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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남한 주요인사 2만명 해외소개 계획 세웠다

미 합참 비밀문서로 본 6·25전쟁 비사(秘史)

  • 이흥환 재미 언론인

美, 남한 주요인사 2만명 해외소개 계획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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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월29일 한강전선 시찰한 맥아더, 2개 사단 파병요청.
  • ●CIA는 전쟁발발 기미를 전혀 몰랐다.
  • ●미 육참총장 비망록 “(한국에서) 원자탄 사용의 조건을 결정하기 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봄…”
  • ●1951년 1월 미극동군 사령부, 패전 대비한 한국정부 피란계획 수립. “한국정부 관료 및 주요인사 100만명을 제주도로 소개하는 ‘대규모’와 주요인사 2만명만 해외로 소개하는 ‘제한소개’로 구분…”
  • ●해외 소개 대상지로 하와이, 필리핀, 오키나와, 사이판, 티니안 등 검토.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6·25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다. 그러나 미국은 잊지 않고 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전쟁이다. 그러면 한국인에게 6·25는 무엇인가. 잊지 말아야 할 전쟁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다. 그러나 한국에도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미국의 6·25’와 잊지 말아야 하는데도 잊혀져가는 ‘한국의 6·25’, 이 둘의 차이는 기록의 차이다. 기록 보관의 차이고, 기록 공개의 차이며, 기록 공유의 차이다. 지금도 미 행정부 비밀문서 보관소에는 6·25관련 기록이 가득하다. 가득할 뿐 아니라, 살아 숨쉬고 있다. 영상·문서·마이크로 필름 등 방대한 자료가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신동아는 일부 공개됐거나, 공개됐더라도 극소수 사가들의 자료더미에 파묻혀만 있는 자료들을 포함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6·25 관련 자료들을 더 늦기 전에 공개한다. 한국전을 기록한 미 합동참모부와 극동사령부의 비밀 기록들이다. 전쟁의 또 한 축이었던 북한측의 자료를 접할 길이 없는 상황에 이 자료들은 여전히 반쪽 구실밖에 못 한다. 그래도 남의 것을 빌려온 것이긴 하지만 그 반쪽이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 자료들은 워싱턴에서 한반도 안보 관련 정보를 공급하고 있는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해낸 것들이다. 》

맥아더의 한강 전선 시찰

“적군 진격 계속되면 남한 함락 위험”

6·25 가 발발한 이튿날부터 남한에 있던 미국인들은 비행기와 배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철수했다. 2000여 명이 빠져나갔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전행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간 6월27일 새벽 2시. 그리고 다음날인 28일 오후 2시30분 한강교가 폭파됐다. 조선인민군의 한강 도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파죽지세. 북한군은 밀고 내려왔고, 남한군은 밀렸다. 남한은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이 북한군 수중에 떨어졌을 때, 일본 도쿄의 미 극동사령부 맥아더 사령관은 미 합동참모부에 전문을 띄운다. “미 2개 사단만 투입하면 한국을 방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맥아더는 이 합참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남한의 최전선으로 날아와 직접 한강 전선을 시찰했다.

북한군의 전쟁지도에는 서울-수원-대전-대구 순으로 전선을 순차적으로 형성해가면서 남한을 점령하는 전쟁수행 계획이 그려져 있었다. 서울은 이미 함락됐고, 맥아더가 한강 전선을 시찰한 6월29일에는 언제 최전선이 무너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950년 6월30일자로 미 육군부(Department of the Army) 참모연락단에 접수된 1급 비밀(Top Secret) 보고서(문서번호: C 56942)는 도쿄의 맥아더 사령관에게서 날아온 것이었다. 맥아더의 한강 전선 시찰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육군부를 거쳐 합동참모부에 전달됐다.

맥아더는 이 비밀 보고서에 자신이 직접 목격한 한국군의 개전 초기 대응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놓고 있다. 한마디로 지리멸렬이었다. 전선의 이런 실상과 달리 맥아더의 눈에 비친 피란민은 ‘애국심’과 ‘미군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맥아더는 이 6월29일의 최전선 시찰에서 석 달 후에 전개될 인천 상륙작전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맥아더는 이 보고서에서 상륙 작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노장의 여유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전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했으며, 일본 주둔병력 가운데 2개 사단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도 언급했다.

