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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리의 치유자’ 정혜신

“심리적 CPR(심폐소생술) 로 마음의 상처 치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거리의 치유자’ 정혜신

  • ● 30년간 1만2000명 만나며 완성한 심리치유법
    ● 존재를 ‘터치’하면 누구나 반응한다
    ● 어설픈 ‘충조평판’ 말고 “당신이 옳다” 말해야
    ● 온 힘 실어 공감하고 단호하게 싸우는 ‘다정한 전사’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정혜신 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그러나 의사보다 ‘치유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 20대 시절 획득한 자격증보다 이후 30년간 1만2000명 넘는 사람을 만나며 쌓아온 치유자로서의 경험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때 병원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했던 그는 2003년 심리분석연구소를 세우며 세상으로 나왔다. 거기서 ‘사람’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CEO, 잘나가는 연예인, 널리 알려진 정치인을 두루 만났다.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등 삶 전체가 바닥에 ‘패대기쳐진’ 이들과도 마주 앉았다. 정씨는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사람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더불어 사람 마음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사람 살리는 공감의 힘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대개 버티고 버티다 ‘의사한테 기댈 수밖에 없겠다’는 심정이 들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거든요. 적절한 의학적 설명을 해주고 약을 처방하면 누구도 토를 달지 않죠.”

그러나 ‘자격증의 성채’ 밖으로 나서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스스로를 환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의사 앞에서 기죽지 않았다. 그들 마음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려면 ‘심리적 진검승부’를 해야 했다.

고통받고 있지만 자기가 힘든 줄 모르는 사람, 뻔히 알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써 모른 척하는 사람을 치유할 때 정씨가 사용한 도구는 ‘공감’이었다. 전문가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마음을 다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눈을 맞추고 온 체중을 실어 공감했다. 그러면 상대방 마음속 고통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치유가 시작됐다. 자기도 잘 모르고 살아온 내면의 상처를 직시한 사람은 정씨의 응원과 격려에 스스로 극복할 힘을 얻었다. 정씨는 “이 과정에 자격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 누구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주변 사람 마음 상처를 돌보고 치유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세요. 자살률이 치솟고, 출산율은 추락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불안 두려움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마음이 힘들면 전문가와 상의하라’고 하는데 전문가를 만나기 전 일상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씨는 그들을 구할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했다. 그와 마주 앉아 바로 이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주위에 마음이 힘든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걸 느낀다. 약물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을 도울 방법이 진심을 다한 공감이라는 말은 좀 뻔하게 들린다.

“공감이 뭐라고 생각하나. 남이 말할 때 끊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 끄덕이며 동의해주는 것? 내가 말하는 공감은 그런 게 아니다. ‘좋은 말 대잔치’나 ‘칭찬 립서비스’와 다르다. 상대 존재를 들여다보고 그 자체에 내려앉는 게 공감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주목받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비극적 트라우마 피해자든 다르지 않다. 권력 외모 사회적 성취 같은 것 말고, 오직 ‘나’ 자신으로 ‘너’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을 해주는 게 공감이다.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이라도, 그의 존재 핵심까지 들어가 그 자체에 집중하며 공감을 퍼부으면 반드시 반응한다.”

- 존재의 핵심에 어떻게 들어가나.

“느낌, 감정에 주목해야 한다.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이 다 옳다. 누군가 상처와 고통을 털어놓을 때 내 잣대를 들이대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곧잘 ‘그런 생각은 잊어. 너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니니?’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봐’ 등등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한다. 대부분 선의에서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가 상대 존재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걸 방해한다.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 사람은 힘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느낀다.”

- 그럼 상대가 고통에 신음할 때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말이다. 잘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잘 들어준다는 건 마음을 열고 그의 상처에 내 눈을 포개는 일이다.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도 좋다. 그가 대답을 회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상대는 누군가 자기 존재에 주목하고 더 잘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것으로 힘을 얻는다.”


“당신이 옳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정씨는 밤이 돼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두세 시간씩 동네를 배회하던 고1 남학생 얘기를 들려줬다.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아이는 집 주변을 걷다 종종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은 으레 “밤늦게 웬 청승이야.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충고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아이 심정이 어땠을까. 산소가 부족해 창문을 열었는데 매연이 확 들어오는 듯한 느낌 아니었을까.” 

-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늦은 시간 집 밖을 떠도는 아이 마음이 편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내가 밤늦게 왜 이러고 있을까’라고 물었을 거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그렇다. 마음이 힘들면 나조차 온전한 내 편이 되지 못한다. 그때 친구가 같은 얘기를 또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섣부른 조언을 하는 대신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너 아직도 집에 못 가고 있어? 무슨 일 있었구나.’ 이 말에는 ‘네가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갔다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게 바로 공감이다. 나조차 스스로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누군가 온 체중을 실어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는 거다. 사람은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낀다. 비로소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아이는 친구 얘기를 들으면 ‘아, 좀 더 거리를 배회해도 되겠구나’ 하지 않고 십중팔구 마음이 풀려 집에 들어갈 것이다.” 

