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특집 | ‘제재 융단폭격’ 후 북한

“김일성 생일에 나눠주려던 ‘사탕가루’도 못 구해”

동요하는 北 노동당원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5-04 14: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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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은 견딜 만하나 앞으로가 걱정”
    • 北 당국 외화벌이 독려 더 거세져
    • “핵무기 쏜다? 김정은이 미친 것”
    • 중국 체류 北 중산층도 동요 양상
    한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옥죄기에 나선 3월 어느 날, 수년 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한 A씨가 출장을 갔다가 중국에 나와 있는 옛 동료들을 만났다. A씨가 북한 인사에게 물었다.

    “너희들, 설마 동족에게 핵무기 쏘겠다는 건 아니지?”

    북측 인사는 “절대 안 쏜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핵무기를 쏜다? (쏜다면) 김정은이 미친 것이다. 안 누른다, 우리는. 김정은이 직접 발사장치 못 누르지 않나. 발사 명령을 내리든 말든 안 누른다. 누가 누르겠나. 수많은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자가 되는데, 넋 나간 결심을 하면 시간의 함수 내에 끝장내야 한다.”

    북측 인사가 A씨에게 거꾸로 물었다.



    “참수부대가 도대체 뭔가?”

    A씨는 “콕 집어내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북조선 있을 때는 전쟁하면 북쪽이 이긴다 생각했는데, 남조선 가서 보니 아니더라. 너희가 진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측 인사는 “너, 남조선 가더니 그렇게까지 변했나”라고 대꾸했다.  

    4월 1일 서울에서 만난 A씨는 “북한 간부들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많이 변했다”면서 “김정은을 대하는 태도가 김정일 때와 다르다”고 했다.



    “과업 완수가 쉽지 않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당 인사들이 느끼는 한국 및 유엔 대북 제재 이후의 상황을 A씨의 전언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쌀값을 비롯한 시장 물가는 아직 안정돼 있다. 주민 생활도 나쁘게 변하진 않았다. 제재가 아직은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힘들어질 것 같다.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에 아이들에게 나눠주려던 ‘사탕가루’를 중국에서 수입하지 못했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는 남조선 욕을 많이 한다. 공단 폐쇄는 당국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인민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얘기다. 5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개성공단에서 들어온 돈으로 핵 개발을 했다? 남조선에서는 미사일 1기를 외국에 수출하면 얼마를 버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무기 개발을 하는) 제2자연과학원 예산은 개성공단에서 들어오는 돈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많다. 왜 당국이 아닌 인민을 제재하나.”  

    북한 인사들은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다”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고 A씨는 전한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계 미국인 B씨도 중국에서 북한 노동당 간부들과 접촉했다. B씨가 전한 북한 인사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견딜 만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석탄 수출이 막히면 기관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선박이 외국 항구에 입항하는 게 거절된 일도 있다. 금융 거래에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 중국과 무역 일 하는 사람들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감으로 안다. 5월 당 대회를 앞두고 평양에서 여러 가지 지시가 내려왔는데 과업을 완수하기가 쉽지 않다.”    



    北 매체 ‘군자리 정신’ 언급

    북한 ‘노동신문’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군자리 정신’도 언급됐다.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식량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군자리 정신은 6·25전쟁 때와 1950년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기를 생산한 것을 뜻한다.

    북한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50%에 달한다(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분석). 유엔 제재로 인해 무역이 축소되면 외화 수입이 급감한다. 지하자원 등을 팔아 벌어온 외화는 북한 정권의 생명줄 노릇을 했다.

    노동당은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는 방식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려 했다.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도 그중 하나다.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은 경영난에 기인한 바가 크다. 무역을 해 먹고살며 중앙당에 외화를 상납하던 기관과 개인은 제재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해외 투자 유치 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평양의 거리는 ‘체제의 성과를 과시하는 전시물’의 전시장 격이다. 여명거리를 비롯해 치적 사업에 매달리면서 지하자원을 팔아 번 외화를 썼다. 5월로 예정된 당 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라는 이름으로 노력 동원이 거세다. 쉬는 날에도 동원돼 노동을 한다.

    A씨와 B씨를 비롯한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독려가 더 거세졌다”고 전한다. 가족이 외화를 당국에 상납하면 정치범도 사면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확보한 외화가 기간 시설 건설, 유지에 투입된다.

    제재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상대의 목을 조이는 것이다. 정보 관계자는 “유엔 제재에도 공관원과 주재원에게 예전과 똑같은 상납을 강요해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인사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평양 처지에서는 아프다. 4월 1일 조선중앙통신은 “일부 대국들마저 미국의 비열한 강박과 요구에 굴종한다”면서 베이징을 비난했다. 북한 관영 매체가 중국 당국을 성토한 것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중산층과 상류층도 동요한다는 게 당국의 관측이다. 무역 일을 해 돈을 번 북한 사람들이 유엔 제재로 돈벌이가 어려워지면서 북한을 등지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봉현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플러스 성장세를 보이던 북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2~4% 수준으로 떨어질 소지가 크다”면서 “외화 확보도 15억 달러 정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통일전선부 관료 출신인 장진성 네덜란드 레이덴대 초빙교수는 “휘발유 가격이 앙등하는 등 제2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북한에서 나돈다”면서 “주민이 아닌 북한 기관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 기조이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사실상 접고 강력한 제재를 통한 ‘북한 변화시키기’에 들어갔다. 일부에선 “제재를 해봐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지만 ‘강력한 제재’를 정책 수단으로 삼은 만큼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국제사회와 협조해 ‘치밀하면서도 촘촘하게’ 압박해야 한다. ‘어중간한 제재로는 평양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학습된 일이다.



    ‘융단제재’ 말풍선 안 되려면

    문제는 중국이다. 제재 성공의 열쇠는 베이징이 쥐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을 지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국제 공조 제재 틀에서 중국이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청년정치학원의 한 교수는 북·중관계를 일컬어 ‘전략적 이해관계 불일치하의 일치’라고 말한다. 중국은 평양이 골칫덩어리인 데다 못마땅하지만, 북한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B씨는 “다른 제재 다 소용없다. 중국이 송유관 밸브만 잠그면 그날부터 김정은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역할론’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으나, 베이징의 ‘꾸준하고도 적극적인’ 동참을 견인해내지 못하면 4차 핵실험 후 ‘제재 융단폭격’도 말풍선에 그칠 수 있다. 1~3월 북·중 교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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