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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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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고 있는 경제개발 방식은 일종의 자력 갱생형이 될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북한은 ‘조선식 혹은 우리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같은 모델을 생각할 것이다” 》
● 호기심 1

지난 5월 말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은둔의 왕국’ 최고 지도자의 17년 만의 나라밖 외출이었다.

베이징의 한 관측통에 의하면, 당시 장쩌민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면서 시종 종이 위에 뭔가를 메모했다고 한다. 장주석이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손수 메모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무슨 얘기를 했기에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열심히 메모까지 했을까?

● 호기심 2

6월13일 오전,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은 거대한 쇼를 펼쳐보였다.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가 맞이한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이벤트였다. 심지어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늦춘 것도 이날 영접행사의 효과 극대화를 노린 ‘연출’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을 정도다.

환영 인파가 양 정상의 이름과 ‘만세’를 연호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북한군을 사열하고 외교의전상 극히 이례적인 군의장대의 분열의식까지 치렀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그 뒤에 나왔다. 양 정상이 한 승용차에 나란히 동승하고 순안비행장을 떠난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전상의 파격이었다.

평양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는 그 한 시간, 남북 정상은 세상 어느 누구도 엿듣지 못하는 가운데 은밀한 시간을 가졌다. 과연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장쩌민 중국 주석의 메모

서양 속담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s the cat)”는 말이 있다. 지나친 호기심은 화(禍)를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두 가지 호기심은 한반도 주변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당사자들이 ‘당연히’ 가질 법한 호기심이다. 그중 상당수는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지금도 무진 애를 쓰고 있을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호기심이 지나쳐 고양이가 죽을 수도 있지만, 호기심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라는 무대에서 미미한 배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이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과 북한이 있다.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시종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고수해오던 북한은 왜 갑자기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고 중국을 방문했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반도문제는 한민족 내부문제로 남북한 쌍방이 해결해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이는 6월14일 밤 늦게 남북 정상이 서명한 ‘6·15 공동선언’ 첫 번째 항목으로 현실화됐다. 김위원장은 또 장쩌민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은 이제 막 고난의 행군을 끝마쳤으며 앞으로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발전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원은 북한의 현 상황으로 볼 때 밖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올해 내내 11월 대선 캠페인으로 어수선한 형국이고, 일본과의 수교협상과 그 과실인 청구권자금 역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북한에 당장 도움이 돼줄 수 있는 상대는 한국뿐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그랜드 디자인’의 시발점일 수 있다. 김위원장의 말마따나 (97년까지) ‘고난의 행군’을 지나 (98년부터) 강성대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북한이 다음 차례에 내보일 논리적 수순은 본격적인 경제재건이라는 것.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본격화될 북한의 경제재건 노력에서 한국은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물적 차원의 기반을 제공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중국도 북한의 주요 지원국이다. 일부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사실이지만,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에 향후 2년간 1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올해 지원분인 5억 달러 중 2억 달러는 식량으로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으로선 적어도 올해와 내년치 식량 걱정은 덜 수 있는 물량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에 가서 북한의 향후 진로와 전략을 설명하고 이런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혹은 북한이 구상중인 향후 한반도 주변의 정치적 세력구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협력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이는 미·일의 전역미사일방어(TMD) 구축문제 등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중국으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혹시 장쩌민 주석이 메모한 게 그런 내용, 이른바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아니었을까?

준비된 변화

북한은 이미 본격적인 변화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올해 1월 이탈리아와 전격 수교를 시발로 프랑스,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필리핀, 태국 등과 적극적인 외교교섭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초에는 비동맹 각료회의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지금 ‘은둔 사회주의 왕국’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이른바 전방위 외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주변 4강에 대한 외교도 전례없이 활발하다. ▲ 중국과는 3월5일 김위원장의 전격적인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방문에 이은 5월 말 방중(訪中) ▲ 러시아와는 지난 2월 러시아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조·러 신조약에 서명한 데 이어 푸틴 신임 대통령의 7월 평양방문 발표 ▲ 일본과는 작년 12월 무라야마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초당파 의원단의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수교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그 과정에 세계식량계획(WFP)를 통해 북한에 쌀 10만t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90년대 중반 이래 주된 ‘협상 파트너‘였던 미국과는 최근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문제와 대북 경제제재 추가완화,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를 터놓은 상태.

