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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문재인 정부 2년의 뒤안길

[민생 르포] 뿌리째 흔들리는 경북 구미

공장 매매 스티커 덕지덕지, 번화가 빈 상가 속출, 주택 거래 실종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민생 르포] 뿌리째 흔들리는 경북 구미

  • ● 구미산단 5단지, 4분의 3 미분양
    ● “중심상권에도 ‘무권리금’ 점포 매물”
    ● “아파트 매수인엔 중개수수료 면제”
    ● “반나절 택시 몰아 손님 3명 태웠다”
    ● 평균연령 37세 청년 도시 “아직 희망 있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4월 8일 오후 7시가 가까워진 시각, 경북 구미엔 조금씩 어스름이 내렸다.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를 가로질렀다. 퇴근 후 저녁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붐빌 시간이었지만, 도심 거리는 한산했다. 기사에게 “오늘 손님 좀 많이 태우셨나요?” 말을 건네자 바로 한숨이 돌아왔다. 

“정오에 나와서 지금까지 다녔는데 손님이 딱 세 번째입니다. 내 말이 거짓말인지 여기 미터기 한번 보세요.” 

그가 가리킨 미터기 모니터에는 ‘일 영업 횟수 3회’라는 글씨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내가 구미에서 택시기사를 30년째 하는데,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처음입니다. 경기가 계속 나빠진다 싶더니 지난해 가을부터는 완전 ‘개판’이에요.” 

택시기사만이 아니다. 이날 구미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은 입을 모아 같은 얘기를 했다. 




“한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원평동 새마을중앙시장에서 국화빵을 파는 할머니는 손님이 뜸해 텅 빈 시장 길을 보며 혀를 찼다. “한때 이 길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손님들이 풀빵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며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지금은 장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하루 종일 가야 2만 원어치나 팔까말까 한다”고 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구미산단) 1단지에서 만난 한 제조업체 노동자는 “물류 차량이 최근 부쩍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료 실어오고 제품 내가는 트럭이 구미시내를 쉼 없이 오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루 종일 차가 안 막힌다. 출퇴근 시간에도 길이 뻥뻥 뚫린다. 지금도 이 널찍한 길에 차 한 대가 안 다니지 않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구평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빈 원룸이 많아져 큰일”이라고 했다. 구평동 일대는 원룸 밀집 지역으로, 구미산단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로 붐비던 곳이다. 그러나 삼성, LG 등 구미 경제를 이끌던 대기업이 속속 수도권 및 해외로 이전하고 중소기업 경기도 둔화하면서 최근 정주 인구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 중개사는 “이제 보증금 50만 원, 월세 10만 원 안팎에도 방을 구할 수 있다. 방값을 내려도 입주자가 안 들어오니, 투자 목적으로 원룸을 몇 개씩 갖고 있는 주인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고 밝혔다.


“이렇게까지 죽을 수 있나”

1973년 9월 구미역 앞에 서울~구미간 고속버스의 운행 개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동아DB]

1973년 9월 구미역 앞에 서울~구미간 고속버스의 운행 개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동아DB]

구미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으로 꼽히는 문화로, 일명 ‘2번 도로’ 인근에서 옷가게를 하는 주인 얘기도 들어봤다. 그는 “상권이 죽는다 죽는다 해도 이렇게까지 죽을 수 있느냐”고 했다. 

“예전에는 이 근처 10평대 가게 권리금이 1억 원쯤 됐다. 규모 크고 장사 잘 되는 곳은 훨씬 비쌌다. 그런데 2~3년 새 그게 싹 사라졌다. 수억 원 들여 가게를 낸 상인들이 투자금이 아까워 나가지도 못하고 손해만 보며 버티고 있다.” 

