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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화제의 당선자 수기

‘인지도 0’에서 시작해 ‘DJ저격수’를 물리쳤다

  • 김성호

‘인지도 0’에서 시작해 ‘DJ저격수’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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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공천을 받게 된 과정이나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부터가 '왜곡된 우리 정치제도'의 반사이익 덕인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나는 ‘DJ저격수’의 ‘역저격수’로 선정돼 아무런 준비없이 4·13총선과정에 뛰어들었다.》
“김후보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거기다 마누라도 없 다면서요. 휴대폰만 2개 갖고 다닌다면서요. 그래 가지고는 선거 절대 못 치러요.” 내가 지난 2월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뒤 지역구인 서울 강서에 갔 을 때 한 여성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싶다는 이 여성이 처음 꺼낸 말이 바로 ‘돈’이다.

휴대폰 2개로 시작한 선거운동

여당후보가 그렇게 돈이 없어서는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 다. 아무 재산도 없고 정치를 이제 막 시작하는 정치신인에게는 선 거운동도 들어가기 전에 ‘기를 죽이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겠는 가. 모든 것이 사실인데.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 나의 전재산은 사실 휴대폰밖에 없었다. 13 년 동안 신문기자로서 한길을 걸어온 내가 돈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통장에 남은 돈도 거의 없었고, 집도 없고, 차도 없 었다. 휴대폰도 동생이 사준 것이다. 당에서 공천을 받자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안 동생이 휴대폰 3개를 사줬다. 연락할 일이 많을 것 같아 2개는 내가 갖고, 1개는 수행비서에게 줬다.

우리 정치문화는 이처럼 정치신인에게는 출발부터 온갖 험난할 길이 다. 정치신인이 무슨 돈이 있으며, 조직이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먼저 ‘돈’을 요구한다. 조직이라는 것도 최종적으로는 돈으로 귀 착된다. 돈이 들어가지 않는 조직운영이나 조직가동은 상상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공천을 받게 된 과정이나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부터가 ‘왜곡된 우리 정치제도’의 반사이익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당으로부터 전격적으로 총선에 출마해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 2월초였다. 당에서는 서울의 강동을과 강서을 등 몇군데 지역을 놓고 여론조사를 벌이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강동을로 확정된 것 같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더니 갑자기 강서을에서 내 이름 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강서을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잇따른 폭로 로 ‘DJ저격수’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이신범 한나라당 의원의 지 역구다. 언론에서는 ‘DJ저격수’와 ‘역(逆)저격수’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달기도 했다.

강동을이나 강서을은 모두 오래 전부터 총선출마를 위해 지역을 닦 아온 정치지망자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선거를 두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내 이름이 거론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하향식 공천제도’ 때문이다. 미국처럼 당원이나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후보 에 대한 공천권을 행사하는 제도에서는 선거 두 달 전에 공천을 받 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가 강서을에서 최종적으로 공천 을 받자 그 지역에서 공천을 희망했던 사람들과 상대당 후보들로부 터 ‘낙하산 공천’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역사정을 얼마나 아느냐.” “지역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이 나에게 쏟아진 비판들이었다. 현재의 공천제도로는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 앙당의 일방적인 공천을 받았다는 점에서서 정도 차이는 있을지 모 르지만, 모두 ‘낙하산 공천‘이라 볼 수 있다.

‘낙하산 공천자‘의 어려움

정치의 출발은 공천과정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 중하나는 바로 파행적인 공천제도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하산식 공천‘이 되다보니 지역주민 접촉기회(skinship)를 갖지 못하고, 그러다보니니 지역주민들도 후보에 대해 학력이나 경력을 제외하고는 잘 알 지 못한다.

선거운동과정에 후보자간 정책대결이나 인물대결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중앙당의 일방적 공천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만약 유권자나 당원들이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했다면 기본적인 자질과 공 인으로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이미 예비선거과정에 걸러졌을 것 이다. 이런 예비선거과정이 없다보니 본격적인 선거운동과정에 상대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흑색선전과 비방, 인신공격 등이 난무하게 되 는 것이다.

