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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 12회. 제쳐논 노래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해도 간밤 늦도록 홀로 마신 술 탓인지 전혀 식욕이 일지 않아 그는 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그 무렵 들어 부쩍 조그마해지고 불안해하는 듯 느껴지는 아내가 그런 그에게 다가왔다. 

“어딜…, 가시려구요?” 

그 짤막하고 조심스러운 물음 앞뒤 어디쯤에는 ‘오늘은 일요일인데’와 ‘하루쯤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쉬어도 되잖아요?’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도 또한 그녀처럼 말을 절약한다. 

“아무래도 밀양엘 좀 다녀와야겠어.” 

앞뒤 없이 불쑥 대꾸한 것이지만 아내도 알아들을 것이다. 그의 말 앞뒤에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과 ‘미안해, 거기 한번 가봐야 할 일이 있어’ 같은 조건문이나, 가벼운 유감 표명은 있지만 그래도 머뭇거림 없이 목적지를 드러내는 서술문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아내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마음을 가다듬은 듯 조용히 그의 외출 채비를 도왔다. 그런 그녀의 눈길에는 어느새 그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은 담담함까지 내비쳤다. 

그 무렵 그는 나날이 작은 폭군이 되어가는 듯한 자신을 씁쓸하면서도 마음 아프게 자각하고 있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원고 청탁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걸 감당해보려는 늦깎이 소설가(그때만 해도 만 서른한 살의 등단은 또래 문인보다 평균으로 예닐곱 해는 늦었다)의 오기가 자초한 재난이었다. 첫 두 해는 이른바 ‘재고(在庫)’로 어지간히 버텨냈으나, 세 해째가 되면서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들어앉아도 몰리는 청탁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떤 때는 문예지 편집장이나 잡지사 기자에게 밤새도록 쫓기는 악몽을 꿀 지경으로 마감 압박에 시달렸다. 거기서 오는 만성적인 피로와 중압감이 까다로운 입맛으로, 또는 종잡을 수 없는 짜증이나, 함께 지내는 사람을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드는 과묵으로 아내에게 전가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골목으로 나서면서 흘끗 돌아본 그의 눈에 현관문 곁에 다소곳이 서 있는 아내의 그림자가 그날따라 새삼 외롭게 비쳤다. 그러나 아내여, 폭군도 쓸쓸하다. 이런 식으로라도 내뿜지 않으면, 당신을 향한 가학(加虐)과 압제는 더욱 커질 것이다. 아내여, 힘들고 외로울 아내여. 

서둘렀는데도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1시에 가까웠다. 그는 매표소로 가서 밀양행 차편을 알아보았다. 가장 가까운 직행버스가 11시 10분에 있고, 밀양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20분 정도라는 것이 매표소 안내원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가 밀양에 도착해야 할 시각은 정각 12시였다. 

그는 잠시 낭패한 기분으로 대합실을 서성거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 약속 시간에 30분 정도 늦는다. 그는 10분 가까이 시외버스 정류장 주변을 뒤진 끝에 우선 청도까지 가는 승객을 찾는 택시에 합승할 수 있었다. 마침 청도 장날이어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합승객을 더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에 쫓긴 그는 나머지 한 자리의 합승 요금을 자신이 떠안기로 하고 출발을 재촉했다. 

“밀양엔 무슨 일로 가슈?” 

택시가 시가지를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 무렵 청도까지 그와 합승하게 된 사내가 넌지시 물었다. 운전사와 주고받는 말로 그가 밀양까지 간다는 걸 알고 하는 물음 같았다. 어딘가 전직 경찰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내였다. 

“네, 정각 12시에 사람을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영남루에서.” 

“흠, 일요일 정각 12시라,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찾을 일요일 영남루에서…. 뭔가 시간과 장소에 별난 까닭이 있는 약속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진작부터 서두르지 않구….” 

숙취에서 덜 깼는지, 해장술을 한 탓인지 그렇게 참견하고 드는 사내의 숨결에는 텁텁한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 빈속인 그에게는 가벼운 메스꺼움까지 느끼게 할 정도였다. 어쩌면 그 사내의 수다 때문에 성가실지 모른다는 우려로 그는 되도록 말끝을 냉정하게 사리며 눈길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그럴 사정이 있었습니다.”

팔조령(八助嶺)이라고 하던가, 오래잖아 택시는 대구서 청도로 넘어가는 재를 멀리 바라보는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풍성한 가로수 잎새에서, 재로 접어드는 산모퉁이 덤불숲에서, 그리고 저만치 비껴 앉은 무성한 산등성이에서, 한창 짙어가는 한여름의 신록이 문득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때까지 그는 창밖으로 눈길을 보내면서, 낯선 동행과 긴하지도 않은 잡담에 끌려다니기보다는 차라리 간밤 취기로 혼절하듯 잠들기 전까지의 어둡고 음울한 상념을 되살려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두 눈을 통해 머릿속을 적셔오는 신록의 짙푸름이 무심하게 풀어놓은 그의 감각에 무슨 요사를 부린 것일까. 난데없이 검은 테를 두른 듯 선연하고도 날카로운 빛 같은 녹음이 겨울밤 들판에 둘러앉아 쬐는 잉걸불의 열기 같은 것으로 눈시울에 훅, 끼쳐 오더니 느닷없고 순진한 격정으로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리고 이어 거의 반사적인 감동으로 조금 전까지도 그를 몽롱하게 만들던 간밤의 상념에서 꺼내줄 명작 속의 한 구절 경구를 떠올리게 했다. 벗이여, 모든 학술과 논리는 잿빛이다. 오직 생명의 나무만이 푸를 뿐이다…. 

그러나 그 조작된 깨달음, 아니 습관처럼 된 조건 없는 동의도 그리 미더운 것은 못되었다. 뒤이은 생명의 ‘황금가지’ 논의로 의식이 미처 옮아가기도 전에 곧 음울한 자투리 기억으로 남아있던 간밤의 상념이 되살아났다. 더해가는 취기 사이로 무슨 대단한 각성이나 해탈처럼 홀연하게 떠올랐다가, 이내 몽롱해오는 기억 속으로 곤두박질하며 흐물흐물 녹아 흐트러지던, 얽다 만 관념의 부스러기들. 깨고 나면 아이 시절의 개꿈처럼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혼절하듯 취기 속으로 가라앉기 전까지는 아, 그렇게도 많은 가볼만한 길이 있고, 번득이는 전망과 해결도 널려있던 것을. 