그 상점 옆으로 ‘임대 문의’ 딱지가 붙은 빈 가게가 적잖이 눈에 띄었다. 1, 2층이 통째로 비어 있는 건물도 있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구미산단 중대형 상가(일반 3층 이상이거나 전체 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43.5%다. 웬만큼 규모가 되는 상가의 절반 가까이가 비었다는 뜻이다. 전국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평균(10.6%)의 4배가 넘는다. 구미 상권이 죽고, 빈 방이 늘고, 오가는 물류차량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구미산단이 활력을 잃은 것이다. 1969년 9월 첫 삽을 뜬 구미산단은 이후 50년간 구미 경제의 젖줄이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첨단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어우러져, 매해 최고 수출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시 구미는 일자리가 넘쳐나고, 거리마다 돈이 돌았다. 

구미역 앞 중심상권에서 17년째 카페 ‘아미브레’를 운영하는 김규태 씨는 그때 얘기를 부모님에게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80년, 부모님은 구미시 2번 도로에서 식당을 하셨다. 얼마나 장사가 잘됐는지, 오후 7~8시쯤이면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엔 우리 집뿐 아니라 주위 가게가 다 그랬다고 들었다. 시내에 젊은 사람이 넘쳐나 술집도 맥주가 떨어져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70~80년대 구미의 폭발적 성장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1971년 1313명에 불과하던 구미산단 노동자 수는 1975년 1만2569명으로 처음 1만 명을 돌파했다. 1977년 2만7171명, 1978년 4만666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1973년 9월 17일 동아일보는 ‘공업단지 붐 탄 신흥도시 구미’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구미의 눈물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된 구미 새마을중앙시장 풍경. [박해윤 기자]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된 구미 새마을중앙시장 풍경. [박해윤 기자]

“대공업단지로 발돋움해가는 경북 구미는 문자 그대로 붐 타운이다. 1971년 5월 25만9000평에서 출발한 구미공단은 발족 2년 동안 (중략) 우리나라 27개 공단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18만5000평의 방대한 대지를 조성했다. (중략) 구미공단은 시골읍에 불과했던 구미를 일약 신흥도시로 끌어올렸고 치솟는 땅값, 다투어 들어서는 주택과 접객업소, 몰려드는 전입자들로 흥청댄다.” 

구미산단 건설 전 경북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 불과했던 ‘구미읍’은 1978년 시로 승격됐고, ‘낙동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한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상했다. 2013년 구미산단 수출액은 367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0.7%를 차지했다. 불과 6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구미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구미산단 수출액은 258억 달러에 불과하다. 노동자 수는 9만859명으로 2015년(10만2240명)에 비해 1만1000명 이상 줄었다. 2019년 1월 현재 구미산단 가동률은 62.0%, 50인 미만 기업의 경우 30.7%로 전국 꼴찌다. 제품 100개 생산 여력을 가진 공장에서 겨우 30개밖에 못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전문가들은 구미산단의 ‘대장 기업’들이 잇달아 구미를 떠난 걸 원인으로 지적한다. 

구미에서 공장 6개를 운영했던 LG디스플레이는 2000년대 중반 생산 중심지를 파주로 옮겼다. 1989년 구미에서 휴대전화 생산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2010년 관련 시설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는 중국으로 떠났고, 최근에는 네트워크사업부 일부가 수원으로 이전했다. 대기업의 연이은 이탈은 구미지역 중소기업 운영에도 큰 타격을 줬다. 그 여파가 누적되면서 최근 2~3년 사이 구미 경기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공단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그전에도 ‘뭔가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긴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거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저녁 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어 큰일”이라고 토로했다. 

삼성·LG 협력업체가 모여 있던 구미산단 1단지에는 전봇대마다 ‘공장 임대·매매’ 스티커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단지 안에 들어서자 담장에 큼지막하게 ‘임대’ ‘매매’ 현수막을 붙여놓은 빈 공장도 쉽게 눈에 띄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방문해 화제를 모았던 중소기업 에피밸리(구 성일텔레콤)도 그중 하나였다. 에피밸리는 한때 발광다이오드(LED)칩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수출유망 중소기업 등에도 선정된, 구미산단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을 닫고, 그 부지조차 매물 신세가 됐다. 

