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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바람둥이인가 탐미적 사랑 예찬론자인가

돈 조반니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희대의 바람둥이인가 탐미적 사랑 예찬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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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사노바와 돈 조반니의 공통점은 여성들의 정조를 유린한 방탕한 플레이보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진정성 있는 사랑을 나누는 카사노바는 정조만 유린하는 돈 조반니와 같이 엮이는 것을 싫어한다.
  •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돈 조반니는 인면수심의 나쁜 남자로 그려지지만, 후대의 문학인들은 그에게서 우수와 낭만을 떠올리기도 했다.
희대의 바람둥이인가 탐미적 사랑 예찬론자인가
“세상에!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잘생긴 근사한 이태리 남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봤다면서 나를 따라오는데…. 그 그윽한 눈매와 환상적인 눈웃음을 따돌리느라고 힘들었지 뭐야.”

로마를 여행한 지인들의 이야기다. 물론 필자도 유학생활을 한 로마에서 이런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했다. 길 가다 만나는 이들의 정열적이고 생뚱맞은 고백에 어찌할 바를 몰라 황급히 도망치곤 했다. 그러나 며칠 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로 강아지처럼 다른 여인의 뒤를 따라다니는 그들을 발견하면서 그 환상은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그런 희대의 바람둥이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남부유럽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그들이 그다지 흉악한 저의를 품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는 당연히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 일종의 인간적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행동은 계산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짧은 한순간일지라도 오로지 가슴 뛰는 사랑의 직관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을 약간 미화하자면, 이른바 아름다운 여인들을 탐미하려 하는 일종의 사랑 예찬론자인 것이다. 물론 이런 정의가 모든 남성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유럽 여행에서는 의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바람둥이인가, 낭만주의자인가

희대의 바람둥이인가 탐미적 사랑 예찬론자인가

모차르트 초상. [황승경]

사람들은 흔히 바람둥이를 카사노바와 돈 조반니(돈 주앙) 유형으로 나눈다. 이 분류 기준은 사랑에 대한 진정성의 유무다. ‘여성들의 정조를 유린한 방탕한 플레이보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카사노바 유형 바람둥이들은 절대로 돈 조반니와 같은 묶음으로 엮이는 것을 싫어한다. 왜일까. 사랑 예찬론자에게 가슴 뛰는 절절한 사랑의 감정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시인, 철학자, 법학자, 외교관 등 여러 직업을 가진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일찍이 성직자였으나 100여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파문당하고 감옥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해졌다. 당시 가장 개방적이고 문란했던 베네치아에서 파문당할 정도였으면 다른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사형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와 관계한 여성들의 조력으로 유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전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엽기적인 사랑행각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도 흐르는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만년의 그는 어느 귀족 도서관의 사서(司書)로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쓸쓸하게,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혹자는 그를 조건 없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빠진 낭만적인 이상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돈 조반니를 다룬 작품은 여럿 있는데, 작가의 주관적 시선이 투영돼 약간씩 차이가 난다. 1630년 스페인의 수도사 몰리나가 ‘스페인의 난봉꾼과 돌의 손님’이라는 희곡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기 이전부터 돈 조반니에 대한 이야기는 구전되고 있었다. 희대의 난봉꾼에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호색 귀족 조반니는 실제 인물이라고도 전해진다. 가장 보편적인 서양식 이름인 후안(영어식 존, 프랑스어식 주앙, 이탈리아식 조반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페인 작품 ‘세비야 이야기’는 신앙의 이름으로 음란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골자다.

이후 몰리에르의 프랑스 연극(1665)과 골도니의 이탈리아 즉흥 연극(1745)을 거치며 돈 조반니 스토리는 문학적인 표현 가치가 더욱 높아졌으며, 상황도 더욱 극적으로 바뀌었다. 중세풍의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했던 스페인 작품과 달리 몰리에르(1622~1673)는 수준 미달의 귀족사회와 사회 악습을 진지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전에는 위정자들의 입맛을 혹여나 거슬릴까 두려워 차마 사용하지 못한 돈(Don)이라는 귀족 존칭을 넣은 ‘돈 주앙’을 몰리에르는 직접 제목으로 걸었다. 5막의 연극 ‘돈 주앙’은 5주 만에 상연금지 리스트에 올랐고, 몰리에르는 살아서 다시는 돈 주앙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성적 모차르트와 감성적 다 폰테

카사노바의 파도바 법대 선배인 골도니(1707~1793)는 돈 조반니의 마수에 걸린 여성들의 다양한 반응과 그녀들을 사랑하는 불쌍하고 비참한 남자들까지 집중 조명한다. 돈 조반니의 악행에서 파생돼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복잡한 관계 설정을 통해 골도니는 세속적, 육체적 사랑과 관념적 정신적인 사랑 모두를 가볍게 희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모든 사랑은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돈 조반니’에서 사우라 감독은 카사노바와 작곡자 모차르트(1756~1791), 대본작가 다 폰테(1749~1838)가 실제로 친목을 다지는 것으로 스크린에 담았다. 카사노바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창작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복잡한 여자관계와 문란한 사생활로 카사노바의 전철을 밟으며 성직자에서 파문당하고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한 대본작가 다 폰테가 카사노바의 애정관을 흠모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카사노바 유형과 돈조반니 유형의 바람둥이는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퇴폐적 애정관을 가진 돈 조반니에게 한 치의 인간적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돈 조반니의 뻔뻔함의 극치를 문학적으로 절묘하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돈조반니의 시종인 레포렐로가 농락당한 여성들의 리스트를 펼쳐 보이며 “이탈리아 여자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 여자가 100명, 터키 여자는 91명 그리고 홈그라운드인 스페인에서는 1000명 하고도 셋”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숫자를 세다가 스페인에 이르러서는 계산조차 포기한다.

귀족으로 정치적 야망이 있을 수 있고 권력에 대한 탐욕도 있음직한데 돈 조반니의 모든 것은 단지 여성들과의 육체적인 접촉에만 조준돼 있다. 사회 지도층인 귀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그가 그나마 당당함으로 귀족임을 나타내는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부분이다. 돌로 된 기사귀신이 등장해도 돈 조반니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식사를 한다. 그의 시종은 식탁 아래에서 두려움에 덜덜 떠는데 돈 조반니는 전혀 동요가 없는 ‘멘탈 갑 자기최면’의 진수를 보인다.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프랑스혁명 1년 전에 프라하에서 초연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극에 달한 철면피 귀족의 타락을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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