그렇게 되자 불현듯 관념의 전도(顚倒)가 일어나며, 잠깐 무슨 깨달음처럼 의식을 찔러왔던 그 신선한 생명의 빛이 그에게는 오히려 선뜻 받아들이기 서먹한 허구가 되었다. 우리는 항상 어디선가 저러한 색깔과 의미를 찾아내어 그 애매한 관념화로 자신을 달래고 속이며 삶과 사유의 진창을 건너뛴다. 못미덥고 불안해 한발 한발 더듬고 제겨디디며…. 거기서 그는 눈길을 산등성이 위로 저만치 얼룩지며 몰려오는 두꺼운 먹구름 쪽으로 돌렸다. 

그렇게 얼마쯤 달렸을까, 곁의 사내가 다시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서두, 괜히 궁금해서…. 거기서 만나려는 사람이 누구슈?” 

그리고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를 돕기나 하려는 듯 사내가 덧붙였다. 

“선생의 입성으로 보나, 멀리 있는 영남루같이 한가로운 데서 정오에 만날 약속을 해두고 이제는 또 시간이 급해 택시를 대절해 가는 것으로 보나, 우리네 같은 장삿속은 아닌 것 같고….” 

“아니, 그저….” 

그가 우물쭈물 대답하자 다시 사내가 중얼거렸다. 

“동창회 같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택시를 대절하면서까지 시간에 댈 필요는 없지. 그런 모임이라면 몇십 분쯤이야 늦어도 기다려줄 테니까.” 

“거기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기는 했지만 동창회는 아닙니다.” 

여전히 별로 대꾸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 그는 그렇게 잘라 말하며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사내는 그런 그의 태도가 좀 뜻밖이긴 해도 기분만은 알겠다는 듯 말 상대를 바꾸었다. 아직 앳된 총각 티가 남은 운전사 쪽이었다. 사내는 기름 값이 많이 떨어져 다행이라는 둥의 얘기부터 상스러운 농담까지 한동안 차 안이 시끌벅적하도록 떠들었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신통하지 못했다. 한두 번 간신히 형식적인 맞장구를 치던 택시 운전사도 차가 가파른 고갯길로 접어들자 입을 다물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별로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사내가 다시 무엇을 생각해냈는지 그를 향해 의기양양한 말투로 물었다. 

“아, 여자를 만나러 가는구먼. 그렇지 않으슈?” 

그러고는 왼쪽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야릇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결혼은 하신 것 같은데, 옛날 애인이라두 만나러 가슈? 몇 년 전 오늘 헤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루 한.” 

사내의 뜻밖의 연애소설 같은 발상에 그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런 발상이 어떤 면에서는 제법 사실과 접근해 있다는 게 곧 그의 기분을 건드렸다. 

“틀렸어요. 사실 저는 그곳 대밭에서 접선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무전기와 공작금을 수령하고 난수표로 다음 지령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자 사내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졌다. 그런 사내를 향해 그는 짐짓 느긋이 웃어주었다. 이번에는 사내가 창밖을 향해 왼고개를 틀었다. 몹시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이었다. 

사내는 이후 줄곧 왼고개를 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도에 도착해서야 뚱한 얼굴에 거의 시비조로 한마디 던지고는 차에서 내렸다. 

“잘 가슈, 옛 애인을 만나든, 접선을 하든, 제미랄.” 

청도에서 내쳐 택시로 밀양까지 내려가는 동안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습기를 머금었다. 먹구름이 자우룩해지는 하늘처럼 무겁고 어둡게 뒤얽히는 사념 속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택시가 밀양 톨게이트로 접어들 무렵, 그는 문득 자신의 물음을 우습게 묵살당해 분개한 사내의 반어(反語)적인 작별인사를 떠올리고 남의 일처럼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밀양에는 왜 가야 하는 거지. 그리고 영남루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는 정말로 있기나 한 거야. 일요일 대낮 12시에 거기까지 와서. 자신도 아직 상세한 내역을 확정하지 못한, 터무니없이 노성하거나 또는 그래서 오히려 유치하게 들릴 자신의 회상이나 고백을 들어줄. 

2.
시내로 들어와서도 몇 번이나 택시운전사를 재촉하고, 옛 문화원 자리 앞에서 내린 뒤에는 어릴 적 아득하게 올려다보이던 계단까지 단숨에 뛰어오르다시피 서두른 끝에, 그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영남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 매표소에서 시간을 확인한 그는 비로소 안도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은 비록 그녀를 기다리는 데 기꺼이 한 시간을 바칠 각오로 택시까지 타고 달려왔지만, 그녀를 단 1분이라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영남루를 시가지의 중심 유원지로 급속히 키우려는 개발 행정의 서두름 탓인지, 경내(境內)는 기억 속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기저기 함부로 들어선 구조물로 예전보다는 훨씬 좁아 보이는 누각 얼안에, 복원하거나 새로 지어 보탠 건물들로 자잘한 군더더기만 더해져 오히려 ‘영남 제일의 누각’이라는 자부심에 흠집을 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와본 날로부터 벌써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구나. 대학에 들어간 첫해 여름 국민학교 동창생 다섯과 얼음골로 야영을 갔을 때 들러본 게 마지막이었지. 어쩌면 이렇듯 함부로 변하는 세상에 누각이라도 이처럼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에 오히려 감동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사이 금방 비라도 뿌릴 듯 잔뜩 흐려진 날씨 때문인지 그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는 낯익은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의 비석 난간에 기대서서 행여, 하는 기분으로 한동안 경내를 살펴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곧 입구 쪽을 잘 살필 수 있는 근처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 벤치들 역시도 전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면서부터 그는 열렬한 기다림의 눈빛으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이 먼 탓인지, 그녀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별로 실망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여인이여, 지금 여기서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득의와 패기에 찬 ‘젊은 거장(巨匠)’도 아니고, 세상 여러 길을 돌고 돌아서 오는 동안에 머리부터 하얗게 센 애늙은이도 아니다. 밀랍 날개를 달고 이제 막 해가 이글거리는 지중해 위로 솟아오르는 이카로스도 아니고, 초장 끗발에 취해 앞뒤 못 가리는 햇내기 문화사전꾼은 더욱 아니다. 길을 잘못 들기는 했지만 아주 잘못 든 것 같지는 않은 속인(俗人) 가운데 하나이고, 길을 돌아 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금방 주저앉지는 않을, 아직은 갈 길이 먼 나그네다. 

