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남북한 경제협력 윈윈게임 열쇠는 중국모델

  • 박정동 (KDI 연구위원)

    입력2006-10-16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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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남북경협이 한국와 북한 모두에 ‘윈윈 게임’이 되려면 산적한 과제부터 풀어가야 한다. ‘들뜬 동포애’ 차원의 접근은 금물이다. 》
    남북한의 첫 정상회담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한의 군축, 주한미군, 북한 핵, 미사일 등 정치·군사 문제에 대한 논의, 1000만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제까지 우리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제의에 극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북한이 이번 회담에 전격 합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북한경제가 과거보다 훨씬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과 김대중 정부가 대북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하면서 반대급부로 제공받을 대대적인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게 가장 타당한 답일 것이다. 따라서 앞의 3대 의제 중에서도 북한이 가장 기대를 거는 것은 경제협력 문제에 대한 논의라고 볼 수 있다.

    남북경협사업은 북한의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지원, 남북한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복원, 산업단지 개발, 발전소 건설, 유휴공장 가동 지원 등의 SOC 부문, 비료 및 농약 지원, 농기계 제작 협력, 종자개량사업, 공동어로사업, 영농교류단지 설치 등의 농·어업 부문, 수자원 공동관리, 공동관광상품 개발 등의 관광·환경 부문, 남북한 비행항로 개설 등 교통 부문 등에서 광범위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종의 ‘민족자본 유치사업’이라고도 할 만한 이러한 남북경협사업이 제대로 열매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북한의 경제정책이 외자 유치를 가능케 할 만큼 효율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북한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민족자본 유치에 성공한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는 접근법일 것이다.



    경제정책 둘러싼 당·정·군 갈등

    중국의 외자도입 정책이 성공적으로 귀결될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과 국무원, 인민해방군이 일치된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당(黨)과 정(政), 군(軍) 사이에 아직도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경제특구 정책이 실질적 최고 권력기관인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결정된 사항인데 비해 북한 개방정책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자유경제무역지대의 설치는 북한 최고 권력기관인 노동당이 아니라 우리의 내각에 해당하는 정무원에서 결정된 것만 봐도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91년 12월28일 정무원 결정 제74호).

    중국에서도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 내부 마찰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 보수파인 천윈(陳雲)은 81년 12월22일 중국 공산당 성·시·자치구 제1서기 좌담회에서 개방정책의 핵이라 할 수 있는 경제특구 문제에 대해 “장수성(江蘇省) 같은 곳에는 특구를 설치하면 안 된다. 특구의 이점뿐 아니라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천윈은 82년 1월 국가계획위원회 구성원들과 한 좌담회에서도 “모든 성이 특구를 설립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외국의 자본가나 국내 투기꾼들이 대대적으로 투기활동을 벌일 것”이라며 특구 설립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84년 6월25일 알제리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선전(深) 특구는 하나의 실험에 불과하다.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나름의 교훈을 얻을 것이다”고 했다. 이와 같은 특구 비판론은 일견 지도부의 심각한 노선 갈등으로 비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구의 확대 혹은 방향성을 둘러싼 논의였지, 특구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 노동당은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 방침이 결정된 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진·선봉지대 개발에 대한 공식적인 정책을 밝히지 않고 있다. 개방정책이 체제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노동당의 보수적 시각 때문에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를 당의 공식 노선으로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노동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특구 건설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몇 차례에 걸쳐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건설계획을 축소한 것은 그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갈등의 흔적은 외부 투자가들로 하여금 북한의 개방정책에 대해 커다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중국 당국이 ‘全國支援特區, 特區服務全國’(전국은 특구를 지원하고, 특구는 전국을 위해 봉사한다)이라며 특구를 독려하는 것은 아직도 노선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사정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개혁과 개방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따로 떼놓고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중국은 경제특구 설치를 통한 개방정책을 단행하면서 개혁정책도 동시에 실시했다. 개혁·개방정책으로 선회를 선언하면서 농업개혁 기업개혁 가격개혁 재정개혁 금융개혁 무역·직접투자개혁 유통개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경제체제 개혁을 단행했다. 덩샤오핑은 경제특구의 구실을 ‘기술의 창구, 관리의 창구, 지식의 창구, 대외 개방정책의 창구’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개방정책은 경제특구를 거점으로 국내 경제체제 개혁을 실시하고, 이를 기점으로 더 나아가 중국을 국제경제에 결합시키며, 그 과정에 고용확대와 외화획득, 기술획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과 개방이 하나의 틀에서 시도됐던 것이다.

