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보수’는 반격을 노린다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4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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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인의빌딩 13층. 백발 성성한 30여명의 노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민족화해와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평양을 방문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초청으로 답방하겠다는 김정일(金正日)의 서울방문을 반대하는 이유는 ….”

    보수우익 단체인 자유민주민족회의(대표상임의장 이철승·李哲承)가 주축으로 추진중인 ‘김정일 서울방문 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 준비모임이었다. 사회자가 낭독한 발족취지문의 요지는 한마디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량학살 요인암살 등을 지령·지휘하고, 핵과 미사일의 생산 수출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등의 행적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약속도 없이 서울에 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8·18판문점 도끼만행사건도 넣어야 해요”

    “아사자·국군포로 문제에 관해서도 별도의 문구를 추가시켜야죠”



    참석자들은 보다 강도높고 ‘완벽한’ 문구를 경쟁적으로 주문했다. “앞으로 반공 보수 진영이 연합해야 한다”는 한 참석자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다른 참석자는 “여기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은 공산당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어제 서울역에서 보니까 김정일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 입고 무슨 대회에 참석하러 올라온 대학생들이 수백 명이야. 이거 빨갱이 나라 다 됐다구”

    한 참석자가 걱정스레 개탄조로 말하자 참석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날 모방송국 시사토론 프로그램 담당자의 전화통엔 잇딴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시오. 당신들 지금 여기가 뭐 인공(人共)치하인줄 아시오?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공중파 방송이 반미운동의 앞잡이 노릇을 하느냐, 이 말이야.”

    방송사측이 전날 밤 TV토론에서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 피해주민에게 발언기회를 주면서 6·25전몰군경 유자녀에게는 ‘시간상 이유’를 들어 발언기회를 주지 않은 것을 따지는 것이다.

    “보수우익의 항복을 강요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져가는 남북관계 속에서 한동안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이른바 보수진영 인사들이 이처럼 한켠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아직은 북한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과도한 포용정책’이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하며 물밑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이지만 ‘행동’에 나서려는 일부 적극파도 없지 않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도 잇따라 보수우파들의 목소리가 분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88년 당시는 재야 학생운동세력 등이 87년 민주화운동의 여세를 몰아 이른바 ‘통일투쟁’ 열기를 높여가자 권력 내부 또는 그 주변에서 ‘진압’ 차원의 이념적 공세를 전개했다. 반면 지금은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들어선 새 정부가 대대적인 대북 유화정책으로 기존의 남북간 이념적 대결구도를 뒤흔들자, 불안과 불만을 느낀 ‘소외된 보수’들이 저항 차원에서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배경이야 어떻든, 지금은 비록 ‘야당’이 된 보수라고는 해도, 이들은 해방 이후 남한사회의 다수파요, 주류(主流)를 형성해왔던 세력이다. 이들의 행보는 향후 언제든지 남북관계에 무시못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 엄청난 전환기에 복잡미묘한 고민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한국 보수파의 현주소를 파고들어가 봄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에 관해 의미있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앞서 잠시 여기서 추적할 ‘보수’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수주의(保守主義·conservatism) 개념은 매우 복잡하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소 다른 뉘앙스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오랜 시간을 통해 발전돼온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러나 분단 한국에서 ‘보수’라 할 때는 대개 건국기의 좌우대립과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치르면서 형성된 현실의 특수한 역사적 세력을 의미한다. 즉 대개 북한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 뚜렷하고 반공을 중시하는,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체제수호 내지 국가안보를 다른 가치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부류를 통칭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 가운데 현재의 남북관계 변화를 가장 비판적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룹으로는 서두에 언급한 자유민주민족회의를 들 수 있다. 민족회의는 1994년 자유민주총연맹,건국청년협의회,대한반공청년회 등 33개 보수단체들로 결성된 대표적 보수연합체다.

    정상회담 이후 남한 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 7월, 민족회의 기관지 ‘민족정론’은 표지 타이틀을 ‘친북용공정권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달았다. 강창홍 편집장은 “평화공존과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도 없이 추진되고 있는 ‘주체적’ ‘자주적’ 통일이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민족회의를 이끌고 있는 이철승 상임의장은 “우릴보고 냉전적 또는 보수적이라 비판하는데 건국 이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온 우리야말로 진정한 진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북한이 조국을 배신하고 월북한 외무장관 부인을 단장으로 내세워 남한을 방문시킨다는 것은 남한의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모욕이자 도발”이라고 흥분했다. 이의장은 또 군사독재자들이 자기들 이익을 앞세워 정권을 잡는 바람에 반정부세력이 성장, 우리 보수우익더러 항복을 강요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우리는 이제 늙었다”고 걱정했다. 물론 이 ‘늙은 보수’들이 탄식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회의는 9월 비전향 장기수 북송에 때를 맞춰 ‘김정일 저지 범국민투쟁위’를 발족시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교과서 폐지운동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이의장은 이미 교육부장관실에 전화를 걸어 “성난 애국인사들에 의해 교육부가 폭파되도 책임 못진다”고 일갈한 바 있다.

