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연잉군 왕세제 책봉 | 도성을 버린 선조 도망친 곳에

  • 이규옥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1/2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조선시대 국정 기록을 전담한 사관은 임금과 신하의 대화를 기록하고 국정과 관련된 주요 문건을 인용, 발취해 사초를 작성했다. 사건의 시말(始末), 시시비비, 인물에 대한 평가 등 사관들의 다양한 의견(史論)이 함께 실렸다. 당대에 첨예한 논란을 빚으며 사관들의 붓끝을 뜨겁게 한 사건을 2편씩 소개한다. 이 글은 최근 한국고전번역원이 발간한 ‘사필(史筆)’에서 가져왔다.

한국고전번역원 刊 ‘사필(史筆)’





연잉군 왕세제 책봉 과정 -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규옥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연잉군(영조)의 초상. 6·25전쟁 때 일부가 불에 탔다. [사진제공·국립고궁박물관]

조선에서 당쟁이 가장 격렬했던 때는 아마도 숙종에서 경종을 거쳐 영조에 이르는 시기일 것이다. 숙종 때부터 집권 세력이 일시에 바뀌는 이른바 ‘환국(換局)’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당파 간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이는 왕비 소생의 아들이 없는 숙종의 왕위 계승 문제와도 직결돼 있었다.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이 후사를 얻지 못하자 노론 측에서는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 영조를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일을 빌미로 소론은 신임사화(辛壬士禍)를 통해 노론에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정조실록’에는 연잉군이 왕세제로 결정되던 순간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영조의 손자 정조가 직접 비문을 짓고 글씨도 쓴 검암기적비(黔巖紀蹟碑) 내용이 그것이다.

“영조께서 왕자로 있던 신축년(1721, 경종1) 8월 15일은 숙종의 탄신일이어서 명릉(明陵)에 참배하고 고령리(高嶺里)의 농가에 가서 머물렀다. 5일을 보내고 대궐에 문안하기 위해 말 한 필, 동자 두 명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덕수천(德水川)에 이르렀는데, 마침 밤이 깊어 검암(黔巖)의 파발참에서 잠시 쉬었다. 조금 뒤에 어떤 사람이 소를 몰고 앞 시내를 지나갔는데, 누군가가 뒤를 좇아가더니 앞서 간 사람을 붙잡아 와서는 ‘도둑’이라고 하였다. 영조가 이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참장(站將) 이성신에게 ‘저 사람은 흉년에 굶주림에 시달리다 이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농부가 소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참장도 관직이니, 그대가 알아서 잘 판결해주도록 하라’고 했다. 이성신이 물러가서 소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도둑은 관아에 고발하지 않았다. 새벽녘이 돼 말을 타고 도성에 돌아왔는데, 창의궁(彰義宮) 문 밖에 동궁이 타는 수레가 준비돼 있었다. 이미 왕세제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잉군은 숙종의 탄신일에 지금의 경기 고양시 서오릉(西五陵) 경내에 있는 명릉에 참배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 숙빈최 씨의 묘소가 있는 양주(楊州) 고령리로 가서 머물렀다. 5일이 지난 후 늦은 밤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도둑을 잡는 현장을 목격하고 소도둑의 딱한 처지를 살펴 관대하게 처리하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연잉군의 마음을 드러낸 일화로, 그가 성군(聖君)이 될 바탕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정조는 이런 영조의 애민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 일이 있은 지 6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이 비를 세운다고 밝혔다. 이 비는 지금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의 창릉천 가에 있다.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일러스트· 이부록

그런데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명릉이나 양주 고령리는 도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연잉군은 5일 동안이나 농가에 머무르다 한밤중에 돌아왔다. 게다가 돌아와 보니 이미 왕세제로 결정되어 있었다. 연잉군이 도성을 떠난 5일 동안 대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종은 집권당인 노론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경종에게 후사가 없자 노론 측에서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연잉군을 왕위 계승자로 정해 두려고 서둘렀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이는 사간원 정언 이정소였다. 그는 연잉군이 고령의 농가에 머물고 있던 경종 1년 8월 20일에 상소를 올려 빨리 후사를 세우자고 청했다. 이정소가 상소를 올린 그날 밤 노론인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등은 경종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늦은 밤에 대신들이 면담을 요청하는 것은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겼을 경우에나 있던 일이다. 그런데 경종은 대신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노론 측 신하들을 만났다.



영의정 김창집 : 성상께서 한창 나이인데도 아직 보위를 이을 자식이 없으셔서, 신은 대신으로서 밤낮없이 걱정해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중대한 일이기에 감히 청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대간이 아뢴 말이 지당하니 누가 감히 다른 의견을 내겠습니까?

판중추부사 조태채 : 송나라 인종(仁宗)은 그리 늦은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두 황자(皇子)를 잃은 뒤에 신하들이 힘써 청하여 후계자를 정했습니다. 지금 대간이 이미 아뢰었으니 오래 끌어서는 안 됩니다. 빨리 처분을 내려주소서.

좌의정 이건명 : 이 일은 일각이라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신들이 깊은 밤중에 면대를 청한 것이니, 전하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속히 후계자를 정하소서.

경종 : 그리 하겠다.

신하들 : “이는 종묘사직의 한없는 복입니다. 〈경종실록 1년 8월 20일〉




노론 측에서는 이정소의 상소가 나오자마자 즉시 이 일을 매듭지으려고 소론 측 신하들을 배제한 채 곧바로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경종은 노론 대신들의 거센 요청에 압도됐는지 즉석에서 승낙했다. 그러나 이 일은 자칫하면 이를 주장한 신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노론 측 신하들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대비인 인원왕후의 허락을 받아달라고 했다. 경종은 노론 대신들의 요구에 따라 대내에 들어갔다가 새벽녘에 신하들을 낙선당으로 불렀다.

마치 한밤중의 기습작전을 보는 듯하다. 질환이 있기는 해도 아직 서른세 살밖에 되지 않은 경종이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몇 시간 만에 왕위 계승자를 정해버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당사자인 연잉군은 왜 5일 동안 도성을 떠나 어머니 산소가 있는 시골에 가 있었을까. 연잉군이 도성 안에 있으면 훗날 이 일에 관련됐다는 혐의를 받을 것을 염려해 미리 몸을 피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구나 연잉군이 6일째 되는 날 동틀 무렵 도성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가 노론 측 신하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사전에 만반의 계획을 세워놓고 거사를 추진했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해 사관은 경종이 후사를 두기 어려워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됐다고 진단하면서,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한 것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날 대신들은 조정에 모여 의논을 꺼내려 하지 않고 교외에 있는 동료 대신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정에 있던 4, 5인의 동료들과 밤중에 임금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광명정대한 일을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엉성하게 처리하였다. 심지어 주상의 뜻은 물어보지도 않고 반드시 대비께서 직접 쓰신 글을 본 뒤에야 봉행하겠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주상께 아뢰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경종실록 1년 8월 20일〉




노론 측 신하들이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를 진행하지 않은 점, 교외에 있던 우의정 조태구를 부르지 않은 점 등을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엉터리 일 처리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론은 절차를 무시하고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을 무리하게 추진했고, 훗날 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신축년(1721, 경종1)과 임인년(1722)에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을 비롯한 노론 인사들이 신임사화를 겪는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고 명분이 정당하더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을 추진하면 훗날 반드시 탈이 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1/2
이규옥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목록 닫기

과정 급할수록 돌아가라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댓글 창 닫기

2017/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