만약 그대가 온다면 나는 그대가 줄곧 기이하게 여기며 따져 묻던 이 아뜩한 삶의 적막과 무망함, 공허함과 우수를 일러주겠다. 일찍이 원하던 그 어떤 것을 얻더라도 끝내는 채울 수 없는 그 공허를, 어떤 화사한 꽃밭에 이르러도 번데기 시절의 허물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는 없는 그 우수를. 

사람들은 그가 오래 원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동료가 어쩌다 얻게 된 반짝이는 사금파리나 진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이 그 동료에게 무슨 대단한 행복이나 성취감을 주리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여인이여, 진실로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애착했던 그 어떤 것을 잃더라도 본질로서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는 것처럼, 원했던 그 어떤 것들을 얻더라도 나아지는 법 또한 없다. 

또 그대가 온다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무슨 날카로운 신문(訊問)처럼 그대가 탐색하는 눈길로 다그쳐 묻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언제 ‘지금, 여기서’ 떠날 것인지, 어디로 어떻게 떠날 것인지, 그리고 막막한 대로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인지도. 어쩌면 내가 은밀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20년 전의 작은 읍(邑)으로만 남아 있는 이 도시와 오래 미뤄온 작별의 의식까지도…. 그는 느닷없는 감상 때문에 더욱 간절해진 기다림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입장객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우산을 준비한 늙은이 하나, 비번 공원(工員)인 듯싶은 남녀 넷, 그리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은 중년의 여인. 그러나 기다리는 여인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한동안 몽롱하고 우울한 상념에 젖어 있던 그는 갑작스러운 무료를 느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어느덧 10분 가까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 

이렇다 할 생각 없이 마당을 서성이던 그는 천천히 누각 쪽으로 가보았다. 예전과는 달리 넓은 대청은 개방되어 있었다. 지난날 대청 입구를 막고 있던 조잡한 철책을 떠올리며 그는 구두를 벗고 축대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실내화를 신었다. 

넓은 대청은 일요일인데도 텅 비어 있었다. 그는 휘적휘적 대청을 가로질러 강변 쪽 난간으로 갔다. 이제 막 한여름 홍수를 흘려보내고 가라앉은 듯싶은 남천강(南川江)이 저만치 발밑에서 회백색으로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의 긴 강둑과 솔밭, 그리고 어릴 적 그가 살던 때는 가동 않고 있던 일제 시절의 모직 공장이 이상스레 가깝게 보였다. 

멍하니 그런 것들을 내려다보는 사이에 갖가지 유년의 추억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로 그 모직 공장 아래쪽에 붙어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고, 지금 눈 아래 보이는 지역은 그 시절의 중요한 놀이터였다. 

여인이여, 그대가 오면 나는 또 얘기하게 될지 모르겠다. 세찬 바람에 줄이 끊겨 가뭇없이 날아간 연처럼 이제는 두 번 다시 찾지 못할 유년을, 돌아오지 못할 그 강물을, 그렇게도 소중하게 품어왔지만 끝내는 쓸쓸하게 그리고 무참히 깨어져버린 그 숱한 영롱한 꿈을. 그리고 한번 그것들을 잃어버린 후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 이어간 내 삶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나는 어떻게 상처 입고 어떻게 전락해 세상 끝을 헤매다가, 지금 접어든 이 몽롱하고 막막한 길로 내몰렸는지를…. 

그러다가 어느새 다시 감상에 빠진 자신을 일깨우듯 퍼뜩 눈길을 돌린 그는 넓은 대청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옛적 어떤 신동(神童)이 일곱 살 때 썼다는 커다란 편액이 들어왔다. 그것이 기억에 생소함을 의아하게 느끼며 한동안 그 편액을 바라보던 그는 이어 그 곁의 여러 편액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알려진 이름과 낯선 이름들이 뒤섞인 채, 갖가지 필법과 문틀로 자신들의 찬탄, 기개, 애환, 교훈 같은 것들을 적어놓고 있었다.
 
처음 무료를 달래기 위해 별 뜻 없이 읽어가던 그는 차츰 야릇한 동정과 연민에 빠져들었다. 이 편액들을 써서 남긴, 이제는 죽음과 어둠의 세계에 속한 영혼들에게 여기 이렇게 남겨진 그들 삶의 흔적이 무슨 위자(慰藉)가 될 것인가. 

여인이여, 그대를 만나면 나는 이것도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가다듬어진 한 가닥 문장, 잘 쓰인 한 줄의 글씨,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같은 것들에다 함부로 영원을 건다. 그것들에 우리 삶이 화체(化體)되었으며, 그리하여 그것들이 땅 위에 남아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써 우리들의 삶이 연장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 일평생을 고단한 사유(思惟)에 시달리고 온갖 단련과 수양으로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하며 그렇게도 많은 언어와 색과 음을 낭비한 후 이제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들의 영혼을 누가 다시 만나보았던가. 여인이여, 생각건대 그것은 믿기 위해서 지어낸 우리의 미신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신인 줄 알면서도 믿지 않으면 안 되는 데에 우리 삶의 애처로움과 속절없음, 그리고 쓸쓸함이 있다. 

그가 다시 마당에 내려섰을 때 손목시계는 벌써 12시 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입구 쪽을 둘러보고 다시 경내에 있는 새로운 입장객들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가 기다리는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한 무리 지역 시인 묵객들의 편액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그녀가 거기를 지나쳐 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문득 그를 다급하게 했다. 