구미산단 내 산업용 포장재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포장재 분야도 위기”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구미에서 LCD, 휴대전화, 프린터 등이 활발히 생산되던 시절에는 산업용 포장재 시장도 활황이었다. 한때 6개에 이르던 동종업계 업체 중 지금은 3개만 살아남았다. 대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뒤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지 못한 게 원인이 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 회사도 공장 2개 중 한 개는 창고로 쓰고 있다.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거다. 노동자 수도 많을 때는 12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40명이 채 안 된다. 잔업, 특근은 아예 없다”고 밝혔다. 당연히 임금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구미에서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고 여긴다. 

“우리 공장 바로 옆에 있던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PCB 제조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회사였는데, 삼성이 베트남으로 가버리니 방법이 없었다고 들었다. 주위에서 이런 얘기가 계속 들리니 불안하다. 지금 직장이 있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것 때문에 전반적으로 도시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다.”


모텔촌도 가격 뚝

LG 사원들이 많이 살았던 구미 인동 아파트 단지 풍경. [박해윤 기자]

LG 사원들이 많이 살았던 구미 인동 아파트 단지 풍경. [박해윤 기자]

위축된 소비심리는 구미시내 자영업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다시 김규태 씨 얘기다. 2003년부터 카페 ‘아미브레’를 운영해온 그는 “요즘 구미 경기가 나빠진 걸 생생히 느낀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창업 당시 ‘아미브레’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4000원이었다. 지금은 4500원을 받는다. 인건비가 네 배쯤 오르고, 물가도 껑충 뛰는 사이 겨우 500원만 올렸다. 그런데도 오후 5시 그의 카페 안에는 손님이 세 팀밖에 없었다. 

그의 카페는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다가와 물과 메뉴판을 주고, 주문을 받은 뒤 음료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인테리어와 서비스 등이 상대적으로 고급스럽다. 구미 경제가 활황이던 시절 이 카페에는 늘 손님이 가득 찼다고 한다. 요즘은 주말을 제외하면 대체로 한산한 편이다. 김씨는 “예전에는 수익이 제법 괜찮았다. 요즘은 내가 틈틈이 커피 로스팅 강의, 창업 컨설팅 등을 하며 버는 수입으로 버티는 수준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던 구미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구미에서 7년째 키즈 카페를 운영 중인 정세민 씨도 “작년 겨울 매출이 개업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정씨에 따르면 겨울방학은 키즈카페 매출이 1년 중 가장 높은 때다.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질이 나빠지면 방문객이 많아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구미에서 가장 고급 주거지역 쪽에 있는 그의 영업장 매출은 작년 겨울, 연이은 미세먼지 공습에도 비수기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정씨는 “구미 맛집으로 손꼽히는 수십 년 된 식당들도 요즘 빈자리가 많다. 주위에서 ‘더 늦기 전에 집 팔고 전세로 옮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미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느끼고 지갑을 닫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구미시내에서는 ‘숙박 2만5000원, 대실 1만 원’이라고 쓰여 있는 숙박업소 간판도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한 숙박업소 운영자는 “구미시내 숙박업소는 10년 전에도 1박에 3만 원 이상씩 받았다. 요즘 가격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 한 채 5000만 원

