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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권 2년, 우군은 떠나고 갈길은 멀고

  • 김만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정치학 박사

DJ정권 2년, 우군은 떠나고 갈길은 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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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현실적 대책 없이 지역주의에 끌려다니고 청와대와 집권당을 무기력한 과도적 존재로 격하시켜버린 DJ의 국정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 정당성과 명분을 기치로 한 정권주체세력을 강화하려면 불투명성과 무원칙을 버리고 비판세력의 여론을 수렴, 우군화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한국의 선거정치 50년 만의 정권교체’ ‘호남고립의 한국정치 구조에서 호남 기반의 대통령 탄생’ ‘3전 4기의 당선’ 등 숱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등장했던 김대중 정부의 집권 2년이 지났다. IMF 구제금융 체제를 안고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으로부터 경제 회복에 이르기까지 각단계의 경제적 고비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헤쳐나왔다. 한국의 대통령이 국제 외교무대를 주도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일정한 실리도 거두었다. 또 일관된 햇볕정책과 주요 국가들과의 공조관계를 바탕으로 대북관계도 실질적인 개선 징후가 보이고 있다. 그 덕인지 몰라도 금강산 관광도 이루어지고 있고 북한 농구선수들이 서울에 와서 농구경기를 하고 기예단이 남한 관중의 갈채 속에 공연하는 등 남북교류가 한결 진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과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정치의 지형과 구조는 아직까지 집권 이전의 양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 폭넓은 국민적 호응을 끌어냈던 집권 초기 김대통령에 대한 지지열기는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싸늘하게 식어버린 느낌이다.

IMF 위기 극복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강했던 집권 초는 말할 것도 없고 집권 2년차가 시작되었던 1999년 2월 말에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85% 내외로 높았다. 정당 지지도 역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12% 정도인 반면, 국민회의는 44% 정도에 이르렀다. 김대통령의 취약지역이었던 영남 지역에서도 국정지지도는 80% 내외였다. 이 지역에서의 정당지지도 역시 국민회의가 야당을 7% 정도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99년 말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에 대한 국정 호응도가 60% 정도로 상대적으로 하락한 가운데, 영남 지역에서는 지지와 반대의 비율이 비슷한 상태에 이르렀다. 정당 지지도는 전체적으로 국민회의가 한나라당에 7.2% 앞선 26%를 나타내고 있으나 영남권에서는 15대 대선과정에서 나타났던 지지구도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이상 ‘소프레스-글로벌 리서치’ 조사자료).

소수세력에 기반한 권력의 위상

집권 초기의 지지자들 중 20% 정도가 이탈한 셈이다. 물론 이들 이탈자들이 야당 지지자로 돌아선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이탈자의 대부분은 최근 50% 내외로 불어난 무당파가 된 것이다. 무당파의 70% 정도는 15대 대선에서 구 집권당이었던 신한국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결국 김 대통령에 대한 전통적 지지계층만이 현재 집권세력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통적 지지계층의 지지 강도와 응집력은 현저히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정권은 집권 이후 정권의 외연확대와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구세력을 영입하려 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외연확대 전략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악화돼온 것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를 표방했던 ‘국민의 정부’가 막상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 정부는 수십년 이상 누적된 한국사회 지배체제의 구조적 유산을 안고 출발했다. 이 구조적 유산은 그 동안 김대중의 집권을 어렵게 했던 요인이기도 했다. 김대중은 호남 고립의 지역주의, 수십년간 구조화된 특정 세력의 총체적인 지배체제 등에 포위돼 왔었다. 15대 대선에서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세력적·지역적·사회계층적으로 소수세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런 구조적 환경은 김대중 정부가 안고 있는 한계인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구조적 환경과 유산을 극복해야만 하는 김대중 정부의 상황이 정권교체와 집권의 필요성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집권하면서 당연히 새로운 정치환경을 맞게 되었다. 정권을 비판하고 반대해온 세력과 정권장악 세력은 그 입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집권세력은 정부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정치환경을 주도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집권은 그에 대한 전통적 지지세력들의 지지동기가 약화될 수도 있었고 동시에 기존의 지지구도를 변화시키면서 새로이 지지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새로운 환경 가운데서 일차적인 것은 정부권력을 제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 시기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권력의 행사가 크게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선, 대통령과 정부의 권력이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자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 근대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한 사회의 각 부문에 대해 정부권력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세력에 기반을 두고 출발했던 김대중 정부의 위상이 집권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론·관료·재계의 상대적 자율성

역대 정권과 함께 반DJ 정서를 주도해왔던 일부 언론권력은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신용비어천가’를 부르더니 얼마 안 지나 이해득실에 대한 전망이 끝나자 다시 반DJ 논조로 회귀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권력은 이미 80년대 후반 이후 정부권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했다. 92년 대선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대통령 출마는 바로 경제권력과 정부권력의 충돌을 보여주었던 사례였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IMF 위기상황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정책을 주도하는 정부권력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경제권력의 구조와 성향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소수파’인 김대중 정부의 성격은 정권과 관료제의 이원화 구조로도 나타났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관료는 정권에 종속되어 있었다. 또 특정 세력이 장기집권해오면서 정권세력과 관료는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 되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권과, 정권의 제도적 수행기구인 관료가 유리된 구조가 된 것이다.

물론 관료는 기본적으로 정권과 무관하게 일정한 제도적 자율성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민주적 체제의 유산으로 관료제의 중립적 제도화도 구축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그 동안의 권위주의 정권처럼 정권이 관료제를 장악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관료제가 중립적 제도화를 구축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김대중 정부의 제도적 환경이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에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덕분에 일정한 집권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부조리 청산이나 개혁이 집권 초기에 시행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더구나 당시 IMF 구제금융 체제에 대한 국민적 위기의식은 정부의 대처방식에 따라서는 기존 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될 수도 있었다. 또한 구집권세력에 집중되었던 국민적인 비판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새 집권세력에게 정당성과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김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외환위기 극복과 기업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한편, 집권 진영의 구축에 들어갔다. 집권 전반기 김대중 정부는 최소한 외환위기 극복과 경제활성화에서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이 경제정책의 성과는 김대중 정부 자신이 주도하는 정치지형의 변화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영남권 지역정서를 이용한 한나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의 정치전략으로 인해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이 다시금 지역감정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정권의 외연확대를 위한 포용전략

정책은 사안에 따라 그 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곧바로 나타날 수도 있다. 때로 중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정부의 정책효과가 다음 정부에 폐해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각되었던 전두환 정부 말기의 경제 상황은 전두환 정부의 경제정책에 힘입은 것이라기보다는 박정희 정부 시기의 중화학공업 투자가 1980년대 후반의 국제경제 환경과 맞물려 효과를 발휘한 경우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김대중 정부의 기업구조조정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면서도 상당 부분 그 효과가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조정이 과연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과 전략으로 수행되는 것이냐의 여부를 떠나 단기적으로는 고통을 수반했다. 그리고 이런 과도기적 고통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우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경제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전반기에 ‘잘한 정책’과 ‘잘못한 정책’으로 모두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구조조정 과정에 사회적 약자들 더 많은 고통을 감내했음에도, 각종 조사결과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상류계층에 비해 하위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전통적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이렇듯 외환위기 상황은 김대중 정부가 기득권 구조의 저항을 약화시키면서 구조적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장은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과 희생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유리한 정치적 환경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집권과정에서부터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과제에 대응해야 했던 상황은 새 정부에 기대했던 새로운 정치의 실현을 뒷전에 밀어놓게 하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의 문제, 정치개혁의 부진 등과 맞물리면서 앞에서 나열했던 여타 부분의 성과를 상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약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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