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이색취재

‘길거리 막싸움’에 가장 적합한 무예는?

훅이나 발차기보다 아스팔트 바닥에 메다꽂기가 더 치명적

  • 남훈희|신동아 객원기자 brentnam11@gmail.com

    입력2017-05-11 15: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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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켜 뒹구는 막싸움엔 유도, 레슬링, 씨름이 유리
    •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현존 최강 기술
    피와 땀과 살이 튀는 격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이에 따라 다양한 격투기술이 발전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판크라티온부터 이소룡(Bruce Lee)의 절권도까지 세상에는 일일이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종류의 격투기가 있다.

    ‘한국 최고 싸움꾼 시라소니와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길거리 막싸움(닥치는 대로 하는 싸움)에 가장 적합한 격투기 내지 무예는 무엇일까. 다소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남자라면 한 번쯤 품었을 질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문명화해 사회생활에서 육체적 폭력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폭력에 노출됐을 때 어떤 무술을 사용해야 상대를 제압하고 나의 생명과 신체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깡다구’ 같은 심리기제는 배제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태권도, 유도, 복싱, 레슬링, 씨름, 브라질리언 주짓수 같은 격투기 가운데 어떤 것이 실전 싸움에 특화됐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절권도, 러시아의 시스테마, 이스라엘의 크라브 마가, 브라질의 카포에라, 필리핀의 칼리 아르니스처럼 국내에서 아직 대중화하지 않은 격투기는 제외했다. 또한 칼이나 쇠파이프 같은 흉기 사용도 취재 대상에서 뺐다. 

    먼저 서울 시내 해당 종목들의 대형 도장과 체육관을 찾아가 해당 격투기 권위자들을 인터뷰했다. 근성, 배짱, 깡다구 같은 수치화할 수 없는 심리적 기제와 주관적 의견은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각 격투기의 기술과 실전 싸움의 연관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주위에서 ‘싸움 잘한다’는 평을 듣는 이들이나 특히 조폭과 연관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싸움에 휘말려본 적이 없는 이들 중에서도 이 취재에 흥미를 느끼는 이가 많을 것이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취재는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무술고수의 비법을 담으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막싸움과 관련해 꽤 유용한 정보일 수 있다. 학창 시절 보던 수많은 참고서와 문제집에 공부 잘하는 비법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참고서와 문제집으로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결국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기사는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답은 없을지언정 개인에게 필요한 답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이다. 실전 막싸움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의 비평과 활발한 토론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태권도


    2월 중순 서울 동대문구의 한 태권도 도장을 찾았다. 이 도장의 관장을 맡고 있는 A(37) 씨는 경희대를 나온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태권도계에서는 ‘성골’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A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태권도가 막싸움에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

    “정통 무술로서의 태권도라면 그 어떤 격투기보다 강력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는 아니다.”

    뜻밖이었다. 그 누가 유년기부터 인생을 바쳐온 자신의 무예에 대해 이렇게까지 정직할 수 있을까. 더구나 도장 운영에 자신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말이다. A씨가 말을 이었다.

    “태권도도 격투기다.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선생이 창시한 일본의 극진 가라테처럼 태권도 역시 원래는 전신 공격이 가능한 풀 콘택트(Full Contact)로 시작했다. 태권도 단체는 WTF(세계태권도연맹)과 ITF(국제태권도연맹)로 나뉘는데, 대한민국 국기이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쪽은 WTF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동네마다 하나씩은 보이는 태권도 도장은 WTF 소속이다. WTF는 ‘북한 태권도’로 알려진 ITF와 분리된 후 안전상의 이유로 주먹이나 팔을 이용한 안면 공격을 금지했다. 그리고 세계화라는 명분 아래 생활체육 형태를 띠면서 가슴 호구와 헤드기어 착용 규칙을 도입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지시사항을 모두 수용하면서 고유의 파괴력은 사라졌다.” 

