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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화제의 당선자 수기

하루 3만보 걸으면서 정치신인 한계 극복했다

  • 원희룡

하루 3만보 걸으면서 정치신인 한계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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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많은 유권자를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유권자들을 찾아다녔다. 만보계를 차고 다녔는데 하루 3만보를 걸은 날도 있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서는 악수하는 손의 느낌과 표정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향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00년 2월18일에 한나라당 양천갑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선거일인 4월13일을 56일 남겨놓고 있었다. 지역유권자는 17만 5000 명, 상대후보는 집권여당의 중진인 재선의원. 12년간 지역관리를 해온 사람이다. 지역연고나 지역활동이 없던 야당 정치신인과 12년간 지역 관리를 해온 여당 재선의원과의 대결이었다.

난관은 공천을 받은 직후부터 찾아왔다. 공천과정에 경합했던 기존 지구당위원장이 공천에 반발한 것이다. 조직의 인수인계가 안된 것 은 물론, 당원명단도 인계받지 못했다. 기존 지구당위원장은 민국당 으로 가서 출마했고,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 지지표가 분산되는 사 태를 걱정했다. 전 지구당 위원장은 자신이 당선이 안되더라도 원희 룡을 떨어뜨리면 다음에는 기회가 자신에게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 녔다고 한다.

공천과 지구당위원장의 반발

한편 지역구 10개동 중 6개동의 구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 이 들은 공천자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취해주 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단합시켜 적극적으로 뛰 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빨리 정비되어야 했다. 구의원들을 중심으 로 지구당 조직이 정비되어 갔다.

사무국이 정비되기까지 10여일이, 갈라졌던 사람들이 모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조직작업은 투표일 직전까지 계속됐다. 나는 공천을 받자마자 지역구로 갔다. 구의원들을 비롯한 핵심당원들 에게 지역에 뿌리내리고 당을 지켜온 분들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갈 라진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자세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했고, 선거기간 내내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선거처 럼 적극 나서주는 바람에 지구당조직이 빠른 시일내에 나름대로 정비 되어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공천받을 무렵 지역구 내에서 나의 보조인지도(경력 등을 이야기해주 고 아느냐고 물었을 때 안다고 대답하는 비율)는 15% 가량이었다. 1 0명 중 8.5명은 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 상대방 인 현역의원의 인지도는 90%를 넘어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나를 알리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행 선거법 은 선거기간(3월28일부터 4월12일까지 16일간)전 사전선거운동을 금 지하고 있다. 홍보물을 우편으로 보내거나 유권자들을 모아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물론, 지구당 개편대회를 마치고 지구당위원장이 되 기 전까지는 지구당 사무실 간판에 후보 이름도 쓰지 못하게 되어 있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람을 직접 만나 구두로 인사를 하는 정도이 고, 명함을 건네는 것도 후보자 본인 외에는 할 수 없다. 통상적인 의례의 범위를 넘어서 명함을 건네줄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통상 적인 의례 범위’의 명함교부가 어디까지냐는 해석이 모호했다.

반면 현역의원은 의정보고서라는 명목으로 모든 유권자에게 무제한 으로 홍보물을 보낼 수 있다. 또 무제한으로 유권자들의 모임을 만 들고 1인당 3000원 이하의 범위에서 다과도 제공할 수 있게 돼 있 다. 실제로 지역구 내 모든 상가와 가정에 늘 상대후보의 의정보고서 가 배달되어 꽂혀 있었고, 심할 경우 하루 100군데서 의정보고회가 열렸다.

정치신인과 현역의원 간 기회의 불균등. 그것은 정도가 너무 심하여 마치 농구시합을 하면서 한쪽 편은 손발을 묶어놓고 시합을 하라는 것 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치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을 과도하게 쳐놓고 현 역의원의 기득권만 보호하는 현행 선거법을 개정해서 똑같이 홍보를 할 기회를 주든지, 똑같이 못하게 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손발 묶은 농구시합

지구당 개편대회를 하기 전까지는 사무실 간판을 걸 수도 없었다. 고 민 끝에 기획팀이 “○○○입니다. 곧 만나뵙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 를 사무실 외벽에 내걸었다. 선거법상 후보자 이름을 표시할 수 없 어 선거법을 지키면서 홍보를 하기 위해 ○○○이라고 쓴 것이다. 정 책은 고사하고 이름도 알릴 수 없게 해놓은 선거법의 문제점에 대한 정치신인의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홍보효과는 만점이 었다. 많은 시민들이 호기심을 가졌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재미 있어 했다.

한번은 아파트 부녀회에서 윷놀이행사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인 사를 하고 가라고 지지자가 귀띔해주어 간 적이 있었다. 그 모임은 공개된 모임이고 다른후보 측 시의원 등이 참석해 있었다. 나는 참석 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그중 몇 분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 었다.

