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지금은 南北이 서로 고무 찬양할 때다”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08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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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공전과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등 여야간 팽팽한 대치정국이 한창이던 9월6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일단의 여야의원들이 한데 모여 이색적인 토론회를 가졌다.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이 주축이 된 청년그룹 ‘제3의 힘’과 386 출신 정치인 및 각계전문가 모임인 ‘젊은 한국’ 공동주최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 명칭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정치토론회’.

    토론자로 참여한 인사들 역시 대부분 80년대 학생운동에 깊숙이 간여했던 386의원이거나 이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여야의 소장파 의원들이었기에 80년대 대학가와 진보적 지식인 그룹을 풍미했던 통일문제 관련 시국토론회나 학술토론회를 연상케 하는 ‘동지적’ 분위기였다.

    이날 토론회 직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주둔 남북 병사들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이들 386의원들은 때로 ‘위험수위를 넘는’ 과감한 주장도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참석자들 스스로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모두 안기부에 끌려가 죽도록 얻어터지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발언들”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시대변화를 실감케 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은 남북문제와 관련한 386세대의 적극적인 ‘신(新)사고’ 또는 진보성향의 대북관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을 요약, 정리해본다.



    ‘젊은 한국’ 대표인 김민석(金民錫) 민주당의원이 인사말 형식으로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김의원은 전날 유엔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 항공사측의 과도한 몸수색에 반발, 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돌아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예정돼 있던 회담까지 연기된 사실을 상기시켰다.

    “정치권의 친미사대경쟁 반성해야”

    “최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근본 주체는 남북한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한반도 관련 기사가 많습니다. 어제 김영남 상임위원장 관련 사건을 접하면서 아, 이제 정말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민족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대개의 토론회가 발제자들의 주제발표가 있고 이를 토대로 찬반토론이 이어지는 것과 달리 이날 토론회는 별도의 주제발표 없이 처음부터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서중석(徐仲錫) 성균관대교수(사학과)는 “논의 순서상 ‘북한은 변했는가’ 하는 데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50대 재선의원이면서도 평소 ‘민족정기’를 강조하며 386세대에 가까운 문제의식을 보여온 김원웅의원(金元雄·한나라당)이 마이크를 잡았다.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습니다. 김영남위원장의 방미가 불발된 사건 속에서도 북한은 김대중대통령과의 회담이 미뤄지게 된 사정을 우리측에 통보하고 양해를 구했어요.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북한은 동족으로서 남한을 존중하고 남북간 화해 제스처를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는 이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몇 해 전 미국의 슐츠 국무장관이 한국 외무부장관과 대담을 하기로 한 그 전날 한국의 정부청사에 사전양해나 통보도 없이 군용견을 앞세운 폭발물 수색체포조를 무작정 투입해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의 우월주의, 한반도에 대한 경멸, 뿌리깊은 편견에서 나온 거라고 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의 긴장완화로 불안해하고 있는, 미국 내 보수세력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하려고 움직일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북한의 변화를 긍정평가하고 미국 내 보수세력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 김의원은 이어 한국 내 ‘친미사대세력’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퍼부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 동안 미국에 대해 굴욕적 태도로 일관한 한국 정부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울러 우리가 이 시점에 견제해야 할 대상은 강대국의 환심을 얻어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국내 일부세력입니다.

    이들은 미국을 우방시하거나 종주국으로 모시려는 반민족적 수구세력입니다. 이들 중에는 친미주의, 사대주의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양 당연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은 절대 한국의 종주국이 아니라 우방국으로 남아야 합니다. 친미 반미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정책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배치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국제관계에서는 일방적인 수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상적 미국관을 깨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얼마 전에 ‘정부가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로 여야간에 공방을 벌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정치권이 마치 앞다투어 친미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은 국민의 반미감정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그간 자기나라 국민을 보호하는 일을 소홀히 한 데 대한 반성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말자, 성수대교 참사를”

    이어 TV토론 진행자 출신인 정범구의원(鄭範九·민주당)이 마이크를 받아 좀 더 분석적 어조로 ‘국익’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마지막 일정으로 하와이에 있는 미군 태평양 사령부에 들렀습니다. 거기 군사령관인 하우스 준장과 대화를 나눴는데 요약하자면 북한이 변화하지 않는데 남쪽이 섣불리 안보에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미(美)군부에서나 할수 있는 얘기죠. 북한 지상군의 60%가 휴전선에 전진배치돼 있다고 하지만 남한의 지상군도 비슷한 비율로 배치돼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쪽 지상군 병력에 어떤 변화가 없는데, 북한의 변화여부에 대해 상호주의를 편의적으로 적용하는(변화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 보수적인 견해가 아닌가 말입니다.

