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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한반도 민족주의와 양김의 모험

  • 김민웅 미국 뉴욕 길벗교회목사·정치학 박사

한반도 민족주의와 양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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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간 화해와 통일,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이산가족 상봉,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로 민족 운명을 새롭게 진전시키려는 노력이 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그야말로 우리가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웅변한다. 이 전환의 역사에 충실한 마음과 자세가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줄 것이다.》
남과 북, 그 새로운 민족주의의 시작

지 지난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굳게 맞잡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감동스러운 광경은 지난 50여년 간고(艱苦)의 역정을 겪었던 우리의 민족주의가 새롭게 소생하는 역사적 현장이었다. 우리의 분단은 남과 북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가 올바로 서는 일에서 그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로써 한반도 주변 열강의 패권전략에 희생되지 않을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을 비롯한 주변 열강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우려해온 것이 바로 ‘민족주의적 기류’ 또는 ‘민족주의적 정서’가 한반 도의 미래를 움직여 나가는 핵심적인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분단 해결의 과정에 민족 당사자 원칙이 더욱 확고해지고, 더 이상 외세가 개입 할 여지는 소멸되다시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우려는 우리에게 있 어서 그야말로 절절한 기원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끼친 영향과 공헌은 이 루 말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민족국가의 경계선을 허무는 세계화의 노도 앞에서 민족주의가 마치 구시대적 유물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지난 수년간 벌어지긴 했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이 너나 할 것 없는 뜨거운 민족정서로 확산되면서 사태는 달라지고 있다.

한때 민족주의에 대한 강조가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을 소화 하는 일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는 논의마저 나왔다. 아예 민족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 내부에 살아 있는 공동의 역사적 생명력을 우습게 여긴 허황된 외세추종적 논리와 주장에 불과했음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어느 가까운 동맹국가와도 나눌 수 없는 민족적 감격과 역사적 유대감을 남과 북이 공유하는 체험을 함으로써 냉전체제의 해체과정에 무엇이 가장 분명한 민족문제 해법의 지표인가를 혼란없이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아무리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 현실인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해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반만년 세월에 걸친 공동의 역사가 발휘하는 힘은 모든 차이를 압도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며

우리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남과 북, 공동의 생존전략은 우리 민족이 하나라는 것, 그리하여 그 하나됨의 혈통적 뜨거움을 누구에게도 앗길 수 없는 고유의 자산으로 삼아 우리의 근·현대사를 그토록 고단하게 해왔던 열강의 패권 전략을 함께 이겨내고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합하는 것에 관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민족주의는 남과 북이 공동으로 수립하고 관철시켜나가야 할 국제전략에 있어서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며 생명선이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 의 기본 성격은 이미 7·4 공동성명에서도 천명되었듯이 ‘자주’라는 한 마디에 명확하게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자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민족적 역량에 기초하여 독자적으로 풀어나가는 자세를 의 미한다. 이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야수의 발톱에 제물로 바쳤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엄숙한 민족적 의지와 결단의 산물이다. 이 역사의 유산을 포기하는 선택은 그 결과가 어떤 것이 될지 자명하다.

물론 이 민족주의는 자주를 내세운다고 해서 폐쇄적인 수구 논리 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오늘날과 같이 지구촌적 규모의 교류와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닫힌 민족주의’는 현실적으로도, 그리고 개념적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민족적 자주를 희생시켜가면서 세계화의 흐름에 동행하는 것은 민족의 운명을 고난에 빠뜨리는 일일 뿐이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이를 중심으로 세계질서의 새로운 창출에 당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바람직한 세계화의 원리인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새로운 식민지로의 전락과정이 된다. 기존 세계화는 국제 금융자본에 의한 지구적 규모의 식민지화를 그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새로운 수준의 민족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대외적 친선 관계를 확보해나가는 작업이 민족의 자주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외세도 우리 민족의 자주를 침해하려 들 경우 남과 북 모두 순순 히 굴종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공동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6월13일 순안공항에서 같은 차를 타고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그 어떤 외세도 민족문제에 끼어들 여지가 없음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이는 남북 정상의 만남과 대화를 주변 열강이 배후에서 음모적으로 조정할 수도, 혹은 각본에 따라 마음대로 관리할 수도 없다 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외세가 온갖 촉각을 세우며 우리 민족 의 단합과 공동의 국제전략 형성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 민족 내부의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연출한 것은 기존질서 타파에 민족주 의가 어떤 파괴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바로 이 힘을 새롭게 추진하기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사실에서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패권전략과 한반도

21세기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대치선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형성될 것이라 는 점은 누구에게도 분명하다. 미국의 세계전략상 지금과 같은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속도와 성장규모는 매우 위협적이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패권장악은 향후 미국에 있어 사활적 관건이라고까지 할 만한 상황이다.

미국은 한·미·일로 이어 지는 삼각점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압축해나가는 방식으로 자신 의 패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는 국제적 동맹체제를 굳히는 것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겨냥하는 목표인 것이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지역적 기초는 한국의 자원을 미국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일본의 후방배치 내지는 전진배치까지 가능하도록 한 미·일 가이드 라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군사전략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는 봉쇄정책을 펼치려 든다.

이에 더하여, 북한과 우호적 관계에 들게 되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을 측면에서 압박해 들어갈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미국은 대북한 정책의 기조를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내부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서 자신의 정책적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가 관심사항이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적 저항능력의 약화와 개방체제로의 유도가 대북정책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북한의 무장해제를 뜻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전략은 이미 그 의도가 노출돼 있다. 현실적으로 그 실현에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의 패권전략이 북한에 먹혀들기에는 역사적 경험과 전례, 그리고 북한의 외교적 원칙상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국이 우리에게 가해오는 압박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통한 대북 압박전술의 구사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거론해달라는 요청은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냉전체제가 풀리고 남북이 대화한다는 것은, 대(對)중국 패권전략적 목표에 봉사하는 한 반길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한반도 관리전략에 차 질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이러한 대중국 포위정책에 편승하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중국의 성장은 일본에도 막대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삼는 상황을 보호막으로 삼아 자신의 무장력 강화를 꾀하는 한편, 이 지역에서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착착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해서 이 지역에서 지금 당장 미군이 물러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될 경우 군사적 경쟁과 패권전략상 중국과 직접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존재는 당분간 필요하다는 견해다. 일본으로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을 미국을 통해서 관철하겠다는 셈이다. 이러한 판국에 한반도에 화해와 민족적 단결의 기류가 흐르는 것은 일본에 또 하나의 부담이 추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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