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심층취재

“검찰 수사가 ‘靑 만족용 수사’로 변질”

‘동네북’ 검찰, 부글부글 끓는 검사들

  • 특별취재팀

    입력2016-08-23 09: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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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병우 사건’ 수사 의지 안 보인다”
    • “예스맨이 ‘검찰의 대장’이니…”
    • “검찰을 정치조직으로 보이게 만들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단단했다. 여러 언론이 돌아가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휴가를 앞두고 작성한 원고에서 ‘굳건히 버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검찰은 예상대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는 우 수석의 처가와 넥슨 간의 서울 강남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우 수석과 장모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에 수사할 명분을 준 셈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형사부에 이 사건을 ‘배당’하는 형식적 조치를 취하는 데 그쳤다.



    이례적인 1주일 휴가

    사건 배당 직후 수사를 보고받고 ‘줄기’를 잡아줘야 할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1주일 휴가를 떠났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검찰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리여서 2~3일 휴가를 가도 “운 좋게 휴가 잘 갔다 왔다”는 말이 나온다. 1주일 휴가는 매우 ‘이례적’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할 의지가 없음을 대내외에 알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검찰은 우병우 수석의 각종 의혹에 대해 수사를 별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대통령 직속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면, 검찰은 처음부터 수사할 의지가 없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병우 수석은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며, 그것도 검찰에 대한 장악력이 가장 센 민정수석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수남 총장이 우 수석을 향해 정면으로 칼을 꺼내 들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이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자기 스타일의 민생 사건을 이슈화했다. 그래서 검찰 수사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우 수석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진 특수부 사건과 공안부 사건엔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16기인 김 총장은 우병우 수석(21기)보다 5기나 선배다. 게다가 우 수석이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해 나이 차이도 여덟 살이나 난다. 검찰에 함께 있을 때만 하더라도 우 수석에게 김 총장은 하늘 같은 선배였다. ‘형’이라고 호칭했다지만 검찰은 상하관계가 뚜렷하다. 지금은 우 수석이 검찰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으로 있으니 김 총장이 그리 유쾌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특수통 출신인 우 수석이 수사 라인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어두고 주요 사건을 챙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히려 김 총장은 큰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이 잘 모르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삼가는 양상이다.



    “설(說)로 봐야 한다”

    하지만 4월부터 홍만표 사건, 진경준 사건, 부장검사 폭언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김수남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법조 로비 게이트에 연루된 홍만표 전 검사장의 법조비리 사건은 김수남 총장에게 두고두고 짐이 되고 있다.  

    검사장 시절 재산이 10억여 원 수준이던 홍 변호사는 검찰에서 나온 뒤 2013~14년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수임료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정운호 전 대표 변론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홍 변호사가 검찰 주요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로비 대상으로 거론한 이들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박성재 서울고검장, 3차장검사이던 최윤수(연수원 22기) 국가정보원 2차장이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수사로 확대하지 않았다. 이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자연스레 김수남 총장에 대한 의혹도 잠잠해졌다. 홍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정운호 사건 중 일부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 때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이를 승인한 위치에 있었다. 김 총장과 홍 변호사는 검찰에 함께 있을 때 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홍 변호사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자 ‘조율설’이 돌기도 했다.

    검찰 내에서도 “이 의혹은 ‘설(說)’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검찰청도 적극 부인한다.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사건 무혐의 처분 자체에 문제가 없었다. 김 총장과 홍만표 변호사가 미리 연락한 일도 없었다”는 것.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설령 홍 변호사가 김 총장과 통화한 기록이 있다 해도 과연 수사로 확대할 수 있었겠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곧이어 양파 껍질처럼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 진경준 검사장 비리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규모(120억 원)나 직급(검사장)에서 ‘역대급’ 검찰 비리다. 검찰은 진경준의 불법 행각을 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승진시켰다. 검찰은 비리를 파악한 후에도 진경준을 파면하는 대신 해임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민의 평균적 법감정을 외면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검찰과 법무부가 진 검사장에게 놀아난 꼴이 된 상황에서 김홍영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김모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까지 맞물렸다. 대검찰청은 ‘뒷짐만 지는 자세’로 일관했다. 유가족의 인터뷰가 나올 때까지 쉬쉬했고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김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을 진행했다.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삼각파도를 맞고 휘청이던 ‘김수남호(號)’에 또 다른 악재도 덮쳤다. 검찰은 4·13 총선 당시 홍보 활동 대가로 1억여 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로 국민의당 박선숙, 김수민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고, 추가로 영장을 청구했지만 이마저 꺾였다.

    검찰 수사가 여론을 타고 있을 때만 해도 “법원이 국회의원을 봐주는 것 아닌가”라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되자 화살은 검찰로 향했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한 게 아니냐”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검찰이 밝혀냈다는 범죄 혐의 역시 수사 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검찰이 야당을 손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며 검찰을 비난한다.

    검찰은 롯데그룹 비리를 야심 차게 수사하지만, 롯데홈쇼핑 강현구 대표이사, 롯데건설 상무 박모 씨, 롯데건설 상무보 최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야당은 국정감사 때 검찰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기소독점 제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같은 검찰 개혁도 정치권에서 이슈화했다. “검찰의 독립성을 위해 총장의 임기가 법으로 보장되지만 검찰의 비리와 무능이 도를 넘어선 만큼 김수남 총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총장의 즉각적 사퇴를 촉구했다.

    “검사장이 부정·비리로 구속된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감독책임이 있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은 왜 침묵하고 숨어 있는가. 검찰 이미지가 실추하고 검찰 개혁이 화두로 오르는 마당에, 그 지휘선상에 있는 이들이 일언반구 입을 열지 않고 거취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이 더 비겁해 보인다. 장관과 총장은 사퇴해야 한다. 민정수석 이슈에 숨어 즐길 때가 아니다.”



    “자칭 ‘김남수 라인’ 있나”

    검찰 내부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김 총장을 보는 몇몇 검사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총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스멀스멀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김 총장과 같은 ‘예스맨’이 검찰의 대장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직격탄을 쐈다.

    “검찰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고, 밖에서 들어오는 부당한 지시를 현명하게 받아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김 총장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스타일이다. 수사로 말해야 하는 검찰을 정치적인 조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측면이 있다. 김 총장과 함께 근무한 검사 중 스스로 ‘나는 김수남 라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대검의 한 관계자는 “‘김수남 총장이 특수부와 공안부의 굵직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논란이 잇따라 터진 상황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사는 “국민의당 의원 사건과 같이 예민한 사건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수사해야 한다”며 “두 번에 걸쳐 아무 대응책도 없이 무리하게 영장청구를 강행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우병우 사건 수사팀으로선 검찰 수사가 대검찰청과 청와대 두 곳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수사로 변질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조직이 검찰이다. 2012년 한상대 검찰총장은 검찰 내부 비리로 질타를 받자 대검 중앙수사부 해체를 추진했다. 하지만 한 총장은 ‘검찰 조직을 해하려 한다’고 판단한 검사들의 반발 끝에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항명 깃발을 든 사람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사법연수원 17기)이다. 최 중수부장은 다수의 검사와 함께 역으로 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집단항명을 주도했다. 검찰총장이 검찰 조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총장을 향해서도 칼날을 세울 수 있는 게 검찰 조직이다.

    김수남 총장이 향후 리더십을 발휘해 난국을 슬기롭게 타개할 수 있을까. 그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직의 수장이지만 ‘위기의 남자’로 비친다. 이 위기는 그에 대한, 검찰에 대한 ‘신뢰’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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