    예를 들어 경의선 복구작업과 관련해서 얼마 전 야당측의 한 정책토론회에서 어떤 군사 전문가가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경의선을 복구할 경우에 북한이 남침하면 이를 막을 길이 없다고 말이죠. 저는 여기에서도 상호주의가 너무 편의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도 개방에 대해 똑같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측 대표단을 만났을 때 (북한의) 식량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진솔하게 얘기했습니다. 도와줘야 되지 않는가 라고 했는데, 북한은 잘 아시는 것처럼 민족자긍을 무척 강조하는 체제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이나 일본 사절단을 만나서도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인 남한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며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진솔한 접근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친 김영춘의원(金榮春·한나라당)은 김대중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 ‘튼튼한 기초를 위한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판적 지지’라고나 할까?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봅니다. 6차 당대회가 80년대 초에 있었고 20년 동안 당대회를 치르지 않았는데 과연 이번에 당대회를 소집해서 전 국가노선의 문제로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그것을 지켜보면서 북한의 변화가 어떤 차원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드라이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반통일 세력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그렇게 매도당해도 싼 사람들도 있겠죠. 그러나 진정한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우리는 날림공사에 대해서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빨리빨리’ 하는 것만이 우리의 과제인 것처럼 돼 있던 시기에 ‘왜 이렇게 빨리 하느냐’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서 제대로 된 공사를 하자’고 하던 사람들은 ‘반(反)개발론자’ ‘반성장주의자’로 매도 당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에서는 바람도 많이 불고 홍수도 터질 수 있습니다.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놓아야 그 위에 최종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잖아요. 때문에 저는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에 관해서 야당이나 언론,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를 겸허하게 경청하고 수용할 줄 아는 자세를 주문하고 싶어요. 그것을 통해서 오래도록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 정부의 통일정책이 형성되길 바랍니다.”

    백준기 한신대 교수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는가 하는 검증키 어려운 화두에 집착하기보다는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는 논지를 폈다.

    대입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 노동운동 투신, 검사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원희룡의원(元喜龍·한나라당)은 “남북관계는 과거와 달리 분명 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하면서도 “변화의 원칙과 방향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한국의 번영조건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도 북한의 비틀어진 경제는 일으켜 세워야겠지만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남한 내부의 경제력만이 아니라 미북관계나 일북관계 등에 의해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외부의 신뢰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가 촉구·설득해야 하고 군사적 긴장해소 및 평화기조 정착에 논의의 초점을 모아야 합니다.”

    연세대총학생회장과 노동운동 경력을 갖고 있는 변호사인 송영길의원(宋永吉·민주당)은 “북한은 전략적 차원에서도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년 넘게 후계자로 경험을 쌓은 데다가 냉전시대의 붕괴로 중국과 러시아라는 후방기지가 끊어지는 등 대내외적 조건이 변했다는 분석이었다. 북한은 과거식의 이른바 남조선 해방을 위한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일변도의 전시체제를 탈피, 남한의 번영된 현실을 인정하고 남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김원웅의원은 김대중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기반 확충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의 에너지가 근본적으로는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절차를 소홀히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법으로는 구체적으로 DJ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얘기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좋은 통로는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에서, 설사 야당이라고 하더라도, 애국심을 가진 비판자라고 생각하면서 그 의견을 충분히 듣고서 안(案)을 통과시킨 뒤 대북지원을 하는 양상을 보여주어야 힘도 받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대북지원을 제도화하기 위한 대북지원·협력법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정치권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없애야 국가보안된다”

    북한의 변화문제에 관한 참석자들의 열띤 논의에 이어 국가보안법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먼저 율사 출신인 원희룡·송영길의원이 각각 ‘개정론’과 ‘폐지론’을 폈다.

    원희룡의원 국가보안법은 대폭 개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응해 형법상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는 부분을 법적으로 처벌키 위해 만든 법인데 유신정권이나 군사정권이 이를 인권탄압에 너무 악용했기 때문에 현재 개폐 논의의 대상이 돼있습니다. 최소한 국가보안법에서 불고지죄, 고무·찬양죄, 잠입·탈출죄 등의 조항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공작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헌법상의 내란죄나 간첩죄만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이런 점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송영길의원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그 동안 국가를 보안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했습니까? 내부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형법으로 만들어서 시행한 게 이 국가보안법입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국가가 보안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대남공작을 막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을 차단해왔어요. 이것이 없더라도 형법이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이 적용됐던 부분은 주로 (북한이나 이적단체에 대한) 찬양·고무인데 지금은 오히려 남북이 서로 좋은 점은 찬양·고무하는 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백준기교수 북한이 남조선 지역혁명론 또는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전제는 남한 내에 혁명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에 그런 지역혁명론의 견실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 북한이 대남혁명전략 자체를 포기하든지 안하든지 간에 국가보안법에서 얘기하는 남한에서의 체제전복활동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또한 남한 시민사회의 건강성이나 역량을 볼 때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할 것입니다.

