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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민간출신 공무원들의 체험적 공무원론

“자율성, 인센티브 없이는 비효율, 무사안일 못깬다”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자율성, 인센티브 없이는 비효율, 무사안일 못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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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팎의 기대를 모으며 공직에 ‘수혈’된 민간 인력들은 어떤 세계를 경험했을까. 그들의 눈에 비친 공무원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98년 5월, 갓 출범한 새 정부의 행정·재정개혁 임무를 맡은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는 민간 출신의 전문인력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대거 발탁, 개혁의 밑그림을 맡겼다. 각계의 추천과 엄정한 심사를 거쳐 대학교수 변호사 회계사 연구원 등 14명의 민간 전문가들이 2∼5급직에 채용됐고, 이들은 ‘정부개혁실’에 소속되어 정부 경영진단과 조직개편, 공기업 민영화, 정부 출연기관 정비 등 핵심적인 개혁작업을 추진했다.

이들의 활동은 두 가지 면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지금껏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다짐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개혁의 칼이 정작 정부 조직을 향하면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개혁의 주체가 곧 개혁의 대상이기도 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행정개혁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 인력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이상 전에 없던 성과를 기대할 만했다. 당시 정부개혁실은 민간 계약직과 일반 공무원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으나 민간 출신들이 공공기획단장과 주요 팀장을 맡아 실무를 이끌었다.

또한 이들은 국가고시 중심의 경직된 공무원 충원시스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됐다. 공무원 주요 보직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개방형 임용제는 공직 사회의 저항과 새 제도 실시에 따른 위험부담 때문에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걸어왔다. 따라서 이들의 성공 여부는 개방형 임용제가 뿌리내리는 데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 전망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다른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별정직으로 채용되어 통상, 외자 유치, 공보 분야 등에서 활동하는 민간 계약직과는 달리 정조직의 의사결정 라인에서 공무원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최초의 계약직이었다. 전문가의 역량뿐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공무원들과 부대끼며 싸우고 설득하고 타협하고 절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자리인만큼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14명중 9명 중도하차

그로부터 2년. 이들의 ‘현주소’는 뜻밖이다. 14명 가운데 9명이 공직을 떠났다. 지난해 5월 전원이 1년간의 연봉 재계약에 동의했지만 그후 서너 달을 더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정부개혁실의 민간 출신 팀장(서기관) 5명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이들이 민간으로 복귀한 데는 물론 개인적인 이유들도 있었다. “적은 보수는 각오하고 들어갔지만, 막상 민간에서 받던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1년 넘게 생계를 꾸려간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거나 “25명 남짓한 인력으로 모든 개혁업무를 챙기다 보니 업무량이 워낙 많아 체력적으로 견뎌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차피 직업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꿀 것도 아닌데, 1년이면 충분한 경험을 쌓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을 근본적으로 좌절케 한 것은 개인의 인내와 노력만으로는 뛰어넘기 어려웠던 높은 ‘벽’이었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 나아가 공직 사회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그 견고한 벽 앞에서 한계와 무력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와 지자체에서 자리를 잡은 민간 전문가 출신 공무원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의 눈에 비친 공무원 사회는 과연 어땠을까.

개혁작업을 주도했던 기획예산처 계약직 공무원들은 정권 초기에만 해도 기세 등등했던 정부의 개혁의지가 불과 몇 달만에 급속하게 퇴색하는 것을 보고 일할 맛을 잃었다고 한다. 정부에 대한 경영진단을 토대로 조직 개편작업에 들어가자 이곳저곳에서 ‘비 새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 당정협의, 장관협의회 등을 거치면서 조직개편 초안은 누더기로 변해갔다. 정부개혁실 행정3, 4팀장과 재정3팀장으로 정부 경영진단과 조직개편을 담당했던 박개성 회계사(34)의 말.

“초안에서 칼을 많이 댔던 곳들이 공교롭게도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 대개 자민련 몫이었어요. 그랬더니 당장 힘을 빼놓더군요. 더욱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던 기획예산위가 예산청과 통합하면서 총리 직속이 됐으니 날개가 꺾일 수밖에요. 그 무렵 진념(陳) 장관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조직개편을 신속히 시행하겠다’고 하자 대통령은 ‘신속한 것도 좋지만, 총리를 중심으로 협의해가며 신중하게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그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관련부처들이 노골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정권의 한계가 드러난 이상 이제 개혁다운 개혁은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여당의 지원도 얻지 못했다. 지원은커녕 그때부터 총선을 들먹이며 이해집단의 반발을 추스르는 데 급급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까놓고 “표 떨어지게 하지 마라”며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이완됐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개혁의 기수를 자처했던 기획예산처가 ‘왕따’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신속’에서 ‘신중’으로

박회계사는 “집권 초기 DJ의 개혁의지는 확고했고,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같다”고 말한다.

