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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흔들리는 보수세력

“6·15선언, 정권 바뀌면 휴지조각 될 수 있다”

보수파의 직격탄/이상우 서강대 교수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6·15선언, 정권 바뀌면 휴지조각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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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투명한 대북정책으로 이 사회 주류를 이루는 보수세력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보혁갈등은 깊어질 것입니다. 대북정책에 기울이는 노력만큼 보수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정치적 노력을 펴지 않는다면 화를 자초할 수 있어요.”
원로 정치학자 이상우(李相禹·62·서강대) 교수는 남북문제와 관련해 보수적 성향이 뚜렷한 인사다. 이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내연(內燃)하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양상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아직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층에 대한 설득과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채 ‘북한이 변화했다’고 속단, 과속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태로 가면 머지 않아 남남(南南)갈등으로 인해 대북협력 정책 자체가 큰 어려움에 부딪히고 정권의 장래에도 빨간 불이 켜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먼저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남북문제와 관련해 보수다 진보다 하는 개념부터 좀 따져보기로 하죠. 현실 세력으로서 보수와 진보를 얘기할 때는 정치학적인 보수-진보의 개념과는 좀 다를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보수는 현존질서(status quo)를 지키자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 고쳐나가자는 게 진보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보수라고 하면 현존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것이고, 이는 곧 대한민국이 기초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수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 삶의 질을 집단보다 우선시하는 겁니다.

이런 보수 시각에서는 남북통일문제의 기본 전제가 되는 민족주의에 관한 생각도 진보세력과 다릅니다. ‘북한이 남이 아니니까, 북한 주민에 대한 동포애적 입장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북한 동포들도 누리게 해주겠다’는 정도가 보수 쪽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통일보다는 이념, 즉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 거지요.

반면 진보 쪽 사람들은 민족을 이념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또 다분히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웁니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인 정치학적 용어로 말하는 진보와는 정반대가 되는 겁니다. (정치학에서는) 과거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인권을 신장한다든지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진보였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 반대가 돼 버리죠. 평화와 통일의 비중에 있어서도 평화보다는 통일을 우선하자는 거고요.

진보에는 친북적 진보와 낭만적 자유주의자(romantic liberalist)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주사파 등 북한의 이념 노선을 따르는 세력이 친북적 진보라면 독재정권 하에서 서구와 같은 인권 자유 등 자유민주사회의 기본가치가 무시되는 데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소위 ‘민주화세력’이 로맨틱 리버럴리스트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이 둘은 집단을 중시하느냐 개인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본래 양극에 있는데, 과거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에 반대해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집권한 게 현 김대중정부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국내정치에 남북관계 이용 의심

─ 그렇다면 현 정부의 노선이랄까, 이념은 구체적으로 어디에 가깝다고 보십니까?

“굳이 분류한다면 물론 진보죠. 친북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 헌정사상 첫 진보정권으로 볼 수 있어요. 현 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중이 전통 보수보다는 훨씬 약하다고 봅니다.”

─ 우리 현실에서 북한과 남한이라는 상이한 체제가 어디까지 공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시각 차이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는 이 가운데 북한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생각인 것 같고요.

“남과 북의 관계에서 본다면 서로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정반대이고 상극 체제예요. 그러니까 통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하나로 된다는 얘기는 북한이 현재의 체제와 이념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즉 다원주의 상대주의 가치관을 도입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북한과 같은 이념체제를 도입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 남쪽에서는 이념이 통일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이념(자유민주주의)을 지키기 위해 50년 전에 북한과 끝까지 전쟁을 했어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어가면서 말이죠.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통일을 위한다 하더라도 이념 체제를 포기할 수 없는 상태이고, 북한도 이념을 절대 포기 못할 거 아니에요? 그럼 결국 공존밖에 없어요. 그런데 항시 불안한 공존상태에서 살수는 없잖아요. 지금까지 남쪽의 대북정책은 이 공존을 제도화하자는, 다시 말해 평화를 제도화하자는 것이었어요. 서로 다르니까 통일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상태에서 서로가 인정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보자는 거죠. 전통 보수에 있어 대북정책의 핵심이 공존정책이니까 공존에 관한 한 현 정부와 생각이 다를 게 없어요.

다만 문제는 공존단계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고 제도화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건너뛰어서 통일단계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전통보수가 당황하는 거지요.”