    개혁없는 개방의 한계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직도 북한은 세금을 깎아주고 값싼 노동력만 공급하면 외자를 쉽게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외자 유치를 바라고는 있으나 경제개혁의 의지가 담긴 그 어떤 정책도 실시하지 않았다. 기업활동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경제특구 하나만 보더라도 북한은 746㎢에 달하는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외부 접촉을 막는 조치만 취했을 뿐이다. 특구에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소유제와 경제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중국에서처럼 개혁과 개방은 동시에 진행돼야 상승효과를 발휘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도 개혁에 대해서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북한이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특구에 부동산 시장, 소비재 시장, 생산재 시장, 자본시장, 노동력 시장을 만드는 데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아울러 토지, 건물 등의 소유 형태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전거, 재봉틀, 손목시계, 라디오를 가리켜 ‘노사건(老四件)’이라고 부른다. 이 물건들은 도시에서는 이미 공급초과 상황이고, 농촌지역에서도 그 소유 여부가 신분을 상징하던 시대는 지났다. 요즘은 ‘신사건(新四件)’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TV, 녹음기, 냉장고, 세탁기가 그것이다. TV는 도시지역의 경우 흑백에서 컬러로 교체되는 단계고, 농촌에서도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해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1980년의 ‘신사건’ 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0.9(TV), 0.21(녹음기), 0.034(냉장고), 0.026(세탁기)대였지만, 올해에는 각각 18.4(TV), 12.0(녹음기), 0.6(냉장고), 11.6(세탁기)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엄청난 인구를 감안할 때 이처럼 급속하게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신사건’을 더 만들어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중국이 시장으로 지닌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형편은 그렇지가 못하다. 중국의 6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구 규모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몇 년째 악화일로를 걸어온 북한 경제의 현실을 고려하면 시장으로 북한이 가진 매력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빈약하다. 많은 외자 기업이 북한시장 진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전방위 유화전략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데 있어 정치, 외교적 안정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다. 중국은 이 대목에서도 보기 드물게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 시대를 그 이전 시대, 즉 마오쩌둥(毛澤東)이 정치·외교를 이끌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덩샤오핑이 주도한 정치·외교는 한 마디로 경제 우선의 전방위(全方位) 유화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 사후 남아 있던 마오쩌둥주의자와 경쟁해서 승리하면서 덩샤오핑이 도입한 공산당의 기본 노선은 계급투쟁보다는 경제건설, 다시 말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외교도 경제건설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요 과제였다.

    이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혁명을 수출하는 전략도 아니었고, 구소련의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국제적 통일전선 형성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반패권 전략도 아니었다. 모든 나라와 선린우호와 호혜적 경제교류의 진전을 도모하는 전방위 유화전략을 기조로 한 것이었다. 그 무렵 덩샤오핑의 담화를 들어보자.

    “중국은 아직 가난합니다. 국민총생산은 1인당 300달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금세기 말까지 1인당 800달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800달러는 경제가 발전한 나라들에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위대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평화를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즉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중국 정치·외교의 핵심은 최우선 과제인 경제건설을 수행하기 위해 유화적인 대외관계 구축을 기조로 평화로운 국제환경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부연하자면, 중국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므로 군비에 국력을 쏟아붓고서는 경제건설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공산당 지도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경제건설이 우선이라는 공산당 지도부의 인식에 화답이라도 하듯 미국은 지금까지 중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78년 미중 국교 정상화 이후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국부를 축적하고 국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물질적 지원과 기술적 조언을 받아왔다. 현재 미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 규모는 홍콩 대만 일본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한다. 일본도 중국에 대한 지원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현재 중국에 대한 최대의 경제 원조국이 바로 일본이다.

    북한 역시 대외 경제관계를 정립하는 원칙으로 자주·평화·친선을 강조한다. “공화국 정부는 자주·평화·친선의 이념에 기초하여 다른 나라들과 경제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자주·평화·친선의 이념은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적이고 평화로우며 친선적인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우리 인민과 세계 인민들의 공통된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저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실제로 외국 자본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다. 북한은 95년 8월부터 로스앤젤레스, 뉴욕, 도쿄, 베이징, 홍콩, 유럽 등지를 돌며 활발한 투자유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한편에선 이러한 투자유치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정전협정 파기’ ‘보복은 백 배, 천 배가 될 것이며 발포에는 발포로 응수할 것이다’ ‘북한 인민군은 가까운 시일 안에 보복할 것이다’ 등의 살벌한 대남 발언들이 그 예다. 안정을 투자요건의 제1항목으로 인식하는 기업인들로서는 이러한 정치·사회적 불안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95년 8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해외 투자유치 활동 당시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극히 냉담했다. 투자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 이하의 참가자들이 허다했고 자리를 채운 이들은 대부분 우리 교민들이었다. “북한보다 투자여건이 좋은 곳은 얼마든지 있다. 구태여 정국이 불안한 북한까지 가서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게 투자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중국의 경우 전체 외국인 투자 가운데 ‘삼포(三胞·대만 교포, 홍콩 및 마카오 교포, 기타 화교)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 북한도 외자 유치 실적의 90%가 조총련계 기업에 의한 이른바 ‘조조(朝朝)합영’으로 이뤄진 것이다. 둘 다 민족자본 중심의 투자라 얼핏 보기엔 두 나라의 외자 유치 형태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