그는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시 한번 경내를 세심하게 살핀 후에 무봉사(無鳳寺) 쪽으로 서둘러 가보았다. 비탈길 몇 백m를 단숨에 올라갔지만 거기는 기다리는 여인이 없었다. 불상 앞에는 참배객이 몇 명 분향하고 있었고, 좁은 마당에는 얼마 전에 올라간 공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무어라고 떠들며 키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가빠오는 숨을 진정시킬 사이도 없이 아랑각(阿娘閣) 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도 여인은 없었다. 옹색하게 둘러친 담과 역시 옹색한 입구를 가진 아랑각 경내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서보다 형편없이 빈약해진 부근의 대밭까지 살폈지만, 그가 본 것은 기억에 흔한 광경, 사복을 입은 고교생들임에 분명한 소년 소녀가 이빨이 쏟아질 듯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그새 다시 영남루 쪽이 불안해진 그는 뛰듯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없었다. 그대는 끝내 오지 않고 마는가. 여인이여, 나의 이 기다림은 헛되고 말 것이기에 오히려 이리 간절한 것인가. 

“사진 한번 찍으시지요?” 

점점 무거워오는 기분으로 돌아와 경내를 서성이는 그의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직업에는 이미 어울리지 않을 만큼 늙은 경내 사진사였다. 고르지 않은 날씨 때문에 입장객이 없어 영업을 포기한 동업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사람인 듯했다. 

밀양에서 한 해 이상 산 사람 중에서 영남루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에게도 몇 장의 그런 사진이 있다. 대개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찍은 것으로 ‘영원한 벗’이니 ‘밀양을 떠나면서’ 따위의 글귀가 들어 있는 흑백사진이었다. 

그런 것들이 떠오르자 그는 문득 사진을 찍을 마음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늙은 사진사도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었다. 

“여기서 일하신 지 오래되십니까?” 

흔히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진사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방식대로, 꽤 까다로운 주문에 따라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주면서 그가 은근히 물어보았다. 

“그럭저럭 한 20년은 넘을 끼구만.” 

그가 완전히 자기의 고객이 됐다고 확신한 탓인지, 친숙함을 표현하는 것인지, 사진사는 어느새 원래의 사투리에 반말까지 썼다. 그런 사진사의 주름 덮인 얼굴을 보며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던 그는 문득 그 사진사가 처음부터 낯익어 보이던 이유를 알아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났을 때 어른 쪽보다는 아이 쪽이 상대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다. 나도 당신을 알 듯하다. 당신은 아마도 그때 둘뿐이던 사진사 중 젊었던 쪽일 게다. 하지만 당신은 그 옛날 기쁨보다는 더 자주 외로움과 슬픔에 젖어 이 거리를 배회하던 어린 영혼을 기억할 수 있을는지. 

그런 그에 비해 그 늙은 사진사는 지극히 무감각하고 직업적이었다. 사진을 찍고,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자 거의 말 붙일 틈도 주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그는 다시 무료한 시간 속에 홀로 남겨졌다. 12시 45분, 여인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이제 그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시간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무료함 속에서도 그는 갈수록 엷어져가는 자신의 기대에 더욱 절망적으로 매달렸다. 

여인이여, 그대는 내가 왜 그대를 꽃으로 은유하는지 아는가, 꽃은 우리를 위해 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아름다움만으로 꽃에 감사해야 한다. 어김없이 꽃에는 자신의 생리, 자신의 꿈과 허망이 있을 테지만, 그 아름다움은 존재만으로도 누리는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여인이여, 그대는 내 쓸쓸한 삶의 길섶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송이 꽃,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그대 앞에 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바라보았다. 끝내 세월의 파괴력에 스러져버릴 아름다움일지라도, 늙은 소년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게 하고 싶었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자욱이 내려앉은 것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빗발이었다. 

“박물관에를 가보라믄. 거기 창문으로도 경내 얼안이 모두 보일 끼라. 전시물 구경을 하면서도 새로 들어서는 손님을 알아볼 수 있을 끼구마는.” 

좀 전의 사진사가 다시 나타나 선심이라도 쓰듯 일러주었다. 

박물관은 수원지(실은 읍내 수도의 수압을 높이기 위한 대형 물탱크)로 넘어가는 언덕바지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어릴 적 그는 가끔 그 뒤 참나무 숲에서 수제(手製) 딱총놀이를 하며 놀았더랬다. 자전거 바퀴살 끝 스포크로 약실(藥室)을 만든 그 딱총은 굉장한 폭음을 내서 거리에서 쏘면 어른들의 꾸중을 듣기 십상이었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사명당(四溟堂)의 유품 사진을 전시해둔 1층을 관람한 그는 2층에 오르자마자 창가로 가서 영남루 경내를 살폈다. 떡갈나무 가지에 가리어서 반쯤밖에 보이지 않았다. 왠지 가려진 부분에 여인이 와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그는 민화(民畵)와 서예 족자들이 걸린 2층 전시실을 보는 둥 마는 둥 한 바퀴 돈 후 뛰듯이 박물관을 나왔다. 

자우룩한 가랑비뿐, 경내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요행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곳저곳 구석진 데까지 세심히 살펴보았다. 매점 곁에 비를 피하며 서 있는 중늙은이 하나가 눈에 띄는 게 전부였다. 그는 다시 밀성부원군 비석 곁으로 가서 입구 쪽을 확인했다. 그런데 아, 있었다. 그의 눈길이 막 매표소 앞 층계에 이르렀을 때 불쑥 검은 박쥐우산이 솟아오르고 이어 회색 비옷과 반장화를 신은 젊은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거의 숨 막히는 기분으로 종종걸음 치듯 그 여자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우산에 깊숙이 가려진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경내로 들어서던 여인은 대여섯 걸음 앞에 이르러서야 우산을 제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었다. 정신없이 자기를 내려보고 있는 그를 이상한 눈초리로 마주 보는 것은 감상에 젖은 낯선 소녀의 얼굴이었다. 

약간 비참한 심경으로 다시 경내를 한 바퀴 돈 그는 시계를 보았다. 1시에 가까웠다. 무모한 기다림도 끝내야 할 때에 이른 듯했다. 그는 자기가 서 있는 위치와 입구 매표소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천천히 걸으면 나머지 시간을 다 채울 만한 거리였다. 

그는 주위를 의미 없이 휘둘러보기도 하고, 흙바닥에 드러난 그곳 특유의 석화(石花)를 헤아리기도 하면서 되도록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1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는 자기 시계의 오차까지 감안해서 내려온 길을 10여 m쯤 되짚어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왼편 길섶에 세워진 역대 목민관(牧民官)들의 송덕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직 명문(銘文)이 뚜렷한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얼른 자획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낡고 모서리가 부서진 것도 있었다. 