북한 내부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만 보면 작년 말 기업경영의 효율화를 위해 연합기업소를 해체하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경제사업에서 부쩍 실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북한판 실용주의’의 본격 대두다. 그런가 하면 올 신년사에서는 사상 중시, 총대(군사) 중시와 함께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내세워 경제건설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웬만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 성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당창건 55돌(올 10월10일)을 기점으로 정상적인 계획경제체제로 복귀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는 게 여러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

그러면 이런 북한의 변화는 단순히 최근 경제회복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보아야 할까? 다시 말해 98∼99년 어느 시점에 바닥을 치고 최악의 시기는 넘겼다고 평가되는 북한 경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 지도부는 경제난이 극에 달했던 97년에 이미 2010년을 목표 연도로 국가경제를 일정 궤도에 올려놓는다는 장기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주민들을 굶겨죽이는 그 와중에도 북한 지도부는 나름의 장기적 전략구도에 따라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구체적인 증거도 여럿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북한 당국이 97년 당시 농민시장 활성화 조치를 취했다가 다시 억제한 타이밍의 절묘함이나, 아사자가 속출하던 그 상황에도 통신망 정비와 도로공사를 벌인 예 등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북한이 단순히 생존에만 급급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의 와중에도 나름대로 중장기 국가발전 마스터플랜을 준비해오고 있었으며, 지금 그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도 이와 같은 구상이 한 가지 배경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른바 ‘2010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북한판 국가발전계획’에 따라 북한은 그동안 지역개발계획, 산업개발전략, 인재육성책 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시행해왔다고 말했다.

‘박정희 모델’ 혹은 중국식 개혁개방?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형태의 국가발전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일까? 한 나라의 총체적인 발전계획은 자신이 보유한 모든 자원과 가능성을 검토해 수립해야 하고,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 발전계획의 내용을 알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하지만 현재로선 지금까지 공개된 북한의 정책방향과 행태 등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다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활로에 대해 중국식 개혁·개방이나 박정희식 개발전략을 거론해왔다. 고작해야 6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금의 북한 경제가 기사회생해서 발전의 터빈을 돌릴 수 있는 방안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면 과연 북한은 이 두 가지 개발전략을 자신의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60∼70년대 한국식 개발모형, 일명 ‘박정희식 개발전략’의 요체는 ▲ 강력한 정부주도형 개발 ▲수출지향 경제 ▲ 소수 전략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로 요약되는 불균형 성장전략이었다. 말하자면 제한된 자원을 특정 산업에 집중 지원해 수출경쟁력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정부는 이를 집중 지원하는 전략이다.

제3세계 국가의 성장전략으로는 흔히 수출주도 공업화전략(EOI·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과 수입대체전략(ISI·Import Substitution Industry) 두 가지를 꼽는다. 박정희식 개발모델은 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역사적 결과로 본다면, 60년대 당시 수입대체전략을 채택했던 남미 여러 국가들은 결국 실패했고 한국은 신흥공업국으로 부상, 지금까지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모델이다.

많은 학자들은 박정희식 개발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서 당시의 전반적인 자유무역 분위기, 대내적 정치안정,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 외에도 ▲ 정부의 일관된 정책(지도자의 일관된 철학) ▲ 유능한 관료집단 ▲ 정부의 정책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에도 시장에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 등 몇 가지를 꼽는다.

그러면 지금의 북한은 60, 70년대의 한국이 갖고 있던 이러한 조건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일까? 연세대 정갑영 교수의 진단은 일단 부정적이다.

“북한에 한국식 모형이 성공적으로 도입되려면 적어도 몇 가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전면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경제부문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시장경제적인 유인을 과감하게 도입해야만 한다. 모든 업종에서 민간의 실리추구를 용인하고, 국영부문에 의한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며, 시장에서 자유로운 이윤추구 행위를 보장해야만 한다.(…)

또한 전면적인 체제 개방도 이뤄져야 한다. 체제개방과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외국인 투자도 이뤄지고, 기술도입도 가능하고, 외국으로 수출도 가능해진다.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한국적 개발전략의 북한 적용 가능성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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