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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연구· 조선인민군

킥 앤드 러시 전술 구사하는 ‘혁명무력’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킥 앤드 러시 전술 구사하는 ‘혁명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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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민군은 철저한 조선로동당의 혁명 무력이다. 미국과 일본을 주적으로 여기는 인민군은, EC121기 격추와 푸에블로호 사건 등을 통해 겁 없이 미군과 맞붙기도 했고 중동전에 참전해 이스라엘 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남북 평화통일은 이러한 인민군과의 기나긴 협상 과정이 될 전망이다. 남북 통일 과정에 가장 큰 문제가 될 조선인민군의 정체를 벗긴다.》
제1부 인민군의 전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의 피날레를 장식한 6월15일 오찬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군을 그대로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보면, 주적 개념만 갖게 되니, 경의선 철도를 인민군을 동원해서 놓고, 6·25 행사도 하지 말자”

‘군대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속성상 주적 연구만 하게 되니, 나는 인민군대가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경의선 철도를 놓는데 인민군을 투입하겠다. 그리고 남북 군대 모두가 주적을 생각하지 않도록 6·25 행사도 갖지 말자’ 정도로 해석되는 이 말은, 적잖은 국민들을 놀라게 했었다. ‘아무리 김정일이지만 한국 방송 앞에서 인민군을 저렇게 비하해도 되는 것일까’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진심일까’ ‘과연 김정일 위원장은 인민군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등등.

남북 분단은 양쪽 군대간의 치열한 싸움 때문에 고착화됐다. 각각 80만 정도로 추산되는 양쪽 병사가 전사했기 때문에, 돌이키기 힘든 ‘정서상’의 분단에 놓여 있다. 정서상의 분단은 주적을 만들었고, 주적을 의식해 치열한 군비 경쟁을 벌여왔다. 정서상의 분단·주적·군비경쟁은 남북 분단의 본질을 적시하는 단어들이라, 공개석상에서는 감히 입에 올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남북 평화통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도 결국은 양쪽 군부의 신뢰 여부에 따라 흔들리는 ‘가랑잎’일 뿐이다.

이제 통일을 꿈꾸는 운동가들은 차분히 조선인민군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 군대는 속성상 비밀 그 자체다. 이러한 한계가 있어도 조선인민군의 특성과 장점 단점을 정확히 분석해야만 남북은 군축에 들어가고 평화통일의 마당을 열 수가 있다. 조선인민군의 실체를 벗겨 본다.

“진짜로 붙었으면 한국 함정도 격침”

조선로동당,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정일의 지배를 받는 조선인민군의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들어 북한은 계속된 경제난 유류난으로 인민군의 전력이 크게 저하됐다고 한다. 지난 해 6월 연평해전 승리를 계기로 인민군에 대한 국군의 자신감은 매우 높아졌다.

육군본부 분석에 따르면 국군 병사들의 평균 신장은 171cm, 체중은 66kg인데 반해 인민군 병사들의 평균신장과 체중은 162cm에 47~49kg이다. 국군이 복싱의 웰터급 선수라면 인민군은 플라이급 선수인 것이다. 그러나 귀순자들은 “아무리 파철(破鐵)더미라도 그것을 쏘면 다치는 것은 한국뿐이다. 세계적인 무력을 갖췄다는 러시아도 조그만 체첸을 꺾지 못해 절절 매는데, 경제난 유류난이 심하다고 또 체구가 작다고 국군이 인민군을 완전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한 군사소식통은 “연평해전이 진짜 해전이었다면 한국 해군 함정도 몇 척 격침됐을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 어뢰정이 어뢰를 한 발이라도 쐈는가. 북한이 진짜로 싸울 의사가 있었으면 어뢰뿐만 아니라 해주 쪽 해안에 배치된 해상 대 해상 미사일(실크웜)을 쏘았을 것이다. 어뢰와 미사일을 쐈다면 한국 해군 함정도 한두 척은 격침될 수밖에 없다. 물론 더 많은 피해를 보는 쪽은 북한 해군이겠지만 연평해전에서처럼 완승을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연평해전을 보고 인민군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인민군의 전력을 구체적으로 알려면 인민군과 전면전을 벌여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므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체크하여야 한다. 군대의 전력을 조사하려면 인간애(人間愛)에 기초한 ‘연민의 마음’을 버리고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요즘 파월 국군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일부 언론과 진보적 인사들은 파월 국군의 월남민 학살 사실을 찾아내 “국군이 가지 말아야 했을 전투에 참전했다. 국군은 미군의 용병이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는 일면 옳은 말일 것이다. 미국이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해 국군이 월남민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기 불과 16년 전, 미군은 6·25전쟁에 참전해 다 죽어가던 우리를 살려주었다. 미군은 한국에서만 3만4000여 명이 전사하고 미국으로 후송된 후 사망한 병사까지 합치면 도합 5만4000여 명이 희생됐다. 미국이 그들의 국익을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다고 해도 이 5만4000여 명의 부모는 아들을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 이러한 희생은 우리로서는 큰 빚이 아닐 수 없다. 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이러한 빚을 갚는 의미도 있다.

