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

“반경 50㎞ 대다수 생명체 질식사 우려”

거대 재앙! 백두산 화산폭발 시나리오

  • 전승민 과학칼럼니스트

    enhanced75@gmail.com

    입력2019-06-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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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창 시절 ‘한라산은 사화산, 백두산은 휴화산’이라고 배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라산은 화산활동이 완전히 멈춘 ‘죽은 화산’이며, 백두산은 활동을 잠시 쉬고 있는 ‘휴식하는 화산’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사실 ‘휴화산’이라는 개념은 없다. 내부에 마그마가 살아 있고, 1만 년 이내에 분화한 적이 있는 것은 모두 활화산이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백두산은 명백한 활화산이다.
    백두산 천지. [뉴시스]

    백두산 천지. [뉴시스]

    “백두산은 살아 있고 언제든 분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언제, 어떤 규모로 분화할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연구를 통해 대응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장 조사를 벌일 방법조차 찾기 어려워 안타깝습니다.” 

    국내 대표적 백두산 연구자로 꼽히는 이윤수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가 한 얘기다. 이 교수는 과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책임연구원으로 국내 백두산 연구를 사실상 총괄한 인물. 2018년 포스텍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세계 학자 대부분은 백두산을 언젠가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으로 구분한다. 또 대규모 분화가 가능한 ‘위험한 화산’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 시기와 규모를 놓고 의견이 갈릴 뿐이다. 과연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사전에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먼저 역사 속에서 백두산 분화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자. 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1401년, 1403년, 1597년, 1668년, 1702년에 백두산이 분화했다고 분석한다. 당시 사람들이 “석우(돌의 비)가 내렸다” “비린내 나는 안개(유황분진)가 솟구쳤다” 등으로 상황을 기록했기 때문에, 언제 화산이 폭발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상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일본 화산 전문가 히로미쓰(谷口宏充) 도후쿠(東北)대 명예교수는 한중일 기록을 두루 분석해 백두산이 현재와 가깝게는 1373년, 1597년, 1702년, 1898년, 1903년, 1925년 등 모두 6차례 분화했다고 주장했다. 히로미쓰 교수는 또 2012년 5월 일본 화산 전문가 학술대회에서 “6차례의 분화는 모두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난 후 발생했다”면서 “2011년 동일본지진이 일어난 것을 고려하면 백두산은 2019년까지 68%, 2032년까지는 99% 확률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히로미쓰 교수의 “백두산 분화가 일본 지진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은 아직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화산 연구자 대부분은 “백두산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 중 하나”라는 데 동의한다. 이윤수 교수는 “시기가 문제이지 분화는 기정사실이다. 철저한 연구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백두산 인근의 지질 현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두산 일대에서 한 달에 수십 차례 지진이 발생한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천지 외륜산 높이가 10㎝가량 높아진 일이 있다. 이후 2009년부터 점차 다시 낮아졌다가, 현재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또 천지 일대 온천수 온도가 섭씨 69도에서 83도까지 높아져 화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강현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다만 최근 수년 사이에 화산 분화에 대한 위험신호가 다소 주춤해진 면도 있다. 다양한 지표를 분석하며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폼페이 멸망 화산 폭발의 50배 위력

    백두산이 폭발할 경우 예상되는 화산재 확산 범위. 북한 및 일본 동북부 일대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행정안전부 제공]

    백두산이 폭발할 경우 예상되는 화산재 확산 범위. 북한 및 일본 동북부 일대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행정안전부 제공]