다음은 전선 시찰 다음날인 6월30일에 작성된 맥아더의 보고서 내용이다.

본관은 오늘 수원에서 북쪽 한강에 이르는 남한군 전투 지역을 시찰했음. 시찰 목적은 남한군의 현 상황을 직접 정찰하고, 우리의 임무 수행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향후 지원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음.

남한 육군과 해안경비대는 혼란에 빠져 있었음. 진지하게 싸우지도 않고, 지휘력은 결핍한 채 자신들의 방식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음. 국내 치안 유지를 위해 경장비만으로 무장하고 조직됐던 탓에 기갑 및 공중 공격에는 대비하고 있지 않았으며, 북한군이 가지고 있는 주도권을 빼앗아오기에는 역부족이었음.

남한군은 방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나 보급계통, 보급체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지 않았음. 후퇴시의 보급품 및 장비 파괴 대비책도 없었으며, 있었다 해도 시행되지 않았음. 결국 보급품과 중장비를 유실하거나 그대로 버렸으며, 상호 연락체계도 전혀 없었음.

대부분의 병사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와중에 자신의 소총이나 카빈총을 휴대하고 있었음. 병사들은 하나둘씩 후방으로 모여들었는데, 전선 시찰을 위해 본관이 파견한 선발 장교단에 의해 다시 조직되어 편제를 갖추었음. 대포나 박격포, 탱크 저격용 무기가 없기 때문에, 고도의 지휘력이 발휘되었던 사례나 지침에 따라 지형 장애물을 최대한 이용,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에만 유일한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임.

일반 국민들은 평온하고 질서 있었으며, 규모에 맞는 삶을 살고 있었음. 애국심이 높고 미국에 대한 믿음이 강했음. 서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공산 치하를 피해 내려가는 피란민으로 가득했음.

남한군 병력은 2만50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됨. 이전 보고에서 지적했듯이 북한군은 기갑 장비로 무장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며 지휘계통이 확립되어 있고, 소련제 비행기로 무장한 공격적인 공군의 지원을 받고 있음.

본관은 수원과 부산항의 낙하 교두보를 통해 보급로를 확립 유지하는 데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 낙하 투입은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긴 하나 항상 공중 공격 목표가 되고 있음.

전방까지 진출한 적을 묶어두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적은 남한 전체를 장악하려 할 것임.

한강 전선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결과는 극히 부정적임. 한강 전선과 수원-서울축 방어는 남한 중부 지방의 낙하 교두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임.

남한군은 전반적으로 적을 저지할 능력이 없으며, 현 전선은 또 한 차례 돌파될 위험성이 높음. 전선에 진출해 있는 적군이 진격을 계속할 경우 남한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임.

현 전선을 유지하고 향후 실지 회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장책은 전투 지역에 미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임. 지상군 실병력 없이 해공군만 계속 동원하는 것은 결정적인 지원이 될 수 없음.

허락된다면 본관의 의도는 즉각 미 지상군 연대 병력을, 이미 논의된 바 있는 주요 지역에 증원하고, 적의 공격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일본 주둔 병력 가운데 2개 사단을 증강시키는 것임.

지리멸렬한 이 지역에 육해공군을 총동원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불필요하게 생명과 재산과 위신을 잃게 될 것임. 최악의 경우 패전의 불운을 안게 될 수도 있음.

합참 합동정보단(JIG)의 CIA 질타

“북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극 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전선을 시찰하고 난 직후인 1950년 7월10일, 워싱턴에 있는 합참 합동정보단(Joint Intelligence Group)은 2쪽짜리 정보보고서를 작성한다. 미 공군 소속인 합동정보단의 레지널드 밴스 대령이 합참정보처 부처장인 미 해병대 소속 V.E. 메기(Megee) 준장 앞으로 제출한 이 1급 비밀 보고서에는 ‘한국 상황 - CIA의 북한군 침략 조기 경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CIA에서 넘겨받은 한국 관련 정보를 놓고 합참 합동정보단이 나름대로 정보가치를 평가한 일종의 정보 평가서다.

