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Interview

“수학 천재 ‘계보’ 만들어졌다… ‘수학 강국’ 코앞”

송용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 단장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입력2017-10-08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올해 또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1위’…비결은?
    • IMO 출전자들, ‘교육 조교’로 활약하며 후배들 이끌어
    • 수학 천재들은 수학 공부 중…“이들이 한꺼번에 ‘한국 수학’ 끌어올릴 것”
    • 4차 산업혁명 시대, 수학은 ‘전에 없던 것’에 대한 도전 도울 것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자처하는 학생이 갈수록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근간은 수학이다. 지난 6월 서울대에서 대한수학회 주최로 열린 ‘4차 산업혁명에서 수학의 역할’ 포럼에서 김종락 교수(서강대 수학과)는 “수학자 앨런 튜링으로부터 시작한 컴퓨터와 인공지능 개념이 4차 산업혁명의 뿌리”라고 말했다. 앨런 튜링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5)으로 대중에 친숙한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다. 그렇다면 개인은 몰라도 국가는 수학을 포기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수학 강국인가. 수학은 천재의 소유물인가, 아니면 미래 사회의 시민이 갖춰야 할 교양인가.



    19년째 ‘단장’ 중

    이러한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는 ‘수학하는 사람’은 송용진(59) 인하대 수학과 교수일 것이다. 그는 국내 수학 천재들의 스승이다. 청소년들의 ‘수학 올림픽’,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 한국대표단 단장을 무려 19년째 맡아오며 수학 천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봤다. 서울대 수학과 77학번으로 미국 오하이오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1년부터 인하대 강단에 섰다. 현재 대한수학회 부회장이자 한국수학올림피아드위원회(The Korean Mathematical Olympiad) 위원장도 맡고 있다.

    20년 가까이 계속 단장을 맡고 있는 이유가 있나.
    “후임을 찾지 못해서(웃음)…. 한국이 IMO에 참가한 지 30년 가까이 됐다. 이제 국내 학계에는 올림피아드 출신 수학자가 꽤 된다. 그런데 다들 연구하느라 바빠서 단장을 안 하려고 한다. 대한수학회 올림피아드 담당 사업이사인 엄상일(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최수영(아주대 수학과) 교수가 열성으로 임해줘서 큰 힘이 된다. 두 분 다 과학고 재학 시절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계절학교(여름·겨울방학 학습교육)에 들어왔던, 국가대표급에 버금가는 실력을 뽐내던 이들이다.”

    IMO는 매년 7월 개최국을 바꿔가며 열린다. 대회 기간 각국 단장은 문제 출제 및 채점을 비롯한 각종 회의에 참석한다. 영어 실력과 올림피아드 문제에 대한 감각이 단장에게 요구되는 것. 그런데 과거에는 대한수학회 부회장이 자동직으로 단장을 맡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졌다. 송 교수는 대한수학회 사업이사를 하며 오랜 기간 올림피아드 업무를 해왔다. 그리고 1995년 부단장을 거쳐 1999년 실무 출신 첫 단장이 된 이래 자연스럽게 계속 단장을 맡아오게 됐다. 그는 “IMO에 참가하는 주요국 단장 중엔 20여 년 된 분이 여럿”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수학 쏠림’ 해소해야

    수학 천재들은 보통 수학 전공을 선호하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전자공학과 등 공대로 많이들 갔다. 1994년 출전자 중 수학하는 사람은 김다노(서울대 수리과학과 부교수)가 유일할 정도다. 1995년 내가 부단장을 했을 때 아이들에게 수학자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 그때 대표선수 6명 중 신석우만 수학을 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고, 나머지는 갈등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이경용(미 네브래스카대 수학과 부교수)이다. 경용이는 의대에 진학했다가 군 제대 후 수학과로 전과했고, 현재 세계 최고 수준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됐다.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IMO 출전자 대부분이 수학과 진학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계절학교 참가자로 선발되는 학생이 70여 명이다. 이중 IMO 대표선수로 선발되는 최상위권 아이들이 수학과로 가겠다고 하니, 다른 아이들도 수학과를 선호하는 쏠림 현상이 생긴 것 같다.”

