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아·세·공’을 각인시켜라!

무는 개 바꾸는 3단계 훈련법

  • 입력2018-11-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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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견을 키우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애지중지 돌보던 반려견에게 물리는 일이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반려견이 나를 무는 건, 마냥 어리게만 생각해온 자식이 처음으로 반항하고 화를 내는 것만큼 충격적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난다. 우리 병원에도 반려견에게 물린 뒤 상담하러 오는 보호자가 적잖은데, 그중 상당수가 눈물을 흘린다.

    반려견에게 물리면 많은 보호자는 화를 내거나 체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방법은 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칼럼을 통해 체벌이 쓸모없는 이유를 이미 설명했다. 체벌은 개에게 체벌을 피하는 방법만 가르치며, 많은 개가 더 강한 공격성으로 체벌을 피하려 한다. 

    만약 반려견에게 물리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좀 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반려견은 대체 왜 보호자를 공격하는 걸까.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이것을 서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의 동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서 ‘개가 사람과의 사이에 서열을 전복하려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공격성을 보일 때는 대부분 ‘갈등에 의한 공격성(Frustration aggression)’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갈등에 의한 공격성

    갈등에 의한 공격성이란 쉽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공격성을 뜻한다. 사춘기 때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부모님이 강요할 때 나타나는 공격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 내가 부모님에게 화를 낸 것이, 과연 부모님이 나보다 서열이 낮다고 생각해서일까. 결코 아니다. 개도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나도 사춘기 때 부모님께 반항을 많이 했다. 때로는 정당한 반항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나를 체벌하지 않고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중 가장 무서웠던 건 휴대전화를 중단해버리신 것이다. 사춘기 시절 휴대전화는 내게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 ‘없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버릇없이 굴 때마다 부모님은 내 휴대전화를 중단해버리셨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된 뒤부터 나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았다. 

    내가 자주 보는 TV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했다. 한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어머니는 택배 일을 하는 등 힘들게 살면서도 아들에게 꼬박꼬박 용돈을 주는데 아들은 학교를 자퇴하고 자취하면서 매일 PC방만 전전하고 있었다. 이 사연을 들은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다들 한목소리로 ‘어머니 당장 용돈부터 끊으세요’라고 조언했다. 



    반려견 보호자들은 이 두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개도 기본적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가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반려견이 사람으로 보면 ‘재벌2세’처럼 사는 게 현실이다. 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먹을 것과 보호자의 관심이 자신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무한대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을 해도 계속 어머니가 주는 용돈을 받는 고민상담 프로그램 속 그 아들처럼 우리 반려견이 지내고 있다. 그래서는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반려견이 보호자의 뜻을 따르도록 할 방법이 없다. 문제 행동을 하는 반려견을 보면, 보호자가 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새 칭찬을 한다. 그것이 문제 행동을 더 부채질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반려견은 먹을 것이나 보호자의 관심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밥은 항상 바닥에 놓여 있고, 가만히 있어도 정말 맛있는 간식이 계속 주어진다.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 또한 너무 많이 받으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찮고 짜증을 자아내는 것이 될 수 있다.

    리더와 보스

    내게 만약 100억 원이 있다면 이렇게 칼럼을 쓰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돼 나를 더욱 발전시킨다. 개에게도 그런 고민거리를 줘야 한다. 그리고 결국 보호자의 말을 잘 들어야 내가 원하는 자원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점을 묘사할 때 꼭 등장하는 그림이 있다. 보스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다. 보스는 뒤에서 채찍질을 하며 무거운 것을 끌게 만든다. 하지만 리더는 다르다. 가장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거운 것을 끌고 간다. 반려견 행동 전문가들이 보호자에게 주문하는 건 보스가 되지 말고 리더가 되라는 것이다. 보호자는 개에게 필요한 자원을 조절함으로써 충분히 부드러운 리더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 ‘아·세·공(아이야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프로그램이 한 방법이다. 미국의 동물행동 전문의들은 이것을 리더십 프로그램 또는 ‘NILIF(Nothing In Life Is Free)’라고 한다. 이를 통해 보호자를 무는 개를 바로잡는 방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건 결국 반려견에게 져주는 것 아니냐, 그것이 무슨 해결 방법이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공격성은 습관이 된다. 우리 개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공격성을 보이는지 알면서 계속 같은 행동을 한다면 공격성이 거듭해 나타나게 되고 결국 개에게 나쁜 습관이 든다. 개와 보호자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우선은 그런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두 번째 단계는 반려견에게 밥 주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반려견의 먹을거리는 우리의 월급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공격성을 보이는 개의 보호자 대부분은 이 월급을 공짜로 준다. 밥을 그릇에 담아 그냥 바닥에 둔다. 이때 개는 ‘월급’ 즉 ‘밥’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당연한 것이지 보호자가 주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반려견이 보호자의 소중함을 알게 하려면 바로 이 밥 문제부터 잘 컨트롤해야 한다. 동물행동 전문의들이 알려주는 밥 제대로 주는 법은 이렇다. 

