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특집 | ‘김해新공항’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공항전쟁’은 정권투쟁

신공항의 정치학

  • 박재일 | 영남일보 정치부문 에디터 park11@yeongnam.com

    입력2016-08-02 10: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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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공항, 대통령 3명 거친 난제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닮은꼴
    • 대권 향한 야권의 ‘각자도생’
    • 새로 시작될 ‘대구 신공항’ 논란
    정치란 무엇인가. 숱한 개념 정리가 있지만, 고전적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튼의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명제는 정치의 핵심을 예리하게 단언한다. 가치(value)는 쉽게 말해 돈과 예산, 인프라에서부터 기업이나 특정 지역에 대한 각종 인허가까지 포함한다. 그런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리더십을 갖고 나눠주는 게 정치의 요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항 혹은 수도 이전(배분) 같은 국가적 혹은 지역적 가치는 ‘권위적 배분’, 즉 정치의 핵심 요소가 된다. 그만큼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쉽다는 뜻이다.

    영남권 신공항 논란이 돌고 돌아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결론 났다. 10년간의 ‘공항전쟁’이 막을 내렸다. 공항전쟁이라 불린 이유는 신공항 부지를 놓고 영남권 5개 지방자치단체가 편을 갈라 사생결단의 경쟁에 몰입해서다.

    부산시는 국토 남단인 가덕도에 신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이에 대구를 위시한 경남·울산·경북은 경남 밀양이 영남의 중심으로 신공항 최적지라며 맞섰다. 승패는 어정쩡했다. 밀양과 가덕도 어느 곳도 아닌 기존 김해공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김해공항 을 신공항급으로 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공항은 아니다.



    막 내린 ‘공항전쟁’

    어느 쪽도 탐탁지 않게 여긴 제3안으로 귀착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10년 공항전쟁의 내막은 정치적 역학관계를 떠나 설명할 수 없다.

    흔히 영남권을 정치적 성향으로 한 묶음으로 보지만, 내밀히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이른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기도 하지만, 과거 대구의 국가산업단지 건설과 낙동강 하류 오염 문제, 삼성자동차 유치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노출했다. 정치적 성향엔 공통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역의 이익이 배치되면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는 구도다. 신공항도 그런 상황의 연장선이다. 더욱이 영남권 신공항은 부산 대(對) 대구·경북·울산·경남이 1대 4로 갈려 대결의 패턴이 달랐다.

    신공항 발표가 임박하면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에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빗장을 걸었다. 권영진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김기현 울산시장은 정치적 영향이 개입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신공항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너무도 잘 의식했기에 나온 발언이다. 김 지사를 제외한 4명의 광역단체장은 국회의원을 지낸 전형적인 정치인들이다.

    신공항의 이보다 더 큰 정치적 함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둘러싼 ‘정권투쟁’이다. 보수의 보루, 영남권이 둘로 쪼개지면 정권 유지도 재집권도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집권여당 새누리당 한쪽에 있다. 반대편 야권에선 공고한 영남권이 분열한다면 집권의 길이 한결 쉽다고 판단한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야권은 신공항 논란의 그런 틈새를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1990년대 초 싹튼 논란

    영남권 신공항이 회자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영남권에 미래 항공 수요를 감당할 새 공항이 들어서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몇몇 용역 연구가 정부와 부산시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대구에서도 대구 인근, 예컨대 영천시 금호읍에 신공항을 건설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촉발된 것은 무엇보다 부산의 김해국제공항과 대구의 대구국제공항이 군사기지 내에 있어 국제공항으로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해공항은 이른바 K1, 대구공항은 K2다. K1은 한반도 유사시 물자·병력 수송의 후방 핵심 공군기지이고, K2는 제11전투비행단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공군의 주축 전력이 포진해 있다. 전투기가 뜨는 중간 중간에 민간 여객기가 오르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김해공항은 근년 들어 꾸준한 성장세 속에 연간 이용객이 1200만 명을 돌파해 기존 시설로는 한계가 임박한 상황이고, 대구공항은 지난해 이용객 2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줄기차게 제기되던 신공항 문제는 2002년 김해공항으로 착륙하던 중국 민항기가 공항 북쪽 돗대산에 추락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이어 2003년 당시 부산 출신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 그해 1월 노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 건의를 받는다. 부산시는 이후 자체 용역 연구에 착수했지만, 2004년 20조 원으로 추정된 공사비와 경제적 효용이 크게 떨어지는 0.32의 B/C(비용 대비 경제성)로 사실상 퇴짜를 맞는다. 가덕도가 타당했다면 부산 출신 정권하에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가덕도의 자연적 공항 입지는 그걸 뒷받침하기엔 너무도 불리한 조건이었다.

