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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한중韓中 5000년

만동묘 복원과 중화주의

明황제 숭앙 송시열, 최익현… 중국 향한 사대주의의 부활

  • | 백범흠 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만동묘 복원과 중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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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04년 조선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 때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이유로 만력제를 숭앙하는 만동묘를 세웠다. 유생(儒生)들의 골수 중화주의는 1865년 대원군에 의해 철거된 만동묘를 10년 후인 1875년 다시 세우는 방식으로 표출됐다. 1942년 일제(日帝)가 철거한 만동묘가 최근 복원됐다. 중화사상이 중화제국(中華帝國) 개념으로 나아가는 국면에서 한국 사회 일각에 뿌리 박힌 중화주의는 치료 불가능한 고질병인 것으로 보인다.
티무르 동상.

티무르 동상.

칭기즈칸의 2남 차가타이는 1227년 현재의 카자흐스탄 동남부 일리 분지(盆地) 알말릭을 수도로 차가타이 칸국(Khanate)을 세웠다. 차가타이 칸국은 13세기 중엽 칭기즈칸의 3남 오고타이의 후손 카이두가 원(元) 세조 쿠빌라이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에 연루돼 원과 킵차크 칸국의 협공을 받은 데다 일 칸국과도 분쟁을 겪은 끝에 13세기 말부터 약화했다. 

튀르크 계통의 티무르는 차가타이 칸국이 톈산산맥을 경계로 동부(모굴리스탄·신장)와 서부(우즈베키스탄)로 분열된 기회를 틈타 1360년 서부에 속한 고향 샤흐리샤브즈(史國) 일대를 확보한 후 1370년에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점령하고 대칸이 됐다. 

티무르는 현재의 카자흐스탄, 이란, 이라크, 크리미아반도를 포함한 남부 러시아를 차례로 정복해 대제국을 세웠다. 중앙아시아-중동 핵심부를 장악한 티무르는 1398년 4월 인더스강을 건너 힌두스탄 평원에 진입했으며 같은 해 12월 델리를 약탈했다. 1400년 10월 시리아의 알레포를 점령하고 1401년 3월 다마스쿠스를 함락했다. 이로써 티무르의 적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 오스만튀르크와 명나라만 남았다. 

티무르는 시리아 정복을 끝낸 후 1401~1402년 겨울 남부 코카서스에서 전열을 정비해 1402년 6월 오스만튀르크 공격을 개시했다. 40만 티무르군은 1402년 7월 20일 앙카라 대회전(大會戰)에서 역시 40만 규모로 편성된 오스만튀르크군을 섬멸했다. 티무르군은 서진을 계속해 마르마라해 연안에 자리한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부르사를 약탈하고 1402년 12월 성(聖) 요한 기사단 치하의 난공불락 해안도시 이즈미르를 단 2주 만에 함락했다. 

1405년 티무르는 70만 대군을 편성해 숙적 명나라 정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티무르는 명나라로 진격하던 도중 키르키스의 숙영지(宿營地)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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