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으로부터 신형 무기를 제공받는 등의 전력 증강은 물론이고, ‘실전 경험’이라는 엄청난 효과를 얻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실전 경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25전쟁 때 터키나 에티오피아 등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한국과는 별관계가 없는 나라들이 참전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전 경험을 쌓아온 남북한 군

그들은 참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얻었다. 미군을 비롯한 세계 최고의 군대와 협력함으로써 ‘군사 노하우’도 전수받았다(노하우는 기술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나라 군대와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다른 나라 군대와 비교해 부족한 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타국과 연합작전 경험이 많을수록 자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나라도 많아진다.

인민군도 ‘꿩 먹고 알 먹는’ 해외 파병에 열심이다. 그러나 북한은 6·25전쟁 때 UN에서 ‘침략자’로 규정된 바 있어 대체로 지상군 파병은 꺼리는 편이다. 북한은 6·25전쟁 때 미군기의 공습으로 아주 고전한 적이 있어 공군력을 키우는데 매우 노력해왔으므로, 주로 공군 조종사를 파병해 실전 경험을 쌓아 왔다. 북한은 이스라엘의 반대편 그러니까 아랍 연맹 국가들을 많이 도왔다.

북한은 시리아를 수리아라고 부른다. 82년 중동전이 일어나자 수리아는 골란고원에 설치된 이스라엘의 대공 레이저 기지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 그래서 이 기지를 파괴하고자 수 차례 전투기를 띄웠지만 이스라엘의 전투기와 대공 미사일에 걸려 여지없이 당하기만 했다. 북한은 이러한 수리아를 위해 일단의 대위에서 소좌급 조종사를 파병했다.

미그 21기 넉 대를 몰고 출격한 북한 조종사들은 초저공 비행으로 접근해 이스라엘의 대공 레이더 기지에 정확히 폭탄을 떨구었다. 수리아로서는 ‘앓던 이’를 뽑은 것이고 북한은 수리아를 무대로 실전을 경험한 것이다. 지난 7월 미북간에 재개된 미사일 협상에서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대가로 매년 10억 달러를 제공하라”고 미국에게 요구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북한은 미사일 수출로만 매년 10억 달러를 벌고 있다는 뜻도 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10억 달러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리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에 조종사를 파병해 혈맹 관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란과 시리아 등 주요 아랍국들이 보유한 미사일은 상당수은 북한이 제공했거나 북한이 제공한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때문에 미국 CIA와 더불어 세계 최강의 해외첩보기관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우리 국정원과 협력을 강화해오고 있다.

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 좌초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사건은 많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때 강릉으로 상륙한 인민군은 국군에 최고의 실전 훈련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대간첩 작전을 유심히 지켜본 독자라면 국군이 마치 정규전을 벌이듯 장갑차를 동원하고 헬기를 띄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주적이 자기네 영토에 들어왔을 때는 인민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남조선 괴뢰군이 아니라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주적’ 미군을 상대로 실전을 연마한다. 우리처럼 우리땅에 상륙한 주적과 실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온 미군을 덮쳐서 잡는 실전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 말 인민군은 그들이 말하는 주적 미군을 상대로 아주 인상적인 승리를 낚아챘다. 68년 1월23일 원산 앞 바다에서 일어난 푸에블로호 사건과 69년 4월15일 일어난 EC121기 격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이때 당한 패배를 부끄러워해 아직도 상당부분 비밀로 하고 있으나, 북한에서는 이를 아주 영웅적인 행위로 자랑하고 있다.

