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김정은 비핵화 방정식

전·현직 한미 군 당국자들의 예측

“‘완전한’으로 포장된 ‘적당한’ 비핵화” “문-김-트 서로 속아주는 ‘가짜 CVID’”

  • 입력2018-05-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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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만 폐기…7년 내 ‘핵 보유’ 재선언”

    • “북한 상주 반영구적 장기 사찰하면 비핵화 가능”

    • “핵탄두 20~60발 중 상당수 은닉할 것”

    • “은닉 핵무기 유지·보수가 관건”

    • “주한미군과 맞바꾸면 한국 위험”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를 보며 웃고 있는 김정은의 모습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 2016년 3월 15일자 사진. [동아DB]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를 보며 웃고 있는 김정은의 모습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 2016년 3월 15일자 사진. [동아DB]

    핵탄두를 보는 김정은의 모습을 담은 노동신문 2017년 9월 3일자 보도. [동아DB]

    핵탄두를 보는 김정은의 모습을 담은 노동신문 2017년 9월 3일자 보도. [동아DB]

    세기의 ‘핵 담판’으로 기록될 북·미 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대한 성공(great success)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을 내역이 큰 틀에서 결정됐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라는 미국 측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통해 완전한 핵 폐기가 가능한지, 북한이 반대급부로 무엇을 받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북·미 정상회담과 완전한 비핵화 문제는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전·현직 한미 군사 당국자들을 상대로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본 결과, 필자가 접촉한 다수는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70년간 이어진 북한의 거짓말,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 등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증, 현재 진행되는 비핵화 방식에서 불거진 기술적 난관이 그 근거였다. 

    이들은 “북·미가 비핵화에 합의하더라도, 김정은은 일부 핵탄두를 은닉할 것이고, 비핵화 성과를 홍보해야 하는 트럼프는 이를 눈감아줄 것 같다”고 했다. 핵 문제 전문가인 K 예비역대령은 “현실적으로 볼 때, 문재인-김정은-트럼프 모두 서로 속아주는 ‘가짜 CVID’ 혹은 ‘완전한 비핵화로 포장된 적당한 비핵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와 김정은은 2년 이내 이런 비핵화를 완료할 것이고,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재선에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7년 이내 은닉한 핵을 꺼내 ‘핵 보유’를 다시 선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서 핵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합동참모본부에서 핵 관련 업무를 담당한 S 예비역대령은 “북한이 플루토늄이나 우라늄 핵시설을 숨길 순 없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감추긴 쉽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부 내용에 암초”

    한미연합사 정보 분야에 오랫동안 근무한 군 관계자도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는 20~60여 발로 추정된다. 이 중 일부만 폐기하고 나머지를 1만여 곳이나 되는 땅굴과 지하 터널에 감춰두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현직 군 당국자들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꼽는다. 다만, 북·미 협상에 임하는 미국으로선 김정은의 의지나 선의에 의존하기보단 검증 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남·북·미 3국 정부는 외형상으론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는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 ‘비핵화가 성공으로 나아가는 모양새’를 홍보할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 검증 망 곳곳에서 허점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 검증 망은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연관된다. 이 방법에 있어, ‘신속한 일괄 타결’을 선호하는 미국과 ‘장기적 단계별 보상’을 원하는 북한 사이엔 견해 차이가 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정은 간 두 차례 면담을 통해 양측은 절충안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시한과 큰 틀의 이정표만 발표하고 후속 회담에서 세부 사항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월 9일 방북 때 김정은에게 줄 선물을 총망라한 포괄적 보상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트럼프가 ‘최대한의 압박’에서 ‘최대한의 보상’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김정은은 미국의 보상 수준에 만족한 것 같다. 조선중앙TV는 5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 만족하는 합의를 봤다”는 김정은의 말을 전했다. 

    비핵화 완료 시점과 관련해, 미국은 이르면 1년 내, 늦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 11월 미국 대선 투표일 이전으로 상정했을 것이다. 폼페이오의 두 번째 방북에서 북한은 ‘2020년 이내’에 동의했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 이행을 받아들였을 수 있다. 즉, 북한은 2년 이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를 검증하는 데에 동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이미 만든 20~60개의 핵무기(일부 작전배치)와 핵물질 전량이 폐기돼야 한다. 또한,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화성-15형, 화성-14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미국령 괌과 하와이까지 날아가는 화성-12형 등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도 폐기돼야 한다. 북한의 ICBM과 IRBM은 50기 미만으로 추정된다. 이렇게만 되면 ‘핵을 이고 살 필요 없다’는 김정은의 말은 진심으로 판명된다.