그에 따르면 구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서 손꼽히는 유흥도시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젊은 노동자가 많고, 놀이 인프라가 잘 형성돼 있어 대구 사람들이 구미로 놀러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주말 밤이면 근처 도시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숙박업소도 장사가 매우 잘됐다고 한다. 그는 “관내 기업이 활황이던 시절 다른 지역에서 오가는 바이어들도 구미시내 숙박업소를 이용했다. 그때 모텔촌이 크게 커졌는데 요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구미시내 부동산 경기도 추락하고 있다. 인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노동자 수가 최근 몇 년 새 1만 명 넘게 줄었다는 건, 가족까지 포함해 수만 명이 구미를 떠났다는 얘기 아니냐”며 “그런데도 아파트 신규 분양이 계속됐으니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미산단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인동지역 공인중개사 사무소 창에는 곳곳에 ‘급매’ 광고가 붙어 있었다. 전용면적 85㎡(34평형) 아파트 가격이 1억5000만 원 안팎, 소형 아파트 중에는 채 1억 원이 안 되는 매물도 적잖았다. 이 공인중개사는 “이 근처 62㎡(19평형) 규모 아파트 가격은 한때 1억1000만 원까지 갔으나 지금은 5000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분양가 이하로 떨어졌는데, 그 가격에 내놓아도 거래가 안 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원래 이 지역은 구미에서 부동산 거래가 매우 활발하던 곳이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만 150개쯤 모여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수요가 사라지면서 공인중개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매수인에게는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공인중개사는 “배운 게 이것뿐이라 사무실을 열어놓고 있지, 매일 손해가 쌓인다. 자리만 있으면 퇴근하고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으로 구미에서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그만두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규태 씨는 “얼마 전 온라인 사이트에 ‘알바’ 구인 광고를 냈다가 전화가 하도 많이 걸려와 깜짝 놀랐다. 4시간 만에 100통 넘게 전화를 받고, 그날 바로 사람을 뽑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미 산동·해평면에 933만9000㎡ 규모로 조성 중인 구미산단 5단지마저 분양난에 빠지면서 구미시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구미시는 당초 5단지가 완공되면 전자·정보기기, 메카트로닉스, 신소재 등 다양한 미래형 산업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약 10조 원의 부가가치와 2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1단계 공정(375만4000㎡)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현재 시점, 분양률은 25%에 불과하다. 조성 지역 가운데 4분의 3이 공터로 남은 셈이다. 현재 입주를 확정한 업체 중 국내 대기업은 하나도 없다.


“SK하이닉스 유치전, 얼마나 짠한가”

구미시민들이 SK하이닉스 구미 유치를 기원하며 피켓을 흔들고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 [뉴스1]

구미시민들이 SK하이닉스 구미 유치를 기원하며 피켓을 흔들고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 [뉴스1]

올 초 구미시민들은 정부와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바로 이 5공단에 유치하고자 똘똘 뭉쳤다. 구미시내 곳곳에 ‘SK하이닉스 유치 기원’ 현수막이 걸렸고, 시민 대표들이 서울 SK본사를 찾아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했다. 전국적 관심이 구미에 집중됐지만, SK하이닉스는 끝내 용인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LG, 삼성에 이어 SK마저 수도권에 ‘빼앗긴’ 상처는 구미 곳곳에 깊게 남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대기업이 이 시골 동네에 왜 오겠나. 애초부터 안 올 줄 알았다” “지금 구미에 KTX가 있나, 백화점이 하나 있나. 있는 회사도 떠나는 통에 새 기업을 어떻게 유치하려 한 건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SK하이닉스 유치전을 통해 드러난 구미시민의 단결력과 고향 사랑이 경기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나온다. 청년사업가 정세민 씨의 설명이다.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에 SK하이닉스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줄잡아 수천 개쯤 걸려 있었다. 무슨 기업이나 단체에서 내건 게 아니다. ‘SK하이닉스, 꼭 구미로 오세요. - 서울서 시집온 OO엄마’ 같은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었다. 얼마나 짠한가. 그동안 겉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다 구미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씨는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 유치에는 실패했고, 다들 마음이 아프지만 그 일을 계기로 우리가 한층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때 우리 안에 불붙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노력하면, 분명히 구미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구미상공회의소가 2월 25일부터 3월 11일까지 지역 내 91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4였다. BSI는 기업의 현장체감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100을 넘으면 경기가 전 분기에 비해 호전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은 걸 의미한다. 김달호 구미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BSI가 여전히 100에 못 미친다. 하지만 올해 1분기 62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꽤 높아졌다. 특히 기계·금속·자동차부품 등 구미산단 주력업종의 BSI가 97로 기준치에 근접한 건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고 밝혔다.


