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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경쟁으로 본 미국대선과 한국선거

‘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 모종린

‘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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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승리한 것은 미국판 ‘제3의 길’에 대한 중도 보수파의 승리를 의미한다. 90년대 중반 이래로 서방 세계를 풍미해오던 ‘제3의 길’ 노선이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에서 일대 타격을 받은 것이다.
  • 지역주의와 보스정치로 얼룩진 한국 정치도 세계적인 이념의 대립구도에서 예외는 아니다. 다가오는 2002년 대선은 과거 어느 선거보다 이념 경쟁이 부각될 것이다.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접전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우리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신정부가 추진할 외교안보 정책의 향방에 쏠려 있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 기존 정책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시작되고, 특히 한반도 정책처럼 논란이 많던 이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전망하면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지난 2년간의 선거 준비 및 운동기간에 보여준 부시 진영의 이념 성향이다. 선거기간 중 부시 후보는 당내 보수 강경파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중도 노선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대체로 실리적이고 온건한 한반도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부시 후보가 중도 노선으로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과 결과가 한국에 주는 의미는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조류는 정보화, 세계화, 그리고 이념의 재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념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의 실패로 수세에 몰렸던 진보 세력이 90년대 중반 이래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새로운 노선으로 선진 각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保革 대결 패턴

미국의 경우 신민주당(New Democrat) 운동은 월터 먼데일이 레이건에게 참패한 8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92년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내세움으로써 비로소 당내 패권을 장악했다. 2000년 선거에서도 신민주당파는 정통 진보세력의 견제를 물리치고 시장경제, 첨단기술, 균형재정 등 보수적인 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경제정책으로 대선에 임했다.

한편 92년과 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주당 노선에 연패한 공화당은 2000년 선거에서 승리할 새로운 패러다임과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은 공화당에 확연하게 불리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은 경제 상황에 크게 좌우되는데, 경제 호황기에 야당이 집권당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덕성에 흠집이 있긴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 역시 6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다는 것은 세계적인 지배 이념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제3의 길’의 행보에 제동을 건 일대 사건으로, 21세기 이념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2000년 미국에서 벌어진 보수 정당과 ‘제3의 길’을 표방한 진보정당 사이의 한판 승부를 선거전략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찾아 보는 것은, 앞으로 2년도 남지 않은 우리 나라 대선에서 나타날 이념 경쟁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의 정당정치를 재조명해보면, 한국 역시 세계의 이념적 흐름에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2000년 미국에서처럼 2002년 한국에서도 보수 야당과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집권당이 격돌할 것이며, 그 결과는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제3의 길’은 원래 시장경제 논리와 시민연대 및 정의의 원리를 결합하려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중도 좌파노선을 의미하지만, 이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이 시장경제 원리를 적극 수용하는 시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보수 공화당이 승리한 것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 맥락을 우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 미국 정당의 이념적 대립구도는 1930년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대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자유방임적 시장 중심 정책으로 경제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던 후버의 노력이 실패하자 미 국민들은 새로운 비전을 요구했고, 이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민주당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뉴딜(New Deal) 진보주의였다.

뉴딜 진보주의는 시장의 자율적인 회복기능을 기다리지 않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총수요를 확대해야 한다는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거시정책에서 출발했다. 루스벨트가 대선에서 처음 승리한 1932년부터 레이건 대통령이 승리하는 1980년까지 근 50년 동안 뉴딜 진보주의는 미국사회 전반에서 정부 역할을 확대시키면서 미국 정치의 지배이념으로 기능했다.

미국판 이념 경쟁사(史)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새 개척(New Frontier) 정신,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프로그램도 기본적으로 뉴딜 진보주의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1960∼70년대 리처드 닉슨 등 공화당 대통령들이 정권을 잡기도 했지만, 뉴딜 진보주의에 대응하는 본격적인 이념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당시 공화당 주류는 뉴딜 진보주의의 대세를 인정하고, 진보적 색채를 가미한 보수주의를 표방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일부 강경파들은 작은 정부, 경제자유, 강력한 국방력, 보수적 사회관을 강조하면서 꾸준히 진보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했고, 1964년에는 자파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데에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골드워터는 대선에서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했고, 공화당 보수운동은 다시 침체됐다. 공화당 보수 진영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의 폐해가 현실로 나타나는 1970년 말에 다시 재기의 기회를 잡아,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을 후보로 내세워 지미 카터의 민주당에 승리했다.

신자유주의 슬로건을 내건 레이건은 대선 승리를 자신의 이념에 대한 지지로 평가하고 정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그 후 12년 동안 공화당은 두 번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는 미국정치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았다.

민주당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초기에는 전통적인 뉴딜 진보주의 노선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1984년 민주당 먼데일 후보가 이러한 진보 노선으로 레이건에게 참패하자 민주당 내부의 보수 세력이 진보 노선에 반발했다. 주로 남부 출신 의원과 주지사가 중심이 된 이른바 남부 민주당(Southern Democrats) 그룹은 경제형평, 재분배, 국방예산 삭감, 관대한 사회정책에 치중하는 민주당 다수 노선을 개혁하기 위해서 민주당지도자회의(DLC, Democratic Leadership Council)라는 조직을 당 외곽에 설립했다.

DLC는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응하려면 민주당도 신자유주의를 일부 수용해서 공화당에 빼앗긴 중도적인 민주당 유권자를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재정안정, 자유무역, 규제완화 등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일부 수용하되 사회정의 구현과 시장 실패의 보완을 위해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일방적인 평화주의보다는 힘에 기초한 현실적인 대외정책을 지지하고 범죄 등 사회질서 파괴행위에 대해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LC의 초기 지도자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찰스 랍(Charles Robb)이었고, 당시 테네시주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도 DLC의 창립 회원이었다.

DLC의 전략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중도 투표자로의 이동(move toward the center)’ 전략이었다. 즉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부동층이 존재하는 이념 스펙트럼의 중도 방향으로 자신의 노선을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처음 시도된 진보정당의 기존 전략 수정은 그 후 유럽으로 확산,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독일 사민당의 게하르트 슈뢰더가 이와 같은 ‘제3의 길’을 채택했다.

1984년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DLC는 1992년 경제 침체기에 드디어 기회를 포착, 클린턴 후보를 내세워 12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 민주당은 그 후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빠르게 세력을 회복해 1996년 대선에서도 승리, 민주당 출신으로는 루스벨트 이후 처음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한편 1992년 이후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공화당에게도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공화당은 1994년 ‘국민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보수 노선으로 상원에서 우위를 확대하고 1952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에서 다수를 획득했다. 당시 공화당의 하원 장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92년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가 공화당 중심으로 재편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은 1994년의 승리에 고무되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강경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됐다. 특히 사회 분야에서 낙태 금지, 복지예산 삭감 등의 개혁 정책을 감행, 진보세력의 기반인 소수 민족과 노동계, 그리고 저소득층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 이처럼 클린턴의 중도 노선에 대응하는 공화당 보수파의 이념은 급진적이었고, 그 결과 민주당의 방만한 재정 지출, 정부 규제, 관대한 범죄정책에 반발하여 레이건 연합에 합류했던 보수적 민주당원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와 1996년 대선에서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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