    “김정일 방문저지운동 힘 모을 것”

    그러나 민족회의 내부에서도 과연 자신들의 ‘김정일 저지 운동’이 국민적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자신이 서지 않는 표정이다. 민족회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요즘 우리 민족진영 행사에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고 신문 방송에도 기사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다른 관계자도 “과거 안기부에서 우리 반공보수 진영에 뭔가 주고 나라에서 과자 부스러기라도 줄 때도 이 쪽 사람들은 분파주의가 심했다”면서 “지금도 보수는 숫자는 많지만 제각각이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회의 공동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손진(孫塡)대한민국건국회장은 보수우익 진영의 결속력이 부족한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우익진영이 가두에 나가 데모하는 예가 드문 것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안보체계를 손상시킬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능력이 없어서 데모를 안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린 능력이 있을 때도 안했다. 정권이 어떤 정권이든 우린 평화적으로 해왔고 사회혼란을 조성할 수 있는 행위는 삼갔다. 게다가 우리가 50년 세월이 흐르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방관한 결과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쉽게 잊고 나라걱정을 하지 않는다. 5·18 시위 참여자에겐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면서 우리같이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주지 않으니까 우리집 애들만 해도 ‘그런 운동을 뭣하러 하시느냐’ 소리를 한다.”

    손회장은 “김정일이 여기 온다는데 이젠 우리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면서 “김정일방문 반대운동을 위해 원로들을 모셔 울타리를 치고 전몰군경유자녀 등 ‘피해자들’은 물론 그동안 서로 협조가 잘 안된 다른 보수단체나 여러 종교계에도 적극 동참을 호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회의가 상대적으로 적극적 투쟁적인 행동방식을 보이는 연합체라면 같은 보수성향이면서도 보다 ‘계몽적’ 방식으로 활동하는 보수 연합체가 ‘밝고 힘찬 나라 운동본부’다. 97년 11월 박근(朴槿) 전유엔대사가 중심이 돼 설립한 이 모임에는 박홍 전서강대총장, 유기천 전서울대총장, 박정수 싸이버텍사장, 이신 사랑의 쌀나누기운동 사무처장, 김철영 한국기독언론연구소장 등 130여명이 결성식에 참여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그에 기초한 통일한국의 실현을 지향목표로 하고 있으며, 소식지를 발행하고 세미나 강연회 등을 개최해 오고 있다. 6월22일 이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전개와 관련해 독특한 분석이 제기됐다.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김정일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간의 힘겨루기는 끝내 남북한 주민들간의 지지경쟁에 의해 판가름나게 돼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김정일은 북한을 완전히 장악·통제하고 있다. 그가 현재 남한사회까지도 장악·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을 추종·지지하지 않는 남한인구의 상당수가 그의 편으로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토론참석자들은 또 근래에 와서 정부나 언론매체에 의해 보수층의 의견이 외면당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오늘의 노년층은 해방후의 정치사회 혼란, 좌우대립, 6·25전쟁을 겪는 등 풍부한 사회경험을 가졌지만 현 사회의 주류인 시민운동단체와 언론매체들에 의해 경원·소외되고 정부나 사회로부터도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해왔다. 노년세대와 국가사회의 원로들이 소외당하는 이유는 강한 반공정신을 가진 탓으로 친북용공적인 젊은 세대와 생각이나 뜻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이 맞지 않을수록 더 말을 들어보고 연구검토해야 하는데….”

    최근의 남북관계 변화를 둘러싼 우려에서는 민족회의와 큰 차이가 없는 ‘밝고힘찬나라’이지만 ‘김정일 저지’ 등 민족회의와 행동통일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식지 ‘밝고힘찬나라’의 편집인을 맡고 있는 한승조(韓昇助) 고려대 명예교수는 “행동양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양 그룹 사이에 몇가지 사안을 둘러싸고 서로 불편한 관계가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헌법과 국가보안법 등 ‘원칙’ 고수를 자임하며 활동하는 보수적 변호사들의 모임이다. ‘헌변(憲辯)’은 한미행정협정(SOFA) 문제를 주제로 지난 6월9일 토론회를 개최했다. SOFA를 주제로 한 토론회들이 대부분 SOFA 내용의 불평등조항을 문제삼으며 개정을 촉구하고 있으나 헌변은 시각이 크게 달랐다.

    알고보면 조항에 큰 문제도 없고, 전쟁위협에 직접 노출돼 있는 한국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하는데도 일부 시민단체들이 무질서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사실을 오도, 한미간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변 총무를 맡고 있는 임광규(林炚圭)변호사는 “정상회담 이후 우리사회는 평화도 정착됐고 미군도 필요없다는 식의 목소리에 떼밀려 가고 있다”면서 “보수층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을 지키는 우리 변호사들이라도 번영과 생존을 위해 우리가 지켜온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회의’ ‘밝고힘찬나라’와 함께 보수진영의 또다른 축을 형성해 온 오제도(吳制道) 변호사의 ‘북한탈출동포돕기운동본부’는 최근 활동이 뜸한 상태다. 오변호사가 최근 몸이 불편한 것이 가장 큰 원인.