“98년 6월 DJ가 국무회의에서 ‘졸속이라도 좋으니 신속하고 과감하게 개혁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어요. 이건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정부 전 부처의 경영진단을 민간에 맡긴 것도 초유의 일인데, 이것도 DJ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던 DJ가 겨우 몇 달이 지나서 ‘총리와 협의해서 신중하게 개혁하라’고 태도를 바꿨어요. 공동정권의 파트너인 JP(김종필 당시 총리)에게 발목을 잡혔다는 얘기죠.”

이런 일도 있었다. 초기 정부개혁실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공기업 민영화 방안 가운데 민영화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됐던 한 공기업에 대해 민영화안 대신 구조조정안만 제시해 놓은 항목이 있었다. 진념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던 DJ는 이 대목에 이르러 세 차례나 보충설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상 ‘당연히 민영화해야 할 기업을 왜 민영화하지 않느냐’는 질책이었다. 이렇듯 개별 기업의 속사정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로 DJ는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정통했다는 것이다.

정부개혁실 개혁기획팀에서 법무부 검찰 경찰 등 주로 ‘힘있는’ 기관의 경영진단을 맡았던 경제연구소 출신 배현기 전 사무관(34)은 “협의 과정에 현상 유지 압력이 거세지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 자치경찰제 같은 핵심 목표가 모두 실종됐다”며 “자민련이 총리실을 압박하고 총리실은 기획예산처를 흔들면서 정부개혁실도 눈에 띄게 침체됐다”고 한다.

이후 개혁기획팀의 업무도 권력기관 개혁에서 공기업과 재정개혁, 생활개혁 등 상대적으로 소프트한 분야로 옮겨갔다. 그나마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은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배씨는 공무원 연금 수급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를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아가는 구조’로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대뜸 간부로부터 “배박사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을 그처럼 가볍게 생각하느냐”고 면박을 당했다.

과감한 개혁 바람을 몰고온 30대 중반 전후의 젊은 민간 인력들은 주변의 직업공무원들로부터 ‘세상 물정을 모른다’ ‘과격하다’ ‘비현실적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부개혁실 관계자는 “개혁은 명분만 갖고 하는 게 아니다”며 “개혁으로 피해 보는 사람을 설득하다 보면 어느 정도 양보해야 될 때도 있다. 그런 ‘70점짜리 개혁’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이들은 100점짜리 개혁만을 고집했고, 그것이 뜻대로 안 된다고 뛰쳐나가 버렸다”고 허탈해했다.

현재까지 남은 유일한 민간 출신 팀장인 박진 행정2팀장(36·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혁 과제의 규모가 초기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개혁의 의미가 퇴색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처음 1년간은 방대한 업무를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했기 때문에(가령 공기업 민영화 작업은 4개월 안에 해치워야 했다) 대여섯 개 팀이 공조해 급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후로는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두 팀 이상이 함께 달려들 일이 드물게 됐다는 것. 시각에 따라서는 이런 변화를 두고 개혁의 강도가 낮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박개성 회계사는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과거 정권에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개혁이 이뤄진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반박했다. “100을 얻어낼 생각이면 처음엔 150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나중에 마지못해 50을 양보하는 척했다. 이렇게 하면 많이 달라고 했다고 욕 먹고, 많이 양보했다고 또 욕을 먹는다. 그렇다고 30을 달라고 했다가 5를 양보하면 욕은 덜 먹겠지만 얻는 게 25뿐이다. 이것이 개혁의 속성이다.”

경직된 의사결정 과정

의사결정 권한이 제도적, 관행적으로 상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민간에서 온 전문가들에게는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였다. 웬만한 사안은 팀장급의 중간관리자가 자기 재량권 안에서 책임지고 처리해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사회적 파급효과가 예상되거나 집단의 이해관계와 연관되면 층층의 결재를 밟아 올라가게 했다는 것.

정부개혁실 공공2팀장으로 공기업 민영화 업무를 추진했던 김한주 변호사(40)는 “모든 일을 혼자 책임지고 이끌던 변호사 출신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몹시 답답하게 여겨졌다”고 돌이켰다.

“유연하고 리버럴한 경제기획원 출신 공무원들이 주축을 이룬 기획예산처는 상대적으로 많은 업무를 하부로 위임했고, 특히 정부개혁실은 절반이 민간인으로 채워지다 보니 어느 부서보다 활발하게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산청과 통합되어 조직이 커지자 점차 관료주의 경향이 짙어지더군요. 그저 ‘웃분의 뜻’만 받들어 챙기고 있다는 생각에 갈수록 보람이 작아졌어요.”

