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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2002 대선의 뇌관

JP의 줄타기 ‘쇼당 정치’

  • 박성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swpark@donga.com

JP의 줄타기 ‘쇼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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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마지막으로 서쪽하늘을 벌겋게 한번 물들이고 싶다”는 희망답게 그는 정치전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도대체 JP의 희망사항은 무엇일까. 킹메이커일까. 아니면 킹이 되려는 걸까. ‘벌겋게 타오르는’ JP의 요즘을 들여다보았다.
“운정(雲庭) 선생님의 결단이 없었다면 감히 공동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겠습니까. 총리로 계실 때 대통령님과 항상 호흡을 맞추신 것처럼 앞으로도 손을 맞잡고 나라를 위해 잘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3월5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 3층 마로니에룸에서는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을 비롯, 남궁진(南宮鎭)정무, 신광옥(辛光玉)민정, 김성재(金聖在)정책기획, 이기호(李起浩)경제, 박준영(朴晙瑩)공보수석 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이 대거 참석한 저녁모임이 열렸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요인들이 대통령이 없는 식사자리에 이처럼 함께 모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방미를 하루 앞두고 대통령비서진이 대거 청와대 밖을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날 “어서들 가보라”고 흔쾌히 외출을 재가했다. 한실장 등이 김대통령 이외의 인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깍듯이 ‘모신’ 인사는 다름아닌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 운정(雲庭)은 김명예총재의 아호다.

이날 JP를 수행했던 자민련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대통령비서들이 공동정권 2인자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염(念)을 표하고 김명예총재는 이들을 그윽히 품어주는 훈훈한 자리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주도 몇 순배씩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사이 정치권에서는 “JP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는 총선참패로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채 추락을 거듭한 JP였지만 올 들어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DJP공조를 복원한 이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JP의 동선은 자민련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 2월23일에는 여야 국회의원 50여 명을 대동하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을 ‘순시(자민련 변대변인 표현)’하며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인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안내로 경기장시설 등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행사가 끝난 뒤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여야 의원들과 만찬을 가진 JP는 시종 ‘진한 농담’을 섞어가며 좌중을 압도하는 좌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이틀 전에는 정치권 내 진보·개혁파의 상징격인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당의원 9명에게 저녁을 사는 자리에서 김최고위원으로부터 ‘선배님’으로 대접받으며 노선과 세대를 초월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새삼 JP의 주가가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종횡무진하는 JP의 목표지점은 어디일까.

JP의 행보에 힘이 실리는 데에는 우선 김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이 있다. JP의 한 측근은 “공조복원을 선언한 올 1월8일 DJP 회동에서 정치문제는 김명예총재에게 주로 맡긴다는 김대통령의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후 주요 정치현안에서 누구보다 JP의 의견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그토록 중시했던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JP의 분명한 태도표명이 있자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들은 뒤에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JP가 3월7일 일본을 급거 방문한 것도 3월2일 김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관한 국민의 우려와 정부의 불만을 일본측에 비중있게 전달해야겠다는 두 사람의 논의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부시 행정부와 대북공조 문제를 조율하던 이 기간에 JP는 일본으로 날아가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시정을 촉구하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뤄진 것이다. 공동여당 내에서 JP가 부동(不動)의 2인자이며 김대통령을 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실권자라는 점을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과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

그러나 JP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앞으로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측근들은 갈수록 왕성해지는 JP의 행보를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JP는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와 2월21일 회동한 다음날 동아일보에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 추진이 보도되자 “뭘 그런 걸 갖고 난리야. 앞으로 더 큰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실 정책연합 구상은 민국당 김대표가 지난해부터 당의 활로모색 차원에서 주장해온 것으로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하나의 구체적 실행프로그램으로 가시화된 것은 JP가 김대표와 만나 여권의 비중 있는 의사를 전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DJP공조 복원 이후 JP가 강조해온 ‘정치안정’과 이를 위한 정치구도의 변화, 즉 정계개편 조짐이 JP를 기축 삼아 일부 단초를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JP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내년 봄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해온 터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여권이 DJP공조 복원을 계기로 ‘야당의원 빼내기’ 또는 야당분열책을 통한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실제 일부 한나라당 의원의 탈당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통령과 김명예총재가 3월2일 청와대 회동에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4석으로 낮추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다짐한 것도 한나라당 지도부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 대목이다. 자민련이 제출한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나라당에서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지도력과 노선에 불만을 가진 일부 의원이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민련 고위관계자들은 지난해 국회법 개정을 통해 자민련이 교섭단체로 인정받는 길을 끝내 가로막은 한나라당 이총재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연초부터 경고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자민련 와해와 JP무력화 공작 차원에서 교섭단체 구성을 차단하고 심지어 우리 당 일부 의원을 접촉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민련을 적으로 돌려버린 이총재에 대해 한나라당내에서도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큰 틀의 정치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권 일각에서 ‘민주+자민련=합당설’, 또는 ‘민주+자민련+α=통합신당 창당설’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막연히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JP의 의중에 충실한 김종호 대행은 합당 얘기만 나오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다만 김대행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파가 자신들의 생각과 방향을 정해야 할 테니까 정계개편을 유발하는 요인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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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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