흐려진 자획까지 애써서 판독해가며 그가 다시 매표소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1시가 약간 지나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미련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없었다, 아무도. 그는 매표소 문을 두드려 졸린 듯한 얼굴로 내다보는 소녀에게 말했다. 

“단정히 빗은 머리에 청회색 비옷을 걸친 여자가 늦게라도 홀로 와서 누군가를 찾거든 전해줘. 내가 꼭 한 시간을 기다리다 갔다고.”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소녀도 마치 그런 여인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여인은 정말로 있었던가? 없었다. 그 여인은 애초부터 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그는 오히려 마지막 1분까지 기다림에 충실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아, 산다는 것, 그 모두가 얼마나 무망하고 부질없는 노릇인가….

3.
영남루에서 내려와 내일동 시장통을 지나는데 출입구 유리창에 빨간 페인트로 ‘골뱅이국’이란 글씨를 비뚤비뚤하게 써둔 해장국집이 눈에 띄었다. 아침을 걸렀는데도 낮 1시가 되도록 배고픈 줄 모르다가, 좋아하는 다슬깃국이 있다는 말에 이끌려 그 길가 집으로 들어갔다. 오래잖아 묵은 시래기와 삶은 부추를 듬뿍 넣어 얼큰하게 끓인 다슬깃국이 나왔으나 딱하게도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은 그의 속이 받아주지 않았다. 간신히 먹는 시늉만 하고 해장국집을 나오니 그사이 제법 부슬거리던 비는 멎어 있었으나, 질척이는 길바닥과 잔뜩 흐린 하늘 때문인지 그의 가슴속은 더욱 후줄근히 젖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남짓 그는 끝내 오지 않은 여인을 잊고 처음 찾아온 사람처럼 그 작은 읍을 차분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얼른 보기에는 망연히 돌아보는 것 같았지만, 그의 발길은 어떤 정연한 순서와 방향을 따르는 듯 보였다. 열 살 아잇적 이른 봄날 아침 분홍 무지개를 본 듯한 착시(錯視) 때문에 처음으로 자신이 와 있는 낯선 곳을 강렬하게 의식하게 된 읍내 거리 강둑 쪽 주택가부터, 어머니가 처음 기세 좋게 양장점과 한복집을 함께 하는 업소를 연 시장통 사거리, 그리고 다음으로 옮겨가 작은 잡화가게를 연 내이동 쪽 비탈 동네… 하는 식으로. 그는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더듬고 있는 길의 끝은 마침내 열네 살 소년으로 그 작은 읍을 떠난 여름 새벽 강가에 이를 것이었다. 

‘나는 너무 오래 이 작은 읍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여기서 형성된 의식과 감성의 틀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면 깊은 곳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아직도 어떤 꿈들은 아쉽고 안타까워하며 깨어난 그 새벽의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지금 서둘러 작별해야 하는 것은 대구에서의 7년이 아니라, 이 오래된 유년의 뜰을 벗어나는 일이다. 지류, 주변에서 벗어나 주류, 중심으로 편입되는 것보다 내면적인 변태와 성숙이 더 급할지도 모른다.’ 

성실한 문학소년의 일기장 속 독백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 강 건너 삼문동으로 건너갔다. 일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학적을 유지했고 유일하게 졸업장을 준 초등학교 교정을 서성거리고, 다시 그 뒤편 솔밭을 따라 강 둑 길을 걷다가 근년 들어 다시 가동했다는 일제 때의 방직공장 쪽으로 가보았다. 

그 뒤 한 시간 넘게 강변과 풀밭과 물가를 돌아보며 그는 몽유병자처럼 돌아다녔다.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강물을 뒤쫓기도 하고, 가끔씩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앞당겨 흘러올 강물을 떠올려보기도 하던 그는 때로 백발이 성성한 강가의 성자(聖者)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흐르는 자는 흘러가게 하라. 나 이제 이 강물에 눈을 씻어 흘러간 세월과도 작별하리라. 눈시울에 찍힌 옛 강물의 자취도 씻어내리라. 다시 올 새 강물을 그 눈시울에 새기리니, 아울러 그곳에 이는 바람도 담으리니…. 

그는 이제 기다리던 여인을 온전히 잊고 자맥질하듯 의식의 강물 깊이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강가 솔밭 부근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의 수런거림에 퍼뜩 깨어나면서 마침내 그날의 마지막 행선지, 어쩌면 그가 그날 그 작은 읍을 찾게 된 실질적인 목적지를 향해 비로소 발길을 돌렸다. 그는 천천히 강물이 흐르는 쪽으로 강둑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맞은편 읍내 거리가 토사로 해마다 높아지는 하상(河床)에 따라 높아진 강둑에 가려 민가가 잘 보이지 않게 된 곳에서 삼문동 쪽으로 내려갔다.

4.
마지막 행선지가 있는 동네의 변화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전에는 넓은 농경지 사이에 인가가 드문드문 서 있었는데, 이제는 완연한 주택가로 변해 손바닥만 한 채소밭들이 오히려 주택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었다. 주위의 격심한 변모 때문에 몇 번이나 길을 물은 후에야 그는 겨우 목적한 곳에 이르렀다. 

거기도 역시 심하게 변해 있었다. 부근의 넓은 포도원과 당근밭 때문에 홀로 우뚝하던 옛날의 건물은 이제 밀집한 신흥 주택가들 속에 숨 막히게 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문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간판은 달랐다. ‘갈릴리 보육원(保育院)’, 그게 그 건물의 옛날 이름이었다. 그런데 한글화의 물결 탓일까, 그 간판에 쓰인 것은 ‘갈릴리 어린이집’이라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변화에서 온 생소한 느낌 때문에 그는 한동안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전처럼 열려 있었지만 원아(院兒) 100여 명이 생활하는 건물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는 먼저 총무실이라고 불리던 건물로 가보았다. 한눈에 전과 같은 용도로는 쓰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먼지 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것은 엄청나게 커 보이던 총무 선생님의 책상이나, 응급 약품이 들어 있던 의료함, 아동 문고가 가득 차게 꽂혀 있던 책장 같은 것들이 아니라, 함부로 쌓아놓은 잡동사니 물건들이었다. 대개 유아용 장난감이거나 초보의 산수 교재 같은 소품들로 예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는 다시 원장 사택 쪽으로 가보았다. 한때는 궁전처럼 높고 으리으리해 보이던 곳, 어린 그의 눈에는 거기 살고 있던 원장의 어린 딸조차 고귀한 왕녀처럼 보였더랬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그 집은 높은 담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는 보육원에서 떨어져 나간 건물이 된 듯했다. 