    안면 공격 금지 외에 A씨가 꼽은 태권도의 기술적 문제는 날아오는 주먹과 팔꿈치 공격에 대한 안면 방어 연습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태권도는 허리 이상으로 올라오는 하이킥을 방어하지만, 이마저 스텝으로 피하거나 복싱에서 클린치하듯 붙는 방식이다. 



    “타격력 크다”

    A씨는 “태권도의 기술 자체는 다양하다. 하지만 실제로 경기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주로 발기술이다. 정권 지르기같이 품새 형태로 존재하는 주먹과 팔꿈치 기술은 경기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데 실전 싸움에서야 더 말할 게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태권도 황제로 추앙받는 이준구 선생은 “발은 손보다 느리다. 주먹이 발보다 실전에서 더 효과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태권도협회에도 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태권도계가 안위만 좇으며 변화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러나 태권도는 많은 장점을 지닌다. A씨는 “태권도의 발차기에는 어떤 격투기에도 없는 예술적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타격력도 상당히 크다. 양다리를 앞뒤로 뻗는 동작을 반복하면 몸이 유연해지고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다. 특히 대퇴부, 무릎관절, 발목관절, 인대가 순차적으로 강화돼 전체 근육 중 70% 이상이 분포된 하체가 튼실해진다”고 설명했다.



    유도


    기자는 인천에 위치한 한 유도 도장을 찾았다. 관장인 B(42) 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국가대표를 지냈다. 다만 B씨는 국내 유도계를 휘어잡는 용인대 출신이 아니어서 태극 마크를 단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고 한다. B씨가 생각하는 유도의 실전성은 어떨까. 
     
    “몸통이든 옷깃이든 유도 선수에게 한번 잡히면 끝장이라고 보면 된다. 유도 선수 출신들이 종합격투기에 나가 처참히 패하면서 ‘유도 별것 아니네’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스포츠가 아닌 실전 싸움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도 기술로 상대를 아스팔트 바닥 에 메다꽂으면 나의 힘, 상대의 체중, 눈 깜짝할 새 넘어가는 속도가 순식간에 융합되어 엄청난 충격을 준다. 상대가 즉사(卽死)할 수도 있다.”

    B씨의 말대로 유도는 기술이 들어가면 말 그대로 찰나에 승부가 결정 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도에 입문해 제일 먼저 익히는 것이 낙법이다. 메치기를 당했을 때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또한 서로 아무런 기술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도 방어 차원에서 전신에 힘을 유지하면서 무게 중심을 단단히 해야 한다. 튼실한 근력과 지구력이 요구된다.



    “메다꽂히면 상황 종료”

    사람들은 액션영화 속 싸움과 현실의 막싸움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B씨는 “액션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상대방에 의해 길바닥에 패대기쳐져도 이내 일어난다. 그러나 실전 싸움에선 한번 메다꽂히면 그걸로 상황 종료다. 육체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는 상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가노 지고로가 창설한 유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도는 원래 주먹과 발차기를 포함하는 실전성이 높은 격투기였다. 가노 지고로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유도는 지금의 태권도가 그렇듯 스포츠 형태로 변모해나갔다. B씨는 “버티면 무릎이 박살 나고 안 버티면 뒤통수가 깨지는 가위치기 같은 기술들은 봉인돼 있다. 이런 기술들을 활용한다면 상대방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최근 각광받는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유도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도 유술에서 파생됐다. 가노 지고로의 제자인 마에다 미쓰요가 브라질로 이주해 전수한 것이 지금의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됐다. 유도와 주짓수는 유술이라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인 셈인데 주짓수는 유도와 달리 유술의 잔인한 공격 기술들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

    끝으로 B씨는 “실전 싸움에서 유도의 강점은 상대의 중심을 흩뜨리는 역학 원리에서 나온다. 유도를 익히면 거리에서 누구와 대적해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싱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복싱 체육관.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을 지낸 C씨가 관장으로 있는 곳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C씨는 자리에 없어 대신 이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근무하는 D(35) 씨를 인터뷰했다. D씨는 복싱이 실전 싸움에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복싱은 모든 격투기의 기본이다. 스트레이트, 잽, 어퍼컷, 훅이라는 네 가지 기술로만 구성돼 있어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그러나 직선적이어서 실전에서 활용가치는 매우 높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고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상대방이 ‘너 죽고 나 죽자’며 막무가내로 폭력을 행사하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복싱만큼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없다.”