푸에블로호사건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한 영해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났다. 북한은 원산만에서부터 대포동 미사일 발사지로 유명한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까지를 직선으로 긋고, 이 직선 안쪽의 동한만 바다를 북한 영토 내에 있는 호수나 강 같은 ‘내수(內水)’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 직선에서부터 50해리까지를 영해 개념인 군사수역으로 선포해 외국군의 배나 군용기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푸에블로호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배였다. 벌레로 비유해 설명한다면 적을 공격하는 수단은 하나도 없고, 온몸이 적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더듬이로만 덮여 있는 벌레가 바로 푸에블로호다. 푸에블로호는 적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공해상에 떠서 온갖 안테나를 동원해 적 함정에서 나오는 전파와 음파를 수집한다. 함정들은 같은 클라스(class)일지라도 기계적 특성이 전부 달라, 고유의 음파와 전파를 갖고 있다.

전쟁 때 가장 중요한 행위는 피아식별이다. 푸에블로호가 수집한 전파 음파는 곧바로 미 해군 정보국을 거쳐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미 해군 잠수함과 전투함에 제공된다. 미 잠수함은 이러한 자료를 컴퓨터에 넣어 갖고 다니다가, 이상한 음파와 전파가 잡히면 이 자료와 비교해 상대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판단한다. 때문에 인민군 쪽에서 보면 푸에블로호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푸에블로호는 무장이 형편없지만, 워낙 탐지 능력이 뛰어나 북한 항구에서 함정이 나오면 먼저 발견하고 도주해버린다. 때문에 북한 해군은 매번 뒷북만 쳤다.

북한의 특수8군단(육군 특전사에 해당)이 서울에 침투해 청와대를 공격한 1·21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이틀째인 1968년 1월23일, 원산 앞 바다는 아주 안개가 심하고 매우 추웠다. 이날 푸에블로호는 방심했는지 돌이킬 수 없는 불운을 만났다. 농무(濃霧) 때문인지 아니면 레이더 병이 졸았는지, 푸에블로호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해안레이더가 이 배를 탐지하고 어뢰정을 내보낸 것이다.

현재 경수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함경남도 신포군 앞에는 마양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북한 동해함대 사령부 예하의 잠수함 부대 중에서 가장 큰 제4전대와 함정을 건조하는 마양도 조선소가 있다. 마양도에서부터 남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3전대-2전대 등 북한 동해함대의 주력 부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푸에블로호는 마양도 부근에서부터 북한 해안을 따라 내려오며 첩보를 수집했는데,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 어뢰정과 접촉한 것이다.

바지에 오줌싼 미군 수병

북한 어뢰정은 푸에블로호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시위한 후 국제 공용주파수로 정선 신호를 내렸다. 푸에블로호는 그때서야 자신이 포위됐다는 사실을 알고 연막탄을 터뜨리며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자 어뢰정은 기관포를 발사했고 그 즉시 푸에블로호는 멈춰 섰다. 98년 11월 여수 앞 바다에서 한국 해군의 광명함이 북한 로동당 작전부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 탄 반잠수정을 격침한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푸에블로호 측은 무장을 하려고 함내에 비치된 무기고를 열려고 했다(무기고를 열어 봤자 소총 등 소화기뿐이라 어뢰정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북한 어뢰정이 쏜 기관포의 초탄이 선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무기고 앞에서 터져, 무기고를 열려던 미군 수병이 즉사했다. 안 그래도 무장력 차이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무기고를 열려던 수병이 즉사하자, 푸에블로호 측은 탈출을 포기하고 즉시 배를 세웠다. 얼마 후 어뢰정이 푸에블로호 함미에 배를 붙였다.

