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특집 | 崔·朴·탄핵 쇼크 이후

“속은 게 죄… 그게 어디 공범인가요”

박근령 3시간 눈물 토로 ‘언니 박근혜를 위한 변명’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입력2016-12-22 11: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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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주변에 절절한 사람 엄청나”
    • “언니가 아버지를 더 빛내드렸다”
    • 박정희, 자매에게 ‘德不孤 必有隣’ 써줘
    • “변함없이 언니가 자랑스럽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박 대통령 동생들의 심경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사자들은 꼭꼭 숨었다. 박지만 EG 회장은 아예 휴대전화를 꺼뒀고, 어렵게 연락이 닿은 박근령(62) 전 육영재단 이사장도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 전 이사장이, 언니가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있음을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2월 11, 13일 그와 통화하며 설득을 거듭했다. 인터뷰를 완강히 거절하던 그는 결국 “언니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라도 나서겠다”며 약속 장소를 알려줬다.

    이들 자매, 남매 관계의 열쇠는 최태민 목사가 쥐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씨가 이들 사이를 갈라놓았을 때인 1990년 8월 박근령, 박지만 씨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언니가 최태민에게 철저히 속고 있으니 빨리 구출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언니를 부모 대하듯

    박근령 전 이사장은 “결국 최태민 일가가 원한 것처럼 사이 나쁜 자매, 남매로 언론에 보도됐다”며 “내가 언니라도 언론에 그려진 내 모습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2월 25일 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박 전 이사장은 청와대에 일절 출입하지 않았다. 근래엔 청와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첫 감찰대상으로 검찰에 고발돼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인에게 1억 원의 빚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동안 언니에게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박 전 이사장은 정색했다.

    “가족 챙기라고 (국민이) 대통령 시켰습니까.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버지 어머니께 불효하는 거죠.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될까봐 그렇게 예뻐하는 조카들도 안 보면서 희생하시는 분을 탄핵이니 뭐니, 말이 됩니까.”



    “70점이라고 ‘퇴학’이라니…”

    12월 13일 밤, 서울 광화문 근처 박 전 이사장 지인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언니인 박 대통령을 ‘형님’이나 ‘VIP’라고 불렀다.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언니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3시간 동안 그야말로 토로했다. 가져온 공책의 메모를 펼쳐 보고, 기자의 말이나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필기하면서.

    ▼요즘 심경이 어떠신지요.

    “제 속이 이렇게 다 타들어 가는데 VIP는 어떠시겠어요. 언니는 피해자예요. (최순실이) 일개 옷 심부름하는 그런 사람인데, 아무래도 직책 있는 사람보다 (대통령을) 더 자주 만나면서 그걸 120% 이용한 거죠. 속은 사람이 공범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안 속아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속은 대통령한테 돌을 던져야 하는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잘못을 하나도 안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최씨 얘기를 하지 않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죠. 그렇지만 70점이라고 퇴학(탄핵)? 이건 아니죠.”

    ▼탄핵감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잘못한 것에 대해 탄핵으로 책임을 묻는 게 아닐까요.

    “자, 대통령이 속아서 이적(利敵)행위를 했는지 보자는 거죠. 안보 차원에서 평가해주세요. 안보가 우리의 생명줄이니까. 헌법 84조에 따르면 외환(外患)이 탄핵의 조건이에요(‘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그 조건에 안 맞으면 처벌하지 못합니다. 야당이 앞장서는 것 보세요. 정치 공세이고 마녀사냥입니다.”

    박 전 이사장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기각되기를 바라며 음성을 높였다. 재직 중인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지만 불법을 저지르면 국민과 국회가 탄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탄핵의 조건이 되는 불법의 경중을 떠나서 자신의 바람을 그렇게 전했다.

    ▼최순실 씨에 대해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육영재단 재직 당시에도 알고 있던 최태민, 최순실 씨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아뇨.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안 하겠어요.”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에 대한 생각을 묻자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때 어떤 기대를 했습니까.