    삼포자본의 중국 진출은 순수한 투자 동기에 따라 이뤄진 게 대부분이지만, ‘조조합영’은 경제적 의미의 직접투자라고는 보기 어려운, 동포애 차원의 투자 성격이 짙다. 조총련계 이외, 즉 한국 자본과 재미동포, 민단 재일동포 자본의 대북 진출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삼포자본이 중국 진출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과 재외동포 자본이 북한 진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대만 관계와 남북한 관계는 정도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치적 적대관계’라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처지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중국과 대만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암묵적으로 고수해온 데 비해 남북한은 거의 명시적으로 정경분리 원칙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업들의 대북투자는 정치적 관계 여하에 따라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재미동포들의 북한투자 역시 미국 정부의 적성국 교류 통제조치에 묶여 있었다.

    중국인들은 해외에 살면서 중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화교’, 사는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화인’이라고 부르며 구별하는데, 이들의 수는 2억8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약 85%가 동남아시아에 거주한다. 그밖에도 홍콩과 마카오에 600만 명, 대만에 2100만 명의 중국 동포가 살고 있다.

    이들의 경제력이 중국 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특히 광둥성(廣東省)과 푸젠성(福建省)의 눈부신 발전은 이들 ‘화교’ ‘화인’ ‘동포’들의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 또한 북한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남한에 470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화교나 화인들이 중국에 투자하듯 독자적으로 투자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정부와 조율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 등지에도 교민들이 살고 있지만, 그 수는 다 합쳐도 수백만 명에 지나지 않고, 더욱이 이들 가운데 기업가로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재일동포 중에는 자본가가 소수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을 통해 자산을 모았기 때문에 북한에 진출할 만한 여건이 못된다. 북한의 경제개발 과정에 해외교민들이 큰 몫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동포 투자 우대조치도 없어

    중국은 대만 홍콩 마카오 교포 및 화교와 화인들에 대한 특별우대법을 제정해 전국 차원에서 적용하고 있다. 각 지방에서도 이들에 관한 별도의 우대 법규를 만들어 시행한다. 삼포자본이 대중국 투자에 중심이 되어온 데는 이와 같은 우대조치가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공화국 영역 밖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 동포들도 합영법에 근거하여 투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동포들의 투자는 가능하지만, 중국처럼 동포들에 대한 우대법규는 두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조선 동포’에 한국의 기업과 개인도 포함되느냐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의 투자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를 놓고 법조문 해석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과, 대만 교포에 대한 투자 우대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북한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투자 환경에 머물러 있다. 북한의 외자 유치가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외자 유치가 전혀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몇몇 부문의 정책이 수정된다면 의미있는 결실을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 앞서 언급했던 당·정·군의 일치된 개혁·개방의지 표명, 개방과 함께 적극적인 개혁정책 실시, 정치·외교적 안정 추구, 민족자본에 대한 우대정책 실시, 한국과 화해 등이 그 예다.

    남북 정상회담은 이처럼 산적한 과제 가운데 적어도 북한의 정치·외교적 안정 추구와 한국과 화해하는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과제들이 후속조치로 단행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경제협력에 관한 남북한간의 토의도 결국 단발성 행사로 끝나버릴 것이다.

    따라서 남북경협이 일방적 지원 위주의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서로에게 ‘윈윈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상호 신뢰를 회복함과 동시에 북한 당·정·군의 개혁·개방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투자’를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은 부문별로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우선 농업체제 개혁의 경우 북한 당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려면 지금의 협동농장체제를 개혁, 농가에 경영을 위탁하는 체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 개혁의 열쇠는 ‘기업다운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데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기업을 직접 관리하고 기업소가 국가 행정기관의 단순한 지부기구, 국가계획서 달성을 목적으로 한 생산단위에 머무르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는 기업소에 경영관리의 자주권을 부여하고, 기업소를 국가 경제정책의 틀 속에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경영체로 바꿔나가야 한다.

    가격구조 개혁의 기본 과제는 시장가격의 확대와 계획가격의 축소다. 시장가격은 그 조절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부단한 확대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도가 높아지게 만들고, 반대로 경제운용에 대한 계획가격의 영향은 그 조절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점진적 축소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성을 줄여야 한다.

    재정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기업의 자주권 확대와 함께 기업을 지금처럼 직접 관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재정체제가 하루 빨리 수립돼야 한다. 금융개혁에서는 국가 단일은행이 중앙은행 업무와 상업은행 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지금의 일원적 은행제도에서 중앙은행 기능과 상업은행 기능을 분리하는 이원적 은행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협력의 제공자인 우리 정부나 기업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의 투자’라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부채감소와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 증진이 중요한 경제개혁 과제로 남아 있으니만큼 북한에 대한 무분별한 대규모 투자는 한국의 경제개혁을 지금 단계에서 중단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을 통해 북한에 과도하게 지원하는 것 역시 재정 부담을 증가시키고 국가신용도를 하락시킬 위험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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