    부산시가 독자 추진하던 신공항이 불리해지자 결국 2005년 10월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노무현 정부에 신공항 건설을 국토종합계획에 반영해달라고 건의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식의 지역 갈등이 불거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각자 나름의 논리로 신공항 입지에서 승리를 자신했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속내

    2012년 대선을 기준으로 보면 영남권 유권자는 1059만 명(부산 291만 명, 대구 199만 명, 울산 89만 명, 경남 261만 명, 경북 219만 명)이다. 전국 유권자의 26.1%로 비중이 높다. 영남권과 정치적 쌍벽을 이루는 호남은 영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13만 명(광주 112만 명, 전남 153만 명, 전북 148만 명)에 불과하다. 호남의 413만 명은 대구·경북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호남에서 지지를 얻는 야권 후보에겐 당연히 영남의 정치적 분열은 매력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총선 직후 부산을 찾아 가덕도 유치에 힘을 보태고, 우상호 원내대표가 가덕 유치 시민대표단을 면담하고, 나아가 김영춘 의원(부산진구갑) 등 5명의 부산지역 민주당 의원이 적극적으로 가덕도를 지지한 건 미래 대권가도를 보고 달린 것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경우 가덕도를 직접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고향 부산을 찾아가 가덕도에 힘을 싣는 발언들을 했다. 그가 대구를 찾아 신공항 문제를 꺼낸 적이 없다는 점과 크게 대비된다.

    여권으로 눈을 돌려보자. 역시 부산을 지역구(중·영도구)로 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신공항에 대한 태도는 다소 흥미로웠다. 김 전 대표는 비교적 침묵에 가까웠다. 그는 2014년 7월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아예 ‘신공항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지역 간 갈등에 불을 붙여봐야 새누리당 지지층인 영남권의 분열만 불러올 뿐이고, 이는 새누리당의 미래에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 전 대표는 정부가 신공항 후보지로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하자 “나는 오래전부터 김해공항 확장이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최적의 방안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 “국책사업은 특정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치적 위상과 스스로 국가를 생각한다는 리더십 구축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영남권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장은 확연히 갈렸다. 더 투쟁적으로 나온 쪽은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지역 의원들이었다. 서 시장은 신공항 발표 2주 전부터 “용역 조사가 일방적으로 밀양 쪽으로 가고 있다. 신뢰를 상실한 용역이라면 부산시민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부산 의원들은 한발 더 나갔다. ‘불복’ ‘시민 저항’이란 단어가 튀어나왔고, 청와대와 정부의 TK 라인이 밀양을 밀어붙인다고 주장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만큼 가덕도의 기술적·항공학적 점수가 밀양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초조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실제로 슈발리에 수석 엔지니어는 가덕도의 경우 점수의 우열을 떠나 “공항의 자연적 입지로는 부적합하다”고 발표했다.

    부산에 비하면 권영진 대구시장이나 대구권 새누리당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덜 전투적이었다. 밀양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경남·울산·경북까지 밀양 쪽을 지지하는 세몰이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터라 ‘엉뚱한’ 김해공항 확장안이 나오자 반발 강도가 셌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가덕도가 안 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결국 정부 결정을 받아들였고 홍준표 경남지사, 김기현 울산시장도 국가적 차원에서 수긍한다고 발표했다. 권영진 대구시장만이 용역 결과를 검증한 뒤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대구의 ‘판정패’

    잠재적 대권주자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의 경우 총선 공천 파동에 휘말리면서 신공항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할 기회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는 김해공항 확장안이 발표나자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하다가 갑자기 이게 최선의 대안이라고 해서 전부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고 다소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취했다.

    대구지역 의원들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김해공항은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 소재한다. 어디까지나 부산의 공항이다. 대구로선 결과적으로 ‘판정패’했다고 본다.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이 총선 과정에서 한 “대통령의 선물이 있을 것이다”는 호언도 신공항에 관한 한 아닌 것이 됐다.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복당한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구을)이 대구시가 출범시킨 ‘신공항 용역 검증단장’을 맡은 것도 지역 의원들의 불만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부산의 신공항 여파가 비교적 잠잠했다면, 대구는 임계치를 오르내릴 정도로 심상치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1일 대구공항과 K2공군기지를 동시에 이전할 것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지시한 것은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수도권 언론에선 ‘선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 재정이 전혀 투입되지 않는 ‘기부 대(對) 양여’ 방식이라 딱히 선물이라 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대구공항을 또다시 공군기지(K2)와 함께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향후 많은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공항을 지으면서 전투기와 함께 활주로를 쓰는 사례는 없다는 비판이다. 어쩌면 대구에선 ‘신공항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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