    “유종의 미를 잘 거두길 바랐어요. 5년이란 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면 기니까요. 특별히 기대한 게 있다면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정수인 고대사, 상고사 같은 뿌리 역사를 아이들이 국정교과서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하기를 기대했어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기반을 닦았고,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던 중에 돌아가셨잖아요. 더구나 요즘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요. 툭하면 묻지마 살인, 존속살인….”


    “언니는 나의 멘토”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업적을 빛바래게 했다고 생각진 않습니까.

    “오히려 아버지를 빛내드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전 정권이 할 수 없던 많은 걸 했어요. 노령연금도 그렇고. 언니는 아버지를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아버지를 모셨다는 이유로 꼭 ‘전 중앙정보부장’이라고 얘기해요. 그런 인격을 가진 분입니다. 제 멘토죠.”

    ▼가훈(家訓)이 있었습니까.

    “가훈까지는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저와 언니에게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글을 써주셨어요. 제겐 지금 없고, 언니가 제 것도 갖고 계신데, 그 말은 ‘논어’인가에 나올 거예요. 덕이 있으면 고독하지 않고 이웃이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박 대통령 주변에도 정말 사람이 많을까요.

    “대통령은 저(자신의 주변 사람) 곱하기 100배, 1000배입니다. 그런 분들이 어떤 세력에 의해 차단돼 그렇지 (그 사람들은) 언니에 대한 절절함이 대단하죠.”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많은 분이 천거를 받으셨어요. 제가 직접 아는 분도 계셨고.”

    ▼최순실 씨의 인사 개입에 대해선….


    “그건 제가 보지 않은 것이라 상상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최순실 씨의 자리에 박 전 이사장께서 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대통령이 주로 혼자 밥을 먹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이런 보도는 외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하는 사람도 있고, 미장원에 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VIP 주사 얘기가 나와서 강남에서 주사 맞는 게 유행이 됐다는데, 불법이 아니니까 맞은 것 아니겠어요. 무조건적인 비방을 들으면 아주 무서워요.”

    ▼최순실 씨가 VIP 연설문을 고쳤다고 알려졌습니다.

    “JTBC가 태블릿PC 입수 경위를 정확히 밝혀야 해요. 언론 인터뷰 기사에서 최순실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게 취미라고 했다는데, 정작 그 말을 했다는 고영태 씨 본인은 그런 말 안 했다고 하잖아요.

    또 이번 사건을 수사한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서울중앙지검장)이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이었죠. 전 정권 사정비서관 했던 분이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있다는 문제는 동생(박근령)이 (제기)할 만한 것 아닙니까. 언니 속 좀 후련하게.”



    “많은 사람 만나셨더라면”

    ▼박 대통령이 참모들로부터 대면이 아닌 서면 보고를 주로 받았다는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저는 피부 관리를 안 한 얼굴로 누구를 만나기가 (상대방에게) 미안하고 그래요. 정부 부처가 22개인가 그런데, 그걸 다 대면 보고받아야 합니까. 편리하게 효율성 있게 해야 하는 거지. 수첩공주 소리를 들어도 할 건 ‘딱딱’ 했어요. 수첩에 안 적으면서 일 안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은 방법입니다. 성실하게 메모해야 정확한 거죠. 다만 아쉬운 건,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셨더라면 폭넓게 들으셨을 거란 거예요. 언론이 청와대에 문제를 제기하면, 수석비서관님들이 대통령에게 얘기해서 처리하면 (해결)됐을 텐데, 비서관들이 보필을 잘못한 거죠. 그걸 안 했어요.”

    ▼대통령이 자질이 부족해 국무회의 도중에 나가서 전화를 하고 오고, 표현도 어눌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VIP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한 분이에요. 언니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VIP) 연설법을 정말 배우고 싶어요. 아무리 해도 (나는) 못하겠던데요.”  

    ▼지금 대통령께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해명 좀 하셨으면 합니다. 이 사건은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알던 사람은 누구나 무한 책임이 있으니 자기 확신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전 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일들을 국가를 위해서 많이 하셨잖아요.

    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어요. (잠시 침묵한 사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정치 스타일대로 주관을 갖고, 언니 보통 때 주관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형님을 믿고 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마셔요. 부디 옥체 강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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