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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새 연재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제국에 비끼는 노을 - '돌아가는 노래'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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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곡(遁走曲) 80년대

1.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났는데          (馬上逢寒食)
돌아가는 길 벌써 늦은 봄이네.     (途中屬暮春)
옛 강나루 애틋이 바라봄이여       (可憐江浦望)
낙수다리 위에 아는 이 안 보이네. (不見洛橋人)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버스가 추풍령 자락을 오르기 시작한 무렵부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래된 한시 한 구절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어렵사리 한 연(聯)을 어울러놓고 시제를 떠올려보니 ‘당음(唐音)’ 첫머리에 나오는 ‘도중한식(途中寒食)’이란 오언율시였다. 그러나 옛날의 ‘당음’에는 첫 연 네 구만 나와 그걸 오언절구로만 알고 있는 이도 있다. 떠돌다 겨울 나고 말 등 위에서 한식을 만났는데, 이제 봄도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저 건너 정든 고향 강나루를 애틋하게 바라보니, 낙수(洛水) 다리 위에는 아는 얼굴 보이지 않네. 좀 더 정감 있게 풀이하면 대강 그런 귀향 모티프의 영회시(詠懷詩) 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읊조려놓고 보니 계절이 좀 엉뚱스러웠다. 양력이긴 해도 벌써 7월로 접어들었는데 무슨 한식(寒食)에 또 봄 타령인가, 그는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눈길을 돌려 시원스럽게 낸 통유리 차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계절을 확인하듯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리 저리 찬찬히 살피다 보니 창밖의 계절도 꼭 여름만을 펼쳐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짙고 무성해진 고속도로 양편의 계곡과 들판이며 가까운 산의 초목들은 어김없이 7월 초순의 신록을 펼쳐 보였지만, 그것들이 뿜어내는 생명력과 그 위로 떠도는 무슨 아지랑이 같은 옅은 후광은 아직 다하지 않은 봄기운 같은 걸 느끼게 했다. 두꺼운 방음 유리 속 연푸른 필터를 투과한 빛의 굴절이 그와 같은 느낌의 변화를 준 게 아닌가 싶었다. 너무 일찍 켠 고속버스의 에어컨도 그의 때늦은 봄 느낌에 한 원인이 된 듯했다. 그날 오후에 서울에서 있을 신문사 인터뷰를 의식해 차려입은 여름 정장에 약간 세게 튼 버스 안의 에어컨 바람이 파고들어, 이른 봄 날씨의 찬 기운 같은 느낌으로 그의 계절감각을 뒤틀어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창밖은 눈여겨볼수록 달라져 차츰 그의 느낌도 짙은 신록과 더불어 이미 다가든 초여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한 군데 도로변 야산의 밤나무 등성이는 허옇게 덮어쓴 밤꽃으로 나른하면서도 애매한 고혹의 분위기를 자아냈고, 흔히 외설스러운 느낌으로 규정되는 그 비릿하고 알싸한 향기마저 두꺼운 차창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한 듯, 어릴 적 그런 밤나무골을 지날 때의 야릇한 긴장과 흥분을 되살려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당음’ 첫머리에서는 절구(絶句)처럼 보이는 그 시가 원래는 율시(律詩)였다는 걸 나중에 알고 초당(初唐)의 시편 사이에서 어렵게 찾아내 이어둔 그다음 연에 이르자, 그는 문득 기억에 자신이 없어졌다. 첫 연에 덧붙여 외운 그 네 구절 가운데 특히 애절한 구절이 하나 있었다는 느낌까지는 겨우 되살려냈지만, 당장 첫 연에 이어서 욀 수 있는 것은 한 구절도 없었다.

나중에 따로 외워서 그런가, 두어 해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하며 가망 없는 기억을 되살리다가 끝내 포기하게 되면서 슬그머니 그의 기억은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만 해도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인기 없던 당시(唐詩)를 머릿속에 우겨넣듯 외우는 것으로, 바깥세상과 이어진 어두운 상념을 털어내던 막막한 늙은 사병 시절을 공연히 심란해하며 더듬어보았다.

