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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對北 상호주의

  • 송문홍·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對北 상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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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각에선 적극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돌려보낸 것은 잘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공식 의제로 꺼내지도 못한 정부의 태도를 비난한다. 문제는 상호주의다. 우리가 북한에 하나를 주면 북한도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는 상호주의, 우리가 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받는다는 상호주의, 과연 무엇이 진짜 상호주의인가.
“역 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통일과 남북화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생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수해온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조차 이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큰 방향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되자 그들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가 이른바 ‘상호주의’다. 즉 북한이 바뀌지 않는데 우리만 바뀔 수 없다, 우리 사회 내부의 국가보안법이나 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는 북한 형법이나 국군 포로·납북어부 송환문제와 상호 연계시켜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중략)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논리가 상당수 우리 국민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기본적으로 통일보다는 현 체제 내에서 기득권 유지에 관심이 있는 극우세력은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상호주의’라는 망령을 극복하는 것은 현재 우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후략)”

이 글은 ‘대자보(www.jabo.co.kr)’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상호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해온 것이다. 요즘 ‘제도권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된 신종 매체가 ‘인터넷 언론’이다. 이 글은 진보적인 색채를 띤 이 인터넷 언론의 2000년 6월21일자 39호에 올라 있다(글쓴이 이장규 nlflee@chollian.net). 6월21일이라면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시점이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에는 위의 글과는 정반대의 정서와 논리를 대변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다음은 ‘납북자 가족모임(www.comebackhome.or.kr)’ 사이트에 지난 9월2일 납북자 가족일동 명의로 올려놓은 ‘결의문’ 중 한 대목.

“오늘 장기수들을 송환하면서 우리 가족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그들이 비록 남한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이고 빨치산이지만,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는 그 아픔을 납북자의 가족인 우리는 알고 있기에,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장기수들을 북송한다고 하여도 참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감을 축하하고 북에 있는 우리 가족에게 편지 전달과 생사확인을 부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돌아온 것은 ‘납북자는 없다’는 망언뿐이었다. 얼마나 우리 납북자 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어야만 하는가. (중략)

정부는 말로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납북자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실정이다. 심지어 남한에 있는 납북자 가족들의 연락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놓고 무슨 협상을 하고 무엇을 북에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후략)”

갈등의 원천, 상호주의

‘상호주의’를 분석하는 기사의 앞머리에 두 가지 글을 인용한 이유는 상호주의라는 주제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인식에 엄청난 스펙트럼을 안고 있고, 따라서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원천이 될 소지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맨 앞의 글을 쓴 이처럼 진보적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상호주의는 수구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논리일 뿐이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분단체제 극복과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상호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통일과정에 적용돼야 할 원칙은 ‘내가 하나 주었으니 너도 하나 내놓으라’는 상호주의가 아니라 남북이 함께 한결 인간적인 삶을 지향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장사치의 거래방식’일 뿐인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수구세력은 단순히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딴죽을 거는 수준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인 통일의 근본 의의를 훼손하는 ‘반민족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형법이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먼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고, 국군포로나 납북 어부의 송환을 요구하기 전에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못 믿을 상대’일 뿐이다. 이들이 보기에 ‘상호주의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실체를 모르는 철부지들’일 뿐이다. 이들은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방식의 통일을 이루려면 상호주의만한 원칙이 없다고 주장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하나씩 교환함으로써 북한은 자신도 모르는 새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된다는 논리다. 이들이 보기에, 얼마 전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어부 문제를 공식 의제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못한 우리 정부는 국가의 존엄성과 기본 책무를 망각한 ‘답답하고 얼빠진’ 정부다.

요컨대 상호주의 문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인식의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직접 겪고 분단 50여 년간 남북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온 기성 ‘반공세대’의 심리 근저에는 ‘북한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우리의 적’이라는 전제가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그 전제가 틀렸다고 한다면 그들의 세계관과 정체성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반면에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나 진보성향 인사들의 심리 기저에는 (한 보수 논객의 말처럼) “민족 정통성 측면에서 북은 남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고, 이는 남북협상 과정에 북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태도로 나타날 수 있다. 바로 그런 인식의 혼란상이 현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예가 상호주의라는 것이다.

98년 4월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러면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는 상호주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을까. 결론부터 말해서 상호주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개념은 그 동안 상당한 ‘진화과정’을 거쳐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98년 4월 대북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베이징에서 열렸던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견지했던 비교적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과, 남북 정상회담 이후 상호주의를 언급하는 횟수가 드물어져버린 최근 우리 정부의 입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기능주의적 접근법’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나간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남과 북이 원칙을 놓고 싸우다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겠다는 것이고, 6월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기능주의적 접근법의 찬란한 성과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그런 기능주의적 접근방식 때문에 정부는 상호주의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런 방식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그토록 남북관계에 집착하다가 우리가 마지막까지 견지해야 할 대전제와 원칙마저 잃어버리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우려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쌀 퍼다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북한 눈치를 보느라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것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지금까지 상호주의와 관련해서 취해온 태도에는 일면 이해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다. 원천적으로 소수 정권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로서는 우리 사회에 두텁게 포진하고 있는 보수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국내 여론의 향배에 정책 기조가 영향을 받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북정책의 원칙 중 한 가지라 할 상호주의의 기본 개념과 현실 적용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은 여러 전문가들이 비판하고 있는 대목이다.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김대통령은 98년 5월 대북 교류·협력 3원칙으로서 ▲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하고 ▲ 남북경협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서 기업의 자율적인 대북 투자활동을 지원하겠지만 ▲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차원의 지원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98년 4월11∼17일에 열린 베이징 남북당국대표회담에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북 비료지원 문제에 상호주의를 적용해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북한도 우리의 이런 입장을 일정 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교류·협력 사례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주의라는 단어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금의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치는 양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상호주의는 국내적 컨센서스의 결집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제껏 정부가 상호주의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 정리 및 협상과정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식 등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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