그제야 그는 약간 의아한 눈으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식당, 피복실, 보모와 침모(針母)들의 거실로 쓰이던 건물도 거의 쓰이지 않거나 창고 따위로 전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신 이상하게 마당을 협소하게 만들고 있는 어린이용 놀이기구만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철봉. 그 외에 이름 모를 대소 설비들은 한결같이 최근에 도색된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예전에는 빈약한 화단과 무화과나무 몇 그루가 전부여서 이런 계절에는 몹시 썰렁했었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그러고 보니 건물들도 지난날의 우중충한 청회색(靑灰色)이 아니라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산뜻하게 칠해졌고, 창틀에는 지저분한 방충망 대신 밝은 색조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외국 원조가 끊어진 지금 모든 것이 낡고 황폐하리라고 짐작하고 온 그에게도 언뜻 이해되지 않는 변모였다. 

그는 한동안 이 건물 저 건물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어디서도 인기척은 없었다. 그는 문득 그날이 일요일인 것을 상기했다. 모든 원생이 교회에 예배 보러 간 것이로구나. 하지만 이내 그는 그 시각이 이미 모두 돌아와 있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이제는 안식일에도 공동 작업을 하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 한 모퉁이에 새로 생긴 나지막한 단층 건물 쪽이었다. 어딘가 다른 건물에서 분리돼 있는 것 같은 인상 때문에 처음부터 별로 유의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그가 미처 현관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도수 높은 졸보기를 낀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번득이는 안경알 밑으로 약간의 경계를 감춘 채 그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날카로운 말씨로 보아 그 남자는 벌써부터 이 건물 저 건물을 기웃거리는 그를 살펴오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대뜸 용건을 묻는 바람에 괜히 당황한 그가 까닭 없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원장님 계십니까?” 

“전데요.” 

그 남자는 한층 알 수 없다는 눈길로 그를 살폈다. 그는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접어둔 채 다시 멍청하게 물었다. 

“김 원장님은 안 계십니까?” 

“김 원장이라니요?” 

“김상우 장로님 말입니다.” 

“김상수겠지요….” 

그러는 그 남자의 표정은 약간 누그러진 것이었다. 

“그분은 벌써 5년 전에 미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바로 제 매형 됩니다. 무슨 일로 그분을 찾아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들어오시지요.”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그는 사양 없이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현관문 안이 바로 응접실이었다.

“김 장로님을 왜 찾으십니까?” 

권하는 소파에 앉자마자 원장이라는 그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저…,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한번 뵙고 의논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래놓고 그는 바로 찾아온 목적을 밝히기 쑥스러워서 우선 자기가 궁금한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참 용하십니다. 이젠 이곳도 경영이 매우 어려우실 걸로 알았는데.” 

“예?” 

“솔직히 말해서 여러 가지 설비나 건물 관리를 보고 놀랐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발전한 것 같군요. 정말 대단한 경영 수완이십니다.” 

“뭐,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습니다.” 

젊은 원장은 돌연한 그의 찬사에 약간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그는 다시 그 다음으로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원아(院兒)들은 모두 어딜 갔습니까?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일요일이니까요.” 

“그래도 지금쯤은 교회에서 돌아와 있어야 할 시간인데요.” 

그 말을 들은 원장의 얼굴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물론 어린이들을 여기 보내는 부모 태반이 교회에 나가는 분들입니다만, 원아들은 일요일에는 여기 오질 않아요. 왜 그 아이들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실은….” 

그도 원장의 말 가운데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말이 나온 김이라 더 에두르지 않고 그곳을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원아 하나를 추천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여기서는 고등학교밖에 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나쯤 맡아보려고요. 대학에 갈 만한 자질이 있는 원아 하나만 추천해주십시오. 당장엔 데려가지 못해 유감입니다만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뒤는 충분히 보살피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집에 데려가서 돌보겠습니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이상하게 더듬거리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원장은 그들의 대화가 처음부터 잘 맞아들어가지 않던 이유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뭘 잘못 알고 오신 것 같습니다. 물론 전에는 이곳이 고아원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탁아소와 유치원을 겸하고 있어요.” 

“네? 그럼 그 고아원, ‘갈릴리 보육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벌써 6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그럼 76년 무렵의 일 같은데, 없어지다니요? 왜요?” 

그가 너무도 뜻밖이라는 투로 반문하자 유치원 원장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몇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죠. 우선 지금은 옛날처럼 고아가 많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큰 천재지변이 없고, 사회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까요. 거기다가 고아들의 질마저 낮죠. 전쟁고아 중에는 혈통이나 자질이 우수한 애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야말로 ‘문제 있는 부모들’의 사생아가 태반이죠. 그 애들은 이곳의 불충분한 급식과 속박된 생활을 배겨내지 못하고 곧잘 사회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열 살을 넘기기 무섭게 도망쳐버리죠. 자연 아이들은 줄어들고, 새로 충원되는 것도 시원찮아서…, 결국엔 이 고아원도 문을 닫게 되었지요.” 

“그럼 원아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예전의 절반도 남지 않은 아이들로는 이 건물과 설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인근 고아원들 간에 통폐합이 있게 되었는데, 남은 아이들은 그때 다른 곳으로 분산 수용됐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까닭 없이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옛집의 폐허 위에 돌아와 서 있는 듯한 비감(悲感)마저 들었다. 그가 망연한 침묵에 빠져 있는 동안 원장의 부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차를 내왔다. 

“그런데 선생은 옛날의 ‘갈릴리 보육원’과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습니까?” 

차를 권하고 난 원장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 질문으로 막연한 침묵에서 깨어난 그는 잠시 망설였다. 