    김원웅의원 국가 보안법은 냉전체제의 유물이니만큼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법상 간첩죄나 반란죄로 충분히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어요. 그리고 국가보안법은 자기 모순을 가지고 있어요.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본질적으로 해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은 출발부터 불행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48년 9월22일 반민특위법이 통과됐습니다. 그 당시에 그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바로 친일파입니다. 이 친일파들이 위협을 느끼고는 민족주의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와 결탁해서 국가보안법을 만든 겁니다. 반공만 외치면 친일파까지도 애국자로 둔갑하던 시기에 그들이 필요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친일파들이 민족주의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국가보안법의 초기 단계에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사람들 상당수가 민족주의 세력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 남북개방시대에는 국가보안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잠재적인 적국이 어디냐 하면 주변국가들입니다. 미국 러시아 일본도 다 그런 국가보안 위협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는 ‘민족보안’과 연결되는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J는 ‘잠입탈출죄’, 전두환은 ‘수괴죄’

    정범구의원 80년대를 풍미했던 사회과학 방법론에 보면 한 사회 구성을 토대와 상부구조로 나누는 방법이 있잖습니까. 법률이라는 게 토대를 반영하는 거지만 토대가 변화하는 만큼 상부구조가 변한다는 논리죠. 상부구조가 토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위기에 처한다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국가보안법이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넘어갑니다만, 김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건 ‘반국가단체의 수괴를 만난 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평양에 다녀온 건 ‘잠입탈출죄’에 해당됩니다. “알고 보니 김정일 위원장이 통이 크고 합리적인 사람이더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찬양고무죄’가 되는 거죠.

    법이라고 하는 것이 지속성을 갖고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건데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 우스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의 수괴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전두환씨입니다. 1980년에 민주적 기본질서, 헌정질서를 완전히 유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해서 수괴임무에 종사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80년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습니까? 주체사상이라든가 혁명적 기류도 강했고요. 근데 전두환씨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요. 진짜 반국가사범은 놔두는 게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어지럽힐 때 적용했어야 하는 법이 실제로는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김영춘의원 현재의 국가보안법에서도 91년에 개정된 줄거리 자체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인권침해 소지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정을 몰라’ 북쪽 사람도 만나고 고무·찬양도 하고 그랬던 사람들을 수사기관이 잡아다가 “너 임마,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았잖아!” 그러면서 고문하고, 그런 과정에 인권을 침해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얘기하듯 민주질서를 수호하는 대체입법을 하든지, 아니면 다 없애고 국가안보를 위해서 필요한 항목들은 형법조항을 통해서 다 소화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내용 자체가 이미 실효성을 상실하고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라고 하는 것은 국가체제의 안정성을 의식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을 없애면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안보태세는 결정적으로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고, 더 나아가 국론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그런 폐지가 필요한지,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좀더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민 ‘제3의 힘’ 운영위원장 저는 과거 한때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단체’(제헌의회)의 ‘수괴’로 규정됐던 사람이기에 이런 자리에 나와 국가보안법 개폐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회가 큽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국가보안법문제보다 더 관심있는 게 헌법입니다. 국호는 대한민국 외에는 쓰지도 못하고 연방제는 언급도 못하게 하는 게 우리 헌법입니다. 이런 문제는 왜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헌법에서 규정한 것처럼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김영춘의원 아무래도 얼마 전에 의원총회에서 헌법상 영토조항 개정론을 폈던 제가 먼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지는군요.