    해방공간에서 반공검사로 유명했던 오변호사는 지난 94년 이 모임을 발족시켜 탈북자돕기 활동을 펴왔으나 최근 허리가 불편해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83세 고령의 오변호사는 그러나 최근의 남북관계에 관해서는 삭을 줄 모르는 불만을 터뜨렸다.

    “저쪽은 대남적화전략을 그대로 둔 채 말로만 바뀌고 있는 거야. 주한미군철수요구를 안한다고? 할 필요가 없지, 남한에서 알아서 ‘미군 나가’라고 떠들어 주니까.

    보라구, 유미영이가 누구요, 월북장관 부인을 서울방문단장으로 보내다니. 지금 국가보안법과 대한민국 안보가 그대로 무력화되고 있는 거야. 유미영이가 단장으로 오면 우리도 황장엽을 방북단장으로 보내야 형평에 맞지.”

    지금 불만이 있어도 비겁하게 말들을 안해. 내가 확 일어나 난리를 치고 싶어도 허리가 말을 안들으니 이거 원…. 그러나 두고보시오. ‘애국자’들이 가만히 있겠소?”

    상처투성이 이도형,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극우’ 소리를 들어가며 ‘전투적’으로 보수논리를 펴오다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신음중인 이도 있다. 이도형(李度珩) ‘한국논단’ 발행인은 지금 자신에게 걸려 있는 소송이 하도 많아 어느 건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현재 진행중인 소송만 따져도 민사 5건에 형사 2건이다.

    먼저 지난 97년 타워호텔에서 ‘대통령후보 초청 사상검증 대토론회’를 열어 후보들의 사상을 ‘검열’하면서 김대중후보에게 편파적으로 사회를 보고 용공몰이를 했다는 이유로 국민회의측이 선거법위반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사건. 이는 이미 고법에서 징역2년에 집행유예3년이 인정돼 현재 대법원 계류중이다. 또한 같은 해 후보토론회에서 시민단체들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민형사재판이 걸린 사건 역시 고법의 민사재판에서 패소, 현재 대법에 상고중에 있다.

    이씨는 또한 97년 3월호 ‘한국논단’에 ‘노동운동인가 노동당운동인가’라는 제목으로 민노총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 민노총 계열노조들로부터 “매카시즘적 수법으로 마녀사냥을 했다’는 반발을 사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씨가 현재 물어줘야 할 손배금액만도 3억원이며 청운동 자택은 1억5000만원에 가압류처분돼 8월8일 법원으로부터 경매처분 통보를 받음으로써 곧 쫓겨날 처지에 있다. 계속되는 자신의 ‘업보’와 싸우느라 지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이씨는 “내 죄가 있다면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자고 떠든 것 뿐인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급진좌익정권이 대북정책이 완전히 성공한 것처럼 떠들지만 이것은 건국기반을 뒤엎는 ‘혁명’이며 나는 그 위험성에 대해 일찌감치 문제를 제기하고 답변을 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매카시스트’ ‘극우’라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이씨는 “극우라는 말은 공산당이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을 견제하기 위해 쓰는 용어”라면서 “나는 극단주의자(extremist)일 수는 있어도 폭력을 동원하는 극우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과거 보수로 분류돼 온 모든 부문이 현재의 정세를 ‘개탄조’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부류는 남북간 대화협력을 적극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안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 줄 수 있는 보다 확고한 장치를 주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향군인회의 ‘균형노선’

    회원 650만명의 매머드급 단체인 재향군인회는 정상회담 직후인 6월18일 서울시재향군인회 주최로 6·25 50주년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성과를 뒷받침하자는 중앙 차원의 방침에 따라 올해부터는 평화통일기원행사로 내용이 바뀌었다. 당초 채택키로 했던 대북규탄성 결의문도 ‘정상회담 전폭지지’와 ‘화해협력 평화·통일의 대도에 적극 동참’하는 내용으로 급커브를 틀었다. 이에 대한 향군 관계자의 설명.

    “예비역 군인들의 모임이라는 것만으로 향군을 보수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향군에는 노인들만이 아니라 젊은 예비역 군인들도 함께 들어있다.

    출신지역도 다양하다. 국민일반이 남북관계에 대해 외곬수가 아니라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듯 향군도 마찬가지다. 다만 참전경험을 갖고 있는 노장층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일 뿐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무시한 채 한 쪽의 목소리만 대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실제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향군의 결의문이 나오자 잠실 향군회관에는 “향군이 뭐 이래”라고 욕하는 전화에서부터 “시의적절하게 잘했다”는 격려전화까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반응들이 나타났다. ‘민족회의’에서 추진하는 ‘김정일 저지운동’에 동참하라는 요구도 있지만 향군 지휘부는 어느 한 극단으로 가지 않는 ‘균형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98년 최장집교수의 현대사 논문파문 당시에도 향군은 최교수를 비난하는 입장을 밝히려 준비했으나 한달간 숙의 끝에 결국 입장발표를 유보한 바 있다. 올해초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한창일 무렵 “우리도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우리식 낙천낙선 활동을 벌이자”는 의견이 제기됐으나 논란을 벌이다 결국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회장 정승화·鄭昇和)는 향군과 비슷한 입장이다. 6·15정상회담 이후 ‘원칙 환영, 각론 우려’의 시각이 담긴 성명을 낸 뒤 정치권에 우려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으나 내부사정으로 입장전달은 보류됐다.

