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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가 눌러쓴 10만9000자 비망록

“예산 증액? 뜯어먹고 나눠 먹어 중증외상 치료에 쓰일 돈은 없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국종 교수가 눌러쓴 10만9000자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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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숟가락만 얹는 게 아니라 밥상 들고 가”

외상외과 의사는 일상이 응급이다. 예상하지 않은 시간에 계획되지 않은 수술을 한다. [박해윤 기자]

외상외과 의사는 일상이 응급이다. 예상하지 않은 시간에 계획되지 않은 수술을 한다. [박해윤 기자]

“오늘 국회 세미나에서 2002년부터 겪은 일을 다 까발렸어요. 저를 딱 제쳐놓고 모여 국회에서 지금 공청회가 열립니다. 투전판입니다, 투전판. 떴다방도 이런 떴다방이 없어요. 밥숟가락만 들고 오는 게 아니라 밥상을 아예 들고 나갈 겁니다. 나눠 먹기, 뜯어먹기가 투전판보다 더 빨라요.” 

그가 노트북으로 2011년 9월 23일 자 신문기사 하나를 찾아 보여줬다. ‘이국종 꿈 이루어지다’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다. 1면 머리기사로 응급의료전용 헬기와 그의 사진이 실렸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하면 5분 안에 출동하는 전용 헬기인 에어 앰뷸런스 두 대가 9월 23일 운행을 시작한다.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춰 ‘하늘의 앰뷸런스’(대당 150억 원)로 불린다. ○○병원과 ○○병원에 배치됐다.” 

‘이국종 꿈 이루어지다’ 제목과 그의 사진이 실렸으나 닥터헬기는 그가 일하는 곳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갔다. 예산이 다른 곳으로 갔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외상센터 본연의 임무에 비켜선 곳에 돈이 쓰인다고 생각해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헬기 낙하 훈련 등을 할 때는 의사와 간호사의 목숨을 담보로 쇼를 한다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이송 장비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입니다. 닥터헬기가 중증외상환자 실어 나르는 게 얼마 안 돼요. 용도가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권역외상센터는 ‘이국종법’으로 일컬어지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치료법 개정안’이 2012년 5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설치됐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 환자만을 위해 나랏돈으로 지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설립된 권역외상센터들이 본연의 역할과 다르게 운영된다는 언론의 지적이 해마다 나왔다. 

아주대병원은 2012년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 1차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국종법’에 정작 ‘이국종’은 없었던 것이다. 2차 공모에 재지원해 선정됐으나 1차 공모에서 탈락했을 때 그가 입은 상처는 컸다.


인구 1000만 서울 중증외상센터 全無

이국종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응급 수술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이국종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응급 수술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그는 응급의료기금도 예로 들었다. 일부 병원은 응급의료 장비를 산 것처럼 장부를 꾸며 기금을 빼돌리다가 감사원에 적발됐고, 한 병원장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에게 기금을 교부해달라며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2년에도 ‘이국종법’이라는 법을 만들고 저는 효용이 끝났습니다. 이번에도 이송 수단 구입하는 것과 연구비, 연구용역비 등으로 쓰고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들어오는 예산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학회 장사꾼들과 예산 따먹기 프로들이 있습니다. 외상센터가 개판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지난번에 (예산을 증액해) 도와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하겠죠.” 

그는 2016년 9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유명무실해질 소지가 커요. 정부 지원을 따낼 때까지는 각 병원이 다 열심히 했죠. 현재는 외상환자가 별로 없어 의사들이 놀고 있다면서 다른 수술이나 일을 하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합니다. 보건복지부도 황당할 겁니다. 서로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니까요. ‘불꽃놀이’가 끝나면 정부 지원으로 지은 외상센터 시설이 ‘심장센터’ ‘산부인과센터’ 같은 돈 되는 진료를 하는 곳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신동아 2016년 9월호 ‘응급환자 깔아두다 죽이는 게 병원이 할 짓입니까’ 제하 이국종 교수 인터뷰 참조) 

‘이국종법’에 따라 전국에 권역외상센터 16곳이 지정됐는데 현재 운영 중인 곳은 9곳에 그친다. 중증외상 치료는 의료수가 문제 등으로 인해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이른바 빅5 병원 어느 곳도 외상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국립 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다. 1000만 명이 사는 수도에 중증외상센터가 단 1곳도 없는 것은 국격에 맞지 않는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외상환자가 이송된 후 처음 치료를 받기까지 7시간 14분이 걸린다(국립중앙의료원 자료). 반면 900만 명이 사는 영국 런던은 중증외상 환자 6068명 중 98.5%가 1시간 이내에 런던 내 4곳의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영국 NHS 자료·2016년 3월~2017년 4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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