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호

21세기 통일한국의 大洋해군 전략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0-04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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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동해에서 한·일 해군간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결과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미해군의 역할감소,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해군력 강화, 해로안전위협, 바다자원 확보 경쟁 등은 한국해군의 대양해군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해군력 강화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절대적 요소다. ‘바다 분쟁의 시대’를 맞아 정밀 진단한 한국 해군의 경쟁력과 대양해군 전략.》
    광복절 56돌을 맞이한 2001년 8월15일. 한·일 두 나라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동해로 쏠려 있었다. 이날 오전 동해에선 양국 해군의 국운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태평양쪽에서 북상하는 태풍 린다의 영향으로 으르렁거리는 파도 위로 미사일과 포탄이 빗발쳤다. 두 나라 해군이 이처럼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는 임진왜란 이후 400년만의 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빛나는 승전사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한가닥 기대감에 가슴 졸이고 있었다.

    양국의 무력충돌은 한 달 전 중무장한 일본 극우파 행동대원 500여명이 독도를 무단점령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도를 지키던 한국의 경찰 병력은 몰살당했고 독도의 서도 산꼭대기에는 일장기가 휘날렸다. 한국 정부는 즉각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일본인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코방귀를 뀔 뿐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는 원래 일본 영토이므로 일본인들의 독도 정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행동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 틀림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대일규탄시위가 벌어지는 등 한국의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일본 함대는 재빠르게 독도 주변을 에워쌌다. 한국 해군이 독도 점령에 대한 대응태세를 미처 결정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당황한 한국 정부는 오래 된 우방인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 국무부는 “국제법에 따라 해결할 일”이라며 중립을 취했다.

    미국의 침묵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은 한·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으로 얽혀 있는 3국간의 미묘한 군사관계 탓에 독도 분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처지가 아니었다. 여기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마키아스실이라는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캐나다와 다투고 있는데 그 전개 양상이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마찰과 비슷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 해안에 위치한 이 섬을 현재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캐나다는 1832년 이 섬에 등대를 설치하고 경찰경비대가 순찰활동을 벌이며 100년 이상 실질적으로 점유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1984년부터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말하자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비슷한 셈이다.

    일본의 독도 점령



    게다가 국제사회의 여론은 한국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일본은 그동안 총리와 각료들이 툭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왔고 국제무대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며 명분을 쌓아왔다. 한국이 일본과의 마찰을 우려해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국가들이 일본측 주장에 동조하게 됐다. 2000년 말 일본이 유엔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자 국제 군사전문가들은 일본의 독도 무력점령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유엔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보리가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독도 사태를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이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는 중국이 일본의 무력사용을 강력히 규탄했지만 안보리는 일본의 도발에 대한 어떠한 제재방안도 결정하지 않았다. ‘주권 행사’라는, 경제대국 일본의 주장이 먹혀 들어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주요 국가들은 “이 사태가 양국간 무력충돌로 비화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점잔을 뺐다.

    안보리가 고작 한 일이라곤 한·일 양국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그 판결에 따르기를 권유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안보리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독도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명백한 영토 분쟁으로 굳어졌다. 독도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려는 일본의 숙원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니만큼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이유가 없다며 그간 일본측 움직임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한국 정부는 이제 일본의 속셈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형식적인 측면이 강하다. 판결이 강제력을 띠지 않는 까닭이다. 과거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비글해협 분쟁에서 알 수 있듯 한쪽이 재판결과에 불복하면 그만이다. 일본으로선 꽃놀이패인 셈이다. 물론 만에 하나 한국이 패소할 경우 한국 또한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다. 그러므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때 두 나라는 내심 전쟁 불사방침을 다지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승소 판결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한국 외교통상부 관리들은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일본이 오랫동안 이에 대한 준비를 해왔으며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자료를 들이밀고 있는 만큼 한국이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국가들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지위와 영향력은 판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터였다.

    싸움은 바다에서부터

    그러나 급변하는 상황은 외교통상부의 ‘한가한’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8월 초순 우리 어선 한 척이 독도 근해에서 납치되는 사건은 그 신호탄이었다.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대 행렬이 일본대사관을 에워싸는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일부 극우 언론은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릴 것 없이 해군 함대를 출동시켜 당장 독도를 탈환하자”며 전쟁불사 여론을 주도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며칠 뒤에 발생했다. 해군 1함대 소속 고속정 한 척이 독도 앞바다에서 일본 군함의 포사격에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 지휘관인 정장(대위)을 비롯해 고속정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 28명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독도 점령 직후 12해리(1해리는 1852m) 영해법을 적용, 독도를 기점으로 12해리 안의 해역을 영해로 선포한 후 이를 한국에 공식 통보한 바 있다. 그에 따라 한국측은 일단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해 군함이나 어선이 일본측이 설정한 해역 안에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다만 독도로부터 12해리 밖에 구축함이 포함된 1개 전대를 배치, 무력대응의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문제의 고속정이 격침된 곳은 일본이 영해라며 선을 그은 해역 안쪽이었다. 이 고속정이 어떤 경위로 통제선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정장이 울분을 못 참아 일으킨 행동이라느니 엔진이 고장났다느니 한국 해군 지휘부가 일본을 떠보기 위해 고의로 침입시켰느니 하는 설이 분분했다.