그런데 내가 돌아간 직후 경찰에서 그 모임 참석자들을 찾아왔다는 소 식이 들려 왔다. 경찰은 누가 나에게 그 모임을 알려줬는지 등에 대 해 이후로 일주일도 넘게 그 모임 사람들을 조사하였다. 경찰은 명함 배포로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실제 조사 는 누가 그 모임을 나에게 알려주었는지를 알아내려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또 자꾸 조사를 거듭해 사람들이 나와 접촉하는 것을 꺼리게 하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였다.

급기야 경찰은 나에게도 경찰서로 출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분일초 가 금쪽같은 후보자를 몇몇 사람에게 인사하면서 명함을 주었다는 이 유로 불러서 조사를 한다? 나는 강력하게 항의했고, 다음날 경찰서장 을 만나 사과를 받았다. 어찌됐건 관권의 개입 및 편파적 행사는 여 전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3월 초에 사무국이 출범하여 3월4일 사무실 개소식을 치르면서 지구 당활동에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기획팀도 급조되다 보니 시행착오 가 빈발해 차질이 생기면 응급보완을 하는 식이었다. 3월15일로 예정 된 개편대회 전까지만 지구당조직과 기획팀이 손발이 맞으면 성공이 라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일을 하면서 서로 생 각이 다른 부분은 조정을 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갈등으로 삐끗거 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3월 15일 지구당개편대회에는 1200여명이 뜨거운 열기 속에 참석했 다. 지구당개편대회 때는 정당법에 의해 참석 당원들에게 식사와 차량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경찰은 우리 지구당 개편대회 후 식사한 사람들 중 즉석에서 입당원서를 쓴 사람이 있는지 찾아내기 위하여 당원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조사했다.

모 후보 측에서는 우리 당직자들 중 일부를 구속시키겠다는 등의 말 을 퍼뜨렸다. 경찰 일부가 야당에 대해 흠집을 찾으려고 너무나 열심 이었다. 또 이를 이용하려는 모후보 측의 헛소문 퍼뜨리기도 너무나 능수능란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개편대회를 마치고 지구당위원장으로서 이름을 간판에 내걸고 당원배 가운동을 전개하고 당원모임, 입당권유 활동이라는 형태로 지역구민 들을 접촉해나갔다. 정당법상 보장된 지구당위원장의 활동인 셈이다.

선거전의 고약한 단골손님, 흑색선전

공천을 받고 지역구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나에 대한 인신 공격, 비방유인물이 노인정과 테니스장 등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 러한 유인물은 선거법상 명백한 불법이다.그러나 바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암암리에 뿌려지는 유인물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실을 설명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또 나의 이름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단계에서 그 러한 유인물이 이름을 알리는 효과는 있기 때문에 급하게 대응할 필 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적절한 시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 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인물이 뿌려진 장소와 정황을 확보하게 됐다. 누 군가가 테니스장 휴게실에 유인물을 뿌리고 간 후 곧바로 선관위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출동은 했지만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흐지부지해버렸다. 명백한 불법유인물이 이곳 저곳에 수시로 뿌려지 고 있는데도 수사 의지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몇 사람에게 명함 몇 장을 건네줬을 때, 그리고 지구당개편대회 식사 후 경찰이 참석자 들을 일일이 일주일 넘게 조사하면서 괴롭히던 것과 비교하면 관권의 편파적 행사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보였다.

불법유인물 배포는 수사의지만 있으면 2~3일 이내에 잡을 수 있다. 지역구내의 모든 유권자가 그 유인물을 누가 뿌린 것인지 말하지 않 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선거기간이 끝날 때까지 유인물 배포자 의 그림자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었다.

선관위가 후보들의 병역, 세금, 전과를 공개하면서 흑색선전은 더 심 해졌다. 다른 후보 측은 유인물을 계속 배포할 뿐 아니라, 구전홍보 팀을 가동해서 인신공격성 헛소문을 퍼뜨렸다. 목욕탕이나 마을버 스, 은행대기석 등에서 아줌마들이 “원희룡 후보는 어떤 어떤 결함이 있는데 뽑아서 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퍼뜨리는 것이다. 선거운 동기간에는 아예 유세차 스피커로 공개적으로 떠들어댔다. 병역기피 자니,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느니, 파출소를 때려부순 폭력전과자니 하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해댔다.

흑색선전은 대응하기가 참 고약하다. 그 후보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흑색선전을 해댔는지 알 수도 없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권자들은 한쪽의 흑색선전만 접하고 그에 대한 해명을 듣지 못하면 후보자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기 쉽다. 바로 이 점 을 이용해 일부 후보자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흑색선전을 해서 상대방 을 흠집내는데 골몰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지역구의 모 후보 는 선거기간 내내 흑색선전을 해댔다.

방법은 정면돌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공개적으로 사실을 밝히고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해 흑색선전을 하는 쪽에 비난이 쏠리게끔 해 야 했다. 만일 정면돌파에 실패해 유권자들이 의혹을 가지고 찜찜해 한다면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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