- 때로는 무조건 ‘당신이 옳다’고 말하기 힘든 순간이 있지 않나. 

“감정과 행동을 구별해야 한다. 30대 초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의 남편은 인권 관련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한테 맞아 장애인이 됐다. 혼자 세 아이를 돌보며 생계까지 책임지게 된 그 사람은 분노와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남편 병세가 악화되자 고통이 더욱 커졌다. 나와 마주 앉았을 때 그는 몸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운전면허만 있다면 트럭을 몰고 경찰청으로 가서 문을 들이받고 싶다. 다 불태우고 나도 죽고 싶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그러면 안 된다. 남은 아이들은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하며 말릴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들이받고 말 건데 운전면허가 왜 필요하냐. 면허 없어도 된다’고 했다. 멈칫하던 여성이 이내 피식 웃었다. 누군가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자 불같은 분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다. 

그가 정말 ‘다 부수고 나도 죽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다. 그러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화가 나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 분명히 옳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그러면 안 된다. 사람 감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항상 옳다. 

사람이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게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네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주는,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집중하며 공감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살 수 있다. 그게 사람이다.” 

정씨는 이처럼 한 사람의 존재 자체에 집중해 심리적 죽음을 막아내는 치유법을 ‘심리적 CPR(심폐소생술)’라고 불렀다.


심리적 CPR

- 그만큼 강력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인가.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CPR를 배우면 초등학생도 성인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면 들것에 실어 병원에 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많은 사람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 심장이 멎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일을 막고자 의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게 CPR다. 다른 장기는 다 제쳐두고 오로지 심장과 호흡에 집중하는 응급처치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가슴 정중앙 정확한 지점을 강력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터치’가 심장을 깨운다. 심장 기능이 돌아오면 몸의 다른 기능은 알아서 연쇄적으로 작동한다.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존재 자체, 그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감정에 집중한다. 어떤 일을 당했든,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든 자기 존재 자체가 터치되면 사람은 살아난다. 생명의 전원 같은 거다.” 

- 마치 마법처럼 들린다. 

“CPR 자체가 그렇다. 멈췄던 심장을 다시 깨운다. 의학자들이 그 방법을 복잡한 설명 붙이지 않고 실용적 매뉴얼로 정리했다. 심장이 왼쪽에 있는데 왜 정중앙을 압박해야 하는지, 그러면 어떤 기전을 통해 온몸 기능이 연쇄적으로 돌아오는지 알 필요 없다. 심리적 CPR를 할 때도 그렇다. 복잡한 심리이론 몰라도 된다. ‘나’가 또렷하게 돌아올 때까지, ‘나’가 위치한 그곳을 강하게 압박하는 게 전부다. 그러면 누구나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위기에 빠진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도 구할 수 있다.” 

정씨는 이 방법을 ‘숨이 멎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의 현장, 끝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일상의 상처’ 속에서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한 끝에 찾아낸, 사람 본질에 맞닿은 치유법이라 ‘부유하든 가난하든, 강자든 약자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노인이든 아이든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고도 자신했다. 그는 최근 일상에서 심리적 CPR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책 ‘당신이 옳다’를 펴냈다.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공감하고 치유할 것인지 알려주는 지침서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 책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며 ‘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라고 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진료실을 걸어 나와 상처받은 사람을 만나고 그의 심리적 치유를 도울 때마다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받았다.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고 스스로 치유할 방법은 없나?’ 이 책이 바로 그 답이다. 지난 30년 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 나의 정성을 모두 쏟아부었다.

나는 뇌과학과 약물학으로 사람 마음 거의 전부를 설명하고 해석하려 드는 현대 정신의학 흐름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는 트라우마 현장에서도 피해자의 슬픔과 고통을 충분히 듣기보다 약물 처방전부터 꺼내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고통을 질병 증상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그러나 일상의 우울 분노 외로움 상처가 모두 질병인 건 아니다.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면 바로 약을 먹을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왜 그런 걸까’ 하고 곰곰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복통으로 응급실에 가도 원인을 찾을 때까지 진통제를 안 준다. 통증 원인이 위천공인지, 맹장염인지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사람을 만나면 곧잘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자기 마음을 평소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질문 하나가 심리적 CPR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 생각이 아니라 마음에 집중하면서 존재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시작하는 거다.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답을 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며칠 전 어떤 분이 ‘남편한테 ‘요즘 마음이 어때?’ 하고 물으니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만 하고 대답은 안 하더라’고 전했다. 평소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생뚱맞은’ 질문을 그저 흘려버리지 못한다. 자기 마음, 느낌에 주목해주면 반드시 반응하는 게 우리 존재의 속성이다. 즉시 답하지 못해도 속으로는 ‘내 마음이 지금 어떻지?’ 하고 곱씹어보게 마련이다. 그러다 며칠 후, 혹은 한 보름쯤 있다가 부인한테 슬쩍 자기 마음에 대해 얘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요즘 마음이 어떤지’ 묻는 것, 솔직한 감정을 알게 됐을 때 ‘충조평판’하는 대신 온 체중을 실어 ‘공감’하는 것. 이것이 정씨가 말하는 심리적 CPR의 핵심이다. 정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에도 바로 이 ‘무기’를 들고 현장에 갔다. 생업을 접고 남편 이명수 심리기획자와 함께 경기 안산으로 거처를 옮긴 뒤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어 트라우마 피해자를 만났다.


