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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 짜장면

“어른은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다”

  • 정재민 전 판사·작가

“어른은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다”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어른은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다”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쓰지 못하고 ‘자장면’이라고 써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도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짜장면’이라고 ‘짜’에 힘주어 발음하지 않고 ‘자’장면이라고 밋밋하게 말하면 아무래도 단무지 없이 짜장면을 먹는 것처럼 어색하다.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써야 한다면 ‘짬뽕’도 ‘잠봉’이라고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며 소심하게 항의하던 이들의 대열에 나도 동참한 바 있다. 마침내 국문법이 바뀌어 ‘자장면’ 대신 ‘짜장면’이라 쓸 수 있게 됐을 때, 나는 세상에 합리성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느꼈다. 만약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써야 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애증의 짜장면

어릴 적에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콜라와 마찬가지로 검은 색 음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매력적이었다. 아버지가 중국음식점에 전화로 짜장면을 주문하면, 특히 거기다 탕수육이라도 시키면, 그 직후부터 집안이 명절 때처럼 설렘으로 들썩거린다. 신문지를 깔고, 마실 물을 꺼내고, 김치까지 꺼내고도 또 뭔가 더 할 것이 없는지 몰라서 서성거린다.

마침내 타타타타타타타 하는 배달원의 오토바이 소리가 바깥에서 들리면 “왔다!” “왔다!” 하는 소리를 연발하면서 달려나가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의사의 가운 같기도 하고, 중국옷 같기도 한 옷을 입은 배달원이 은색 철가방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뒤 문을 열어젖히고 연초록색 그릇에 담긴 짜장면을 꺼내놓는다. 그 짜장면을 보면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침샘 조절이 잘되지 않아 입안에 흥건하게 침이 고인다.

짜장면을 다 먹고 나면 입 주변에 짜장이 덕지덕지 묻었다. 위로는 코끝까지, 아래로는 턱밑까지 시커멓게 묻었고, 때로 면도 지렁이처럼 뺨에 들러붙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추해 보였다. 그러나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으려고 아무리 조심조심 먹어도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짜장면을 다 먹고 난 이후라도 혀로 돌려치기 한 번만 하면 입가에 짜장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자 내 스스로 너무 대견한 나머지, 거울 속 나 자신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배우 최민수처럼 쫙 깔고, “어른이 된다는 건 짜장을 더 이상 입가에 묻히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지”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토록 짜장면을 좋아하니, 주변 어른들은 말을 잘 들으면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했고, 학교 선생님은 시험을 잘 보면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했으며,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은 전도를 해 오면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로 부모님은 남들에게 고작 짜장면 한 그릇 대접했다며 미안해하거나, 바빠서 겨우 짜장면 한 그릇 먹었다며 아쉬워했다.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 나이

그러나 요즈음 나는 짜장면을 잘 먹지 않는다. 나트륨이 많은 음식을 꺼리는 분위기인데다, 밀가루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이 갈수록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이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겠다고 하면 나는 건강에 더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랬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주말에 내가 한 번씩 외출하면 기다렸다는 듯 곧장 중국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킨다. 원래 먹지 말라는 것을 먹으면 더 맛있다면서.

게다가 요즈음 나오는 짜장면은 그 옛날 내가 좋아하던 짜장면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던 짜장면은 연초록색 그릇에 담긴, 초록색 완두콩과, 메추리알과, 오이채 조각들이 올라간 짜장면이다. 흰 모자를 쓴 주방장이 길게 늘인 밀가루반죽을 머리 위에서부터 내리치고 뭉치다가 갈가리 찢기를 반복하면서 만든 수타면은 쫄깃하면서도 구수했다(주방장이 흘린 땀 때문인지 짭조름하기도 하다). 그 짜장면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옛날 짜장’이라는 간판을 건 곳을 몇 군데 찾아가보았지만 추억의 짜장면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 저녁에는 외진 골목 속 허름한 중식당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열린 문 사이로 나무 구슬을 실로 꿰어 주룩주룩 세로로 늘어뜨린 구식 발에 시선이 꽂혔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반점’ 입구마다 걸려 있던 바로 그것이다. 건물이 ‘옛날’식이라서 혹시 옛날에 먹던 그런 짜장이 있을까 해서 안으로 들어가 봤다. 손님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때 아닌 파리가 달려들었다. 잘못 들어온 것 같았지만 가게 주인이면서 주방장이면서 종업원처럼 보이는, 흰 모자를 쓴 중년 아저씨가 나와 팔각형 컵에 담긴 재스민 차를 건네주니 다시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짜장을 먹으러 들어와놓고서 늘 그렇듯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짬짜면’을 먹는 줏대 없는 회색분자는 아니다. 초심을 떠올리며 짜장을 먹기로 마음을 굳히자 또다시 일반 짜장을 먹을지, 간짜장을 먹을지 고민이 시작됐다. 간짜장을 먹기로 마음먹자 다시 보통을 먹을지, 곱빼기를 먹을지 고민하게 됐다. 사는 것은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고, 먹을 때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산다는 것은 곧 고민의 연속일 수밖에.