사법시험을 핑계 삼아 몇 년 잡학과 몽상으로 객기를 부리며 떠돌던 그가 또래보다 네댓 해 늦어 입대한 그해 유월쯤의 일이었다.
 이 교육 저 훈련 거쳐 군번 받은 지 100일이 넘어서야 자대(自隊) 배치를 받은 첫날, 지급받은 관물로 불룩한 더플 백을 메고 본부중대 내무반을 찾아가니, 벌써 예비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역신고를 기다리는 까마득한 선임사병 둘이 있었다.

텅 빈 내무반에서 무료한 잡담을 나누던 그들은 이제 갓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온 신병을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떠나는 고참병으로서 마지막 큰 선심이나 쓰듯 병영생활을 잘 넘길 수 있는 몇 가지 요령을 일러주고 자상한 충고와 격려까지 보태었다. 그리고 ‘어렵겠지만 잘 견뎌봐’ 하며 힘든 곳에 어린 아우를 두고 떠나는 형들처럼 애처로워하는 표정으로 등까지 도닥거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모두 그보다 두어 살 어렸다. 같은 농촌 출신인 그 둘은 월남전이나 한번 구경해볼까 하고 첫 번째 입영 명령을 받자마자 군대로 달려왔지만, 이미 월남 파병이 중단되어 이 나라 전방 야포대에서 통신가설이나 하며 3년을 보내다가, 그때는 제대 출발을 한 시간가량 앞두고 있었다.

그 무렵으로 봐서는 그리 이른 결혼이 아니었지만, 그러잖아도 늦어 어설픈 그의 입대는 그 결혼 때문에 더욱 어설프고 막막해졌다. 하지만 결혼과 병역의무 이행을 그들이 당면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은 그들 신혼부부는 결혼에서 그의 입대까지 몇 달 동안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이겨내야 할 그 3년의 엄혹한 시련에 나름의 대책을 궁리했다. 대개는 어수선한 신혼의 밤잠을 설쳐가며 마련한 그 대책 가운데 몇 가지는 암담했던 복무기간 3년뿐만 아니라 뒷날의 삶에도 아주 유익하고 요긴하게 쓰였다.

그가 입대한 첫해 여름에 큰아이를 낳은 아내는 자대 배치를 받아 그의 군사우편 주소가 확정되면서부터 두 주에 한 번꼴로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 문고판 ‘한한(漢韓) 대역 당시(唐詩) 삼백 수’를 몇 장씩 뜯어내 함께 넣었다. 아마도 입대 전에 약속이 있어서였겠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그는 일등병 시절의 지루한 교육훈련이나 시답잖은 사역 시간 내내 그 한시 구절들을 무슨 주문처럼 외우면서 자칫 무료한 자투리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가 상병 시절 초기 통신기재병 직책을 맡아 전방 포병대대 통신장비 창고 한 모퉁이에 자신의 서류함과 책상을 가지게 되면서 당시 외우기는 끝이 났다. 아내의 편지에 마지막으로 동봉된 페이지 숫자로 그때까지 외운 것을 대강 헤아려보니 절구 율시 합쳐 한 200수 남짓했다. 그때만 해도 사병 복무기간이 3년6개월에서 하루도 에누리없이 채워져야 했던 시절이라, 따져보면 거의 한 해 꼬박을 그는 하루 한 편의 당시를 외우면서 때운 셈이 되었다. 좀 전 그가 떠올린 ‘도중한식’도 그때 외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밖에 그때 이후로 그가 특별하게 고전문 독해(讀解)에 전념한 적이 없음에도, 제대로 된 옥편(玉篇) 있고, 시골 정자 현판 초서나 소전 대전 벽자(僻字)가 아닌 글씨에, 띄어쓰기나 방점 웬만큼 되어 있는 고전한문이면, 아무 글이나 겁 안 내고 읽어보겠다고 덤벼들 수 있게 된 것 또한 그때 외운 ‘당시 삼백 수’에 힘입은 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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