    복싱은 경기 중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종목이다. 다른 격투기와 달리 복싱은 대부분의 공격이 안면에 집중되는 특성 때문이다. D씨는 “스파링 한 번을 하더라도 반드시 관장이나 사범의 감독하에 해야 하고 안전장비를 철저히 착용해야 한다. 그만큼 복싱기술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타격력이 크다”고 말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의 실전 싸움 영상들을 보면 복싱을 익힌 사람이 상대방을 농락하는 장면이 많다. 이렇게 복싱이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는 막싸움의 특성에도 기원한다. 막싸움에서 어설프게 발차기를 시도했다가는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사람이 가장 다루기 쉬운 신체 부위가 두 주먹이다. 여타 격투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태권도 유단자가 실전 싸움에서 상대방을 돌려차기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할까. 유도 유단자가 실전 싸움에서 상대방에게 업어치기 기술을 거는 게 용이할까. 실전 싸움에서는 복싱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다섯 번 맞짱 모두 이겨”

    서울 성북구 S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복싱 체육관 관원 김모(17) 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소위 일진이 시키는 ‘빵셔틀’ 등 갖가지 심부름을 도맡았다.  시험 시간엔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게 답안지도 보여줘야 했다. 다니던 J중학교는 물론 인근 G중학교, Y중학교, S대부속중학교에도 김군이 ‘호구’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다. J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김군은 통학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아는 이가 없는 고등학교로 배정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김군은 집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S고등학교에 배정됐다.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가득한 S고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그는 살길을 도모했다. 복싱을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군은 “한 학기 동안 다섯 번 맞짱을 떠서 모두 이겼다. 그러자 나에 대한 괴롭힘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전 싸움에서는 무엇보다 간결하고 빠른 동작이 중요한데 복싱은 여기에 강점이 있다고 한다. D씨는 “화려해 보이는 큰 동작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지난해 만 44세 나이로 링에 복귀한 전 WBA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최용수는 “복싱은 다이어트에도 제일 탁월한 운동이다. 요요 현상도 오지 않을 뿐 아니라 굶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D씨도 “운동을 시작하면 몸이 즉각 변한다”고 했다.



    레슬링


    다음은 서울 모처에 있는 고등학교 레슬링부를 방문했다. 여타 격투기와 달리 레슬링만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체육관을 찾기 어려웠다. 부득이하게 레슬링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찾은 이유다. 한국체육대 출신으로, 과거 레슬링 국가대표를 지낸 해당 고교 감독 E(37) 씨가 기자를 맞이했다.

    E씨에게 다짜고짜 레슬링의 실전성에 대해 묻자, 그는 기자의 손을 자신의 귀로 가져갔다. “내 귀를 한번 만져보라. 마치 만두처럼 찌그러지지 않았나?” 실제로 그의 양 귓바퀴는 뭉개져 만두처럼 보였다.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다 아는 이야기인데, 시비가 붙더라도 상대가 ‘만두 귀’를 하고 있으면 무조건 피하라는 말이 있다.”