    후학(後學)이 두터워서 든든하겠다.
    “이젠 걱정될 정도여서 거꾸로 얘기한다. 수학 말고 물리학, 기계공학 등 수학적 재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좋은 학문이 많다고 조언한다. 서울대 선호가 여전한 것이 문제다. 수학올림피아드 출신들이 대거 서울대 수리과학부로 몰려가니 입학 경쟁률이 너무 높아졌다. 이 경쟁에서 탈락해 ‘할 수 없이’ 의대에 간 아이도 있다. 작년 IMO 만점자 중 한 명은 서울대 수리과학부를 떨어져서 카이스트 수학과로 진학하기도 했다. 또 수학과 유사해 보이는 수학교육과나 통계학과 등으로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보다는 생물학, 물리학 혹은 공학 쪽으로 가서 과학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사회인으로 장성한 제자들로는 누가 있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진 중에 IMO 출신이 어느덧 4명이 됐다. 1988년 한국의 첫 IMO 출전 때 대표선수이던 김영훈 교수는 대수기하학 분야 최고의 고수다. 김다노(1993년 동·1994년 은), 김상현(1993년 은) 부교수에 이어 올가을에 서인석(2002년 은)이 조교수로 임용됐다. 금융과 공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삼성전자에서 인공지능 딥러닝(deep learning·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IMO 출신도 있다. 한편 93년생 군단 중 이상훈(2009년 금), 이석형, 오규진은 현재 미 프린스턴대 수학과 박사 과정에 함께 재학 중이다. 미국 유수 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인 IMO 출신을 모으면 적어도 20명은 될 것 같다. 이들이 몇 년 후 한꺼번에 한국 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크게 기대한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자도 나올까.
    “노벨상처럼 필즈상도 운이 따라줘야 한다. 우연히 접해 연구에 매달린 주제가 훗날 세계의 관심 사항이 되어야 하고…. 그러나 확률로 말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20년 이내에 한국인 필즈상 수상자가 나올 확률은 80%라고 본다.”



    대표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7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해 대회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송 교수는 정부로부터 2022년이나 2023년에 한국이 IMO를 개최하면 어떻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대회 직전에 노르웨이와 일본이 각각 2022년과 2023년 대회를 자국에서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놓은 상황이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급부상하면서 수학 관련 큰 행사인 IMO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학 천재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까.
    “수학올림피아드로 키운 ‘수학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IMO 대표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대표선수 선발 과정에 많은 학생이 참여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매달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다. 이들이 훗날 과학 및 기술 분야에 진출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만한 국내 과학자들은 대부분 실험과학자다. 반면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 세계적 수준의 이론 과학자는 드물다. 이제는 한국도 수학을 비롯한 일반 과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학자를 배출할 때가 됐다. 어려서부터 자기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하면서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수학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근간이라고들 한다.
    “수학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미래 사회에는 메인 툴(Main Tool)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는 기존 방법론으로 안 되는 것들에 도전해야 한다. 이때 수학으로 익힌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큰 힘을 발휘한다. 수학이 수학을 넘어 여러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학하는 사람들이 과학과 산업 등 여러 분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할 역할에 대해 조언한다면.
    “지난 정부는 산업수학을 육성하겠다며 몇몇 대학이나 교수에게 연구비를 나눠줬다. 기존의 수학자에게 약간의 연구 인센티브를 주고 ‘산업수학도 한번 해봐라’는 식인데 이래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산업수학은 산업체로부터 다양하고 복잡한 요구가 있는 분야다. 기존 수학자들이 가욋일로 덧붙여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수학에 매진하는 별도의 연구소를 세우거나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연간 예산은 100억 원도 안 된다. 너무 작다. 다른 국가 출연 연구소와 동일한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수학은 펀더멘털

    수학을 토대로 꽃핀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말려 죽인다. 지난 1월 한국고용정보원은 향후 10년 안에 국내 노동자의 70%에 해당하는 1800만 명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수학은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굳이 익힐 필요가 없는, 익힌다고 해도 별 쓸모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송 교수는 “간단한 답과 복잡한 답이 있다”고 했다.

    “‘수학을 배우지 않는 나라는 없으니까.’ 이게 간단한 답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많은 이가 교육의 목표를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시를 배우는 것은 그것이 돈 버는 데 유용해서가 아니다. 삶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감수성 등을 기르기 위해서다. 앞서도 말했듯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수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다.”

    수학올림피아드의 존재 이유는.
    “그간 ‘시험만으로 어떻게 영재를 키우냐’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런데 다른 학문은 몰라도 수학은 시험으로 영재를 발굴하고 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학이란 곧 ‘사고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고전이 된 사례이긴 하지만 러시아가 60년 전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었던 것은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기본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이 없는 국가는 미래 사회에선 더더욱 ‘점프’를 할 수가 없다. 수학은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여건)이다. 수학올림피아드를 펀더멘털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봐달라.”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