기억해야 할 9명의 단원고 교사

- 그 참혹한 시공간에서 수많은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 상처에 공감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2000년대 중반부터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등 트라우마 피해자를 꾸준히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에 대한 현장 경험이 가장 많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갔을 때 나도 놀랐다. 완전한 혼돈, 무간지옥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붙잡고 ‘이번 사고로 친구를 잃은 아이가 장례식장에 여러 번 다녀오고도 또 가겠다고 한다. 그만 말려야 하나, 계속 허락해야 하나’ ‘이웃집 사는 친구를 늘 철수엄마라고 불렀는데 이번에 철수가 죽었다. 앞으로 뭐라고 불러야 하나. 갑자기 호칭을 바꾸면 더 상처받지 않을까’ ‘유가족이 생존학생을 찾아왔는데 바로 만나게 해도 되나. 좀 시간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등 구체적 질문을 쏟아냈다. 거대한 사고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뒤흔들면서, 많은 이가 분노와 죄책감 등 심리적 상처에 어쩔 줄 몰라 했다.”

- 그곳에서 무엇을 했나.

“개별적, 집단적으로 사람을 만났다. 첫 집단상담 대상은 단원고 선생님들이었다. 당시 단원고는 각종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다. 2학년 생존 학생들은 사고 직후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학교에 돌아가지 못한 채 중소기업연수원에 마련된 임시학급에서 공부했다. 거기서 아이들을 돌본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 아픔을 들여다보고 상처에 공감했다.”

- 유가족 등 피해자 상담에 주력한 줄 알았다.

“단원고 선생님 집단상담 얘기는 그동안 어디서도 하지 못했다. 단원고 교사는 그때 가해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돕는 걸 유가족이나 생존 학생 부모가 알면 또 다른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이 지났고, 그분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 교사에 집중한 이유가 있나.

“아이들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선생님을 도와야 했다. 그 선생님들 또한 트라우마 피해자이기도 했다. 알다시피 세월호 참사로 2학년 교사 대부분이 사망했다. 생존 학생들을 돌볼 새로운 선생님이 필요했다. 이때 단원고에서 9명이 자원했다. 이분들이 아이들을 네 반으로 나눠 각각 2명씩 담임을 맡고, 한 명이 주임교사가 됐다.

당시 상황을 볼 때 보통 결심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교사들이 어떤 분들인가 알아봤다. 대부분 사망 교사와 가깝게 지낸, 가장 친한 동료들이었다. ‘친구’가 못다 한 일을 대신 마무리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나선 것이다. 희생 학생들의 1학년 때 담임교사도 있었다. 과거 자기 반 학생을 거의 다 잃은 이 선생님은, 남은 아이들이라도 상처 없이 졸업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담임을 맡겠다고 자원했다.

그들 자신이 동료와 제자를 잃은 트라우마 피해자였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해자로 대했다. 사회적 비판과 유무형의 폭력을 묵묵히 감당해야 했다. 미수습자 가족, 유가족, 생존 학생 부모 등 수많은 피해자 앞에서 끝없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 선생님은 그때 두 살인가 세 살 난 아이를 두고 있었는데 ‘바닷속에 있는 제자들을 생각하면 내 자식을 안아줄 수 없다. 사람 같지 않은 짓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3학년이 됐을 때 이분들한테 그 무거운 책임을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원래 학년이 바뀌면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나. 그러나 아홉 분 모두 ‘1년 더 담임교사를 맡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자기 자리를 지켰다.”

- 그런 선생님들이 계셨다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나는 사실 자라는 동안 존경할 만한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세 아이도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이 아홉 분의 선생님 덕에 교사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관념이 다 바뀌었다. 정말 훌륭한 교사들이었다. 사회가 그분들의 책임감과 헌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 참혹한 고통 한가운데서 사람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얻게 됐나 보다.

“늘 그렇다. 여러 어려운 점이 있어도 계속 이 일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씨는 공감은 늘 상호적, 동시적이라고 했다. 타인 마음을 듣다 보면 내 상처를 만나게 되고, 내 상처가 치유되면 상대 마음이 더 명징하게 인식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렇게 ‘너’와 진심으로 공감하면 ‘나’ 또한 치유받는다. 그 경험은 사람 내면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또 다른 ‘심리적 전투’에 기꺼이 참전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정씨는 “사람들이 이 힘을 깨달아 서로서로 치유하고 치유받도록 이끄는 것,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일상의 치유자’ ‘다정한 전사(戰士)’를 만들어내는 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사람이 심리적 CPR를 통해 자신과 주위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8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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