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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北의 낚시전술 vs 南의 그물전술

국내외 인사 20인이 말하는 통일게임의 전망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北의 낚시전술 vs 南의 그물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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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의 극적인 역전승인가, 아니면 남북한 모두의 윈-윈게임이었을까. 신동아 긴급 여론 조사는 우리 사회가 6·15 공동 선언 사항을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15 공동 선언 이후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밀어닥칠 것인가를 분석해 본다. 》
만고역적을 영접한 인민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났다. 6월13일부터 한국 전역에 몰아친 김정일 신드롬은 과히 충격이었다. 전격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는 김정일의 자신만만한 어조,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제스처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군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 3일 동안 한국 텔레비전 화면을 마음껏 누빈 최고의 ‘탤런트’였다.

조선인민군은 한국 대통령을 ‘만고역적(萬古逆賊)’으로 불러왔다. 그러한 만고역적을 향해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장 차민헌 대좌는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물론 북한은 언론 자유가 없어 DJ 신드롬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이 정상회담을 보도했으므로, 북한 사회가 받는 충격도 엄청났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 얽매이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남북 상공을 오가면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사상 최대의 외교전

전쟁이란 국익을 쟁취하기 위해 펼치는 최대의 ‘정치 행위’이다. 전시가 아닐 때는 외교전을 통해 국익을 다투게 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6·25전쟁 이후 최대의 남북 대결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이고 사상 최대의 외교전이었다. 사상 최대의 외교전을 펼칠 때는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법이다.

먼저 북쪽부터 살펴보자.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최대 고통은 경제붕괴다. 90년 이후 북한에서는 300여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이 벌어졌다면 그 지도자는 국민들로부터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조선조 왕조 체제를 인정하는 문화가 남아 있고, 또 강력한 군부가 떠받치고 있어 김정일 정권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폭풍우에 휩싸인 ‘종이배’처럼 언제 가라앉을 지 불안하기만 하다.

김정일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한데 자본은 서방국가가 쥐고 있다. 이런 나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이다 보면 “김정일, 너 정치 잘못했어. 물러나”라고 외치는 자유주의 사상이 따라 들어올 수가 있다. 자본주의의 ‘단물’(자본)은 빨아먹고, 단물을 따라 들어오는 ‘파리·모기’(자유주의 사상)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향하여

경제는 재건하면서도 권력은 계속 유지하는 사례로는 두 가지가 있다.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경제를 부흥시켰고 사후에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까지 받은 박정희 모델과,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는 개혁·개방으로 살려나가고 있는 중국식 모델이다. 박정희식 모델은 그래도 선거라는 ‘중간 평가’를 거치며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은 선거도 없는 일당독재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 둘을 합쳐 ‘개발독재’로 명명할 수가 있다.

김정일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중국식 개혁·개방의 ‘진부분 집합’거나 그 옆 동네 어디쯤으로 북한을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점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친절하게도 해답은 현실 세계가 가르쳐 주었다. 중국은 아쉬운 대로 조금씩 북한을 도와주긴 하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로 그 양이 너무 적었다. 미국·일본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에 자본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덜 적대적인 유럽 국가들도 “한국이 북한에 투자해야 우리도 믿고 들어갈 수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남은 것은 한국뿐이다. 한국이 투자하면 유럽국가가 따라 오고, 미국과 일본도 경제봉쇄를 풀고 북한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을 끌어들이다 보면 한국에 흡수통일될 수가 있다.

여기서 북한의 고민은 시작된다. ‘미끼’(자본)는 따먹고 ‘미늘’(낚시 바늘, 즉 흡수통일)은 삼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계가 던져주는 ‘단물’은 빨아 먹고, ‘파리·모기’를 막는 길은 무엇인가. 한번 게임을 벌여볼까….