    “만두 귀와 시비 붙지 말라”

    그렇다면 레슬링이 여타 격투기와 차별되는 실전 싸움에서 갖는 강점은 무엇일까. E씨에 따르면, 레슬링은 서로가 맞잡은 상태에서 힘을 폭발시켜야 하므로 강한 수준의 근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훈련 매뉴얼에 사람을 들쳐 메고 뛰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 예사로 포함된다. 심지어 그 상태로 산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운동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모인 태릉선수촌에서 체력 테스트 삼아 불암산 달리기(편도 4.5km) 시합이 열린다. 이 시합의 역대 기록에서 1위는 레슬링 선수 아니면 복싱 선수다.” (E씨)

    레슬링은 육상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운동이다. 레슬링의 흔적은 지구 어디를 가더라도 발견된다. 러시아의 삼보, 일본의 스모, 우리나라의 씨름 등 각 문화권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현되어왔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역시 레슬링이라고 한다. 

    고대 올림픽의 5종 경기 중 하나로 치러졌고 제1회 근대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레슬링은 현재 UFC를 위시한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필수과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타격 계열 격투기를 주 종목으로 갖고 있더라도 레슬링을 장착하지 않은 순수 스트라이커는 종합격투기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점은 레슬링의 실전적 효용성을 보여준다. E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 시절 들은 이야기인데, 태릉선수촌 인근을 무대로 활동하던 건달들이 한번은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을 희롱했다. 이를 응징하고자 나선 태권도 선수들이 패했고 다음으로 유도 선수들도 패했다. 유도 선수들은 건달들이 상의를 벗고 나온 탓에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선 레슬링 선수들이 응징에 성공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씨름


    서울 강북구의 고등학교 씨름부를 방문했다.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씨름도 서울시내에서 전문으로 지도하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인제대 출신으로 프로씨름 선수로 활동한 해당 고등학교 씨름부의 감독 F(41) 씨는 “씨름에 관심과 애정을 지닌 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기자를 반겼다. F씨에게 씨름이 실전 싸움에 효과적인지 물었다.

    “씨름이 지닌 강점은 신체 밸런스를 극강으로 유지하는 데에 있다. 누구든지 씨름을 익히면 실전 싸움에서 어지간한 수준의 외부 타격으로는 자빠지지 않는다.”



    실전의 황제가 강력 추천

    씨름은 타격 기능이 결여된 특성상 단순한 힘 싸움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상대방을 바닥으로 눕혀버리는 테이크다운(Take-down) 측면에서만큼은 세계 제일의 격투기라 할 수 있다. 씨름엔 ‘무릎 위 아무 곳이라도 먼저 닿는 자가 패한다’는 단순한 규칙이 적용된다. 밸런스 유지 측면에서 단연 최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심을 잡기 어려운 모래판에 맨발로 선 채 상대방의 손이 샅바 안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공격과 방어를 유기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수준 높은 밸런스 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전 싸움이 일대일이 아닌 다대일의 형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간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커다란 이점이다.

    맨손싸움의 1인자, 실전의 황제로 불리는 조창조 씨는 모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진 싸움 실력의 근본이 씨름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복싱, 유도, 씨름, 태권도를 했다. 해당 종목들의 약점을 모두 간파했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복싱하는 사람은 유도로, 유도하는 사람은 씨름으로 무너뜨렸다. 실전에서 가장 덕을 본 건 씨름이다. 실전 싸움에서는 붙잡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게 다반사인데, 씨름은 몸의 중심을 잡는 데 최고다. 유도는 상체를 세우지만 씨름은 구부리지 않나. 중심이 딱 잡히고 자세가 안정된다. 나는 다양한 인물과 수없이 붙어보았지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조씨)

    F씨는 “흔히 씨름 하면 거구의 장사들이 연상되지만 여타 격투기보다 근육이 골고루 발달된다. 씨름 선수는 발도 빠르고 점프력도 좋다. 현역 시절 120kg이던 강호동도 100m를 12초대에 끊었다. 씨름은 힘을 짧게 쓰고 짧게 끝나는 스타일이라 실전 싸움에서의 순간적인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브라질리언 주짓수


    마지막으로 서울 마포구에 있는 브라질리언 주짓수 도장을 찾았다. 낮 시간임에도 많은 수련생이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도장의 사범인 G(35) 씨는 동아대 출신으로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다 운동을 접은 후 평범한 직장에 다녔다. 그러다 10여 년 전 주짓수가 우리나라에 처음 보급되던 시절 주짓수의 매력에 반해 전업 주짓수 사범이 됐다고 한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존 프랭클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파됐다. 종합격투기의 인기 상승에 힘입어 20~30대 주짓수 수련 인구가 크게 느는 추세다. 특히 주짓수는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인기가 높다. “여자가 남자와 싸워 이기게 해주는 유일한 격투기”라는 소문이 돈 덕분이라고 한다. 