    다음날 오전 해군 함정 격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엔 공군이 초비상사태를 맞았다. 독도 정세를 정탐하던 한국 공군의 정찰기 한 대가 일본 함대의 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된 것. 일본 정부는 “한국군 전투기가 일본 영공을 침입해 격추했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경악과 충격의 늪에 빠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날 오후 긴급히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결전 의지를 밝혔다. 이어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각 군 지휘관회의가 열렸다. 군사력의 열세를 조심스레 제기하는 신중론은 강경론자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국익을 생각해서나 국민 정서를 감안해서나 더 이상 외교적 수단에만 기댈 수 없다는 강경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군 지휘관들은 이제 일본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그들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특히 해군 지휘관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싸움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될 게 분명했다. 동해에서 벌어질 양국 해군간의 전투가 이 전쟁의 성패를 가늠할 잣대가 될 터였다.

    8월12일 오후 2시. 경남 진해의 작전사령부에서는 해군 지휘관회의가 열렸다. 동해와 평택, 부산에서 달려온 각 함대사령관들과 예하 전단장 전대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확대지휘관회의였다. 회의석상에서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현재의 전력이 일본에 비해 열세라는 데 공감했다. 심지어 일본 해군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한나절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 전쟁을 거부할 어떤 명분도 힘도 없었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해군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한반도 본토에서 200여㎞나 떨어진 독도 탈환작전에 육군이나 공군이 전면에 나설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해군 지휘관들은 2·3함대 소속 일부 구축함을 동해로 이동시켜 1함대를 지원하는 방안과 더불어 잠수함 전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에 대해 토의했다. D-day를 광복절인 8월15일로 잡은 이날 회의 결과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은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감안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일찍이 국제해양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은 한일간 독도 영유권 다툼이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호주국립대 국제관계학 교수인 앤드류 맥은 동북아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날 위험성이 높은 지역으로 독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위험순위로 따지면 일본과 중국, 대만 사이에 분쟁이 되고 있는 조어대(센카구 열도) 다음이다. 앤드류 맥은 “독도 분쟁으로 한국의 광범위한 민족주의자들과 일본의 소수 우익단체가 또다시 분노할 수 있다”며 “만약 앞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구역 내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을 일본이 납치하려 들고 한국이 자국 어선을 물리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이는 쉽게 한·일간 해양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태국 SEAPOL 연구실장인 프랜시스 라이도 동아시아 해양에서 영토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독도를 꼽고 있다. 라이는 “한국인들에게 독도 문제는 극도의 감정적인 사안”이라며 특히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및 어로권 확보문제가 독도분쟁에 씨앗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배진수씨에 따르면 일본의 독도 무력침탈 개연성은 매우 높다. ‘STRATEGY 21’(한국해양전략연구소 간) 제2호에 실린 배씨의 논문 ‘독도의 군사위기 가능성 분석’은 독도 위기론의 실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배씨는 논문에서 6단계로 진행되는 일본의 독도침공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단계별 상황을 분석하는 한편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무력포기 헌법조항 개정, 러시아와 북방도서 문제 정리 등 ‘사전정지작업’을 한 뒤 독도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독도 영유권 분쟁은 일본의 의도대로 유엔총회에 상정되는 데 이어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간다. 그런데 한·일 두 나라 모두 자국이 패소할 경우 재판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군사대결 상황으로 직결된다. 배씨는 결론을 통해 “독도 문제는 이미 분쟁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독도 경비 책임을 경찰에서 군으로 바꿀 것과 해·공군력의 증강 등 대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상 시나리오에서 상정한 대로 동해에서 한일 해군간 전투가 벌어질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한국 해군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 곧 대양해군화의 당위성을 검토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도분쟁 시나리오는 ‘해군력이 왜 증강돼야 하는가’라는 케케묵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암시하고 있다. 그 답변은 해군의 전형적 임무를 설명하는 데 적절해 보인다. 그렇지만 해군력 증강이 단순히 바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만은 아니다.

    ‘바다를 통해 야기되는 북한 및 외부의 위협세력으로부터 전쟁을 억제한다는 일차적 임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해양에서의 국가이익을 수호하며, 국가정책을 지원하고 국위를 선양한다’.

    해군본부가 1997년 발행한 기관지 ‘해군’에 나오는 해군의 임무다. 이 짧은 문구는 한국 해군의 지향점과 발전방향을 잘 요약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대양해군을 주장해왔다. 1995년 4월 제20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한 안병태 제독은 취임사에서 ‘대양해군 건설’을 주장해 국방부 정책결정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21대 총장으로 취임한 유삼남 제독도 대양해군의 표어를 내걸었다. 이후 대양해군은 한국 해군의 목표가 됐다. 대양해군의 이미지가 풍기는 매력은 해군의 건배 구호에도 영향을 끼쳤다. 해군 술자리에선 건배 제의를 하는 사람이 ‘바다로’를 외치면 좌중은 ‘세계로’라고 받는다.