    “줄 선물 거의 다 줘”

    대신, 미국은 종전 선언,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경제 지원,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보류 같은 보상을 제공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다만, 주한미군 장비·인력의 축소·철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미국이 쉽게 북한에 약속했을 리 없다. 북한이 핵무기 5개 시범적 반출, 생화학무기 폐기, 단거리 미사일 폐기, 정치범 수용소 폐쇄, 피랍 일본인·한국인 송환까지 받아들인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대략 이정도로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 몇몇 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군 전문가 L씨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정은은 줄 선물을 거의 다 줬다고 본다.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돌려줬다.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한다고 했다.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젠 트럼프에게 요구할 일만 남았다. 트럼프는 통 크게 선처하는 것처럼 할 가능성이 있다. 전에도 트럼프는 겁을 잔뜩 주고선 갑자기 순하게 변하곤 했다.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 

    비핵화 검증 내지 방법과 관련해, 주된 문제는 김정은이 일부 핵탄두·물질을 은닉했을 때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 하는 점이다. 한 군 관계자는 “핵탄두는 주기적으로 유지·보수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핵탄두 은닉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핵탄두를 숨긴다면 이 핵무기의 유지·보수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대체로 1만여 곳 지하시설을 가진 북한이 축구공만한 우라늄 핵탄두를 숨겨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완전한 핵 폐기가 거의 불가능한 여건과 상황에서 미국이 가짜 CVID에 타협하면 한국이 이 부담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국방부 정책을 담당한 R 예비역장군은 미 당국자들의 부정적 시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북한이 진정으로 전략적 의도를 변경했느냐? 핵을 포기하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느냐? 대미·대남 적대시 정책을 포기한 것이냐? 그동안 나타난 것은 북한이 이렇게 하겠다는 말뿐이다. 핵탄두와 핵물질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과 같은 행동과 검증이 아직 뒤따르지 않았다.”

    “사찰하는 동안엔 못 써”

    일부 미 당국자들은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비핵화 방법 자체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이들은 군사적 수단이 아직 유효하다고 말한다. 

    한 미군 장성은 필자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잘못된 행동이므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는 북한과 협상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욱이 정상회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미군 고위급 장교는 “ 북한 비핵화의 경우, 회담이 아닌 강한 압박과 제재로 백기투항하게 해야 한다. 그래도 투항하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제거하면 된다. 군사적 옵션은 살아있다. 잠시 유보된 상태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군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에 의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에 동의한다면 미국과 IAEA 관계자들이 북한에 들어가 핵·미사일 시설 등에 대한 사찰을 벌일 것이다. 사찰하는 동안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미국과 IAEA가 북한에 거의 항구적으로 상주하면서 사찰과 제거 활동을 지속한다면 북한 핵 활동은 거의 항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미국이 북한의 핵 전문가들을 해외로 이주시키고 핵 개발 자료를 파기하면 북핵 불능화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 측이 북한 영토 내에 진입해 핵 사찰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핵 억제력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정상국가’가 될 때까지 이러한 사찰이 반영구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그 기간에 북한 비핵화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핵 개발’에서 ‘핵 장사’로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에 나선 이유로 K 예비역대령은 김정은의 핵 전략 변화와 한국 내 정권교체를 꼽는다. 

    “북한은 ‘핵무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로, ‘핵 개발’에서 ‘핵 장사’로 전환한 셈이다. 진보 성향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정은은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국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졌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안전판이 됐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 문제를 다룬 전직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북한 비핵화의 성패는 북한이 수용할 검증 범위에 달렸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8년 신년사와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핵 실험 중단이 핵 폐기가 아닌 핵 군축의 일환임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비치지 않는다. 그가 핵물질을 전량 공개할지 회의적이다. 

    몇몇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검증 가능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로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완전한 비핵화로 포장된 적당한 비핵화’의 대가로,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군, 한국 부담의 재정 지원이 추진된다면, 이런 비핵화는 한국에 가늠하기 힘든 손실을 끼칠지 모른다.


    김기호
    ● 육군사관학교 졸업(35기), 육군 대령 전역
    ● 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과장
    ● 전 국방대 안보대학원 군사전략학부 교수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KBS 객원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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