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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李會昌 격파 노리는 DJ의 ‘와일드 카드’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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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통령의 입장은 먼저 국정운영에 성공해 정권자체가 확고한 국민적 지지기반을 쌓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당원과 국민 속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예비후보가 극적인 경선을 통해 남북관계 등의 성과물을 집중 상속받게 될 것이다.
“이 인제(李仁濟)의원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8·30민주당 전당대회를 며칠 앞둔 지난 8월 어느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동교동계 핵심인사를 청와대에서 단독면담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당내 뿌리가 약한 이의원이 경선에서 혹여라도 지나치게 부진한 성적을 거두어 차기 카드의 위력을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의중이 담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이의원이 1위에 등극할 경우 조기대권몰이로 인해 부작용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듯, ‘8월 전당대회는 당권 대권과 무관하다”고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대권론’을 앞세운 이의원의 과속질주에는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실제 경선결과 이의원은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를’ 2위를 차지했다.

이 명쾌하지 않은 이의원의 위상이야말로 DJ의 차기구상을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김대통령은 현재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시발로 하는 ‘한반도 정치’에 온 신경을 쏟을 뿐 차기 정권창출 구상은 되도록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회창(李會昌)이라는 확고한 대표선수가 대권을 향한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김대통령은 과연 어떤 복안으로 그를 격파하려는 것일까? 이인제는 김대통령의 축복아래 민주당 대표선수로 출전할 확실한 카드인가? 아니면 김대통령이 주머니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러 카드중 하나에 불과한가?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적으로 짚어봐야 할 것은 정치권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이인제 불가론’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권력투쟁의 소산 ‘이인제 불가론’

‘이인제 불가론’은 한마디로 이인제 최고위원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인제 불가론’은 특히 지난 4·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남권을 싹쓸이한 뒤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영남권은 1997년 대선에서 투표자수가 무려 720만명(PK지역 430만, TK지역 290만)이었다. 호남권(330만)과 충청권(250만) 투표자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 그런 영남에서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는 이위원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총재를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수치가 뒷받침하고 있다. 97년 대선에서 국민신당 이인제후보는 전국적으로 18.1%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영남지역에서는 24.64%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후보의 영남지역 지지율은 13.23%. 그러나 지난 4·13총선에서 이인제선대위원장 체제의 민주당은 영남권에서 13.06%밖에 얻지 못했다.

민주당은 97년의 김대중 이인제후보표의 합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김대중후보의 득표율보다는 늘어나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적어도 영남에서는 이인제를 앞세워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그 원인을 ‘이인제 학습효과’로 설명한다. 영남 사람들이 97년 대선 때 이회창 이인제에게 표를 나눠주는 바람에 DJ에게 정권을 빼앗긴 것을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고 있으며 “다시는 안 속는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국당으로 출마한 영남권 정치거물들이 맥도 못춰보고 넉 아웃된 것도 “민국당을 찍으면 제2의 ‘이인제 사태’가 온다”는 한나라당 구호가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위원은 선대위원장이면서도 영남권에는 제대로 지원연설조차 하러 갈 수 없었다. 당소속 후보들이 역효과를 우려, 초청을 자제했던 것이다.

실제 이최고위원은 각종 차기주자 여론조사에서 여권후보로는 유일하게 한나라당 이총재와 엇비슷한 지지율을 유지해오면서도 영남권에서는 유독 한자리수에 불과한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 8·30 최고위원 경선에서 이위원이 무려 13%포인트 뒤지는 2위에 그친 데에는 영남 대의원들의 비토가 한몫했다.

그만큼 영남민심이 그에게 좋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가 얻었던 500만표의 최대 뭉치는 영남권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 영남민심은 철저히 이인제를 떠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영남권에서 이인제를 찍은 사람들은 대개 젊은 층이다.