    8월11일 열린 내부간담회에서는 현재 남북관계와 관련해 우리사회 내부에서 나오는 이러저러한 목소리들을 검토대상에 올렸다. 하지만 당장 성우회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성명을 내기는 시기상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신 20여명의 내부논객으로 ‘안보평론위원회’를 구성, 상황전개에 대응하는 우려와 입장을 신문 잡지 등에 적극 기고하는 활동을 전개키로 했다.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양순직·楊淳稙)은 과거 대표적 반공단체로서의 지난날 이미지에 비추어보면 엄청난 변화가 느껴질 만큼 대북화해협력 기조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공연맹 후신인 자유총연맹은 6·15정상회담 때 이를 지지·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같은 취지의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사실 이같은 변화는 급작스러운 게 아니다.

    자유총연맹은 이미 2년전 양순직총재-남정판(南廷判)사무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반공 일변도에서 본질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수호·발전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으로 활동 방향을 재정립하고, ‘투쟁적’인 반공궐기 대신 민주시민교육 강화에 역점을 두어왔다. 민주시민교육센터를 가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 사무총장의 설명.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와 함께 민주시민으로서 철학과 소양을 깊이 체득케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머리띠를 두르고 반공 그 자체를 목표처럼 내걸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남총장은 자유총연맹이 과거 정권 시절 정권 안보에 동원돼 왔지 않느냐는 시선에 대해 “일부 그렇게 볼 소지도 없지 않으나 국가안보를 위한 국론 수렴에 앞장서왔던 것”이라면서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환영성명을 내면서도 환상적 통일론은 경계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유총연맹은 본디 반공단체인데 이제 그럴 역할이 없어졌으니 문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방아도 찧는다. 남총장은 “정상회담 이후 한국논단 이도형씨가 내게 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반공우익의 한 축이 없어졌다는 듯 불만이 얼굴에 가득하더라”고 전했다.

    자유총연맹은 보수 일각에서 벌이려 하는 ‘김정일 저지’운동에 대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존재확인 차원의 행동에 불과하다”며 불참할 방침이다.

    물론 폭력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우리사회 한편에서 그런 의사표시는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반대 목소리가 우리 정부의 대북협상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런 운동은 자칫 화해무드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흐를 수도 있으므로 신중히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자유총연맹은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 “통일환경 변화에 따른 통일준비교육의 새방향’을 주제로 한 대토론회(7월25일)를 열고, 통일교육 교사연수(7/31~8/11)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남북대화정치의 논리를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말하자면 자유총연맹의 강조점이 반공에서 안보로, 다시 민주와 통일로, 시대에 따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기관지 ‘자유공론’ 9월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굳게 맞잡은 (남북의) 손을 표지 디자인으로 깔고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리영희(李泳禧)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다. ‘북한은 남한 극우반공주의자보다는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세계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하는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 지능지체아”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그대로 싣고 있다. 이에 앞서 7월호에는 ‘남북정상회담―대결에서 화해 시대로’라는 제목의 타이틀 기사와 ‘헌법상 영토조항 탄력 적용 68%, 국가보안법 부분 개정 필요 62%라는 의견이 나온 공법학 교수 여론조사 결과도 싣고 있다

    간판 바꾼 반공청년회, 활동마비

    불과 3년여전인 97년 3월호에 “탈냉전시대란 한반도에서 어림도 없다”는 안응모(安應模) 당시 발행인의 권두언이 실렸던 것과 견주면,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보수 일각에서는 이같은 변화를 두고 “본디부터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이기 때문에 정권 입맛에 쉽게 맞추어 주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총연맹 시각은 다르다. 한 관계자의 말.

    “지금은 다른 민간단체도 정부예산을 지원받는다. 우리가 지원받는 예산액은 과거처럼 수십억도 아니고 줄고 줄어서 이젠 3억원에 불과하다. 그것 같고는 무슨 사업은 커녕 조직유지 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가 남북대화 협력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북한 개혁개방의 지름길이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 폐쇄적 독재적 공산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온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다. 50년전 공산주의에 대응하는 방식과 오늘날 방식은 달라야 한다. 사고가 화석화돼서는 곤란하다.”

