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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적격 의원’인가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누가 ‘부적격 의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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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참겠다 갈아 엎자! 이미 ‘시민 불복종’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총선 개입’을 선언한 NGO들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결국 오는 4월 총선은 헌정 사상 최초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역사적인 총선이 될 전망이다. 》
우리나라 언론에 NGO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는 10년도 채 안된다. 정부와 대비한 비정부기구 혹은 비정부단체라는 개념으로 유엔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NGO(Non Government Organiza- tion)라는 용어는 10년 전만 해도 생소한 표현이었다.

한국에서는 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창립된 이후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시민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 처음 쓰기 시작했다. 경실련이 출범하기 전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어용단체나 관변단체라고 부른 친정부 단체 아니면 재야단체로 통칭하는 반정부 단체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실련 또한 초기에는 ‘개량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NGO의 역사는 ‘반정부 단체’가 아닌 ‘비정부 단체’의 출현 및 성장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 NGO들이 시민운동 10년 만에 ‘큰 사고’를 쳤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큰 사고’를 칠 기세다. 경실련을 시작으로 500여개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총선시민연대’ 같은 시민세력들이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오는 4월 총선에서의 전면 개입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거의 부정선거 감시운동이나 공명선거 캠페인과는 차원이 다른 ‘낙천-낙선운동’이다. 예전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못참겠다 갈아엎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이런 전면 개입 양상은 헌정 사상 초유의 현상이다. 과거 반정부 재야단체와는 선을 긋고 합법의 공간에서 운동의 틀을 유지해온 시민단체의 상궤를 넘어서는 ‘탈선’이다. 시민단체들의 선거 참여 역사에서 이런 ‘과격한’ 구호는 처음이다. 소극적인 선거 감시에서 적극적인 선거 개입으로, 공명선거운동에서 낙천-낙선운동으로, 포지티브 캠페인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180도 바뀐 것이다. 시민단체 대표자들은 ‘나를 고소하라!’라며 “일단 갈아엎어 놓고 법정에서 심판받겠다”는 시민 불복종 운동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 제1부 -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낙천-낙선운동 ]

정치권에 대한 전면전의 포문은 경실련이 열었다. 경실련은 1월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00년 총선 출마예상자 정보공개운동’의 원칙과 함께 1차 정보공개 대상자 16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합법운동’을 표방하며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지 않은 채 ‘독자노선’을 걷기로 했던 경실련의 이석연 사무총장은 이날 ‘부적격 후보 명단’이 아니라 ‘후보자 정보공개’임을 강조했다. 이석연 총장은 “명단은 특정 인사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된 후보 예상자들을 대상으로 그들과 관련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시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실련이 이날 밝힌 2000년 총선 출마 예상자 정보공개운동의 원칙과 과제는 다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헌법에 보장된 유권자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후보자 정보공개운동’을 전개하여 유권자의 심판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즉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스스로 선택에서 제외해야 할 범주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후보자 정보공개와 동시에 공천 감시운동을 전개하여 부정부패 사건 연루자나 반개혁적 인사, 지역감정 조장자, 선거법 위반자가 공천되거나 출마할 경우 유권자 심판이 가능하도록 인터넷, 통신, 인쇄매체를 통해 공개와 홍보를 계속하겠다”며 정보공개운동이 ‘네거티브 캠페인’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참여민주주의를 봉쇄하는 선거법 87조 폐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형성에 노력한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그동안 선거법 제87조(단체의 선거금지)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이 조항의 폐지를 위하여 일관되게 노력해 왔으며, 지난 98년 5월1일 선거법 제87조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99년 11월25일 선거 과열로 인한 혼탁선거 및 단체 지원으로 인한 후보자 간 기회균등의 불공평 등의 이유로 87조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경실련은 헌재의 합헌 논리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이번 총선 기간에 국민들과 함께 활발한 선거 캠페인으로 87조의 문제점과 부당성을 계속 제기하여 이 조항 폐지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세째, 이번 총선이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불법·탈법 선거운동에 대한 철저한 감시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정당과 후보자의 불법 선거운동 감시는 공명선거가 유지되도록 하여 깨끗한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자 부패 정치인을 낙선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여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강력한 공명선거 감시단을 대중적으로 조직. 가능한 한 모든 선거구에서 감시활동을 전개할 것이며 이와 함께 후보초청 토론회 등 각종 토론회와 후보공약 비교자료집, 정당공약 비교집을 제작하여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뒤흔든 ‘부적격 후보’ 명단

그러나 이날 경실련이 발표한 1차 정보공개 대상 167명(164명으로 수정발표)의 명단은 언론에 ‘부적격 후보’ 명단으로 발표되면서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경실련의 한 실무자는 “시민운동 역사상 정치권이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경실련이 공개한 명단을 소속 정당별로 분류하면 ▲국민회의 50명(30%) ▲자민련 32명(20%) ▲한나라당 66명(40%) ▲무소속 16명(10%)이다. 국민회의-자민련 공동 정권임을 감안하면 여야 비율은 정확히 50 대 50이다. 명단에 포함된 인원은 한나라당이 가장 많으나 의석수 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적은 편이고 자민련이 가장 많이 포함돼 있다. 명단에 포함된 전현직 의원의 비율은 ▲현역의원 123명(75%) ▲전직의원·공직자 41명(25%)이다.