이들은 영남일반의 지역정서에도 불구하고 ‘DJ가 되면 또 어떻노?’하면서, 또는 ‘세대교체가 돼야지’ 하면서 ‘소신투표’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부산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이 ‘2대(大) 병신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로는 ‘TK는 30년간 (정권) 해먹고 뺏겼는데 느그는 고작 5년 해먹고 빼앗겼느냐’는 비아냥이고, 둘째로는 ‘이인제를 찍으면 DJ가 당선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찍어놓고 이제 와서 후회하느냐’는 힐난이다.

부산의 다짐 “두 번은 안 속는다”

부산 M여행사 구모부장(36)은 “과거 한때는 이인제씨에 대해 ‘싫다’와 ‘좋다’가 엇갈렸는데 이제는 그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우스워졌다”면서 “지난 대선 때 이인제를 찍었다는 사람들은 어디가서 함부로 말했다간 맞아죽을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제는 아예 잊어버릴 만도 하지만 DJ정부가 부산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될수록 ‘DJ집권에 일조한 이인제’를 원망하는 소리가 습관처럼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부산 항운노조 배양호(裵良鎬) 정책총간사는 “지금 상황에는 민주당에서 누굴 내놔도 부산에서는 안되겠지만 특히 이인제씨는 대선 당시 원죄 때문에 예서는 구의원도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산 D대학에서 만난 김정열(金楨烈)교수의 말. “이인제 때문에 한나라당 또는 영남이 정권을 빼앗겼다는 것은 사실 지나친 말이다. 패인은 이인제 말고도 많았다. 문제는 이인제가 민주당에 합류해버린 점이다. 합류하지 않고 탈당해 있었다면 이총재의 독선 독주를 비판해 결별했다는 정당성을 확인하면서 이회창의 대안으로서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덜퍼덕 민주당에 입당해버리면서 영남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영남에서 일부 젊은 층과 함께 이인제를 지지했던, 민주계 정서를 가진 장년층도 90%이상은 돌아선 것 같다.”

부산 동서대 박종호교수도 “민주당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감이 큰 데다가 이인제에 대해서는 특히 지난 대선패배의 원흉 이미지가 겹쳐서 거부감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강옥춘씨(37·부산 금정구 서동)는 “이인제씨는 부산·경남을 대변하기보다는 개인의 대권욕심을 앞세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전국적 구도에 어필하는 정책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막연히 차기주자만 자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산상공회의소 이중호(李重昊) 조사연구팀장은 부도율 1위, 실업률 1위 등 전국 최악인 부산경제가 민심을 악화시켰음을 지적한 뒤 “과연 누가 부산정서를 대변할 인물인지도 모르겠고 관심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충무동 공동어시장에서 도매상을 하고 있는 김종수씨(70·중구 영주동)는 “이인제는 배신자 아이가(아니냐)”면서 “이 지역(김해) 출신인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이 취임 직후 어시장을 방문했을 때 단 한 명도 박수를 치지 않았을 정도로 정부여당에 대한 바닥민심이 차갑다”고 말했다.

이동환 부산경실련사무처장은 “양당의 기반, 즉 민주당의 호남의존도와 한나라당의 영남의존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인제씨는 이곳 부산에서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처장은 “시민들이 이인제씨를 비난하는 명분은 ‘경선불복, 민주주의 위반’이지만 이는 실은 ‘DJ의 꼬붕이 된 것을 용서 못한다’는 ‘반 DJ정서’를 고상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시민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식의 인물판단을 한다는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게 부산정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산의 ‘이인제 팬’이 전멸한 것은 아니다. 북구 구포동에서 약재도매상을 운영하는 김모씨(47)의 말. “말을 하진 않지만 이인제를 지지할 사람이 그래도 꽤 된다. 과거보다 예산이 더 많이 내려오는데도 부산경제가 워낙 침체되다보니 이 모든 것을 ‘이인제 비토론’으로 연결시키려는 한나라당 전략이 먹혀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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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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