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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통일한국의 大洋해군 전략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21세기 통일한국의 大洋해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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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동해에서 한·일 해군간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결과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미해군의 역할감소,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해군력 강화, 해로안전위협, 바다자원 확보 경쟁 등은 한국해군의 대양해군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해군력 강화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절대적 요소다. ‘바다 분쟁의 시대’를 맞아 정밀 진단한 한국 해군의 경쟁력과 대양해군 전략.》
광복절 56돌을 맞이한 2001년 8월15일. 한·일 두 나라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동해로 쏠려 있었다. 이날 오전 동해에선 양국 해군의 국운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태평양쪽에서 북상하는 태풍 린다의 영향으로 으르렁거리는 파도 위로 미사일과 포탄이 빗발쳤다. 두 나라 해군이 이처럼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는 임진왜란 이후 400년만의 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빛나는 승전사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한가닥 기대감에 가슴 졸이고 있었다.

양국의 무력충돌은 한 달 전 중무장한 일본 극우파 행동대원 500여명이 독도를 무단점령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도를 지키던 한국의 경찰 병력은 몰살당했고 독도의 서도 산꼭대기에는 일장기가 휘날렸다. 한국 정부는 즉각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일본인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코방귀를 뀔 뿐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는 원래 일본 영토이므로 일본인들의 독도 정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행동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 틀림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대일규탄시위가 벌어지는 등 한국의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일본 함대는 재빠르게 독도 주변을 에워쌌다. 한국 해군이 독도 점령에 대한 대응태세를 미처 결정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당황한 한국 정부는 오래 된 우방인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 국무부는 “국제법에 따라 해결할 일”이라며 중립을 취했다.

미국의 침묵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은 한·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으로 얽혀 있는 3국간의 미묘한 군사관계 탓에 독도 분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처지가 아니었다. 여기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마키아스실이라는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캐나다와 다투고 있는데 그 전개 양상이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마찰과 비슷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 해안에 위치한 이 섬을 현재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캐나다는 1832년 이 섬에 등대를 설치하고 경찰경비대가 순찰활동을 벌이며 100년 이상 실질적으로 점유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1984년부터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말하자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비슷한 셈이다.

일본의 독도 점령

게다가 국제사회의 여론은 한국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일본은 그동안 총리와 각료들이 툭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왔고 국제무대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며 명분을 쌓아왔다. 한국이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해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국가들이 일본측 주장에 동조하게 됐다. 2000년 말 일본이 유엔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자 국제 군사전문가들은 일본의 독도 무력점령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유엔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보리가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독도 사태를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이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 중국이 일본의 무력사용을 강력히 규탄했지만 안보리는 일본의 도발에 대한 어떠한 제재방안도 결정하지 않았다. ‘주권 행사’라는, 경제대국 일본의 주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주요 국가들은 “이 사태가 양국간 무력충돌로 비화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점잔을 뺐다.

안보리가 고작 한 일이라곤 한·일 양국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그 판결에 따르기를 권유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안보리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독도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명백한 영토 분쟁으로 굳어졌다. 독도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려는 일본의 숙원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니만큼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이유가 없다며 그간 일본측 움직임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한국 정부는 이제 일본의 속셈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판결이 강제력을 띠지 않는 까닭이다. 과거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비글해협 분쟁에서 알 수 있듯 한쪽이 재판결과에 불복하면 그만이다. 일본으로선 꽃놀이패인 셈이다. 물론 만에 하나 한국이 패소할 경우 한국 또한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다. 그러므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때 두 나라는 내심 전쟁 불사방침을 다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승소 판결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한국 외교통상부 관리들은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일본이 오랫동안 이에 대한 준비를 해왔으며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자료를 들이밀고 있는 만큼 한국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국가들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지위와 영향력은 판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터였다.

싸움은 바다에서부터

그러나 급변하는 상황은 외교통상부의 ‘한가한’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8월 초순 우리 어선 한 척이 독도 근해에서 납치되는 사건은 그 신호탄이었다.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대 행렬이 일본대사관을 에워싸는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일부 극우 언론은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릴 것 없이 해군 함대를 출동시켜 당장 독도를 탈환하자”며 전쟁불사 여론을 주도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며칠 뒤에 발생했다. 해군 1함대 소속 고속정 한 척이 독도 앞바다에서 일본 군함의 포사격에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 지휘관인 정장(대위)을 비롯해 고속정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 28명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독도 점령 직후 12해리(1해리는 1852m) 영해법을 적용, 독도를 기점으로 12해리 안의 해역을 영해로 선포한 후 이를 한국에 공식 통보한 바 있다. 그에 따라 한국측은 일단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해 군함이나 어선이 일본측이 설정한 해역 안에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다만 독도로부터 12해리 밖에 구축함이 포함된 1개 전대를 배치, 무력대응의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문제의 고속정이 격침된 곳은 일본이 영해라며 선을 그은 해역 안쪽이었다. 이 고속정이 어떤 경위로 통제선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정장이 울분을 못 참아 일으킨 행동이라느니 엔진이 고장났다느니 한국 해군 지휘부가 일본을 떠보기 위해 고의로 침입시켰느니 하는 설이 분분했다.

다음날 오전 해군 함정 격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엔 공군이 초비상사태를 맞았다. 독도 정세를 정탐하던 한국 공군의 정찰기 한 대가 일본 함대의 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된 것. 일본 정부는 “한국군 전투기가 일본 영공을 침입해 격추했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경악과 충격의 늪에 빠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날 오후 긴급히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결전 의지를 밝혔다. 이어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각 군 지휘관회의가 열렸다. 군사력의 열세를 조심스레 제기하는 신중론은 강경론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국익을 생각해서나 국민 정서를 감안해서나 더 이상 외교적 수단에만 기댈 수 없다는 강경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군 지휘관들은 이제 일본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그들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특히 해군 지휘관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싸움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될 게 분명했다. 동해에서 벌어질 양국 해군간의 전투가 이 전쟁의 성패를 가늠할 잣대가 될 터였다.

8월12일 오후 2시. 경남 진해의 작전사령부에서는 해군 지휘관회의가 열렸다. 동해와 평택, 부산에서 달려온 각 함대사령관들과 예하 전단장 전대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확대지휘관회의였다. 회의석상에서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현재의 전력이 일본에 비해 열세라는 데 공감했다. 심지어 일본 해군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한나절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 전쟁을 거부할 어떤 명분도 힘도 없었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해군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한반도 본토에서 200여㎞나 떨어진 독도 탈환작전에 육군이나 공군이 전면에 나설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해군 지휘관들은 2·3함대 소속 일부 구축함을 동해로 이동시켜 1함대를 지원하는 방안과 더불어 잠수함 전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에 대해 토의했다. D-day를 광복절인 8월15일로 잡은 이날 회의 결과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은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감안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일찍이 국제해양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은 한일간 독도 영유권 다툼이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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