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北宋)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가 시작해 남송(南宋) 주희(1130~1200)가 완성한 성리학(性理學)은 우주 만물이 기(氣)라는 물질로 구성됐다고 본다. 주희는 인간 본성은 본디 맑으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뒤틀리므로 학문을 통해 본성, 즉 이(理)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리학(주자학)은 선불교(禪佛敎)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대국 숭배 인식과 성리학

몽골고원. 송(宋)은 몽골고원에서 흥기한 몽골에 의해 멸망한다.
성리학은 한족(북송·남송)이 거란(요), 여진(금), 티베트계 탕구트(서하), 몽골(원) 등 새외민족에 시달려 위축됐을 때 등장한 한족 중심 보수적 철학체계다. 성리학에 따르면 우주 질서는 이(理)에 따라 정해진다. 이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예(禮) 등으로 나타난다. 절대선의 우주 질서인 이를 어지럽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리학에서 명분을 숭상하는 것은 이렇듯 보수적 철학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기존 질서를 존중하고 그것을 절대시하는 학문이므로 권력자에 의해 종종 관학(官學)으로 채택됐다. 성리학은 절개(節槪)가 강한 이를 문명인으로 봤으며 중원 밖 오랑캐는 멸시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여겼다. 성리학은 중국 중심 화이론(華夷論)의 기초다.
주희는 금나라와 화평을 맺는 것을 반대했다. 오랑캐인 여진족이 세운 나라는 우주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라고 봤기 때문이다. 몽골 또한 예(禮)와는 거리가 먼 오랑캐이므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주희의 이론을 심화한 이이, 송익필, 김장생, 김상헌과 삼학사(윤집, 오달제, 홍익한), 송시열 등 조선 중기 이후 서인·노론 사대부는 주자학 교조주의자였다. 광해군의 실각(失脚), 김상헌과 삼학사의 청나라에 대한 무조건적 저항과 예송(禮訟)을 둘러싼 당쟁은 주자학적 신념에 기초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마저 일본 주자학자의 글을 읽고 “이제 왜인(倭人)도 성인의 길을 배우니 다시는 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주자학적 중화 숭배 인식체계를 고수한 이들의 숭배 대상은 명(明)에서 개화에 성공한 일본으로 바뀌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에선 미국, 북한에선 소련으로 다시 바뀌었다. 2016년 말~2017년 현재까지 성조기(星條旗)를 동원한 일부 시위에서 보듯 이러한 인식체계는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성리학에서 명분을 숭상하는 것은 이렇듯 보수적 철학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기존 질서를 존중하고 그것을 절대시하는 학문이므로 권력자에 의해 종종 관학(官學)으로 채택됐다. 성리학은 절개(節槪)가 강한 이를 문명인으로 봤으며 중원 밖 오랑캐는 멸시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여겼다. 성리학은 중국 중심 화이론(華夷論)의 기초다.
주희는 금나라와 화평을 맺는 것을 반대했다. 오랑캐인 여진족이 세운 나라는 우주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라고 봤기 때문이다. 몽골 또한 예(禮)와는 거리가 먼 오랑캐이므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주희의 이론을 심화한 이이, 송익필, 김장생, 김상헌과 삼학사(윤집, 오달제, 홍익한), 송시열 등 조선 중기 이후 서인·노론 사대부는 주자학 교조주의자였다. 광해군의 실각(失脚), 김상헌과 삼학사의 청나라에 대한 무조건적 저항과 예송(禮訟)을 둘러싼 당쟁은 주자학적 신념에 기초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마저 일본 주자학자의 글을 읽고 “이제 왜인(倭人)도 성인의 길을 배우니 다시는 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주자학적 중화 숭배 인식체계를 고수한 이들의 숭배 대상은 명(明)에서 개화에 성공한 일본으로 바뀌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에선 미국, 북한에선 소련으로 다시 바뀌었다. 2016년 말~2017년 현재까지 성조기(星條旗)를 동원한 일부 시위에서 보듯 이러한 인식체계는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