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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명절증후군은 없다

성탄절 저녁 준비는 남자들 몫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명절증후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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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의 크리스마스 연휴는 한국으로 치면 설 명절이다.
  • 가족이 모두 모여 유대감을 확인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종소리에 나쁜 기운을 날려 보내고 평화로운 요들을 들으며 새해의 행복을 예감한다.
명절증후군은 없다

장크트갈렌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시민들이 서서 따뜻한 글뤼바인을 마시고 있다

댕댕댕! 댕댕댕! 댕댕댕! 마을 곳곳에서 종소리가 한바탕 떠들썩하게 울려 퍼졌다. 이윽고 소란스러운 종소리는 어디로 가고, 평화로운 스위스 요들 합창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알록달록 독특한 분장을 한 클라우스(Chlaus, 산타클로스의 모태) 예닐곱 명이 어느 집 앞에 모여 있고 집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반기고 있다. 스위스에서 이런 장면을 마주친다면 이제 곧 새해가 밝아온다는 뜻이다.

스위스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매년 12월 31일을 질베스터(Silvester)라고 한다. 그 명칭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이었던 성 질베스터 1세(재위 314~335)가 선종(善終)한 날에서 유래한다.

질베스터클라우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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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모양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소 방울을 매단 클라우스.(왼쪽) 스위스 장크트갈렌의 성당 앞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2016년 12월 31일에는 가장 스위스다운 질베스터 문화를 엿보기 위해 스위스에서도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지방인 아펜첼아우서로덴 준주(準州)의 작은 마을 터이펜(Teufen)으로 향했다. ‘질베스터클라우젠(Silvesterchlausen)’이라 하는 이 풍습은 그레고리력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과 율리우스력의 마지막 날인 1월 13일 새벽 아펜첼아우서로덴 곳곳의 마을에서 열린다.

클라우스란 산타클로스의 모태가 된 성인인 성 니콜라스를 가리킨다. 마을 사람들은 보통 예닐곱 명이 한 조가 돼 독특한 클라우스 분장을 한다. 분장은 그룹에 따라 아름답게 장식한 클라우스, 악마의 탈을 쓴 못생긴 클라우스, 나뭇잎 등으로 숲과 자연의 형상을 한 클라우스로 나뉜다. 이들은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이런 분장을 하고 무게가 최대 30kg까지 나가는 커다란 소 방울을 몸통 앞뒤로 메고 마을의 집집마다 들른다. 집주인 가족이 문 앞으로 나오면 둥글게 모여선 클라우스들은 딸랑딸랑 종소리를 시끄럽게 울려대며 악귀를 쫓아낸다. 이어 스위스 고유의 요들을 합창하고 집주인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집주인은 답례로 와인이나 독한 술을 한 잔씩 대접한다. 이 집 저 집으로 방문이 이어지는 사이 클라우스들은 점점 거나하게 취해간다.

이날 나는 터이펜 마을에서 대여섯 그룹의 질베스터클라우젠을 마주쳤다. 색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 위에는 다양한 모티프로 직접 제작한 거대한 모자를 쓰고 얼굴엔 마스크를 쓴 이들은 한눈에도 덩치가 크고 힘이 세 보였다. 무게 수십kg이 나가는 소 방울을 메고 몸을 흔들어 종을 치려면 마을의 장정들이 동원돼야 할 것이다. 빵집 앞에서는 전나무 잎과 가지로 옷을 만들어 입은 어린이 클라우스들이 요들을 합창하고 있었다. 빵집 주인이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네자 이들은 신나게 종을 치며 다른 집으로 향했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스위스인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이 마을로 모여들었다. 스위스에서 꽤 유명한 전통인데, 관광객을 끌 목적으로 꾸미는 인위적인 행사는 아니다. 인파 한가운데서 마주친 남편의 지인이 말했다.

“저 클라우스 중 한 명이 내 사촌이야. 이 고장에 살거든. 모자부터 마스크, 옷까지 직접 다 만들었대. 전나무로 만든 옷은 매년 새로 만들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네. 그래도 이렇게 매년 하는 걸 보면 자기네 고장의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아.”

질베스터클라우젠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세 말엽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질베스터클라우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1663년이라고 하니 이 지방에선 최단 350년 넘게 같은 새해맞이 풍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교도가 대다수인 스위스에서 새해맞이는 긴 크리스마스 연휴를 장식하는 대미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인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거리 곳곳에서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선보이고 라디오에서는 캐럴이 울려 퍼진다. 한국에서 추석에 송편을 찌듯 스위스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쿠키 굽는 달콤한 냄새가 진동한다. 스위스독일어로 구에츨리(Guetzli)라고 하는데 수십 종류의 쿠키를 미리 구워 넓적한 깡통에 담아놓고 크리스마스 때까지 간식 삼아 주섬주섬 집어먹는다.

구에츨리와 글뤼바인

12월 중 스위스 가정을 방문하면 독일어로 ‘아드벤츠칼렌더(Adventsk-alender)’라고 하는 대림절(待臨節, Advent: 성탄절 전 약 4주간의 교회 절기) 달력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족끼리 재미 삼아 선물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 24일간의 날짜가 적힌 달력 모양에 날짜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은 선물주머니가 하나씩 달려 있는데, 이 달력의 선물주머니를 매일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아드벤츠크란츠(Adventskranz)’라고 해서 네 개의 초를 월계관 모양의 전나무 장식과 함께 꾸며놓은 것도 집 안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한다.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일요일마다 초를 하나씩 켜기 시작해 크리스마스 직전 일요일에는 초 네 개가 모두 켜지게 된다. 대림절 풍습인데 지금은 종교에 상관없이 대다수 스위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스위스에서도 큰 도시마다 광장에 크리스마스 시장이 선다. 노점에서 각종 군것질거리며 장식품 등을 파는데 단연 인기 있는 건 와인에 설탕, 계피, 오렌지 등 다양한 향료를 넣고 끓여 따뜻하게 마시는 글뤼바인(Glu··hwein)이다. 글뤼바인 노점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선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스위스인들은 따뜻한 글뤼바인 한 잔을 들고 거리에 선 채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떤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장크트갈렌에도 매년 작은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는데, 여기서 글뤼바인을 마시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들과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서울과 달리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크트갈렌이 고향인 남편은 여기서 글뤼바인을 마시는 동안 중학교 동창이며 옛 직장 동료들과 심심찮게 마주치고 서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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