그러나 푸에블로호가 너무 커서 어뢰정 안에 있던 의자를 몇 개 포개 놓은 후에야 수병들을 푸에블로호 갑판으로 올려보낼 수 있었다. 갑판에 올라간 인민군 수병은 네 명이었다. 이들이 AK 소총으로 위협 사격을 하며 선실로 돌진하자, 70여명으로 보이는 미군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북한 수병들은 자기들 수가 너무 적은 것을 감추기 위해, 거듭 위협 사격을 하며 이들을 갑판으로 내보내 한 줄로 쪼그려 앉게 했다. 그리고는 선실의 침대 시트를 찢어 나눠주고 뒷사람이 앞사람의 눈과 손목을 차례로 묶도록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당시 인민군 수병들은 전혀 영어를 하지 못했고, 미군은 한국어를 한 마디로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인민군 수병이 총탁(개머리판)으로 미군을 때리며 고함을 치자 미군은 이심전심으로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북한 수병 한 명이 갑판 아래에 있는 기관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한 흑인 수병이 몽키스패너를 들고 덤벼들었다. 북한 수병은 격투 끝에 흑인 병사를 제압하고 그를 끌어냈다(이것이 푸에블로호에서 있었던 유일한 저항이다).

또 한 수병이 함교로 올라가니, 푸에블로호 함장인 로이드 부처 대령이 만사를 포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북한 수병은 백지에 장교 모자와 철모를 그린 다음 물음표(?)를 그려 그에게 내밀었다. 그림으로 사관(장교)과 수병이 모두 몇 명이냐고 질문한 것이다. 부처 대령은 그 뜻을 정확히 알아듣고, 장교 모자와 철모 밑에 숫자를 적었는데, 그 합계가 82이었다. 이 숫자를 들고나와 갑판에 모아 놓은 미군을 세보니 딱 한 명이 모자랐다. 그 한 명은 무기고를 열려다 기관포탄을 맞고 즉사한 미군 수병이었다.

98년 속초 앞 바다에서 꽁치 그물에 걸린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을 우리 해군이 나포해 왔을 때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었다. 그런데 북한 어뢰정은 자신 보다 20~30배나 큰 미군 함정을, 그것도 현역 대령(함장)이 포함된 미군 81명을 붙잡아 돌아왔으니 북한에서는 ‘난리’가 난 듯 흥분했었다고 한다. 원산항에 도착한 푸에블로호에서 미군 장병들이 손을 들고 내려오는 사진은 즉시 전세계로 타전됐으나, 한국과 미국에서는 뒤늦게, 그리고 작게 보도되었다.

스커드B 기술 제공 받아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미군들은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겁을 먹거나 추위를 타면 누구나 오줌이 자주 마려운 법이다. 더군다나 미군은 혹독하게 추운 날 푸에블로호 갑판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오줌이 마려웠겠는가. 그런데 인민군과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몇몇 미군은 바지를 입은 채 오줌을 눈 모양이었다. 인민군은 ‘멀대’ 같이 키가 큰 미군들이 바지에 오줌을 싼 것은 두고, “미군은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놀렸다고 한다.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 주적에 대한 자신감은 이러한 놀림을 통해 형성되는 법이다. 물론 어뢰정을 타고 간 인민군 수병들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도 관련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푸에블로호의 수병들은 북한군이 갑판에 올라오기 전에 각 장비의 핵심 부품과 첩보를 수집한 테이프 등은 빼내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2중영웅 칭호까지 받았던 대남공작원 출신의 한 귀순자는 “그랬어도 북한은 미국의 최첨단 첩보 장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비를 소련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스커드 B 제조 기술을 제공받았다. 한국 국방부는 73년 10월 4차 중동전 때 북한이 이집트를 도와주고 그 보답으로 이집트로부터 스커드 B를 제공받은 것으로 정리해 놓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은 68년에 이미 스커드 B 제작 기술을 소련으로부터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가진 인민군은 이듬해인 69년 4월15일 한결 대담한 작전을 계획한다. 정기적으로 북한 영공에 접근해 첩보를 수집해가는 미 공군 첩보기 EC121을 격추하기로 한 것이다. 첩보 수집기 EC121은 제트기가 아니라 프로펠러 비행기다. 그래서 속도는 느리지만 워낙 레이더 시설이 좋기 때문에 적기가 뜨면, 먼저 발견하고 도망칠 수가 있다. 한마디로 하늘을 무대로 한 푸에블로호가 EC121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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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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