이 남자에게 20년 전 얘기를 해줄 것인가?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2년을, 그때 내가 썼던 그 음습한 시멘트 방과 기억나는 몇 개의 쓸쓸한 이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났던 안개 낀 가을 새벽을. 번거로운 일이다. 그는 짐짓 담담함을 과장하며 말했다. 

“별로. 그저 옛날 이 부근에 살았고, 여기에 친구가 몇 있었죠.” 

“누군데요?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배윤식, 최재상, 한태용, 그리고 김형숙이란 여자애도 있었죠. 제가 이 동네를 떠난 후에는 모두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아, 그애들이라면 알 것도 같군요. 여기가 고아원이었을 때 저도 몇 해 매형을 도와 총무 일을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더 묻지도 않았는데 용케도 원장은 그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그들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사실은 그도 가끔씩 궁금히 여겨온 일이었다. 

“윤식이는 아주 잘된 셈이죠. 정규 신학대학교를 나와 전도사로 돌다가 지금은 안수를 받고 어엿한 교회에서 목회(牧會)를 맡은 지 몇 해 되었어요. 충청도 어디인데 시간은 좀 걸릴 테지만 연락도 가능합니다. 형숙이도 여자지만 정말 대단한 애죠. 혼자 힘으로 공립 사범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마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서른을 넘겼는데도 아직 독신으로 지내는 게 좀 안됐지만.” 

“재상이와 태용이는?” 

그 물음에 원장은 약간 풀 죽은 목소리가 되었다. 

“그애들은, 잘못됐어요. 재상이란 아이는 중학교 때 벌써 이곳에서 도망쳐 나가 제가 직접 대한 적은 없습니다만, 듣기로는 지금 벌써 다섯 번째 복역을 하고 있답니다. 태용이는… 참 성실한 애였는데, 죽었어요.” 

“왜요?” 

“자살했어요, 여자 문제로. 공부는 중학교로 끝났지만 일찍부터 시계 기술을 배워 젊은 나이에 자기 점포까지 가질 만큼 착실했는데, 고아란 이유로 사귀던 여자의 부모들이 결혼을 반대했다나요. 거기다가 그 여자까지도 결국은 부모 뜻을 따라 마음을 돌리자….” 

그는 한때 형제였던 아이들의 성취와 좌절을 들으면서, 슬픔이나 기쁨에 앞서 스스로의 처지를 가늠해보았다. 그러면 나는, 이 나는… 그때 원장이 문득 말머리를 돌렸다. 

“참 장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전에도 전혀 없던 일은 아닙니다만 선생처럼 젊은 분이 그것도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기는 처음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고 계시는 일을 물어봐도 좋을는지요?” 

그 돌연한 질문은 언제나 그를 당혹시키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는 삶, 그러면서도 무력하고 하염없는 삶. 실용(實用)으로는 기껏해야 이미 배고픔을 면한 자들의 여가를 가꿔줄 뿐인 이 삶을 어떻게 대놓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늘 해오던 대로 대답했다.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 편한 일이죠. 어쨌든….” 

원장은 약간 실망했다는 눈치였지만 더는 캐묻지 않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기왕 마음 내신 일이고, 또 이곳을 지목해서 오셨으니, 이곳 출신으로 다른 고아원에 가 있는 아이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마침 모든 면으로 선생께서 흡족할 만한 아이가 하나 떠올랐어요.” 

그리고 원장은 이웃 군의 고아원에 수용돼 있는 ‘갈릴리 보육원’ 출신 소년 하나를 소개했다.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도 착실하다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원장은 그 소년이 있다는 고아원의 주소를 적어주면서 몇 번이고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임과 ‘보람을 거두실’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오래 생각해온 일이었고 아내와도 논의가 있었던 터라 별 이의 없이 그 추천을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그는 왠지 원장의 그런 어투가 마음에 거슬렸다. 

“그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최소의 지력과 체력만 있으면 됩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게 딱딱한 어조로 그렇게 말끝을 맺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5.
택시가 역전 광장에 도착했을 때 가랑비는 제법 부슬비로 변해 있었다. 대합실은 한산했다. 원장이 일러준 이웃 군의 고아원을 들러 집으로 돌아가려면 바삐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그는 대합실 구석 벤치에 기대듯 앉았다. 그 옛 고아원을 떠날 때부터 그는 이상한 감정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원래부터의 막연한 우울이나 공허감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자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한동안 그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오래잖아 무슨 강력하고 날카로운 빛처럼 그를 전율시키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바로 위선과 자기기만에 가려져 있던 부끄러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그래, 사실 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을 도와주어 ‘보람을 거두겠다’는 통속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일에서 얻고자 한 것은 오히려 그보다 훨씬 비열하고 끔찍한 위선 혹은 터무니없이 성급하게 보상과 변제를 몰아대는 사회적 추심으로부터의 값싼 도피일지도 모른다. 나는 서두른 논의 끝에 얻어낸 아내의 동의와 그해 들어 부쩍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한 몇 푼의 여유로 낯모를 소년의 운명에 개입하고자 했다. 그 소년에 대한 연민이나 불우한 처지에 대한 동정은 조금도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당장의 무명(無明)과 부지(不知)를 털고 나서려 했다. 진실로 내가 그 불행한 고아를 상대로 획책한 것은 다만 질 나쁜 정신적 수음이었을 따름이었다. 

거기서 그는 한껏 비참한 기분이 되어 원장이 적어준 고아원의 주소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돌아갈 것도 잊은 채 음울한 상념에 젖어들었다. 아아, 예술적 또는 문화적, 지적이란 수식 아래 엮어가야 하는 이 번지르르하면서도 공허한 삶,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꾸며보아도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는 삶, 그 어떤 신성한 의미를 부여해보아도 결국은 이미 배고픔을 면한 이들의 여가를 가꾸는 데 불과한 삶. 새로 출발하기에는 너무 늦고, 떨쳐버리기에는 뼛속까지 뿌리 깊은 천형(天刑). 무엇을 하나, 아, 나는 무엇을 하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각에 잠긴 그를 유심히 살피는 눈길이 있었다. 그의 맞은편 벤치에 앉은 스무 살 전후의 청년이 보내는 눈길이었다. 