    53년 반공포로 출신들의 모임인 대한반공청년회(회장 손구원)는 아예 6월27일 대의원총회에서 ‘반공’이라는 간판을 떼어내고 ‘통일안보협의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 등 공산당 집권세력과 수교했고 북한과도 교류협력을 통한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50년대 전쟁기 반공 개념에 머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포하는 ‘통일안보’를 내세우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공청년회 역시 6월18일 ‘북한개방, 독재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제47주년 반공의 날 행사를 계획, 결의문을 준비했으나 역사적인 정상회담 결과가 나옴에 따라 결의문 채택을 포기했다. 이 단체의 안정일 총무국장은 “사실 전쟁 등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이야 쉽게 열리지 않지만 시대흐름에 맞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공청년회는 과거 한때 기업체 협찬까지 받아가며 공무원을 상대로 ‘반공집체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이 사회에서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반공’이라는 개념이 퇴조한 지금은 활동이 거의 마비돼 상근 사무직원도 두기 어려울 정도다. 개별 14개 지회 차원에서 강연회 등으로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북도민들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적극 지지세력으로 바뀌었다. 실향민들은 기본적으로 북한공산정권이 싫어서 월남한 사람들이고 이 때문에 과거 정권 때 반공궐기대회에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화해협력 정책의 결실로 이산가족상봉이라는 소원이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북도민회 분위기가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

    홍성오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과거 남북관계가 냉랭할 때 이북도민회가 반공에 앞장선 까닭에 우리를 보수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면서 내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도민회의 한 관계자는 특히 “도민회장이 민주당에 입당하는 등 이북출신 도민회 상층부는 거의 전부가 민주당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홍총장은 “내부에도 물론 남북관계 각론을 싸고 견해차가 적지 않지만 교류협력 외엔 남북문제를 풀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이북도민회에는 과거엔 반공행사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빠른 시사흐름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하는지 관계자 강연을 듣는 행사가 많아졌다. 6월20일 장충체육관에서 8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에 대한 환영대회를 열고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초청, 남북관계 뒷얘기를 들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남북화해 협력 무드를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새마을운동 중앙회와 함께 북한 농촌에 ‘통일 손수레 보내기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10월말까지 각 이북도민회별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불 보내기운동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북도민회 관계자들은 자유민주민족회의가 벌인다는 ‘김정일 저지’운동은 “명분이 없다”며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극기를 달고 북한에 가서 정상회담을 한 이상 남북이 상호 인정한 것”이라면서 “우리가 김정일을 적극 환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서울 방문을 막는다면 국제적으로 옹졸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국방부의 ‘변화 따라잡기’

    종래 남북 문제에 관한 보수안보주의 최후보루 역할을 해온 정부 부처도 남북화해시대를 관리해나가기 위한 자체변화 폭과 속도를 둘러싸고 고심하고 있다.

    먼저 국정원은 임동원 원장이 이례적으로 지난 6월 정상회담장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깎듯한 악수까지 나누는 데서 받은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항상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깔고 ‘음지’에서 활동해야 하는 게 정보맨들이다. 그런데 그같은 정보전 대상인 북한 최고통치권자와 자신들의 수장이 보란 듯이 화해 악수를 나누는 데서 “이러다가 ‘목표상실’ ‘방향감 상실’이라는 정신적 공황에 처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관계자는 “일부러 차단하지야 않겠지만 대통령 또는 원장의 대북화해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정보나 건의는 올리기가 괜히 조심스러워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국정원측은 “실제 내부 혼란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 자체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과장되다 보면 밖에서는 혼란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변화를 읽지 못하면 그건 더 이상 정보기관으로서 생명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말하자면 역할을 더 잘하기 위해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휴전선 155마일에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군 역시 말없는 가운데 변화의 시대에 맞는 정신전력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당장 경의선 철도복원 사업을 위해 북한의 조선인민군과 우리 병사들이 각각 방어용으로 깔아놓은 지뢰를 대대적으로 제거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방향으로 선로를 깔아넣는 작업에 나선다는 게 웬지 얼떨떨하다는 표정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북한은 아직 적인데 한편으론 화해의 대상인 동포라는 점을 강조하니까 적을 껴안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무엇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 문제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군의 임무는 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변화된 남북관계에 맞게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에 대한 교육과 함께 정상회담을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군 역할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주적(主敵)개념과 관련해서 “북한은 여전히 현존하는 위협이며 북한이 대남군사전략 등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주적개념의 변경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의 군사능력 감축, 군사력의 재배치, 대남적화전략 및 노동당 규약 수정 등의 조치로 북한의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이 사라질 때 비로소 주적개념 변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국가보안법 개정 실무와 공안사범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부와 검찰은 특히 실정법과 사회적 분위기 사이에서 심적 갈등을 겪고 있는 분위기다.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귀환을 요구했다는 오해까지 낳게 한 인공기 게양 사건 처리는 검찰의 고심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 회담기간 중인 6월 13일 서울대 고려대 등 전국 10여개 대학에 ‘남북정상회담 환영’이라는 문구와 함께 북한 인공기가 태극기와 나란히 내걸리자 서울지검은 “학생들의 의도야 어떻든 인공기를 내건 것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이라며 사법처리 방침을 밝혀 북측의 반발을 샀다.

    검찰은 내사 끝에 결국 사건을 그대로 종결했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라는 요건에 해당해야 처벌할 수 있는데 당시 사회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분위기였고 학생들의 행동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본격수사를 하더라도 수사성과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과거 같으면 유사 행위에 대한 ‘범의’ 여부는 정부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을 검찰측도 시인한다. 결국 과거에 비해 많은 환경 변화가 일어났음을 검찰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 도모가 가장 큰 목적이므로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법의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북한과의 관계 변화가 법적용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공안 환경의 변화를 어디까지 고려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애로점을 토로했다.