    바다 분할의 시대

    그러나 대양해군의 꿈이 펼쳐지기엔 수십 년의 전통을 지닌 육군 위주의 국방정책이 너무 단단하다. 해군교육사령관을 역임한 강영오 예비역 제독에 따르면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 안팎에서 공감대를 얻는 듯 싶었던 대양해군 논리는 육군을 중시하는 대륙학파들의 강력한 반론에 움츠러들었고 1997년 국가환란의 위기를 맞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이라는 비판이 일자 더 이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STRATEGY21 제2호’-‘한국의 균형해군전략’).

    한국 해군이 그토록 꿈꾸는 대양해군이란 무엇인가. 세계 각국의 해군은 그 규모에 따라 연안해군, 지역해군, 대양해군, 세계해군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 해군은 그중 가장 소규모인 연안해군으로 분류된다. 연안해군은 영해로 인정되는 해역에서 극히 제한된 임무만 맡는 해군이다. 이에 반해 대양해군은 연안으로부터 1000해리 이상 떨어진 넓은 해역에서 작전이 가능한 해군을 일컫는다. 영해 방어라는 소극적 임무를 수행하는 연안해군과 달리 해양자원 확보와 해상교통로 보호 등 국가의 해양권익을 자주적으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해군이다. 말하자면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이 된다는 것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던 ‘우물안 개구리’의 전략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대양해군의 상징은 항공모함이다. 대양해군 비판론자들의 주논리는 중국 일본 및 러시아로 둘러싸인 한반도 주변의 좁은 바다에 무슨 항공모함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영오 예비역 해군제독의 반론은 귀기울일 만하다.

    “항공모함은 대양작전만을 위해 만든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항공모함은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바다로부터 육지에 대해 항공전력을 투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한반도와 같이 동서양해로 길게 뻗은, 폭이 좁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가장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한편 지역해군은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현재 한국 해군은 연안해군에서 지역해군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있다. 세계적 해군은 말 그대로 전세계 어느 해역에서나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활동이 가능한 해군으로 구소련이 쇠퇴한 지금 미해군만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해군의 대양해군화는 왜 필요한가. 대양해군 논리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선 먼저 한반도 주변을 비롯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는 바야흐로 바다 분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의 국경은 매우 유동적이다. 해군력이 강한 나라에는 5대양이 잠재적 영토다. 드넓은 바다 속에 숨어 있는 갖가지 천연자원을 마음껏 확보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해군력이 약한 나라는 자국 연안을 지키는 데 급급할 뿐이다. 이는 그 나라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바다로, 세계로!’

    냉전이 끝난 후 바다와 해군의 중대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다. 경제수역을 보호하고 해상수송로를 확보하는 데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 존망이 걸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걸프전에서 드러났듯 해상수송로가 봉쇄되면 경제력은 순식간에 무기력해진다. 최근 한국 어민들에게 고통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한·일어업협정은 21세기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겪을 거대한 ‘바다 전쟁’의 서곡이다.

    해양은 육지면적의 2.5배, 11배에 이르는 부피, 300배의 생활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육지자원 고갈에 따라 각국이 펼치는 바다자원 확보 경쟁은 분쟁의 강력한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육지에서 망간 니켈 코발트 구리 등 세계 4대 전략금속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41∼112년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바다에는 188∼1만1904년 동안 사용 가능한 양이 남아 있다. 이미 세계 총 석유생산량의 30%는 해양유전에 의존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19일 해군 2함대사령부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 앞바다에서 열린 제8회 함상토론회에 참석, 한국 해군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토론회는 평택 기지에 정박중인 한국 해군 최대의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에서 이뤄졌다. 숭실대 김문경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한·중·일 3국의 해양학자 10명이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로 나선 가운데 이수용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전·현직 해군 장성 및 영관장교들과 해군 유관단체·언론계·학계 인사 등 200여명이 객석 토론자로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장보고 대사의 해양경영과 21세기 한국 해군의 해양안보’라는 주제를 놓고 약 5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통일신라 때 사람인 장보고가 해군 함상토론회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 해양 개척사의 선구자이기 때문. 그는 약 1200년 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 동북아 역사상 처음으로 해상권을 장악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통제하던 완도 주변 바다는 당시 한·중·일 3각 교역의 주요 통로였다. 기록에 따르면 청해진 설치 후 해적들이 자취를 감췄으며 그 일대를 지나가는 배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장보고의 허락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그의 해상통제권은 확고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신라 상인들은 마음놓고 바다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장보고의 해양경영은 한국 해군의 대양해군화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 강영오 전제독은 ‘해양력이 국가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역사에 나타나는 해양력의 번성기는 9세기 초엽 신라의 장보고에 의한 해양경영의 시대와 196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두 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해양경영과 해양안보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다. 해양경영에는 반드시 해양안보가 뒷받침돼야 하고 해양경영이 따르지 않는 해양안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해양경영과 해양안보 두 측면에서 대양해군화의 당위성을 검토하기로 한다.