나도 이런 흑색선전으로 엄청난 고전을 해야 했다. 내가 중앙당의 공천을 받고 강서땅을 밟기도 전에 이미 흑색선전이 쫙 깔려 있었 다. 나의 아픈 과거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 져 있었다. 2월 중순 우리 지역의 영향력 있는 한 직능단체에 모임 이 있다고 해 인사를 하러 갔을 때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그 직 능단체의 대표자격인 한 분이 나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며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데 사실이냐” “이런 저런 나쁜 얘기들이 많이 나도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싸늘한 눈길을 보냈다.

내 이름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새로 공천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나쁜 사람이더라’는 흑색선전이 먼저 판을 치고 있었던 것 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이미 상대후보의 흠집내기나 비방 등 진흙탕 싸움판으로 구도가 짜여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 정치입문과 선거과정을 통해 공천에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공천의 민주화는 곧 현재 대통령과 야당총재 가 갖고 있는 공천권을 당원이나 유권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공천 의 민주화는 국민이 ‘정치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첫 걸음이다.

실제 선거운동에 들어가서 정치신인들이 겪는 어려움도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많다. 이번 선거에 가장 늦게 뛰어든 후보중의 하나인 나 로서는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유명한 스타도 아니고, 방송앵커 출신도 아니다 보니 사실 ‘인지도 0’에 서 출발한 셈이다. 13년 동안 신문기자만 했으니 알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래 전부터 정치를 준비해온 사람도 아니다.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한결같이 “도와주고 싶은데 (당 신에 대해)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지역유권자들 끼리 주고받는 얘기도 “(나에 대해)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래. 아 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마 디로 ‘(나에 대해) 알아야 뭘 도와주지’라는 반응들이었다. 선거는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먼저 ‘김성호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를 열심히 알리기 위해 가능한 한 유권자를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이 철저하게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단순히 인사 를 하는 것도 상가 정도만 방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명함도 ‘ 일상적인 인사’과정을 통해서만 줄 수 있을 뿐이었다. 불특정다수 를 상대로 명함을 돌리는 것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정치신인 들에게는 아예 ‘법정선거운동기간(16일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냥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선거법 때문에 인사를 제대로 못하는데도 지역주민 중에는 인사도 하러 안 온다고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예전에 출마를 하려던 사람 은 인사도 자주 왔는데, 새로 공천을 받았다는 사람은 얼굴을 도무 지 볼 수가 없다.” “새로 왔으면 빨리 빨리 인사를 해야지, 그래 가지고 뭐 이기겠어.”

현행 선거법은 정치신인들이 명함에 새기는 내용도 엄격하게 제한하 는 등 모순덩어리였다. 지구당 개편대회를 치르지 않아 정식 지구당 위원장도 아니었던 나는 명함에 아무런 직책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냥 얼굴 사진에다 ‘새천년민주당’이라는 당명만 써야 했다.

나이나 학력, 경력 등은 일절 쓸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후보 를 선택할 때는 나이나 학력, 경력 등을 보고 하는 것이지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든, 우 리 같은 ‘완전한’ 정치신인에게 현직이 있을 수 없었다.

역시 일부 유권자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이 나왔다. “아니, 김후보 명함에는 왜 얼굴사진만 있고, 경력 등이 하나도 안 들어 있나.” “얼굴만 보고 어떻게 찍어주나.”

3월4일 지구당 개편대회를 하고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현직 하나가 따라붙었다. ‘새천년민주당 서울 강서을지구당 위원장’이라는 것 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유권자들에게 나를 알리기에는 턱없이 정보가 모자랐다.

그나마 나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아 이디어’를 얻은 것은 같은 민주당 소속으로 수도권에 출마한 한 변 호사 출신 후보의 명함을 보고나서였다. 이 후보는 자신의 명함 뒤 에 현직이라고 쓴 다음 ‘경기고 동창회원’이라고 쓰고 있었다. 경 기고 출신이라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알리고 있었다. 누구나 고등학 교를 졸업하면 자연히 그 학교의 동창회원이 되니까 이런 아이디어 를 짜낸 모양이다. 역시 변호사출신이니 이렇게 선거법을 잘 활용하 는구나 생각을 했다. 정치신인인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한 방법이었 다.

이것이 편법인지 어떤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하여튼 현직인 것만은 분명하고, 변호사출신이 사용하고 있으니 선거법에 어긋나지 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바로 ‘모방’을 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그 변호사출신 후보가 한 것보다 한술 더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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