    “상황이 급격히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공안사범의 식별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에는 행위 자체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 쉬웠지만 이제는 변명거리가 많아진 듯싶다. 이제는 보안법을 위반한 쪽에서 어거지를 쓰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교육방식을 갖고도 문제를 삼는데, 우리 공안검사들은 국민들에게 ‘용공세력은 뿔달린 사람’이라고 교육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검찰이 안보논리를 뒤집어씌워 부당한 법적용을 해온 것처럼 매도하는 경우가 있어 답답하다.”

    검찰은 다른 한편 “법적용 기관이 너무 정치적 사회적 고려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에도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다. 7월2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검찰이 구속 취소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라 해서 국가보안법의 적용기준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사건의 경우 초범이고 개전의 정이 충분했기 때문에 관대한 처벌을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도 “국가보안법은 의도나 범의(犯意)가 범죄성립 여부에 크게 작용하며 시대적 상황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공권력은 사회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으며 숙명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교육부, 화해·협력 통일 교육 어떻게?

    청와대와 민주당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도 법무부와 검찰을 부담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남북화해 추진에 따라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보법 2조와 이적단체 찬양고무(7조), 불고지(10조) 등에 대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권의 주문을 받은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개정 검토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급물살을 타게 된 국보법 개정 작업은 야당측이 북한과의 상호주의를 내세우며 ‘서두를 것 없다’는 주장을 펴는 바람에 이래저래 법무부와 검찰만 곤혹스럽게 된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개정을 할 거라는 얘기를 법무부가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당장 일선의 공안검사들은 일손을 놔버릴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새로운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새로운 통일교육을 시켜야 하는 교육 당국도 과거에 주축이 돼온 안보위주의 교육을 화해협력 위주의 교육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교육부 이수일(李修一) 교육과정정책심의관은 “올해부터 시작된 7차 교육과정은 탈냉전시대에 맞게 민족간의 화해와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개정돼 있기 때문에 큰 혼선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정상회담 등을 통해 나타난 보다 최신의 역사적 객관적 사실들을 교과서에 추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바른생활’ 교과서의 보조 교과서인 ‘생활의 길잡이’(1종 교과서) 78쪽에 10년 전 남북적십자회담 사진 대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는 사진을 싣기로 한 것도 이같은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개정 작업에 대해 한나라당이 “아직 남북관계가 걸음마 단계인데 어느 한 정권의 업적을 옹호하는 교과서가 돼서는 안된다”고 비판하는 등 정치문제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바람에 교육부는 식은 땀을 흘렸다. 일부 보수단체의 항의도 무시하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교육부는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 역사적 사실을 게재한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인쇄 및 일선학교 배포를 완료한 상태다.

    교육부가 보다 신경을 쓰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남북관계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새로운 상황을 반영, 수정한 ‘학교통일교육기본계획안’을 마련해 학계와 전문가군의 검토를 마쳤고, 교과서 개정 내용 등을 반영해 가르쳐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 자료집 ‘변화하는 사회’도 배포하고 있다.

    교육부는 또한 내년중 통일교육 관련 별도 사이트 개통을 검토하는 한편 전국의 교사들에게 이메일 신청을 받아 통일교육 관련 자료를 수시로 동시전송해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통일 관련 각종 교과지침 프로그램 수업지도안 등을 CD롬으로 제작, 각급 초·중·고교에 배포키 위해 현재 한국교육개발원에 관련 작업을 위탁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교육부관계자는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서 큰 틀의 방향제시만 해주는 게 임무”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재량권을 적극 활용, 적절한 학습지도 자료를 준비하고 살아있는 교육을 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북대화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보수층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단체를 포함한 여러 단체 대표들을 접촉하고 있다. 대북화해포용정책 추진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통일문제와 관련된 여러 단체와의 만남은 물론 전문가, 대학교수, 시민·통일단체 대표, 각종 자문위원 등 각계에 서신과 이메일을 보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메일 등을 보낼 경우 정부의 일방적 정책홍보로 비칠 것이 염려되고, 개별 단체와의 접촉은 보수 뿐만 아니라 범청학련 등 양쪽에서 자기네 불만을 내세우는 바람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통일부는 그래서 진보와 보수성향의 단체들이 망라돼 있는 민화협 등을 통한 국민여론 수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보수’가 찾지 않는 민주당·한나라당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 남북관계에 관한 이념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정부 당국자들이 상황변화에 따른 정책집행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장기파행과 대선을 의식한 흠집내기식 정치공방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반미(反美)방치 의혹’이라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8월9일 발언을 놓고 여야가 한바탕 설전을 치른 것도 사실은 양측의 시각차가 정국파행을 둘러싼 감정대립으로 분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야는 7월13일에도 권오을(權五乙) 의원의 ‘청와대 친북세력’ 발언과 민주당측의 ‘(한나라당) 보수반동 반통일 세력’발언 등으로 국회 파행을 겪는 등 홍역을 치렀다. 이 소동 역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이총재 비난을 둘러싸고 여야가 진지한 대화를 갖지 못한 채 청와대가 북한과 이총재에 대한 양비론적 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다.