    해양경영의 핵심 요소는 해상교통로(해상수송로) 보호와 해양자원 확보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시대의 월터 롤리 경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나아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또 18세기 미국의 해양전략가 알프레드 마한은 해군력을 “국가의 부와 안정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해군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국가 경제에 직결되는 요소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이춘근 박사의 ‘국가경제와 해군력의 규모’라는 논문에 따르면 과거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했던 국가들은 모두 해군력이 강한 나라들이었다. 동시에 이들 강대국들은 해군력의 쇠퇴와 더불어 국운도 쇠퇴했다. 이박사는 또 ‘미국의 동아시아 해군력 변동현황과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지난 500년 동안 세계를 주도한 패권국은 항상 해양국가였으며, 이들에 대한 도전자는 18세기 이후부터는 대륙에서 나왔는데 패권을 결정하는 전쟁에서 해양국가들이 궁극적인 승자가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쉽게 입증된다. 15세기 무렵 국제 상권을 손아귀에 넣었던 나라는 막강한 해군력과 상선대를 보유했던 포르투갈이다. 이어 16세기엔 무적함대를 앞세운 스페인이 번영의 꽃을 피웠다. 네덜란드가 17세기에 세계무역을 지배한 배경에도 강력한 해군력이 있었다. 18세기 이후 20세기초까지 세계의 패권국으로 군림한 영국의 해군력은 당시 세계 해군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독일의 당시 해군력은 영국 다음이었다.

    해군력과 경제력 및 세계지배력의 관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일어서는 데는 강력한 해군력이 뒷받침됐다. 1차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미해군 예산은 연방 예산의 20%로 급상승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미국의 해군력은 앞선 시대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이 그랬듯 세계 해군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인 제임스 토마슨은 ‘해양력이 국가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20세기에 거대한 해양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현재의 부유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며,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도 존재치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질적인 면에서 세계 2위의 해군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의 경제력 팽창 역시 해군력 증강과 동시에 이뤄졌음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육로와 항공로의 눈부신 발전에도 해상교통로가 여전히 국가간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일찍이 알프레드 마한이 말한 대로 “값싸고 쉬운 길”인데다 대륙간 대규모 물자 수송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 교역량의 75%에 해당하는 약 47억톤의 화물이 바다를 통해 운반됐다. 세계 평균으로 보면 항공운송은 해상운송의 0.2∼0.3%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의 경우 1989년 해로를 통한 총수송량이 12억1000만톤이었는데 1995년에는 15억4000만톤으로 무려 27%의 증가율을 보였다. 아시아로 들어오는 상품 중 특히 중요한 것은 식량과 에너지다. 1995년 아시아로 향하는 식량은 전세계 식량 수송량의 46%를 차지했다. 원유 수송도 만만치 않다. 이춘근 박사의 ‘한국의 해로안보와 해군력’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막대한 양의 원유를 수입하는 일본과 한국은 물론 1994년부터는 중국도 수입 대열에 끼어들었으며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는 아시아 경제발전에 기본이 된다. 아시아 나라들이 급격히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유 수입과 관련한 해로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것.

    특히 무역강국인 한국의 해상운송 의존도는 세계적으로 높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은 수출과 수입 물동량의 99.7%를 해양 항로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조선수주량 세계 1위, 어획량 세계 8위, 무역량 세계 10위의 ‘해양국가’치고는 해군력이 턱없이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대국과 해군력

    이춘근 박사가 ‘국가경제와 해군력의 규모’라는 논문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 해군력은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중 거의 최하 수준이다. 주요 전투함, 곧 호위함급 이상 전투함 및 잠수함의 숫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력 크기 순으로 살펴보면 영국 72척, 중국 80척, 프랑스 73척, 일본 84척, 인도 40척, 대만·독일이 각 38척, 스페인·브라질이 각 24척, 이탈리아 37척, 인도네시아 19척, 캐나다·네덜란드 각각 21척, 페루 22척…. 한국 해군은 17척이다.

    톤수를 비교해도 한국 해군의 열세는 마찬가지다. 톤수는 대체로 함정 수에 비례하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41만6000톤, 중국 17만6000톤, 프랑스 36만8000톤, 일본 29만4000톤, 인도 21만5000톤, 대만 9만9000톤, 독일 8만4000톤, 스페인 7만8000톤, 브라질 8만9000톤, 이탈리아 9만2000톤, 인도네시아 7만톤, 캐나다 9만7000톤, 네덜란드 7만1000톤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3만2000톤에 지나지 않는다. 톤수가 크다는 것은 전투력이 세다는 것을 뜻한다.