    그렇다면 백두산이 분화할 경우 어떤 피해가 생길까. 백두산 분화 중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일명 ‘밀레니엄 분화’로 불리는 946년의 폭발이다. 당시 화산폭발지수가 7에 달했다. 고대 로마도시 ‘폼페이’ 멸망을 초래한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50배 정도 위력에 해당한다. 당시 이 이 분화로 45Mt(메가톤)의 황이 분출됐으며 화산재와 화산가스 기둥이 대기 상층에 25㎞ 이상 치솟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화산재는 일본까지 날아가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 5~10㎝ 두께의 퇴적층을 만들어냈다. 일본에도 당시 분화를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보다 작은 규모 분화도 한반도에 큰 피해를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화산 폭발로 △성이 두 군데 무너졌다 △잿가루가 내리고(灰雨) 중천(中川)의 물이 샛노랗게 오염됐다 △돌덩이가 굉음과 함께 날아가 사라졌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마그마, 분진, 산불 등의 피해가 적잖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산 폭발은 산업화가 진행된 현대에 훨씬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 화산재의 유황 성분이 각종 전기시설의 고장을 유발해 전력망이 붕괴할 수 있다. 또 화산재가 대기를 뒤덮으면 냉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직접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지역에선 심각한 가뭄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산화탄소 폭발도 우려되는 현상 중 하나다. 이윤수 교수는 “현재 백두산 정상 칼데라(화산지형)에 물이 고인 호수, 즉 ‘천지’가 있는 것도 큰 걱정거리”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천지 정도 규모의 화산호수는 호수 아래층에 이산화탄소가 압축돼 초임계상태(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로 고여 있게 된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이만한 규모의 이산화탄소가 확산하면 백두산 일대의 생명체 다수가 질식할 우려가 있다. 이 교수는 “현장에 가보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상당량의 이산화탄소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6년 서아프리카 카메룬에서는 이와 관련한 피해가 발생했다. 니오스 호수가 머금고 있던 이산화탄소가 갑작스럽게 분출하면서 반경 25km 내 생명체가 거의 다 질식사했다. 당시 인명피해는 1746명, 희생된 동물은 수천 마리에 달했다. 이 교수는 “백두산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천지 경우 반경 50㎞까지는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4월 15일 국회 토론회에서 백두산 분출을 가정한 모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윤 교수는 “화산재가 비처럼 내리고, 엄청난 산불이 발생해 주변 산지를 전부 태울 것”이라며 “북한 압록강 주변과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 일대의 도로·댐·전기 등 기반시설이 마비되고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 식수 오염, 냉해에 시달려 일대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윤수 교수 또한 “백두산 화산 폭발 규모를 5 정도, 즉 946년 대분화의 100분의 1 수준 위력으로 상정해도 파괴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600배에 해당한다”며 “이보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실제로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 작성·운용 규정’과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대통령훈령 제388호)’ 등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있다. 

    △화산재 낙하 전에는 문과 창문, 환기구 등 외기가 유입될 만한 틈새를 적신 수건, 테이프 등으로 막고 △만성기관지염이나 폐기종, 천식 등 환자는 실내에 머무르도록 하고 △화산재로 인해 며칠간 외출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생수와 음식물, 방진 마스크와 의약품 및 구급함 등을 준비할 것을 권장한다. 이 밖에 △실외에 있을 때 화산재가 내리면 코와 입을 가리고 실내나 자동차 안으로 대피하고 △차량 이동도 가급적 피해야 하나 부득이할 경우는 전조등을 켜고 화산재가 날리지 않도록 천천히 운행하라고 요구한다. 눈에 띄는 것은 △화산재를 청소할 때 되도록 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화산재는 물과 섞이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행안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대응 매뉴얼은 있지만 국내에서 화산재를 피해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는 백두산 분화 피해가 남한에 직접적으로 전달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경우 화산재의 약 97%는 성층권 인근까지 치솟아 올라간 뒤 제트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흩어진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일본 훗카이도 및 동북부 일원이 적잖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3% 정도의 화산재는 계절풍을 타고 대류권을 따라 돌게 되므로 우리나라는 극심한 미세먼지, 항공기 이착륙 제한 등의 간접적인 피해를 상당 기간 겪을 것으로 보인다.

    “南·北·中 공동연구 필요”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것인가? ’토론회에서 오창환 전북대 교수가 ‘백두산 폭발시 예상되는 남한피해’ 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것인가? ’토론회에서 오창환 전북대 교수가 ‘백두산 폭발시 예상되는 남한피해’ 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연구진은 백두산 분화가 동북아 전체에 적잖은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각국이 협력해 현지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화산 연구진은 이를 위해 북한 및 중국 연구진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왔다.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겠으니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제안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상황에 밀려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지질연은 2015년 중국과학원과 협약을 맺고 백두산 공동연구를 추진했다. 마그마가 있는 위치를 지질조사를 통해 짐작한 다음, 실제로 시추공을 뚫어 현재 화산 상태를 알아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 현장 답사를 했을 뿐, 이후 중국 내 사정으로 원활한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강현 책임연구원은 “천지 내부의 마그마 구조를 알아내려면 초음파, 충격파 분석장치 등을 동원해야 한다. 이 장비를 백두산까지 가져가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북한에선 이런 장비가 제재 품목에 해당하며, 중국의 경우 관할 군부대의 허가가 잘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백두산 접경지대에선 중국 과학자들조차 각종 조사 장비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등 제약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윤수 교수는 “북한 측에서 먼저 공동연구 의사를 전해온 적도 있고 우리가 먼저 요청하기도 하는 등 서로 꾸준히 노력해왔으나 매번 무산됐다”면서 “백두산 연구를 위해선 중국과 북한, 두 국가와의 공동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앞으로도 꾸준히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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