─ 그렇다면 전통 보수와 정부 간에는 현 상황에 대한 해석과 인식의 차이밖에 없다는 겁니까?

“아니죠. 근본적 차이가 있지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전통 보수에서는 통일보다 자유민주 이념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이것은 광복 직후의 좌우 이념갈등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통일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면 6·25전쟁을 왜 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300만명의 희생을 불사하면서 전쟁을 한 것입니다.

‘대화’를 얘기할 때도 진보세력은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하자는 겁니다. 반면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말고 평화를 유지하는 선에서 ‘화해’를 위해 대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통일의 목적 자체를 ‘북한 동포들도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에 두는 것이 전통 보수입니다.

이런 근본적 시각차는 물론이고 앞서 말한 현 단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분명 있어요. 정부는 북한이 지금 변화하고 있고, 변했다고 보는 겁니다. 북한이 변했으니까 우리와 가까워질 수 있고 가까워지는 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거예요. 전통 보수에서는 북한에 외형적 전술적 차원의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본 이념에 관한 한 변했다고 하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 이거에요.”

─ 현 정부가 그렇게 북한의 변화를 전제하고 들어가는 데에는 국내정치적 목적에서 남북문제에 관해 뭔가 빨리 가시적 성과를 내야겠다는 욕심이 개재했다고 보십니까?

“현 정부의 권력기반은 상대적으로 진보쪽인데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보수가 다수이고 진보는 소수예요. 거기에다가 지역적으로도 호남이라는 소수에 근원을 둔 취약한 정권이에요.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는 차기 정권 창출이 상당히 어렵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만일 앞으로 남쪽에서 보혁(保革) 갈등이 일어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어요.

이 한계를 이런 틀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국내 차원을 넘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국내의 지지기반을 확충하고 보수세력의 저지선을 돌파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업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국내에서 반대파를 압도하는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남한내 헤게모니 확보와 정권연장이라는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어요. 여기에 비록 동상이몽이긴 하지만 북한도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기에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거지요.”

전통보수 반발, 조직화 가능성

─ 보수 쪽에서는 그러한 정부의 대북 드라이브에 대해 불만과 우려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향적으로는 이를 잘 표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난 50년 동안 국내에서는 정부가 항상 보수였고, 사회의 주류가 전부 보수였어요. 그러니까 다른 점에서는 여러 가지 불만과 반대가 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점에서는 정부와 국민이 일치돼왔거든요. 그래서 전통 보수의 입장에서는 반공은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고. 특별히 노력하거나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어요. 전부 자기 생업에 바쁘고 자기 할 일이나 했지 의식적으로 우리 이념체제를 지키고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반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항상 정부에 반대하는 위치에 있고, 소수로서 정부에 반대하려니까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고 이념적 무장을 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비록 숫자로는 소수지만 잘 조직되고 의식화된 게 진보이고, 다수라고 하면서도 의식화되지 않고 거기에 이념적으로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수예요.”

─ 그럼 이런 보수의 침묵이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글쎄,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그런 보수들이 갑자기 이런 상황에 부딪히니까 당황하는 거예요. 으레 정부가 우리 편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새삼 이걸 다시 생각해보고 따져봐야 할 것 아니에요? 뭔가 이상하다, 혼란스럽다, 옛날 같으면 반공을 하면 정부도 칭찬하고 6·25 때가 되면 우리 입장에서 뭔가 강한 얘기를 하는 게 정상이었는데, 6·25 50주년 행사도 하지 말라고 하고, 북한을 욕하지 말라고 하니까 혼란스럽다는 게 보수 쪽에서 나타난 첫 번째 징후들이에요.

여기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일단 전통 보수 쪽에서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할 것이고 점차 조직화, 의식화될 겁니다. 그 단계가 되면 보혁 갈등이 심화되고 표출될 것인데 그게 걱정스러운 겁니다. 나는 사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앞으로 6개월 안에 심대한 내부 갈등이 야기되겠구나’ 하고 걱정했는데, 3개월 만에 벌써 전통 보수들이 이념을 체계화하고 조직을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 그렇다면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라도 먼저 보수세력이 느끼고 있는 당혹감과 걱정을 이성적으로 잘 전달해서 인식의 갭을 좁히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그런 것을 막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보수적 견해를 가진 지식인들이 자기네 견해를 펼쳐 보일 수 있는 마당을 제한당한다면, 예컨대 신문 잡지 같은 데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게 간접적으로 제약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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