    광개토대왕함에서 열린 함상토론회에서 한국해양대 허일 교수는 현대 해전사에서의 사례를 들어 해상교통로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의 대결. 당시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갖췄으면서도 패전 위기까지 맞았다. 그것은 독일 순양함과 잠수함이 영국 및 그 우방국의 상선을 숱하게 침몰시킨 결과였다. 그 탓에 영국의 수송항로가 마비되고 영국 경제는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것도 해상교통로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다. 개전 초기 진주만 기습으로 기선을 잡은 일본은 재빠르게 주력부대를 남양군도로 진주시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남양군도를 선점해 공업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성능 좋은 상선의 상당수를 군함으로 개조해 상선의 수송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진주만의 피해를 수습한 미국은 남양군도와 일본 사이의 항로상 요점에 항공모함을 배치해 일본 상선이 나타나면 함재기를 띄워 가차없이 격침해버렸다. 그 결과 원료 공급원과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항로가 마비돼 군수품의 원료 공급이 중단됐다. 태평양 전역에 배치된 수십만의 일본군은 식료품과 실탄이 더 이상 지급되지 않아 철조망 없는 포로수용소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반면 1차세계대전 때 상선 보호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미국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신속하게 전시표준선을 건조했다. 군수물자와 보급품을 가득 실은 방대한 상선대는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미군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보급품을 충분히 공급했다.

    한국군은 창군 이후 두 차례 전쟁을 경험했다. 하나는 6·25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월남전이다. 그런데 두 전쟁 모두 한국 상선과는 연관성이 없었다. 무기와 군수품 등 전쟁물자의 거의 전량을 미군의 지원에 의존한 까닭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해군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됐다. 해상운송과 전쟁수행능력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 부족은 해군에 대한 투자를 인색하게 만들었다. 미군의 우산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할 줄만 알았지 스스로 우산을 펼 생각은 못했던 셈이다.

    배타적 경제수역 시대

    위기는 미군의 우산이 갑자기 접히는 시점에 찾아올 것이다. 허교수의 논리는 결국 대양해군으로 귀착한다.

    “한국 해군은 연안해군의 범주를 벗어나 대양해군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한반도 주변과 관련되는 주요 해상교통로는 우리 해군의 힘으로 확보해야 하며 자국상선대의 병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 해군의 대양해군화 전략은 미해군의 감축에 따른 힘의 공백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의 해군력은 축소되고 있으며(표1) 태평양 해역에서는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 해군 기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마저 벌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해군력은 놀라운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이에 놀란 싱가포르 대만 및 태국도 빠른 속도로 해군력을 키우고 있다.

    해로의 안전확보에 강력한 해군력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는 해적의 위협. 1998년 발생한 일본 선적 텐유호 사건에서 보듯 국제법에 따른 해결엔 한계가 있다. 이 배의 선장과 기관장은 한국인이었지만 선원 13명은 중국인이었다. 해적이 납치했던 이 배는 중국의 양자강 항구에서 발견됐는데 선원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의 생명선이 지나는 동중국해와 말라카해협 일대는 세계 최악의 해적 출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춘근 박사의 ‘한국의 해로안보와 해군력’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1992년 이래 아시아 지역에서 해적의 공격은 약 40% 증가했으며 오늘날 세계 해적사건의 2/3가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1998년 1년 동안에만도 67명의 선원이 해적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66명이 아시아에서 당했다. 이런 위협으로부터 자국 상선을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해군 함정을 동원하는 것이다. 상선을 호송하는 수상전투함은 해로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의 의도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해군은 이런 일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 해군은 호송은 고사하고 근해 및 항만 보호에도 벅찬 형편이다.

    지난 5월26일 기자와 만난 이춘근 박사는 “냉전이 끝났기 때문에 해군이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념의 시대가 아닌 실리의 시대에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다가 분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박사에 따르면 냉전 당시 자본주의국가와 공산주의국가의 대결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해양세력동맹에 속하면서도 육군에 초점을 맞춰 군사력을 증강해왔다. 그 결과 탈냉전 시대에 대처할 해군력을 갖추지 못했다.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해양안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영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위권을 갖추고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냉전이 끝난 후 이념 대신 등장한 국가 이익은 국제관계를 더 복잡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었다. 영원한 우방도 적국도 없다. 한·중, 한·일, 중·일 등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 사이에는 영토분쟁 자원확보경쟁 등 새로운 갈등요인이 생기고 있다. 이춘근 박사의 ‘탈냉전 및 배타적 경제수역 시대의 한국 해군의 역할과 사명’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EEZ, 곧 배타적 경제수역 시대를 맞아 동아시아 해상에는 심각한 영토분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981년 국제해양법회의의 결정에 따라 1994년부터 각국에 적용된 EEZ는 영해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연안에서 200해리에 이르는 바다가 영해에 포함된 것이다. 해양수산개발원 진형인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60여 연안국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 경우 전 해양의 36%, 어업생산량의 90%, 해저석유 부존량의 90%가 포함된다. EEZ를 선포하면 해당 수역에서 어획권 확보는 물론 갖가지 생물과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관리에 관한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므로 주변국과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동해와 서해에서 각각 상대국간 거리가 400해리가 안 되는 한·중·일 3국은 EEZ가 겹쳐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 겹칠 땐 중간선을 그어야 하는데 어느 지점을 EEZ 기점으로 삼느냐는 문제로 다툴 수밖에 없다.