interview 정세민 구미청년문화협동조합 이사장
“청년의 힘으로 구미 다시 살리자”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정세민 구미청년문화협동조합 이사장(사진)은 구미 토박이다. 1980년 태어난 뒤 대학 재학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구미에서 키즈카페 등 여러 업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둔 청년사업가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그는 1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SK하이닉스 구미 유치’를 기원하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어릴 때부터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한 산업수도 구미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구미는 국내 최대 국가전자산업단지로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권규제완화와 기업들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구미 경제 전체가 붕괴하고 있다.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 청원은 3만6000명 이상의 공감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다. 정 이사장은 “구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 전체에 활력이 사라지고 사람들 또한 위축되는 게 안타까웠다. 구미를 되살리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가 2018년 구미청년문화협동조합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정 이사장은 “구미에 본사를 둔 또래 프랜차이즈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도시 분위기를 바꾸는 건 가능하지 않겠나. 문화행사를 열고 축제를 기획해 시민들이 활력을 되찾게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구미시민들이 ‘SK하이닉스’ 유치를 추진하며 도심에 각양각색 현수막을 내걸고 얼음물을 뒤집어쓴 건 이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청년이 힘을 모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취지로 종이배를 타고 낙동강을 횡단하는 퍼포먼스도 했다. 그는 “구미는 낙동강이 가장 길게 흐르는 지역이다. 이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구미청년문화협동조합은 올해 가족 단위로 참가하는 ‘낙동강 종이배 건너기 대회’를 열 계획이다. 12월에는 ‘락(樂)동강’이라는 뮤지컬도 공연한다. 모두 회원들이 자비를 털어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다. 

정 이사장은 “구미는 평균 연령이 38세가 채 안 되는 젊은 도시다. 다시 살아날 희망이 있다. 구미만의 문화를 만들고 좋은 도시 분위기를 조성해 살고 싶은 도시, 기업이 들어오고 싶은 도시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interview 장세용 구미시장
“모든 행정력 집중해 구미 경제 살리겠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장세용(66) 구미시장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길을 끈 당선자다. 박정희 대통령 고향으로 ‘보수의 텃밭’이라 불리던 구미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승리한 첫 단체장이기 때문이다. 득표율도 40%를 넘겼다. 이 결과에 대해 “불황에 빠진 구미 경제를 되살리려는 시민의 뜻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장 시장 본인도 선거운동 기간 ‘힘 있다, 해낸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사이 시민의 바람은 이뤄졌을까. 4월 8일 구미시청에서 만난 장 시장은 “취임 후 8개월간 청와대, 국회, 정부 부처를 찾아 시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성과도 있었다. 시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여당 프리미엄’이 계속 준비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 성과는 어떤 것인가. 

“직원 1600여 명과 함께 국가 공모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원평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총사업비 250억 원), 지능형 교통체계 구축사업(35억 원),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구축사업(12억 원), 5G 핵심부품 기술개발 사업(100억 원), 구미 이계천 통합·집중형 오염지류 개선사업(852억 원), 문화적 도시재생 공모사업(5억 원) 등에 선정됐다. 총 39건, 총사업비는 1700여억 원에 이른다.” 

- 반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엔 결국 실패했다.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유치전을 펼쳤다. 총력을 기울이고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구미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이 상생 협력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구미시민뿐 아니라 힘과 염원을 실어준 520만 대구·경북 시민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전 행정력을 집중해 구미 경제 재도약의 기회를 반드시 마련하겠다.” 

- 현재 구미 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대기업 공장의 수도권 및 해외 이전, 내수경기 불황 같은 외부 요인과 내부 문제로 구미국가산업단지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러 지표를 통해 경기 침체가 드러난다. 그러나 여전히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구미는 지방에서 최고의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대규모 부지, 50년간 축적된 산업기술 노하우, 우수연구인력을 보유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준비된 도시다.”


5단지 분양 촉진책

2018년 10월 17일 경북 구미코(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국제탄소산업포럼 개막식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오른쪽)와 장세용 구미시장이 탄소차에 시승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0월 17일 경북 구미코(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국제탄소산업포럼 개막식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오른쪽)와 장세용 구미시장이 탄소차에 시승하고 있다. [뉴스1]

- 우려를 낳고 있는 구미산단 5단지 분양 촉진을 위한 대책이 있나. 