“저어…, 선생님.” 

얼마 후 청년은 마침내 무슨 확신을 얻은 듯 그를 불렀다. 그 갑작스러운 부름에 그는 퍼뜩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났다. 청년은 들고 있던 책의 어떤 부분을 펴 보이며 물었다. 

“혹시 이 책을 쓰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는 청년이 내민 책을 보았다. 바로 그달에 나온 자신의 신간이었다. 청년은 그 책의 표지 안쪽에 있는 저자의 커다란 인물 사진을 펴 보이며 묻는다기보다는 자신의 남다른 눈썰미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사진 속의 그는 짙은 색 양복 차림에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표지사진 작가의 연출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를 살피는 청년의 눈에는 갑작스러운 행운을 만난 아이의 기쁨과 놀람 같은 것이 내비쳤다. 그는 순간적인 동요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잘못 보셨어요. 나는 도무지 글 같은 걸 쓸 줄 모릅니다.” 

그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사진과 그를 대조한 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는 이분이 쓰신 책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네 권 모두. 잡지며 신문에 실린 글까지도 모두 읽고. 틀림없이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 

“워낙 사진이란 게 실물과 다르니까요. 실은 그 사람과 내가 닮기는 많이 닮은 모양입니다. 일전에도 그런 오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자, 그럼 나는 기차 시간이 바빠서….” 

그는 다시 희미하게 동요하는 자신을 억제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아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청년 곁을 서둘러 떠났다. 

20분 후 그는 자신의 도시로 가는 무궁화호 객석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는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만약 그녀가 조금만 세심한 성격이었다면 도중 몇 번이고 붉어지던 그의 눈시울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간간 탄식처럼 새어 나오던 그의 희미한 중얼거림도. 

Qui es-tu?(너는 뭐냐?) 

Mais rien! (쥐뿔도 아니지!) 

6.
“대구로 돌아오셨군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그녀가 특별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그도 되도록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말투를 골라 그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마치 내가 무얼 하러 거기로 가려고 한 건지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는군요. 처음부터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서도 매몰차게 거절하는 대신 불확실한 조건부의 약속으로 피한 것부터가 그래, 내가 밀양에서 하려는 게 무슨 일 같았소?” 

“그러시니까 갑자기 대답이 궁색해지네요.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뭐랄까, 무슨 심각하고 쓸쓸한 의식 같은 거…. 그런데, 지금 어디세요?”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내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오.” 

“그럼 동성로 사거리 쪽 ‘난사(蘭社)’ 다방에서 잠깐 만나요. 저 지금 일이 생겨 마침 그쪽으로 가봐야 하거든요. 선생님은 MBC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시내 쪽으로 쭈욱 들어오세요. 신호등 있는 사거리 몇 번 지나시다 보면 길가에 그 다방 간판이 보일 거예요. 거 왜, 시화전 같은 거 자주 열리는 다방 말이에요. 저도 지금 출발하면 20분 안 걸려 그 다방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서 잠시 절 보고 가세요.”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도 굳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시간도 7월 중순으로서는 아직 한낮 같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20분도 안 돼 도착했다. 그가 막 자리를 잡고 차를 주문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도 그와 같이 시원한 음료를 주문한 뒤 하던 얘기를 이어가듯 그에게 물었다. 

“그래 어땠어요? 그 작별의 의식. 이제 그곳에서의 유년을 떠나 성년의 아침으로 훌훌 털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슨 소리요 그게? 중학교 상급반 담임까지 해보았다는 건 알지만, 이거 멀쩡한 어른 수염을 쥐어뜯어도 너무 심하게 쥐어뜯는 거 아뇨?” 

자신이 남천강가에서 감상에 젖어 서성거린 두어 시간을 곁에서 본 사람처럼이나 빈정거리는 것 같아 은근히 마음이 상한 그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렇게 받자 그녀가 말투를 바꾸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선생님이 밀양 얘기를 할 때 얼마나 진지하고 애틋해하시는지. 그래서 그렇게 추측해본 거예요. 놀린 거 아니에요.” 

“그래도 ‘작별의 의식’이나 ‘유년을 훌훌 털고 떠난다’ 같이 문학소년 같은 소리는 입에 담은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 중심으로, 변방에서 중앙으로, 가 있잖아요? ‘달구벌 철수’ 또는 ‘오출(五出) 서울’의 출사표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을 거고. 그래서 제게 밀양 가자고 하실 때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주제도 생각해보게 된 거고…. 선생님 좋아하는 팝송 가사처럼 ‘언젠가는 와야 할 그날이’ 오히려 너무 늦게 오는 거 같지는 않나요? 대구와의 작별은.” 

“그러고 보니, 우리 손(孫)소저 지난달에 시인이 되었다지. 심상(心象)인지, 심산(心算)인지 심란(心亂)인지 하는 시문예지 추천으로. 하기야 그 시인의 상상력으로 대처한 것이니 더 따져볼 것도 없겠지.” 

사람을 불러내놓고 시비만 늘어놓는 것도 온당치 않은 일 같아 그가 딴에는 우스개로 돌린답시고 최근에 들은 그녀의 등단 얘기를 한 것인데, 말해놓고 보니 그 또한 어딘가 빈정거리는 데가 있어 난감했다. 그때 마침 다방 아가씨가 얼음 채운 음료수를 내오는 바람에 다시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간 그들은 한 10여 분 한담을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분위기가 풀렸는지 얘기에 열중하면 코맹맹이 소리를 섞는 그녀가 무언가 또박또박 이치를 따지다가 갑자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저 근처 어디 적당한 생맥줏집에 자리 잡고 계시면 제가 근처 한 군데 잠깐 둘러보고 돌아와 합석할 수 있는데. ‘정든 유곽(遊廓)에서’의 시인이나 김경수 부장님도 모셔 와서.” 

하지만 왠지 그날은 그가 혼자 남아 누구를 기다려가며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기분 나빠 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명치께를 비비는 시늉을 하며 사정했다. 

“간밤에 과음한 게 있어 아직도 속이 내 속이 아니오. 오늘은 틀렸어요. 정든 유곽의 시인이나 김경수 부장과는 다음 주 중에 따로 한번 날 잡읍시다.”<계속>


신동아 2018년 7월 호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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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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