    최근 한·일어업협정 체결과정에 불거진 독도 영유권 논란이 그 단적인 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협정을 통해 독도는 주인을 잃어버렸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일간 분쟁에서 일본은 진작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5월 독도를 EEZ 기점으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반면 한국 정부가 1997년 7월 발표한 EEZ 기점은 울릉도. 결국 양국은 99년 1월22일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을 통해 울릉도 기점 35해리와 일본의 외곽섬 오키도 기점 35해리까지를 각각의 EEZ로 삼고 그 중간에 있는 독도는 공동관리 성격의 ‘중간수역’에 포함시켰다. 한국의 영토임에도 그 앞바다에서 한국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조약이 맺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해에서도 EEZ 갈등이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한·중간 거리가 한·일간 거리보다 더 가깝기 때문에 EEZ 설정이 동해에서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에 하나 200해리가 겹치는 수역 또는 접경해역에서 원유라도 발견되면 어떤 사태가 빚어질 것인가. 분명한 것은 두 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이나 국제해양법이 이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중국이 가장 먼저 취할 조치는 문제의 해역에 해군 함대를 보내는 일일 것이다.

    한편 일본과 중국은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센카쿠 열도를 두고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인 바 있다. 또 중국과 대만의 대립은 동북아 해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을 비롯한 몇몇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의 섬들에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설치해 무력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냉전이 끝난 후 오히려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적 군사잡지인 ‘The Military Balance’(1998~ 1999)에 따르면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사비는 1985년에 비해 22.7% 증가했는데 특히 동북아 5개국(남·북한 일본 중국 대만)의 군사비 증가율은 34.1%에 이른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군사비는 25.7%의 감소율을 보였으며 세계 전체의 군사비는 33.6% 줄었다.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비 증강은 해군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동북아의 분쟁 지대가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는 양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켄트 칼더 박사는 그 원인을 ‘에너지 부족’에서 찾는다. 즉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룬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데, 최근 서태평양 해역, 특히 영토분쟁 해역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군사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주변국들의 해군력 증강 실태를 살펴보면 한국 해군이 증강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드러난다.

    동북아 5개국의 해군력 비교는 국방대학원 김현기 교수(국제정치학 박사)의 ‘한국의 해군력과 변화하는 해양안보 상황’이라는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따르면 5개국 중 총병력 대 해군의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북한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표2). 이런 절름발이 군편제는 해군력의 심각한 열세로 나타난다. 해군력 평가에 척도가 되는 전체 함정의 수와 톤수를 비교하면 한국 해군은 북한과 더불어 공동 꼴등이다. 한국의 국방비가 5개국 중 일본에 이어 2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간 해군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김교수는 ‘The Military Balance’(1997 ~1988)와 군사연감 ‘Jane’s Fighting Ships’(1995~1996)을 종합해 5개국 해군의 1000톤급 이상 전투함의 표준전력을 비교했다(표3). 그에 따르면 한국 해군은 함정 척수와 톤수에서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3국에 크게 뒤진다.

    김교수가 작성한 도표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일본과 대만의 경우 함포보다 미사일(유도탄) 보유량이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과 중국 해군엔 함포가 많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국과 중국은 구식전투, 곧 접근전 위주의 해군력인 셈이다. 이는 해군력의 질적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함포 사거리를 따질 만큼 현대의 해군전은 한가롭지 않다. 전투의 승패는 포가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해군전은 더 이상 포의 전쟁이 아니다. 미사일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다. 포는 근접 방어를 위한 것으로 한국 해군이 포를 보유하는 것은 북한군과 벌일 근접전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선진국 해군엔 포의 개념이 없다. 더 멀리 있는 배를 더 빨리 접촉해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다. 예산만 되면 당연히 미사일을 늘려야 한다.”

    김교수는 중국과 대만 해군의 전력을 기존방식으로 비교하면 중국이 월등히 우세하지만 작전전력으로 비교할 때는 큰 차이가 없으며, 톤수나 유도탄(미사일)만 놓고 보면 오히려 대만 해군이 우세하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라 최근 중국의 해군전략은 기존 연안방어전략에서 근해전략으로 전환했고 해군력 증강이 중국 해방군의 당면한 주요과제가 되었다(황병무, ‘중국 인민해방군의 현대화와 원양해군 지향’, ‘군사논단’ 95년 9월호).

    한국에 잠재적 위협국인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 증강 실태는 한국의 해군력 강화전략에 시사하는 바 크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은 양적인 면에선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군사비는 냉전 종료 이후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중국 해군의 병력수는 감소 추세인 육군 공군과는 달리 조금씩 늘고 있다.

    중국은 해군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점차 양에서 질 위주로 바꾸며 세계적 해군을 꿈꾸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 계획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2000년까지 미사일과 첨단 전자장비가 장착된 대규모 전함을 건조하는 것. 2001년부터 20년 동안 추진될 이 계획의 2단계는 2만∼3만톤급의 경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이를 호위할 군함과 수직이착륙항공기를 확보하는 것으로 각종 첨단무기를 개발하거나 구입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2020년부터 2040년까지로 잡고 있는 마지막 단계의 계획이 실현되면 구소련이나 미국의 해군력 수준에 올라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대규모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8년 현재 중국 해군은 일본 해군의 약 6배에 해당하는 28만명의 병력에 63척의 잠수함, 18척의 구축함, 35척의 프리깃함 및 747척의 연해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일본 해군이 붙으면?