합동정보단은 CIA가 작성한 일일, 주간, 월간 보고서 등을 통해 전세계의 정보를 받아보고 있었다. 물론 합동정보단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정보는 군사에 관련된 것이지만,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정보 역시 유용하게 취급되었고, 한국 관련 정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 발발 기미의 사전 탐지야말로 정보기관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6·25 당시 미 CIA는 과연 전쟁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합동정보단의 이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월1일부터 교전이 시작되기까지(6월25일까지) CIA로부터 접수한 ‘CIA 일일 정보 요약’에는 전쟁에 대한 언급이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보고서 첫 머리에서부터 CIA를 물고 들어간 이 보고서는 “같은 기간 CIA의 주간 정보 요약에서 언급된 한국 관련 사항은 다음과 같다”며 네 가지 항목을 지적하고 있다.

a. 남한 선거에 관련된 3종의 보고.

b. 남한의 퇴폐적인 경제와 정치 상황에 대한 3월31일의 장문의 보고 및 북한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남한군 전력 증강을 주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난.

c. 남한을 피란지로 활용하려는 대만의 장개석에 대해 언급한 6월2일 보고. 이 보고에서 CIA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음: 남한은 소련과 중공에 너무 근접해 있기 때문에 피란지로는 적당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비상사태시 임시 피란처나 불편을 감수한 피란처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임.

d. 북한의 평화 통일 공세에 대해 언급한 6월16일의 보고. 이날 보고에서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음.

CIA가 북한군의 움직임을 알고도 합참 정보 라인에 정보를 주지 않았을 리는 없다. 결국 CIA는 1950년 3월1일부터 6월25일까지 전쟁 발발 기미를 전혀 몰랐던 셈이다. 그러나 북한군의 38선에 대한 병력 증가가 남침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CIA도 우려하고 있었다. 합동정보단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5월15일에 작성 완료돼 6월19일에 보고된 ‘북한 정권의 현 능력’이라는 제하의 ORE 18-50 문서가 북한군 침략에 대한 CIA의 가장 최근 언급이라고 볼 수 있음. 이 문서는 38선상의 병력 증가가 ‘서울 점령을 포함, 남한에 대한 제한적인 단기 군사작전 전개를 가능케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음.

CIA는 국경지대의 탱크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나 국경지대 마을의 주민 소개나 군사도로 건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음. G-2(정보참모부) 극동 파견대(합참 합동정보단의 극동사령부 파견대)에 따르면 CIA의 반대를 무릅쓰고 G-2가 북한군의 군사 능력에 대해 언급했음. 이것이 북한군 전력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문서이며, 6월20일 통상 절차를 거쳐 합동정보단에 접수된 바 있음.

이 비밀 보고서가 CIA의 정보수집 능력을 질타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로 들이댄 것이 바로 북한의 국경지대 마을 주민 소개와 군사도로 건설이다. 전쟁 발발의 대표적인 징후인 국경 지대 주민 소개와 도로 건설에 대해서 CIA가 일언반구 없었다는 지적이다. 합동정보단 보고서는 이 두 가지 징후에 대한 현지 보고가 왜 누락됐는지 그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서 정보보고 계통을 조사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군 정보계통과 CIA가 6·25 발발을 전후한 시기에 북한군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커다란 이견을 보이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정보수집 및 배포과 책임자인 앤드류에 따르면, 최근의 현지답사 보고서 사본이 정보서비스단(SI, Service Intelligence) 요원들에게 연구용으로 제출되었음.

마을 소개와 군사도로 건설건에 대한 보고가 G-2에 제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 검사가 진행중임. 극동 파견대에 따르면, 만약 그러한 정보가 접수됐다면 매우 중요한 정보로 취급됐을 것이나 두 건에 대한 정보는 전혀 그들에게 접수된 바 없다고 함.