“분양가 인하, 유치업종 확대, 임대용지 공급 같은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기업투자 활력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도 준비하고 있다. 투자금액 1000억 원 이상이나 상시고용인원 500명 이상인 국내 기업에는 특별지원 상한을 폐지할 것이다. 5단지 진입도로 개설, KTX 구미역 정차 등을 통해 제반 인프라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 

- 구미는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스마트 국방·드론 산업대전’을 주최했을 만큼 국방산업이 특화된 도시다. 이외에 구미가 자랑할 만한 산업 분야가 있나. 

“과거 구미의 주력산업이던 제조업은 4차 산업혁명 물결 속에서 녹록지 않은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 우리는 이를 타개하고자 중소기업에 일감을 공급할 수 있는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환경을 조성하고자 신산업을 발굴하려고 한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구미시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중심으로 구미미래산업발전전략을 수립하고 구미 산업 혁신을 위한 세부계획을 수행하고 있다. 국방산업 선진화는 이 한 갈래다. 현재 국비 5억 원 규모의 ‘전자·IT분야 국방 단종부품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또 5G 시대 개막에 발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5G핵심부품 기술개발사업’ 공모에 선정돼 향후 3년간 5G핵심부품 및 중소기업 융합제품 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제조업에 기반을 두면서 주요 산업 동향과 궤를 같이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1975년 6월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금성사 구미공장에서 TV가 생산돼 나오는 모습. 구미시는 구미의 산업유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동아DB]

1975년 6월 당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금성사 구미공장에서 TV가 생산돼 나오는 모습. 구미시는 구미의 산업유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동아DB]

- 최근 이목희 대통령직속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부겸·추미애 의원 등 정부·여당 관계자가 앞다퉈 ‘구미형 일자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현재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정부는 2월 ‘광주형 일자리’ 같은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을 확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미시는 구미형 지역상생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 가능한 기업을 파트너로 정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패키지 지원’을 제공해 고용 안정, 기업 경쟁력 제고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전문가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중앙부처와도 긴밀히 소통해왔다. 구미형 일자리 창출 방안 연구 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유치운동으로 모인 시민의 저력, 노사상생 염원을 바탕으로 노·사·민·정이 협력해 상반기 내로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 

- 지방선거 당시 ‘도시재생’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구미는 산업화를 위해 급속하게 만들어진 도시다. 그동안 공단도시라는 단편적인 면만 보고 미래를 준비하다 보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구미시의 근간이 흔들렸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가진 다양한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시민들과 함께 고민해 구미를 대표하는 특색을 살리겠다. 도시재생을 통해 산업과 문화, 사람과 산업이 공존하는 새로운 구미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한쪽으로 치우친 발전으로 위기 처해”

2018년 11월 1일 경북 구미시청에서 열린 ‘구미시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모습. [뉴스1]

2018년 11월 1일 경북 구미시청에서 열린 ‘구미시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모습. [뉴스1]

- 최근 구미시의 산업유산을 관광 콘텐츠로 적극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구미는 그동안 관광도시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 산업유산도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대한민국 전자산업과 공업의 역사가 담겨 있는 각종 유산은 구미만의 특화된 관광자원이다. 구미산단 제1호 기업인 코오롱이 1979년 설립한 실업고 ‘오운여상’은 당시 공단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의 주경야독 현장으로 현재까지 학교 건물이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이곳을 비롯해 구미수출탑,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홍보관, 5단지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구미에코랜드 전망대를 중심으로 산업관광 투어를 마련하는 걸 구상하고 있다.” 

- 구미시장으로서 향후 목표는. 

“구미는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쪽으로 치우친 발전으로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구미산단 50주년을 맞은 올해를 구미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으로 여기고, 시민 중심의 발전 전략을 구체화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겠다. 노동자가 자긍심을 갖는 도시, 청년들이 취직해 결혼하고 정붙이며 살 수 있는 도시, 어르신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여성들이 아이 낳고 기르는 게 부담이 되지 않는 도시를 만들고자 차근차근 나아가겠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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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르포] 뿌리째 흔들리는 경북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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