    첫째, 딱 한 번만 “앉아”라고 말한다. 둘째, 반려견에게 3초간 반응할 시간을 준다. 셋째, 보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 밥시간까지 밥을 주지 않는다. 넷째, 3초 안에 잘 반응할 경우 밥을 준다. 다섯째, 반려견이 15분 안에 밥을 다 먹지 않으면 남은 밥은 바로 치우고 다음 밥시간에도 이 순서를 동일하게 적용한다.(만약 반려견이 “앉아”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저절로 앉는다면 “엎드려” “기다려” 등 다른 행동을 시킨다.) 

    이렇게 밥을 주면 개가 어떻게 달라질까. 밥을 점점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 보호자가 시킨 것을 잘해야만 밥이 나오기 때문에 보호자에 대한 존경심이 올라간다. 보호자의 리더십이 올라가는 셈이다.

    반려견이 존중하는 보호자

    아·세·공 프로그램의 세 번째 단계는 간식 주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많은 보호자가 그냥 미안해서, 또는 예뻐서 반려견에게 간식을 준다. 심지어 보호자에게 떼를 쓰는 행동인 ‘짖기’를 할 때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간식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개는 짖어야 보호자가 맛있는 것을 준다고 생각해 문제 행동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보고 ‘보호자가 개를 교육하지 않고 개가 보호자를 교육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간식을 줄 때도 밥을 줄 때와 마찬가지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그렇듯 개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반려견에게 정말 어려운 일을 요구하라는 게 아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보호자가 원하는 것을 잘해야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인식하게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한 가지를 잘하면 간식을 주고, 점점 2,3,4,5가지를 연속적으로 잘했을 때만 아주 작은 간식을 하나씩 주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개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신호를 단 한 번씩만 주는 것이다. 보호자 대부분이 하는 실수는 반려견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앉아” 해놓고 말을 듣지 않으면 “앉아, 앉아, 앉아”라고 반복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우리는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상사 또는 선배가 부탁하거나 요구하면 한 번만 말해도 듣는 경우가 많지 않나. 개도 보호자가 한 번 말하면 듣도록 교육해야 한다. 만약 한 번에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지금 소개한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보호자에 대한 공격성은 양상이 매우 다양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기본적인 방법은 이 리더십 프로그램이다. 이 방법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2~3개월간 꾸준히 한다면 반려견은 분명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내가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 동물행동학 전문의 과정생 중 한 명이 정말 부끄러운 표정으로 교수님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유기견을 입양했는데 산책을 나가려고 하네스(harness·가슴줄)를 할 때마다 자꾸 자기 손을 물으려 하고 으르렁거리며 공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때 교수님께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두 달 동안 꾸준히 진행하면서 꼭 영상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그 영상을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반려견의 공격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개의 표정이 평온하고 즐거워 보인 건 아니다. 개는 정말 딱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싫지만 엄마가 하라니까 참을게.’ 

    그렇다.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상황은 대부분 개가 사람과 살면서 꼭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요구할 때 벌어진다. 개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싫은 어떤 행동을 보호자가 요구할 때 참느냐, 또는 싫은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느냐의 차이다. 개가 자신의 감정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절제력을 갖고 참을 수 있게 하려면 보호자의 현명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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