    이승만대통령 시절에는 북진통일론을 기초로 하여 “북한정권은 공산주의 국가니까 완력으로 제압해서 패퇴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또 한편 북한은 우리와 동족이니까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헌법은 북한 땅을 우리 영토에 포함시켜 놓았어요.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에서도 북한정권은 당연히 반국가단체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제 현실을 좀 차분하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남한 영토가 휴전선으로 국한된다면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우리 동족이 현실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민족국가라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두 개의 국가가 적대하고 맹목적으로 불신하고 대결일변도로 치닫던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교류하고 만나고 협력을 통해 신뢰기반을 쌓아나가는 대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원희룡의원 헌법 3조 영토조항에는 북한이 엄연히 우리 영토로 돼 있는데 바로 다음 4조에서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영토를 회복하지 않고) ‘평화통일을 추구한다’고 돼 있어요. 이는 현실의 이중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3조를 없애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이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송영길의원 물론 북한은 이중적 존재죠. 동포집단이면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합니다. 따라서 헌법도 그런 이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북한하고의 문제 이전에 우리의 사상을 지배·통제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상이든 할 수가 있고 자기 사상을 표현할 자유가 있는데 이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유린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상이 폭력으로 표출될 경우는 국가보안법이 아니라도, 가령 살인죄나 주거침입죄 등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원웅의원 영토조항은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 경우는 애초부터 헌법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기본법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라는 걸 전제로 한 거죠. 그런 전제 아래 분단체제의 잠정적 현실에 맞게 서독지역 영토만 규정한 거죠.

    반면 대만 헌법에는 영토조항이 전 중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민진당이 이를 개정해 대만과 부속도서만을 영토로 하려 하니까 북경정부가 이를 개정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체를 포함하는 현행법을 유지해야 ‘하나의 중국’이 달성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서중석교수 끝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통일방안 문제에 관해 좀 얘기해보죠. 6·15 정상회담 제2항에 보면 남북의 통일은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같은 형태로 이해해서 통일해 나아간다는 건데….

    정범구의원 우리는 오랜 단일민족국가의 전통 때문인지 두 개의 국가를 인정치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있는 국가 모델들을 보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중국처럼 일국 양체제를 내거는 경우도 있고, 소련처럼 단일국가해체 뒤 독립국가연합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미국이나 독일 같은 연방제도 있습니다. 우리 역사도 삼국시대가 있었고요.

    중요한 것은 우선 상호신뢰를 갖고 호혜적으로 나아가며 평화적으로 공존해본 연후에 과연 어떤 식의 정부형태가 우리에게 적합한 것인지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방제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문제라고 봅니다.

    원희룡의원 남측의 국가연합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합의했다는데 저는 제일 아쉬운 게 이 점에 대한 정부측의 설명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案)이 어떤 내용이고 그게 어떤 점에서 우리의 국가 연합안과 연관이 있는지, 정부측에서 이걸 투명하게 설명하고 그런 문안이 나오기까지 있었던 논의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논의와 협의 과정을 이끌어야 되지 않나 지적하고 싶어요.

    연방제는 국가연합과 달리 군사·외교분야의 단일성을 전제로 하는데, 체제를 달리하면서 연방제를 통해 통일에 이른 예는 인류역사에서 없었어요. 연방제 통일을 시도했던 남북예멘도 결국 내전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체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연방제라는 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현실성을 갖고 진행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게 본질적으로 국가연합과 같아질 수 있다면 ‘낮은 단계의 호랑이’가 고양이와 같아질 수 있다는 얘긴가요?

    “남북은 부부, 미국은 제3자인 변호사”

    송영길의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의 형태보다도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겁니다.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94년 북한 핵위기 때 우리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미북관계가 좌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민족의 이해와 관계없이 우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현실 앞에 경악했습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가연합 단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일단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독자적으로 나간다는 그러한 점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도 부부싸움을 해본적이 있습니다만, 부부싸움을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우선 불필요한 비용이 많이 듭니다. 또한 애들을 내팽개치거나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하고, 상호비방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결정권을 제3자인 변호사나 검사한테 맡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쌍방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데,둘이 대화를 시작하면 변호사나 검사는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6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만나고 남북간에 깊은 대화가 진행되니까 미국이 도리어 소외의식을 느끼고 궁금해서 금방 쫓아와서 ‘서로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묻고 난리잖아요.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스스로 뭘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성호의원(민주당) 제가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주변에도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데서 민족의 이익과 주변국들의 이익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미국과 일본이 비판했던 근거가 미사일 문제와 핵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솔직히 유감이라는 거죠. 미사일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것이 굉장히 큰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데, 아마 이 미사일은 대포동 미사일을 얘기하는 거겠죠. 그러나 이미 북한은 한반도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는 노동 1호 2호 미사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솔직히 우리에게는 북한에 설령 대포동 미사일이 있거나 없거나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남북관계에 대해서 얘기할 때 민족의 이익인가 아니면 주변국들의 이익인가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중석교수 오늘 이 자리는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젊은 정치인들이 모처럼 당론이라는 제약 없이 민족의 장래문제를 함께 걱정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얘기들이 앞으로 의정활동에 반영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계신 젊은 의원들께서 그러한 노력을 해주리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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