    한편 일본의 군사력은 냉전이 끝난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연평균 400억~500억달러에 이르는 일본의 군사비는 세계 2~4위 수준을 유지해왔다.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평가받는 해상자위대 전력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향후 일본이 군사대국이 된다는 것은 핵무장과 더불어 해상자위대의 군사력이 더욱 증강함을 뜻한다. 해군력의 팽창은 곧 일본이라는 힘이 더욱 멀리 뻗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본 해군은 양과 질 모두에서 한국 해군을 압도하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글머리에 제시한 독도분쟁 시나리오에서처럼 동해에서 한국 해군과 일본 해군이 전면전을 치를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춘근 박사의 예측.

    “해군끼리 붙는다면 결과는 비참할 것이다. 오전 6시에 전투가 시작된다면 한나절도 안 돼 한국 해군이 박살날 것이다. 탐지능력 발사능력 방어능력 등 모든 면에서 일본 해군에 뒤진다. 심지어 오전 9시 안에 승부가 끝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우울한 예측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한·일 두 나라의 해군력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The Military Balance’(1999~2000)와 ‘Jane’s Fig hting Ships’(1999~2000)에 따르면 일본의 주요 수상함(구축함 및 프리깃함)은 55척에 이르며 잠수함은 18척이다. 반면 한국 해군은 주요 수상함 15척에 잠수함 9척으로 일단 양적인 면에서 크게 뒤진다.

    한국 해군의 열세는 질적인 측면을 따질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1990년에 이미 3000톤급 이상의 수상함을 40척 이상 보유한 상태였다. 지금 일본의 구축함은 40척이다. 반면 한국 해군은 6척을 가졌을 뿐이다. 구축함의 전통적 임무는 대잠전, 곧 잠수함을 잡는 것이지만 대함·대공전 능력도 갖추고 있어 각국 해군의 대표적인 전투함으로 꼽힌다.

    한층 심각한 문제는 일본 구축함과 한국 구축함의 질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의 구축함이 대부분 4000톤∼6000톤급인 반면 한국 구축함은 3000톤급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해군의 간판이었던 DD는 2차대전 당시 활약했던 미해군의 구축함이다. 1960년대 들어 대부분 퇴역했는데 그중 일부가 국내에 들어와 수리를 거쳐 한국 해군의 주력함이 됐다).

    함정의 톤수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작전반경이 크고 다양한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해군본부 한 영관장교의 설명.

    “용량과 전투력은 비례한다. 톤수가 크다는 것은 배가 크다는 것이며 이는 그 배의 힘이 세다는 것을 뜻한다. 배가 크면 사람이나 물자를 많이 실을 수 있다. 함포 미사일 등 무기도 더 많이 탑재할 수 있다. 장거리 함포에, 포탄도 더 크고 무거운 것을 쓸 수 있다. 통신전자장비도 더 설치할 수 있고 항공기도 실을 수 있다. 또한 내구성이 크므로 장기항해나 원양항해가 가능하다.”

    한국 구축함 중 일본의 구축함에 맞설 만한 전력을 갖춘 것으로는 KDX(차기 한국형구축함)-1으로 불리는 신형 구축함 3척이 있을 뿐이다. 그중 가장 먼저 취역한 광개토대왕함은 국내 함정 중 처음으로 함대공미사일과 헬기를 탑재했으며 만재 톤수가 3885톤에 이른다. 광개토대왕함에 이어 지난해엔 동급의 을지문덕함과 양만춘함이 전력화했다.

    프리깃함(호위함)도 사정은 마찬가지. 프리깃함은 다목적 해상전투용으로 일반적으로 구축함보다 톤수가 작은 반면 속력에서 앞선다. 한국 해군엔 1890톤급 9척이 있다(선체와 장비가 낡아 ‘나사 풀린 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DD는 프리깃함의 등장과 더불어 하나둘씩 퇴역했으며 조만간 완전히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15척의 프리깃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의 구축함 규모로 2500톤급에서 4000톤급까지 있다.

    잠수함 비교도 한국 해군을 주눅들게 한다. 일본 해군은 3000톤급(길이 81.7m) 2척, 2750톤급 7척, 2450톤급 9척 등 모두 18척의 잠수함을 갖고 있는데 2003년까지 3000톤급 3척이 추가로 전력화할 예정이다(그중 2척은 이미 진수가 끝났다). 반면 한국은 1300톤급(길이 56m)의 소형 잠수함 9척이 있을 뿐이다. 일본 잠수함엔 대함미사일이 있지만 한국 잠수함엔 없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그 밖에 해군용 항공기도 각각 100대, 23대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 해군력의 우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비교대상, 아니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일본 해군력을 세계 2위로 끌어올린 이지스함이다. 이지스(AEGIS)는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딸 아테네에게 선물한 방패의 이름이다. 이지스함이란 이지스 체계, 곧 종합적인 전투 및 방어체계를 갖춘 이지스 시스템을 갖춘 함정을 일컫는다.