    한나라당 총재실에는 6·15정상회담 직후 주적문제 보안법문제 등 현안과 관련, 보수안보단체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활발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당이 남북문제와 관련해 구체적 대안 제시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나라당을 찾는 보수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정치권이 남북관계 전개를 둘러싸고 나타날 수 있는 이견을 수렴해서 정책대안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솔직히 아직 그런 작업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준비부족’을 인정했다. 그는 “다만 현재 진행중인 남북관계에서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총재 나름의 중장기적 비전 내지 구체적 플랜을 준비하도록 몇갈래 라인에 지시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총재의 또다른 한 측근은 “남북관계든 뭐든 여야의 정치적 갈등을 제도의 틀, 즉 국회안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를 열어서 난상토론도 하고 갈등의 핵심이 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문제와 관련한 보수층의 불만에 대해서는 “지금 보수층의 위기감과 소외감이 크지만 아직 뭘 결집하고 움직일 때는 아니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상황진전에 따라서는 어찌될지 모르며 정부는 이 점을 유념해서 이들의 불만과 소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의 한 관계자는 “사실 DJ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별’들을 끌어들이고 국정의 핵심 요직을 대부분 보수들에게 맡겨주는 등 보수 기반을 강화시켰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드라이브에서 보듯 정부 시스템이나 대다수 정치권을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시킨 채 독주하고 있어 아래로부터의 민족적 합의도출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문제와 관련한 보수층의 소외감과 불만에 대해 민주당의 견해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 서영훈(徐英勳) 민주당대표의 말.

    “국민들도 역사의식에 혼란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이 방향으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실제 구체적 문제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우여곡절이 있겠죠. 그러나 큰 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남북과 전세계에 방향을 천명하고 나가는 것이어서 물살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겁니다. 남쪽에서도 설사 정권이 바뀐다 해도 이런 상호의 물살을 혼자 되돌릴 수는 없을 거요. 전세계적 조류와 거꾸로 가는 거니깐.”

    남북관계의 구체적 각론들을 둘러싸고 이념갈등이 나타날 조짐 아니냐는 질문에 서대표는 “그런 문제들은 차츰 조정이 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 사안에 대해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견해차들은 무조건 통합하려 애쓸 게 아니라, 남북에게 서로 어떻게 좋은지를 하나하나 실감해가면서 자연스레 해결방도가 찾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뛰어난 식견’만을 믿고 개별 정책 현안과 관련된 문제 제기를 포기한 듯한 집권 민주당의 체질 자체도 문제로 지적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의 말.

    “당내 안보위원회에도 ‘안보’를 걱정하는 쟁쟁한 ‘별 출신’이 즐비하다. 그런데 얼마전 월남전 참전단체의 과격 행동이 있었을 때도 당은 그들의 불만을 수렴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정부가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소외감이 여과없이 표출된다는 것은 정부 여당이 이들을 좀더 잘 다독일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당이 너무 안이하고 무기력한 것같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치권의 안이한 자세가 이념갈등을 조정은커녕 되레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념적 색깔을 분명히 하지 않고 표를 위해 덕지덕지 여러 색을 덧칠해온 한국의 정당들이 민족의 장래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도 여야간 합리적 정책경쟁 대신 책임회피와 기회주의적 여론편승만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보수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은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이같은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병돈 전육사교장의 말.

    “왼편 사람들은 소수라도 잘 뭉치는데 보수니 우익이니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보수의) 목소리를 정당, 특히 야당이 수렴해줘야 하는데 한나라당이든 자민련이든 내부에 색깔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정확하고 분명히 대변해주지 못한 채 양비론만 펼 때가 많다. 정당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정당하고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여론을 수렴한 뒤 입장을 밝힘으로써 국민들이 뭔가를 선택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익명을 당부한 모대학 L교수는 앞으로 보수층 불만이 일종의 ‘대반격’으로 폭발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통합(intergration)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소수의 목소리를 갖고 전국을 뒤덮으려는 집권세력의 무모한 노력 때문에 속으로 국론이 분열돼가고 있다. 반공을 우스운 냉전의 유물로 치부하고 자유민주주의 프로세스를 다지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자꾸만 앞으로 건너뛰려 하다가는 코소보같은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지금 비록 냉전의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라지만 속으로 감춰진 분열요소가 폭발할 경우 통제불능 사태가 올 수 있다.”

    정용석 단국대교수도 “보수층의 불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무엇보다 정부가 대북 접근을 너무 서두른다는 데서 연유한다”면서 “북한은 아직 준비가 안돼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납득하기 어려운 양보를 자꾸 하니까 보수층의 불만과 야당측의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경험에서 나오는 보수층의 불안감을 다스리는 방법은 결국 정부의 속도 조절 밖에 없다는 얘기다.

