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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韓中 5000년

행성<行星> 거느린 항성<恒星> 고구려 132만 수나라 대군 무찌르다

  • 백범흠|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행성<行星> 거느린 항성<恒星> 고구려 132만 수나라 대군 무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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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나라 육군은 을지문덕에게, 해군은 영양왕의 동생 고건무에게 대패했다.
  • 고구려 정벌 실패로 수나라는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가족 배경이 알려지지
  • 않았다’고 적힌 을지문덕은 어느 종족 출신일까. 선비계일까, 퉁구스계일까.
행성 거느린 항성 고구려 132만 수나라 대군 무찌르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 고구려 개마무사 벽화 모사도.[국립중앙박물관]

선비족 우문태(宇文泰)가 세운 북주(北周)는 삼국시대 위(魏)와 비슷한 형태로 멸망했다. 우문태는 정치·행정·군사적 재능을 포함한 여러 측면에서 조조(曹操)를 닮았다. 위나라가 권신 사마씨(氏) 일가에게 나라를 빼앗겼듯 북주도 권신 양견(양견은 동한 재상 양진의 후예라면서 보륙여씨에서 양씨로 성을 바꿨다) 일가에 의해 나라를 잃었다. 위나라가 촉나라를 멸했듯 북주도 북제를 멸했으며 위나라를 대체한 서진(西晉)이 강남의 오(吳)를 멸하고 중국을 일시적으로 통일한 것과 마찬가지로 북주를 대체한 수(隋)도 강남의 진(陳)을 멸해 중국을 통일했다. 서진이 30여 년 만에 멸망했듯 수나라도 30여 년 만에 멸망했다. 그만큼 위-서진과 북주-수는 유사한 점이 많다. 위-서진이 한족 왕조인 반면 북주-수는 선비족 왕조라는 점은 다르다. 

30대에 요절한 화북 통일의 영웅 무제 우문옹을 계승한 선제 우문윤은 폭군이었다. 580년 우문윤이 22세에 급서하자 양견은 외손자인 유소년 황제 우문천을 대신해 실권을 장악했다. 유방(劉昉)을 포함한 관중(陝西·산시)의 한족 호족(豪族)들이 우문윤의 유조(遺詔)라고 속이고 양견을 승상으로 밀어 올렸다. 양견이 반대파 숙청을 시작하자 황실 우문씨의 인척인 울지형(尉遲逈)이 북제의 수도이던 업(鄴)에서 봉기했다. 후베이 총관 사마소난(司馬消難)과 쓰촨 총관 왕겸(王謙) 등 유력자가 동조해 한때 국가의 절반이 울지형에게 복속됐다.

맹수의 등에 올라타다

양견은 위효관을 기용해 봉기군을 제압했다. 울지형은 580년 9월 토벌군에 패해 자결했다. 봉기를 평정하자 양견의 아내 독고씨(獨孤氏)는 양견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라고 종용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바, 이미 맹수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여기서 내릴 수 없습니다(大事已然, 騎獸之勢, 必不得下).” 여기에서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이 나왔다. 양견은 그해 12월 수왕(隨王)에 책봉됐으며 이듬해(581년) 제위에 올랐다. 그는 수(隨)에서 급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착(辶)’을 빼고, 새로 만든 글자 수(隋)를 국호로 정했다.

양견은 우문천을 포함한 우문씨 일족을 이 잡듯 뒤져 모조리 죽였다. 우문씨는 인맥과 혼맥이 중첩된 무천진 군벌의 핵심이었다. 무천진 출신으로 북주 황실과 인척 관계인 대신, 장군이 많았다. 양견 일족은 무천진 출신 주국(柱國)과 대장군 집단으로부터 고립됐다. 훗날 당고조(唐高祖)가 되는 이연(李淵)의 처 두씨(竇氏)는 어릴 적 외삼촌인 무제 우문옹에 의해 양육됐는데, 문제가 우문씨 황족을 학살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자로 태어나 우문씨 집안을 구해주지 못해 한스럽다”고 통곡했다.

양견은 무천진 집단을 대신할 지지 세력을 만들고자 과거제도를 도입해 군벌의 약화, 황권의 강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는 율(형법)·령(행정법)·격(행정명령)·식(시행세칙)을 다듬었으며, 균전제에 기초한 부병제, 조·용·조(租庸調)라는 세(稅)·역(役) 체계, 지방행정 체계도 발전시켰다.

양견의 개혁으로 재정이 풍족해졌으며 군사력은 더욱 강해졌다. 양견은 585년경 돌궐을 신종(臣從·신하로서 따라 좇음)시켰으며, 587년 창강 중류 장링(江陵)을 수도로 하는 위성국 후량(後梁)을 병합했다. 588년에는 훗날 양제로 즉위하는 둘째 아들 양광(楊廣)과 대장군 양소(楊素)에게 52만 대군을 줘 진나라를 정벌케 했다. 589년 수나라군은 큰 저항 없이 진나라의 수도 건강(南京·난징)에 입성했다. 이로써 183년 황건군의 봉기로 분열된 지 무려 400년 만에 중국이 다시 완전히 통일됐다. 양견은 597년 장군 사만세(史萬歲)를 윈난(雲南·남만)에 파견해 찬씨(爨氏) 왕국을 토멸했다.

북주가 수나라로 대체될 무렵 동·서 돌궐 간 갈등이 격화했다. 부민 가한의 동생 이스테미(室點密)를 계승한 서돌궐의 타르두 야브구(가한 다음의 제2인자를 뜻한다)는 동돌궐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외몽골 오르콘 강 유역을 근거로 하던 동돌궐과 키르기스의 탈라스 강 유역에 자리 잡은 서돌궐 사이의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했다.

행성 거느린 항성 고구려 132만 수나라 대군 무찌르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의 2017년 12월.[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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