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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부자가 되고 못 되고 상속에 달려있어

  • 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부자가 되고 못 되고 상속에 달려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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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한 ‘부농’은 없다?

도시의 팽창이 거듭되었으나 19세기 말까지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농촌에 살았다. 신석기시대에 농업이 시작된 이래 인류의 주된 작업장은 단연코 농촌이었다. 그럼 농촌에서는 누가 부자 노릇을 했을까? 농촌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운이 따라주면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농촌에서도 도시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몇 해 동안 서양의 농업사 저작을 탐독했다. 그러나 서양농업사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는 나의 기대를 꺾었다. 17~19세기 유럽 농촌에서는 새로운 지주층이 등장하지 않았다. 대지주의 농장은 물론 중소지주의 농토 역시 대대로 지주의 후손에게 상속됐다. 상업작물 또는 환금작물의 재배가 활발한 지역에서조차 신흥 지주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농촌에서 자수성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한 집안이 소유한 토지가 다른 집안으로 넘어가는 일조차 드물었다. 유럽의 농촌 사회는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지주 가문에 태어나 상속자로 선택되는 행운을 얻었다면 모를까, 신흥 지주로 발돋움할 기회는 거의 봉쇄돼 있었다. 17~19세기 유럽 농촌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은 ‘하강 이동’이었다. 상승 이동은 눈을 씻고 보아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한국의 농촌 사회는 사정이 달랐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소작인 또는 소농이, 이른바 ‘광작농민(廣作農民)’이 되어 넓은 땅을 경작했고 결국은 지주로 성장했다. 심지어 양반이 되는 경우도 많았단다.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맹아설’을 뒷받침하는 이런 연구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역사학계를 지배한다. 광작농민의 실체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없지 않으나, 아직도 광작농민의 전설이 정설로 통한다.


‘임대업자’ 꿈꾸는 요즘 어린이들

검인정 국사교과서와 한국사 수험서에는 조선 후기의 자수성가한 부농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요컨대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성이 크게 개선돼 농민의 계급분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부자들이 출현해 결국 신분 상승에 성공했다는 주장이다. 

나로서는 이러한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 조선 후기에 그처럼 눈부신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사실상 통설로 굳어져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작물의 환금성이 개선되면 어느 계층에게 유리할까? 혜택은 일차적으로 지주의 몫이 될 것이 빤하지 않은가. 하필 조선 후기에는 빈농이나 소농이 그 혜택을 주로 누렸다고 볼 역사적 근거가 과연 있기는 한가? 

둘째, 17세기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서양 사회에서는 농업의 상업화가 촉진되었다. 가내수공업 또한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 유럽만큼은 아니었으나, 중국과 일본의 농촌 사회에서도 유사한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조선 후기의 농촌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중국 및 서양에서는 농업 생산성과 상업화의 변화가 양극화를 초래했을 뿐 새로운 지주층의 등장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농촌의 경제적 발전은 농민의 신분 상승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에 비해 농촌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 내 생각은 이렇다. 만약 조선 후기에 상당한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면 그 일차적 수혜자는 상공업자를 비롯한 도시의 지배세력이었을 것이다. 농촌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상업화 경향이 있었다면, 그 혜택은 당연히 지주층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도시를 지배하는 왕실, 귀족, 상인층에 비하면 이익의 몫이 적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조선 후기에 신흥 지주세력이 등장해 신분 상승을 이룰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한 개인이 부자가 되는 데 상속만큼 결정적인 요소는 없다. 한국 역사상 21세기처럼 경제활동의 기회와 종류가 다양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요즘처럼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서 자수성가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자력으로 부자가 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한국 초등생들이 장래 직업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임대업자’를 첫 손가락에 손꼽겠는가? 아이들조차 자수성가를 불가능한 일로 간주한다. 

역사상에는 상속을 둘러싼 불화가 많았다. 상속을 둘러싼 형제 갈등은 성경에도 자취를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각종 전기 자료에서도 부모가 남긴 좋은 논밭과 힘센 노비를 차지하려는 형제자매간 갈등이 종종 목격된다. 문서에 기록될 만큼 그 갈등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해도, 크고 작은 반목과 대립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바다. 

‘흥부전’ 같은 옛 소설도 상속을 놓고 빚어진 형제 갈등을 고발한 사회소설로 읽힌다. 놀부는 ‘똑같이 나눠 가지라’는 아버지의 유명(遺命)을 무시하고 부모의 재산을 독차지한 인물이다. 그 때문에 아우 흥부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강남에서 온 제비가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주었기에 망정이지, 흥부 가족은 모두 굶어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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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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