개혁팀으로서는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 올린 개혁안이 안팎의 기나긴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며 곳곳에서 칼질을 당했던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임엔 틀림없지만 여기에는 투명성이 전제돼야 했다는 것. 관련부처, 당, 청와대 등과 수없이 협의하는 가운데 정식 절차를 통해 공론화하기 보다는 ‘위로 압력 넣고 뒤에서 타협하며’ 개혁안을 뜯어고치는 것이 어떻게 ‘민주성 확보 과정’이 될 수 있느냐는 뜻이다.

그래도 내부 논의 과정에 젊은 팀장들이 장관의 의견을 반박하며 소신을 펼 수 있었던 기획예산처는 예외적인 경우에 든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공기업 사장이 장관을 찾아와 하소연하면 장관은 그 자리에서 담당과장을 불러 올려 사장과 논쟁을 벌이게 했다. 과장이 장관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여느 중앙부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논의 과정에 실무자의 소신이 꺾이는 일은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개진할 기회가 있느냐의 여부다. 이런 기회가 없으면 실무자는 장관의 눈치부터 살피다 소신과 어긋난 기안을 하게 된다”는 게 박진 팀장의 지적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서울의 한 구청에서 구청장을 보좌하고 있는 민간 계약직 A씨는 이와는 대조적인 사례를 들려준다.

“간부회의 때 구청장말고는 입을 여는 사람이 없어요. 누군가 좀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구청장이 의자를 홱 돌려 앉는 분위기니 누가 소신껏 얘기를 하겠어요. 그나마 우리처럼 사이드에서 마음 비우고 있는 계약직들이나 할 말을 좀 하는 편입니다. 구청장도 웬만한 간부들보다는 늘 지근거리에 있는 우리를 더 신뢰하는 것 같아요. 이렇다 보니 실무과장들이 구청장에게 건의할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가져옵니다. ‘우리 입으로는 이런 얘기 못하겠으니 대신 좀 말씀드려달라’면서. ‘라인’이 뒤죽박죽으로 얽힐 수밖에 없죠.”

‘튀지마, 다쳐!’

공직 사회에 첫발을 디딘 외부 전문가들은 직업공무원들의 몸에 밴 ‘안전제일주의’와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어지간하면 새로운 일은 벌이려 들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논리보다는 관행을 더 중요시하는데다 융통성없고 소극적이기만 한 공무원들의 본능적 처신을 보고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98년 7월 서울시 시정개혁위원회의 외부 전문가 영입계획에 따라 서울시 교통관리실장(1급)에 특채된 차동득(55) 전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도 처음엔 그런 심정이었다.

“와서 보니 시내버스업계의 구조조정이 시급했습니다. 서울시내에 버스회사가 90개쯤 됐는데, 3분의 1 정도는 경영상태가 엉망이었어요. 이런 회사들은 법규도 예사로 위반했어요. 배차간격도 제멋대로고,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시민이 기다리든 말든 노선도 마음대로 바꿔댔습니다. 과태료를 부과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군요. 하도 기가 막혀서 사업자면허를 취소하랬더니 직원들이 법령을 들이대면서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회사들에 대해 시가 할 수 있는 처벌은 가장 무거운 게 감차(減車)였다. 모법인 운수사업법에는 면허취소가 가능하게 되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시행령에서 이 규정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 차실장은 “법에 문제가 있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 아니냐”며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건설교통부에 시행령을 손질해달라고 건의했다.

결국 한 해 3회 이상 중요 법규를 위반하면 면허를 취소한다는 조항을 살려냈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6개 회사의 면허를 취소했다. 서슬퍼런 ‘시범케이스’ 덕분인지 이후 버스회사들의 노골적인 불법운행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버스 터미널 용도변경 문제도 비슷한 경우였다. 그동안 서울시는 상봉터미널과 용산터미널 등 이용자가 급감해 사실상 터미널 기능을 상실한 터미널용지에 대해 용도변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멀쩡한 땅이 아무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었지만, 공무원들은 터미널용지를 상업용지로 풀어줄 경우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 불허원칙을 고수했다.

차실장은 “우리만 떳떳하면 된다. 상식대로 일하자. 용도변경까지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더 이상 터미널로선 안된다’는 판단은 우리가 내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직원들을 설득, 전문기관에 서울시내 전체 터미널 용지에 대한 정비 용역을 의뢰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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