간짜장 보통

“어른은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다”
나는 결국 간짜장 보통을 주문했다. 간짜장의 ‘간’이 예전에는 짜장의 간을 내가 알아서 맞출 수 있는 짜장면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 이번에 알아보니 ‘간’이 마를 건(乾) 자라고 한다. 춘장을 볶을 때 일반 짜장은 기름에 전분과 함께 볶다가 물도 넣는데(이때 물이 기름에 파고들면서 산소가 섞여 불이 확 붙는 것이라 한다), 간짜장은 물을 넣지 않고 볶는 것이라 한다.

간짜장이 나왔다. 아, 너무 아쉽다! 간짜장 위에 ‘계란후라이’가 올라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에 튀긴 계란후라이가 있어야 하는데. 반숙 노른자는 얇은 흰자 주머니에 담겨 복어처럼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르고, 흰자는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아져서 그 끝이 노릇노릇하고 바삭바삭하게 태워진 계란후라이! 부풀어 오른 노른자 부분을 젓가락 끝으로 스윽 긁으면 연약한 보호막이 찢어지고 그 틈으로 노른자가 새어나와 짜장과 면에 스며들어 간짜장 전체를 부드럽게 만든다. 마치 카페라테에 부은 우유처럼.

눈앞에 놓인 검은 짜장과 흰 면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검은 예복을 입은 신랑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서로 마주 보는 것 같다. 나는 이내 짜장을 면 위에 들이붓고 나무젓가락으로 신랑과 신부를 마구 뒤섞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고춧가루도 듬뿍 뿌렸다. 간짜장은 물기가 적어 잘 비벼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비비고는 잠시 물을 마시면서 기다린다. 짜장이 면에 스며들어야 맛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느 중국음식점에서 주방보조를 하던 청년 부부가 생각났다.

그 부부는 그야말로 선남선녀였다. 남자도 여자도 빼어난 미남, 미녀였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보고 단번에 반해버렸는지 나이 스물한두 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에 필사적으로 반대한 부모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 이후 연락을 끊었다. 부모가 반대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마치 너무 사랑하는 남녀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둘이서 소박한 언약식을 올리는 영화 속 이야기 같았다.


선남선녀 부부

그러나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여자는 직업이 없었고 남자가 하는 중국음식점 주방보조 일로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월셋집을 전전했다.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화는 금세 끝나고 긴 현실이 시작됐다. 결혼 직후 딸이 생기면서 두 사람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아내는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 하루 종일 딸을 키우느라 지쳐갔고, 남편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지 않는 월급 때문에 쪼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소주를 마시다 크게 다퉜다. 여자는 딸을 혼자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며 짜증을 냈고, 남자는 그래서 날더러 더 이상 뭘 어쩌라는 것이냐며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서로 마음이 다친 두 사람 사이에서 점점 더 거친 말이 오가고, 고함이 치솟고, 급기야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그러자 불안해진 두 살짜리 딸이 누운 채 자지러지도록 울어젖혔다. 딸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솟은 여자가 그쪽으로 달려가서 딸을 들고 벽에 내던졌다. 딸이 벽과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두개골이 깨졌다. 그것을 본 남자가 그럴 거면 아예 아기를 죽이지 그러냐면서 칼을 가지고 와서 배를 찔렀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비로소 멈추었는지, 울음소리가 더 커졌는지 잘 모르겠다. 부모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아기는 살았다. 대신 큰 수술 끝에 머리에도, 배에도 큰 상처를 얻었다. 두 남녀가 법정에 서게 됐다. 여자는 아기를 안고 나왔다.

흉기로 큰 상해를 가한 사건이라 징역형이 불가피했다. 문제는 실형인지, 집행유예로 풀어주는지 여부였다. 남의 자식에게 이렇게 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실형을 선고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둘 다 실형을 선고하면 아기가 어떻게 될지 막막해진다. 물론 보육원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보육원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아픈 두 살배기 아기를 제 부모만큼 충분히 잘 보살펴줄지는 의문이다.


실형이냐, 집행유예냐

애 어머니를 구속하면 육아를 해보지 않은 아버지 혼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 수입으로 아기 돌볼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구속하면 이번에는 아무 수입이 없고,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가족과 인연까지 끊긴 어머니가 혼자 돈도 벌고 아기를 키우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둘 다 집행유예로 풀어준다면 유사한 사안에서 실형을 받는 다른 피고인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뿐더러 피해자인 아기를 다시 가해자 손에 맡기는 셈이 됐다. 법정에 선 아버지와 어머니는 크게 뉘우치고 있고 아기를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극도의 불신의 눈으로 보자면 강한 처벌을 모면하고자 반성 제스처를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낭만적 결혼에 운명을 던진 두 사람의 순수함과 젊음을 한 번 더 믿어보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짜장면을 입으로 빨아당겼다. 흐르르르르르릅. 첩첩첩. 축축하고 육덕진 소리가 난다. 칼국수나 라면을 빨아들일 때는 나지 않는 소리다. 길고 검은 장화를 신고 늪지대를 걷는 것처럼 입술에 찐득찐득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 청춘 부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그 아이 부모라면 그 딸아이가 자라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이 덕지덕지 묻은 입으로 문득 자기 상처가 어떻게 하다 생겨난 것이냐고 물어봤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왠지 그 아이 입가에 묻은 짜장을 닦아주고 싶어진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일부 각색한 에세이입니다


“어른은 짜장을 입가에 묻히지 않는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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