정치권은 시민단체가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거론해 낙선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각론에서는 3당 3색의 양상을 띠었다.

이영일 국민회의 대변인은 논평에서 “시민단체가 선거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자유지만 특정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낙선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인권법, 특별검사제 등 개혁입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선정된 박상천 총무는 “당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 외에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국민회의에 대해 시민단체 낙선운동의 배후 의혹을 제기하자 이영일 대변인은 즉각 추가 논평을 내고 “시민단체 낙선운동에 대한 우리당의 명백한 입장은 시민단체가 선거에 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자유이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차제에 우리 정치권은 시민단체의 개입을 부를 정도로 부패하고, 진실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정당에 몸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시민단체들이 시비할 수 없는 인물을 총선 후보로 내세우라”고 반격했다.

한편 의석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의원들이 거명된 자민련 이양희 대변인은 성명에서 “검찰은 사회적 혼란을 유발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민단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즉각 조사에 착수해 법 위반단체 및 개인들을 단호히 처리함으로써 공명·준법선거 분위기를 확립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국회 행자위원장인 이원범 의원은 “이는 공명선거를 돕기는커녕 그르치는 것으로 정치테러나 마찬가지다”며 명단 공개 이후 열린 행자위에서 “선관위가 시민단체의 위법행위를 방치함으로써 불법선거를 조장해서는 안된다”며 중앙선관위의 ‘개입’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관변단체’의혹

한나라당은 경실련의 명단발표 자체를 부정하는 대변인 성명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사철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부적격 후보 명단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인격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특히 보복·정치사정에 의해 재판에 계류중인 의원을 모두 포함시킨 것은 김대중 정권의 편파·보복사정을 옹호하는 결과가 될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구범회 부대변인은 성명에서 “경실련을 비롯한 이른바 ‘총선시민연대’가 펼치는 ‘총선 낙선운동’의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고 전제하고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임을 자임하면서 언론장악 기도 등 현정권이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지 않았는가. 이제 와서 권력의 앞잡이가 돼 DJ의 정치권 물갈이의 선봉에 서겠다는 것은 시민단체의 생명인 도덕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짓이다”고 시민단체를 강하게 비난했다.

의원 개개인의 반박과 경실련의 ‘저의’를 의심하는 비난 논평도 이어졌다. 특히 언론대책 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폭로’로 명단에 오른 이신범 의원은 경실련의 명단 공개 직후 “경실련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사철 대변인 또한 이의원의 ‘폭로’를 받아 성명을 내고 “경실련의 명단 발표는 객관적 검증 없이 행해진 마녀사냥식 인격 매도 행위”라며 “정부 보조금까지 받은 경실련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치 경실련은 ‘관변단체’이고 경실련의 명단 발표는 정부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실련이 지난해 행정자치부로부터 받은 1억3000만원은 ‘보조금’이 아니라 행자부가 전국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받은 공익 프로젝트(시민 참여사업) 비용이며 다른 120여 시민단체들도 이와 같은 방식의 공익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의원에게는 ‘근거 없는 폭로’라는 부적격 사유가 한 건 더 보태진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놓고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가 공모와 심사라는 투명한 절차를 거쳐 받은 ‘공익프로그램에 대한 추진비용’을 문제삼은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경실련은 1월14일 이에 대한 성명에서 “이를 ‘정부 보조금’으로 왜곡해 발언한 것은 경실련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키려는 악의적 의도에 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이는 경실련의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켜 최근 시민단체들의 총선 캠페인을 계기로 급증하고 있는 시민들의 비난을 모면해 보려는 얄팍한 언행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언행의 반복은 정치권에 대한 급증하는 국민적 불신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두 이의원에게 경고했다.

“정보공개운동은 낙선운동과 다르다”

그런 한편으로 경실련은 명단 공개에 따른 예기치 못한 파문 확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경실련은 1월14일 성명에서 “1월10일 ‘총선 출마 예상자 1차 정보공개’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공개한 ‘유권자 투표 판단자료’가 ‘출마 부적격자 명단’으로, 정보공개 캠페인은 ‘불법적인 낙선운동’으로 언론에 의해 보도됨으로써 경실련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회·정치적 파장이 확대되어 가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자회견에서 공표한 ‘유권자 투표 판단자료’는 결코 ‘출마 부적격자 명단’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고 낙선운동과 선을 그었다.

경실련 관계자는 그 예로 재판에 계류중인 후보자들과 경실련 초기 멤버였던 김홍신 의원을 들었다. 경실련이 ‘출마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려 했다면 재판에 계류중인 후보자에 대해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명단에서 제외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지난 4년 동안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으로부터 의정 활동을 훌륭히 수행한 의원으로 뽑힌 김홍신 의원도 명단에서 빠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김의원은 91년부터 95년까지 경실련의 상임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정보운동의 객관성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는 데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번 ‘판단자료’에 포함한 것이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정보공개운동은 ‘후보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요구하는’ 낙선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운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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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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