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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8화. 조짐 혹은 참사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2/11
집을 비워두고 아이들과 며칠 나들이할 채비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아 아내와는 한 시간 뒤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금 여유를 찾은 그는 다시 서울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노 부장을 찾았다.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노 부장도 그 사이 조금 진정된 듯했다. 평소처럼 안정을 되찾아 들뜨거나 과장된 기색 없이 그 한 시간 전에 서울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아까 10시 반쯤에 공수부대 상사 하나가 하사 둘을 데리고 3층 경리부를 찾아왔어요. 때마침 우리 편집부는 오전 중으로 마쳐야 할 여름호 특집 마무리 교정 교열에 바빴고, 아시죠? 계엄 확대와 뒤이은 광주사태로 턱없이 까다로워진 검열 때문에 ‘우리시대 문학’ 여름호가 한 보름가량 늦춰진 것, 경리 김 양은 은행에 간 터라 새로 경리부 수습 중인 박 양만 남아 있었는데, 거기 검은 베레모를 쓰고 정장한 그들 셋이 한꺼번에 덮치듯 들이닥친 거예요. 그리고 칸막이 넘어서 편집회의 중이던 우리나 3층 이쪽저쪽에서 일하던 영업부 사원까지도 그들이 온 걸 느끼지 못한 사이에 그 봄 여상을 갓 졸업한 그 수습사원의 작은 책상 앞을 에워싸듯 둘러서 그 애와 무언가를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았다더군요. 

그러다가 얼마 뒤에 굳은 듯이 앉아 있는 경리부 수습 박 양만 남기고 군홧발 소리를 저벅거리며 사라져버렸다는 것인데, 알 수 없는 일은 그때부터 그 어린 박 양이 그대로 책상 앞에 앉은 채 눈물도 닦지 않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한 거예요. 한 10분 뒤 은행에 갔던 경리 김 양이 돌아올 때까지요. 김 양이 이상해 물으니 그때까지 소리 없이 흐느끼던 박 양이 갑자기 서럽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더랍니다. 공수부대원들이 이불휴 선생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갔다고, 자기가 다 말해주었다고. 그리고 김 양이 그 까닭을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밝히더라는 거예요. 그 공수부대원이 자신에게 이죽거리듯 했다는 말로. 

‘너 아니? 우리가 바로 얼마 전 광주에 갔던 그 공수부대야. 소문 들었지? 밤새 갈아 날 세운 대검으로 여대생의 유방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는 그 악귀들 말이야. 밤새 칼을 갈아 날을 세운 까닭은 그냥 군용대검으로는 여대생의 유방도 못 잘라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지도 못하거든.’
 
그러고는 손으로 얼룩무늬 군복 윗도리 가슴께나 불룩한 주머니가 달린 작업복 허벅지 쪽을 쓰다듬어 금세라도 시퍼런 대검을 빼 들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덧붙이더라는 거예요. 

‘이왕 악귀가 된 거 두 번 되기가 뭐 그리 어렵겠니? 그러니 그 새끼 주소하고 전화번호 빨리 대. 기억을 못 하면 경리 장부라도 펼쳐 찾아보라고. 여기서 주는 상 받고 여기서만 책을 낸 작가라면 그 새끼한테 원고료도 보내고 인세도 보냈을 거 아냐? 폭도건 민주투사건 성난 수십만 시민을, 그들 안마당에서, 그것도 겨우 수천의 병력으로 터무니없는 위력진압을 꾀한 죄가 있으니, 우리가 광주에서 악귀가 된 것은 그래도 어떻게 참아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개새끼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작가라는 탈을 쓰고 우리가 하지도 않은 짓을 지어내어 우리 인격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드는 이런 망종은, 우리가 여대생의 유방을 자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고 덮어씌운 자들보다 더 악질이라고. 그렇게 광주에 아첨해서 무얼 얻어걸리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새끼를 찾기 위해서라면 정말 나라 지키라는 대검이라도 얼마든지 빼 들 수 있다고, 알아? 그러니 빨리 말해. 시퍼렇게 간 대검으로 젖통이건 아랫도리건 확 쑤셔 그어버리기 전에….’ 

그러니 그 어린 게 얼마나 놀랐겠어요. 놀라 제정신도 아니게 불휴 씨 주소하고 전화번호 알려주고는 그리 넋을 놓고 울어댄 거예요. 그런데 불휴 씨 도대체 어디다 뭘 쓴 거죠?” 

노 부장의 그런 말을 듣자 그는 새삼 가슴 안이 써늘해지며 지난달 서울에서 만난 김형우 작가의 빈정거림이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광주를 ‘휴가병 열차’로 보고, 병역 의무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대병을 유신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의 옛날로 돌아가려는 광주시민으로 대치하면, 그런 제대병들로 가득 찬 객차를 폭력으로 점거한 공수부대와 어우러져 그대로 198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연출해낼 수 있는 멋진 정치·사회적 알레고리 공간이 완성된다…. 

“제대병 신분으로 경험한 휴가병 열차 속 얘긴데, 등단 전부터 가지고 있던 단편입니다. 우리 동인지 ‘입문(立文)’에 원고를 넘긴 것도 광주사태 일어나기 한 달 전인 4월 중순이고, 그게 실린 동인지 창간호도 5월 말에는 이미 나왔는데….” 

입으로는 노 부장에게 그렇게 절실하고도 간곡한 해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는 자신도 그런 해명이 통하리라는 기대는 전혀 품지 못했다. 노 부장도 무턱대고 그를 편 들어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지는 못했다. 

“설령 검열에서 문제가 되고, 그게 신군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도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네요. 사장님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신데, 계엄사 검열 쪽이든 보안대, 안기부건 정식 경로를 통해 입건하고 수사에 들어간 흔적은 아직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인 광주 일로 딴 곳을 돌아볼 틈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출판사로 찾아온 공수부대원들만 해도 그래요. 정식 수사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경리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윽박질러 주소하고 전화번호만 빼갔겠어요? 요란하게 짖는 개가 물지는 않는다고, 어쩌면 광주로 출동한 서울 근교 공수부대 한구석에서 일어난 개별적인 일탈행동일 수도 있어요. 휴가나 외출 나온 김에 한 번 손봐주고 온다는 식의…. 어쨌든 이번 주말은 이왕 나선 김에 아이들하고 어디 좋은 데 물놀이라도 갔다 오세요. 아직은 6월 중순이라 좀 이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역시 사장님 당부인데, 월요일 오후 다시 제게 전화 주신 뒤에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시라는 데요. 그때까지면 어디를 쑤시든 뭘 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나요.” 

그런 말로 위로와 희망 어린 전망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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