게임을 벌이기 위해서는 먼저 김정일 중심으로 북한 인민이 뭉쳐야 한다. 그래서 수령론을 중심으로 한 주체사상을 완성했다. 수령론만으로는 안된다. 뭔가 눈에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실제로 북한이 미국에 맞서는 강성대국이라는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미사일을 시험발사해서 미국을 비롯한 온세계가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미국은 더욱 북한을 옥죄므로 북한의 선택지는 더욱 한국으로 축소된다. 이것이 북한의 딜레마였다. ‘한국을 끌어들여 보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중국을 방문해서 ‘결코 바보가 아님’을 입증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지근 거리에서 김정일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가 탈북한 A씨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구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일은 장쩌민(江澤民)한테서 4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미국에 맞서고 있는 중국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우군을 확보하고 ‘딴 주머니(4억 달러)’까지 찬 후 한국이 경제지원을 미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이를 걷어차겠다는 속셈으로 김대통령을 만났다. 한국이 조건 없이 지원한다면 받아 먹고 그렇지 않으면 내차버리면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을 살펴보자.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두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 번째는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아 사회간접자본과 포항제철 같은 기간 산업을 건설함으로써 발전 기틀을 마련했다.

두 번째로는 건설회사들이 월남과 중동에 진출해 건설 특수를 일으켜서 재도약하는 뜀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경제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런 기반도 흘러가 버리면 무용지물이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 자본을 축적해 고도화된 산업 구조로 도약하지 못하면 그 나라 경제는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한국은 그 동안 축적한 자본력을 토대로 첨단 산업 쪽으로 도약했다가 힘이 달려 하루아침에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한국으로서는 자본력을 모을 무대가 필요한데, 좌우를 둘러봐도 현재 한국 주력 산업으로는 자본을 모을 무대가 없다.

한국의 주력 산업체인 건설사들은 더 이상 일감을 찾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제조업체 역시 인건비 상승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언어가 통하고 노동력이 괜찮은 북한은 별천지다.

그래서 “북한 땅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다오”라는 여론을 만들어 왔는데, 가장 안전한 구조는 한국이 북한을 통치하는 통일뿐이다. 한국식 경제 체제 속에 북한을 흡수하는, 이름하여 ‘흡수통일’뿐인 것이다.

흡수통일은 무력통일을 대치하는 남측의 새로운 평화통일 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앞서 북한은 무력통일을 대체할 평화통일 방안으로, 남조선에 혁명으로 용공(容共)정권이 들어선 후, 남북을 합치는 ‘적화(赤化)통일’ 방안을 창출해 냈다.

낚시바늘을 던져라

적화통일을 선택한 후 북한은, 80년대부터 줄기차게 ‘고려연방제’를 제창했다. 북한에 견주어 한발 늦게 흡수통일안을 만든 한국은, YS 시절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DJ 시절에는 ‘3단계 국가 연합’ 방안을 내놓았다.

고려연방제는, 외교와 군사문제는 중앙정부가 갖고 나머지 내정권은 남북 정부가 갖는다는 뜻이므로 ‘1국2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통일 방안은 남북이 내정권은 물론이고 외교·군사권까지 가진 엄연한 ‘2국2제’, 위에서 경제교류부터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와 방법을 결정했으니 양쪽은 ‘링’에 올라가 시합을 벌일 수밖에 없다. 총력 외교전이라는 시합을 위해서는 작전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제시한 단물은 영락없이 빨아먹고 파리·모기는 여차하면 내쫓는다. 내부 단결을 위해서는 장군님(김정일)의 카리스마를 한껏 보여준 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래서 박지원-송호경이 4·8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을 만들 때 내쫓을 명분으로 “김대중 대통령‘요청’에 따라 회담을 연다”와 “‘상봉’과 “회담’을 가진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동시에 북한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을 서울에 보내 분위기를 띄웠다. 이때도 북한은 남측 요구에 따라 예술단을 보내주는 형식을 취해 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실리전을 펼쳤다.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부채질 까지 하는’ 1석3조를 거둔 것이다.

이러한 북한 전략은 북한을 넘보고 싶어 안달하는 한국에게 “이 낚시 바늘을 삼키면 만나 주지. 더욱 깊이 삼키면 만나 주지”하는 야멸찬 시험이었다.

힘센 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코뚜레를 뚫어야 ‘이랴 이랴’ 끌고 다닐 수 있다. 북한은 한국이라는 ‘위험한 소’를 통제하기 위해 코뚜레를 뚫는 심정으로 한국에게 낚시 바늘을 던진 것이다. 한국이 이 낚시 바늘을 삼켜야만 북한으로 들어올 한국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서….

이러한 북한 전략이 잘 드러난 것이 6월13일 순안공항에서 펼쳐진 김대통령 영접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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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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