3월에 작성된 두 종의 주간 정보요약에서 G-2가 북한의 전시 대비태세 강화와 전력증강, 춘계 침략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움. 북한 병력 증강 상황에 대해 언급한 CIA의 ORE 18-50은 G-2의 요청에 의해 18개월 만에 처음 작성된 것인데, 북한군 병력증강을 지적한 극동 파견대 맥내어 대령의 의견을 CIA가 반대했음. 북한군의 군사 능력이 ORE 18-50에서 지적된 것만큼 높지는 않다는 것이었음.

우리는 CIA로부터 북한군의 침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접수한 바 없음.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 관련 정보에 관한 한 우리가 CIA로부터 북한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

미 육참총장 비망록

한반도 원자탄 사용 계획

6·25 당시 미국은 원폭투하 계획을 수립했다. 사실이다. 원자탄 사용을 계획하긴 했으나 실행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것은 고작해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떠돌던 공개된 비밀이었다.

한국의 공립학교 교과과정에는 6·25 당시 미국의 원자탄 사용계획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계획만 세웠을 뿐 정작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인가? 아니면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핵무기 사용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무지 때문인가?

태만 때문이든 무지 때문이든 혹은 의도적인 망각 때문이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거나, 사실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따라서 6·25 당시 미국이 원폭투하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은, 전쟁 발발 5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최소한 한국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사실인 동시에 사실이 아니라는 자괴적인 역설로 존재할 뿐이다.

1950년 11월20일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Collins)가 작성한 비망록은 이 역설을 역사의 장으로 끄집어낸다. 이 한 장짜리 비망록은 다른 1급 비밀문서와 서류 작성의 형식에서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비망록은 여타 서류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다른 서류와 똑같이 보관되고 똑같이 취급되며 똑같이 공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4문단짜리의 길지 않은 내용 치고는 너무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원자탄 사용이 검토됐던 1950년 11월은 전황이 분기점에 있던 시기다. 1950년 9월15일 인천 상륙작전으로 유엔군은 10월1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을 시작한다. 맥아더는 북한에 무조건 항복의 최후 통첩을 보내는 동시에 그 해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미8군 병력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한 다음날인 10월2일. 이날은 마오쩌뚱이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공군 일부를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한 날이기도 했다. 이때 맥아더의 판단은 “중국과 소련의 개입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10월15일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과 태평양의 웨이크 섬에서 만난다. 중국 및 소련의 참전 가능성을 짚어보고, 북한지역 접수에 따른 점령지 행동계획 및 통일이 된 후의 한국 부흥계획 등을 직접 만나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웨이크 섬에서 돌아온 맥아더는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로 날아와, 개전 초기인 6월29일 한강 전선을 시찰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선을 시찰하고 참전 병사들을 독려한다.

평양을 접수한 것은 이로부터 이틀 후인 10월19일이고, 또 일주일 후인 10월26일에는 한국군 6사단이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한다. 만주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일시에 역전되고, 1군단과 10군단 등 미군 주병력은 미 전사상 유례가 없는 후퇴 기록을 남기게 된다. ‘한국에서의 원자폭탄 사용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육참총장 비밀 비망록도 중공군 참전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1. 중공군의 명백한 한국전 개입과 유엔사 사령관에 대적하는 추가 병력투입 가능성이 다시 한번 유엔군이 원자탄을 사용할 가능성을 제기함. 현재는 유엔군을 위협할 만한 적군의 어떠한 병력 증강도 재래식 공중 폭격을 통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상황임. 합참이 이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함.

2. 합참이 한국에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견해 제출을 요구받을 것으로 사료됨. 또한 중공군이 전면적으로 참전할 경우, 중공군 주 병력과 보급품 집결지에 대해 원자탄을 사용하게 되면 유엔군의 방어 위치를 확고히 하거나 만주 국경으로 중공군을 조기에 퇴치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됨.

3. 위 1번항과 관련, 본관은 원자탄 사용 지시의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함. 이 조건에 따라 공격 가능한 목표가 설정될 수 있으며, 정책적 측면과 작전 측면에서 모두 어떤 추가된 준비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음. 이는 이 폭탄을 사용할 경우 적당한 시기가 언제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한 것임.

4. 따라서 본관은,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합참의 해당 위원회에 상정해 견해를 회신해줄 것을 건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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