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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황장엽’ 北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서울에서 타계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얼굴 없는 황장엽’ 北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서울에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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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北외교관은 태영호 외 5人

‘얼굴 없는 황장엽’ 北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서울에서 타계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김성남 기자]

황장엽 전 비서 망명 이후 한국에 들어온 북한 출신 인사 중 직위가 가장 높다고 할 수는 있으나 북한에서 그가 최고위직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황 전 비서는 북한에서 정치국 위원을 지냈다. 정치국 후보위원은 돼야 북한에서 최고위직으로 대접받는다. 한국에 망명한 인사 중 후보위원 이상을 지낸 이는 황 전 비서가 유일하다. ‘얼굴 없는 황장엽’이라는 표현도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언론이 망명 인사들에게 ‘최고위급’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면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한국에 대거 들어와 있다는 오해가 생기게 한 측면이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을 비롯해 북한군 장성이나 당중앙위원회 부부장급 인사가 황장엽 전 비서 망명 이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경우는 없다. 

2016년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정호 씨를 두고 언론은 ‘김정은의 금고지기’ ‘부부장급’ ‘최고위급 탈북민’이라는 수식을 붙였으나 그 역시 최고위급은 아니다. 39호실이 김정은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39호실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이정호 씨의 마지막 직함은 노동당 39호실 산하 중국 다롄 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장에 빗댈 수도 있는 직위지만 한국으로 망명한 이들 중에서는 북한 외교관들과 함께 한 손에 꼽힐 만큼 고위직에 속한다.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외교관 출신 인사는 5명으로 확인된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태영호 씨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적을 둔 전직 북한 외교관이 4명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공개된 망명 외교관으로는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현성일(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씨, 비공개 인사로는 K, H씨가 있다. 태 전 공사는 K씨를 보고는 “여기 와 있었습니까” 하면서 놀랐다고 한다. 

장제스 군대 출신의 조종사

‘얼굴 없는 황장엽’으로 일컬어져온 생전의 그를 여러 차례 만났다. 북한 군수산업과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면서 견해를 듣고자 이따금 통화도 했다. 그가 들려준 가족사(史)는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 조종사 출신의 선친이 대한민국 공군 창설 멤버 중 한 명이다. 장택상 전 국무총리의 외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한 부친 덕분에 김구, 김규식 선생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 인사는 “가족사와 관련한 그의 얘기는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영무 초대 항공사령관이다. 그는 한국의 지인들에게 “선친은 임시정부에서 일했고 6·25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면서 “선친이 유언으로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해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흐른 후 탈북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년의 그는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선진화와 통일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애썼다고 한다.
 

“효선이 남편이 왔단 말이냐”

‘신동아’ 2006년 1월호에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제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가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을 때 작성된 것으로 망명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게재됐다. 이 기사는 포털의 ‘뉴스’ 카테고리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당시 기사의 도입부를 읽어보자. 

“한국의 초대 외무장관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셋째 딸 장병혜 씨는 2005년 10월 말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젊은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1964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40여 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지만, 그처럼 묘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남자는 ‘당신의 조카사위, 그러니까 월북한 당신 언니의 사위가 남한에 왔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효선이 남편이 왔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남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장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직 성인이 되기 전에 헤어진 큰언니의 딸, 그러니까 불과 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조카 효선이의 남편이 서울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장씨가 ‘조카는 어디 있나, 그 아이도 함께 탈북했느냐’고 묻자 남자는 ‘그건 아니다. 남편 혼자 내려왔다’고 답했다.

평소 자주 가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은 후 장씨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1970년대 말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사건으로 뒤숭숭하던 무렵 일본에서 생활하던 장씨는 납치 미수를 경험한 적이 있다. 갖가지 걱정이 앞선 장씨는 이런 일에 정통한 지인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결국 나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전화를 걸어 온 남자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장씨는 약속 장소에 아들을 내보냈다. 아들에게도 이들과 접촉하지는 말고 먼발치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오는지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은 ‘젊은 남자와 노인 한 명이 와서 한참을 기다리다 가더라’고 전했다. 노인은 큰 키에 서울말씨를 썼다고 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노인이 이번에 작고한 인물이고, 젊은 남자는 국정원 관계자다. 고인이 정보당국의 힘을 빌려 한국의 핏줄을 찾은 것이다. 

장씨는 ‘신동아’에 “언니 가족이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10년 동안 극도의 분노를 겨우겨우 억누르며 살아왔다”면서 “설령 그가 조카사위라고 해도, 자신이 망명을 택하는 순간 아내와 자식은 엄청난 고초를 겪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만날 이유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6월 2일 그가 타계한 후 장병혜(1932년생) 씨의 미국 연락처를 수소문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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