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性학자 박혜성의 ‘행복한 性’

남녀 ‘물물교환’ 시대의 종언 여성친화적 테크닉과 매너가 답

  • 性학자 박혜성

    입력2019-02-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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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연애 포기자’ ‘결혼 불능자’ 등의 단어들이 자주 거론된다.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결혼을 했더라도 부부관계를 끝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해마다 높아지는 이혼율이 이를 방증한다. 이들이 포기하는 건 결국 섹스다. 오늘날 남녀의 정신적·육체적 관계에 이처럼 빨간불이 켜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과거 수천 년 넘게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거나 재산이었다. 왕이나 귀족, 재산이 많은 남성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그녀들을 먹여 살렸다. 경제력이 없는 남자는 결혼할 수조차 없었다. 남자는 경제력을, 여자는 성(性)을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결혼이 성사된 것이다. 남자가 가족을 먹여 살릴 의무를 지닌 반면, 여자는 아이를 낳아 가족 수를 늘리는 것을 삶의 최대 목표로 여겼다. 따라서 가임생산력이 없는 여자는 결혼했더라도 내쳐지기 일쑤였다. 이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며 ‘물물교환’ 하듯 관계를 맺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


    섹스하지 않는 여자

    결혼 후 여자는 출산과 집안일, 그리고 남편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여차하다가는 자신보다 젊고 건강한 여자에게 안주인 자리를 내줘야 하기도 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인정되지 않던 시대의 여성은 남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겨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기고, 교육과 사회참여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면서 여성의 위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 이후 피임약이 개발되면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결혼에 대한 결정권은 남성에게서 여성에게로 넘어왔다. 여자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것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자 없이도, 섹스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여성이 많아졌다. 이는 곧 ‘결혼은 재물과 성의 맞교환’이라는 공식이 깨졌음을 의미한다.

    설령 결혼했더라도, 소설 ‘인형의 집’ 여주인공 로라처럼 가정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남성이 기억하는 여성의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여성들이 느끼는 결혼생활의 모순은 날로 커지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가 통하지 않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을 아내에게 다 떠넘기려는 남성들이 문제다.



    심지어 맞벌이 가정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을 혼자 견뎌내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많지 않다. 결국 결혼생활의 부당함을 거부하고자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아무리 남성이 여성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해도 소용없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에게 복종하며 살 이유가 없고, 그러려 하지도 않는다. 결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남편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여성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남편이 손만 대도 기겁하고 도망간다”는 이들이 그렇다. 평소 남편으로서 권리만 주장하고 아내에게 모든 서비스를 받으려고만 드는 남편에게 어떤 아내가 흔쾌히 몸과 마음을 내줄 수 있겠나. 아무리 부부여도 일방적인 성관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혼에 관심 없는 여성이라면, 남성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으니 더욱 섹스를 거부하게 된다. 섹스리스 부부, 섹스리스 커플이 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여성의 인식 변화는 남성 처지에서 보면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여성을 결혼이란 제도 안에 가두기 위해 사용하던 무기(경제력)가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보니, 급기야 결혼과 섹스를 포기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남자는 여성의 ‘성(性)’을 원한다. 섹스파트너를 만들지 못한 남성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그 어떤 불만족보다 크다. 심지어 성적 불만족은 분노조절 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일어난 30대 남성의 PC방 ‘묻지마 살인’의 경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 욕구 불만이 끔찍한 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외로움으로 시작된 우울증이 급기야 누군가를 해칠 만큼의 분노로 폭발해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력 아닌 사랑과 매너로 여성을 유혹하라

    범죄가 아니더라도 성에 대한 남녀의 엇갈린 사고방식은 결혼율 하락, 저출산, 인구절벽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양산한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남녀의 성에 대한 온도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섹스하고 싶지 않은 여성과 섹스하고 싶은 남성의 갈등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여성이 결혼을 택하고, 결혼한 뒤에도 끝까지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경제력은 더 이상 정답이 될 수 없다. 여자가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행동, 사랑이 깃든 표현만이 여성을 유혹할 수 있다. 여자는 나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것 같은 사람에게 섹스도 허락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동물 세계의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듯 이제 남성들은 여성 친화적 섹스 테크닉과 매너를 배워야 한다.

    박혜성
    ● 전남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경기도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행복한 성 이사장
    ● 저서 :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랑의 기술’ ‘굿바이 섹스리스’
    ● 팟캐스트 ‘고수들의 성 아카데미’ ‘박혜성의 행복한 성’ ‘이색기저섹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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