    15대 국회에서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의원모임’을 이끌며 보수 목소리를 대변해온 김용갑(金容甲) 한나라당의원은 “요즘은 보수더러 ‘이제는 전향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던데 그럼 우리보고 진보로 전향하란 말이냐”고 최근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의원은 “지금 보수의 불만은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모든 것을 김정일의 ‘Yes’ ‘No’에 맡겨 놓았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장관을 지낸 같은 당 김기춘(金淇春)의원도 “아직 화해 협력 평화공존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정부는 마치 모든 게 다 된 것처럼 하니까 미군철수론도 나오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이런 보수의 우려를 잘 위무하면서 step by step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나머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反)통일’ 아닌 ‘쓴 약’으로 인식을

    이같은 보수론자들의 목소리를 두고 일각에서는 “물적 이념적 헤게모니를 100% 쥐고 있던 수구냉전 세력의 과거에 대한 향수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실제 모습에 당황한 냉전세력이 자신들의 입지에 위기의식을 느끼자 트집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리영희교수(한양대)는 “극우반공세력이 남한내 지역감정까지 끌어들여 자기들 논리를 규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DJ가 아닌 다른 대통령이었으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그토록 반대하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사실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군사정권시절 기득권층”이라면서 “이제 50~60년대식 냉전논리와 기존 경제발전방식으로는 안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력 및 북한개방 정책은 결과적으로는 기득권층에 가장 큰 혜택을 가져올 것임에도 이들 보수층은 기득권을 상실할까봐 말도 안되는 반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나종일교수(경희대)는 “남북대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더라도 구체적 사안에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 “이것을 과거시대처럼 진영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예컨대 미군문제에 관해 이견이 나타난다면, 정부가 그 이견을 관리하고 매니지(manage)하는 기술을 갖추고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햇볕정책은 다 옳고 절대 실수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건강한 남북관계가 정착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일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보·혁간 합리적 대화와 공존과 상호이해가 형성되지 못한 채 이념갈등과 정치투쟁 양상을 띤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민족적 불행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보수파 또는 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하는 야당측의 염려와 불안을 ‘반통일 세력’ 혹은 ‘냉전의 유산’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보다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다지는 데 필요한 ‘쓴 약’으로 여기고 차분히 대화하는 지혜가 현 집권세력에게 특히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교수는 “이 시점에서 집권층이 할 일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대통령이 적어도 야당총재에게만은 물밑흐름을 알려주고, 정부가 북한과 야합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여야의원들이 문닫아 걸고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으며 심도있는 비밀회의를 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내부 신뢰도 생기고, 나라와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충성(royalty)도 생기고, 우리끼리 균열하는 양상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터뷰]이상훈 재향군인회장

    “화해·협력 동참하되 안보 훼손 좌시 못해”

    ―요즘 급격히 변화하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진전은 갈등과 대결로 점철됐던 남북관계를 화해와 평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 ‘안보단체’들이 우려하는 것은 상호 불신의 근원인 군사적 위협 해소, 즉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내용이 아직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대다수가 ‘이젠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실제 북한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달라졌다면 휴전선 대남 비방방송과 노동신문의 대남비방기사가 그치고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이 없다는 정도인데, 이런 것은 당장 오늘이라도 재개하면 다시 일어날 일들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키자는 것인데 되레 우리만 변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내부에 대북 접근 속도와 방식 등을 싸고 이견이 나오는데….

    “남북관계는 북쪽과의 관계보다는 남남(南南)관계가 보다 중요하다. 우선 우리 정치권부터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대북정책에 관한 한 초당적 공조체제를 유지해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정치권은 남북화해·협력증진을 위한 총체적인 대책 마련보다는 남북문제 주도권 다툼만 하며 앞뒤가 바뀐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가.

    대통령이나 일부 장관만이 주도하는 남북관계가 돼선 안된다. 대통령이 야당총재와 만나든지 해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기본 합의를 해놓고 나가야 한다. 담당자가 너무 한건주의에 매달려 대통령에 잘보이기 경쟁만 하지 말고 여야합의를 바탕으로 마스터플랜을 세워놓고 꾸준히 밀고나가는 대북정책이어야 한다.”

    ―정부 쪽에 그런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좀 하는 편이신지.

    “정부에 내 군후배들이 많다. 얼마전 내가 그런 ‘정부당국자’한테 그랬다. 남북이 화해하고 가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지만 끌려다니고 사정조로 해서는 안된다고. 우리의 경제력은 북한의 100배이고 삼성이 한해 벌어들이는 돈만도 북한 GNP와 맞먹는다. 그런데 비전향 장기수도 일방적으로 북송하고 조총련교포 입국도 일방적 시혜같다. 한국의 납북어부와 국군포로는 없느냐. 우리 향군더러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발언’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이 많다. 한쪽에만 유리하게 가면 나중에 가서 국민들이 반대하게 된다. 이런 얘기들을 군이나 정부 안보관계자에게 수시로 해주고 있다.”

    ―이러한 과도적 시기에 향군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우선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화해협력 및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 확산 차원에서 양쪽의 6·25전사자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추진하겠다. 격전지 상호 방문 및 쌍방 참전자간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탄력적으로 추진하겠다.

    한편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 안보의식 제고 차원에서 국방예산 확보 및 무기체계 개선을 촉구하고 남북관계 진전도 튼튼한 안보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려 나가겠다. 안보에 훼손이 있을 경우는 과감히 목소리를 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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