    제1금융권인 H은행의 서울 성북지점에 재직 중인 박모(여·28) 씨는 지난해 연말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불쾌한 경험을 했다. 번화가에서 호스트바의 ‘삐끼’에게 붙들려 계속 옥신각신한 데다, 만원 버스 안에서 차량이 정차할 때마다 자신의 엉덩이를 뒤에서 쓰다듬는 남자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씨는 늘 앉아서 근무하는 은행 업무의 특성상 입사 3년 만에 체중이 10kg이나 불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불쾌한 경험까지 하자 바로 집 근처 주짓수 체육관에 등록했다고 한다. 박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는데, 정말 재미있다. 살이 많이 빠졌다. 남자와 싸워서 밀리지 않을 때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도 남자 이겨”

    기자가 G씨에게 실전 싸움에서 주짓수가 지닌 효과를 묻기가 무섭게 G씨는 청산유수로 답변했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일본의 유술에서 파생된 것으로 오로지 실전 격투에 특화된 격투기다. 주짓수에는 실전에 필요치 않은 군더더기가 없다. 순도 100% 그 자체다. 실전 격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뒤 목을 조르거나 팔다리 관절을 꺾어 상대방을 제압하게 한다.” 브라질의 치안은 불안하다. 이 나라에선 포르투갈어로 ‘모든 것이 유효하다’는 의미의 무규칙 격투기인 ‘발레 투도(Vale Tudo)’가 버젓이 성행한다. 이런 브라질의 험한 토양에서 자라난 주짓수의 기술체계는 맨손 격투로 상대방을 항거 불능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돼왔다고 한다. 

    G씨는 “주짓수와 유도의 다른 점은 승부다. 메치기 한판으로 경기가 종료되는 유도와 달리 주짓수는 상대의 항복을 받기 전까지는 격투가 종료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캐나다의 유명 주짓수 코치인 피라스 자하비는 “일반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싸움은 예외 없이 길바닥을 향하게 돼 있다. 그러니 모든 격투기 호신술의 핵심은 주짓수”라고 말한다. 한국인 1호 UFC 파이터인 김동현도 “주짓수를 활용하면 힘이 약한 사람도 센 사람을 이길 수 있다. 여자도 남자를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승급을 남발하는 일부 격투기와 다르게, 주짓수는 입문에서 검은 띠를 획득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기본 10년이다. 이에 따라 띠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고 실력이 상대적으로 고르다고 한다. G씨는 “다른 격투기에서는 해당 종목을 대표하는 협회 내지 연맹이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다. 하지만 주짓수에선 사제 관계를 바탕으로 승급이 이뤄진다. 소속에 따라 파벌이 나뉜다. 이런 점만 빼면 주짓수는 단연 최고의 격투기”라고 했다.



    “체력 없인 안 통해”

    전문가의 견해는 어떨까. 최희동 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격투기는 체력, 기술, 전술, 정신력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체력이 장착되어 있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실전 싸움에는 아무래도 유도, 레슬링, 씨름, 주짓수같이 메치고 조르고 꺾는 계열의 격투기가 조금 더 유리하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여성에겐 어떤 기술이 적합할까. 최 교수는 “눈 찌르기, 목 치기, 낭심 차기, 혹은 정강이 차기로 선제공격한 뒤 상대방이 통증을 회복하기 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현실적으로 최상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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