    광개토대왕함과 이지스함

    일본이 보유한 4대의 콘고급 이지스함은 길이 161m에 만재톤수 9500톤에 이르는 대형 구축함으로 작전 범위 5000마일, 최대속력 30노트의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구축함의 주무기인 함포와 어뢰는 물론 대함·대공미사일을 다수 장착하고 있으며 첨단 대공전자방위망을 갖추고 있다. 이지스함 중 1996년 전력화한 묘우코우함은 북한이 일본 본토 방향으로 발사한 대포동미사일의 탄도궤적을 추적해 그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예전엔 디스트로이(destroy:파괴)가 최고였지만 요즘은 서치(search:탐색) 기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서치엔 이지스가 최고다. 이지스함이 뜨면 인근 해상에 적국의 전투기가 날아다닐 수 없다. 반경 180마일 내에 있는 물체는 모두 잡히며 레이더엔 수백 개의 표적이 한꺼번에 뜬다. 한번에 미사일 18기를 날릴 수 있는데 한국 구축함은 이지스함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을 능력이 없다. 한번 이지스의 표적이 되면 몇십초만에 운명이 결정된다. 반면 이지스함은 날아오는 미사일도 맞힐 정도로 대공방위망이 뛰어나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 한국의 웬만한 함정들은 아마도 싸우러 가는 도중에 다 가라앉을 것이다.”

    이춘근 박사가 설명하는 이지스함의 가공할 위력이다. 전세계에서 이지스함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 미해군은 27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함 구입가격은 천문학적인 액수다.

    한국 최대의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2억달러. 반면 이지스함 1척은 10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98년 대만 국방비의 약 10%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런데 대만은 한때 이지스함 4척을 미국으로부터 순차적으로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중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만약 대만해협에 이지스함 4척이 포진한다면 중국이 쉽게 대만을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본다.

    현재 한국 해군의 군함 수는 일본·중국의 약 1/5, 군함 톤수는 일본의 1/9, 중국의 1/5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양해군이 되기 위해선 지금의 일본 해군력 이상 가는 전력을 갖춰야 한다. 주변국들의 해군력 증강 추세를 볼 때 한국 해군의 발전 속도는 너무 느리다. 광개토대왕함보다 진일보한 KDX-2급 구축함(만재톤수 4800톤) 세 척이 2002년부터 순차적으로 전력화할 예정이지만 이 정도 규모와 발전속도로는 중국·일본 해군력의 절반 수준을 따라잡기에도 힘들다. 한국의 해군력이 발전하는 것을 중국·일본의 해군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유사시 경항공모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형수송함을 갖고 있다. 중국도 몇 년 안에 경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갖춰야 할 해군력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군사전문가들은 최소한 주변국 평균전력의 70%는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대응수준의 군사력 확보를 뜻한다. 이에 맞서는 개념인 억제수준의 군사력은 주변국의 평균전력이다. 김현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해군이 일본·중국·대만의 동북아 3대 해군강국들에 대한 대응수준의 전력을 갖기 위해선 1000톤급 이상 전투함 89척, 잠수함 18척, 해상보급함 4척, 해상초계기 52척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잠재적 위협국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이다. 이춘근 박사는 “일본 중국 간 갈등이 빚어질 경우 한국이 지원하는 나라가 분명한 우위에 설 수 있는 수준의 해군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균형 전력은 다자간 안보협력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기름 파이프’를 공동으로 지키는 일에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다들 진짜 총으로 무장했는데 한국만 목총을 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대열에 끼지 못한다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이익을 이웃 국가에 통째 넘겨야 하거나 이익의 폭이 작아질지 모른다.

    그간 한국이 강력한 해군력이 없이도 경제대국,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어찌 보면 냉전 덕분이다. 한국은 60만 대군이라는 강력한 육군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세계전략에 이바지하는 한편 해·공군력, 특히 해군력은 미국에 전적으로 기대어왔다. 절대강자인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우산 아래 한국의 무역선 화물선들은 오대양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다. 또한 7함대로 대표되는, 태평양 해역에 있는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과 공군력은 한국의 육군력과 조화를 이루며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해왔다. 휴전선이 주는 중압감은 육군 위주의 국방예산 편성에 대한 이의제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해군은 ‘간첩 잡는 해군’이었다. “북한 때문에 한국 해군이 크지 못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냉전 종료에 따른 미해군의 감축,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해군력 강화, EEZ 설정과 관련한 바다 영토의 중요성 부각 등은 한국 해군이 ‘동네 해군’ 수준을 벗어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 해군은 통일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야흐로 바다의 시대다. 바다가 살기 위해선 해군이 살아야 하고 해군이 살면 나라가 살찐다. 해군력의 강화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해양자원을 확보하고 개발하기 위해, 그리고 해양안보를 위해 한국 해군은 부지런히 발전해야 하며 서둘러 대양해군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실현되면 우리 상선의 선원들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마스트에 일장기가 휘날리는 군함을 만났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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