 않은 노점상의 경우 ‘계좌이체’로 손쉽게 결제를 해결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점상 좌판 위에는 주인의 개인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다. 최근 들어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이용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계좌이체가 한결 수월해진 덕분이다. 제로페이처럼 바코드를 스캔할 필요 없이 비밀번호 한 번만 누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입금돼 소비자도 노점상도 편리하다. 

    문제는 언제까지 수익성도 없는 제로페이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야 하는지다. 정부가 올해 제로페이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60억 원이다. 여기에 인프라 구축과 홍보 등을 위해 76억 원을 추가경정예산안에 넣었다. 김상봉 교수는 “정부가 나랏돈과 행정력을 무기로 민간인의 결제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는 마치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것과 같다. 결국 세금으로 목숨을 연명하려는 모양인데, 잘못된 정책은 하루빨리 중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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