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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권력중심 장악한 民正계 생명력

“우리는 단 하루도 정권 놓친 적 없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우리는 단 하루도 정권 놓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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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정당은 사라졌다. 그러나 민정계는 여전히 살아 있다. 5,6공 시절 정치에 입문한 인사들이 여야 모두에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실력자 대열에서 한 번도 소외된 적이 없는 민정계의 집단 파워, 그 생존의 비밀은 무엇일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우뚝 선 건물이 국회도서관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더불어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정보의 메카. 도서관 정문에서 출입증을 보이고 안으로 들어서면 로비 가득히 정보검색용 컴퓨터가 놓여 있고 오른편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2층 첫 방과 마주친다. 정기간행물 열람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신문열람용 탁자가 죽 늘어서 있고 좌우로는 신문철이 꽂혀 있는 열람대가 버티고 있다. 오른쪽 서가로 발길을 돌리면 해묵은 중앙일간지들과 이름도 생소한 지방일간지들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안으로 더 들어갈수록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정기간행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 한편 구석,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신문철이 있다. ‘민정신문’. 11년 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어느 정당의 당보(黨報)로, 이제는 찾는 이 별로 없는 도서관의 비인기 상품으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돼 있다.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 줄여서 민정당으로 불렸던 정당이 바로 이 당보를 발행한 주체다. 당보를 펼쳤다. 그나마 81년 창당 첫해에 발행된 1∼3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4호가 첫 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82년 4월3일자였다.

‘민족 민주 정의 복지 통일’. ‘민정당보’(6공화국 들어 ‘민정신문’으로 제호 바뀜)라는 제호 바로 옆자리에 적힌 민정당 5대 이념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전혀 낯설지 않다. 민정당이 창당이념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민정당은 ‘도원결의’ 정당

당보 1면 하단쯤 ‘통일로(統一路)’라는 문패의 칼럼란이 눈에 띈다. 이 칼럼의 이번 호 글 제목은 ‘평생동지(平生同志)’. 글은 당에 대한 개념 설명으로 시작된다.

“당(黨)이란 같은 동네에 모여 사는 사람들, 이웃집단, 이를테면 동지(同志)집단이다. 서양의 폴리티컬 파티(Political Party)가 정치집단이라는 뜻이라면 당이란 인연과 뿌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폴리티컬 파티가 이념, 정책중심의 계약 관계로 맺어진 기능집단이라면 우리 민정당은 ‘평생동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로 모인 정당이다.”

‘이웃집단’ ‘평생동지’ ‘도원결의’… 이해집단이 아닌 1차적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수사들이 나열된 끝에 칼럼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평생동지를 자산으로 가진 우리 당은 한 동네 이웃처럼 인간적 유대가 돈독하다.”

당원들 관계를 한 동네 이웃에 비유한 감각적 표현에서, 이런 논리를 개발해낸 논객들의 만만치 않은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시계추를 뒤로 돌려 97년 7월21일 오후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이곳에서는 신한국당 제15대 대통령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한창이다. 이회창(李會昌) 김덕룡(金德龍) 이인제(李仁濟) 최병렬(崔秉烈) 후보 등 여당의 용(龍)들로 불리던 후보들이 연단에 올라 대의원들을 상대로 일장연설을 하고 있다.

대회 중간쯤, 이한동(李漢東) 후보가 등단했다. 그는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정견을 토해냈다. 그리고 연설 사이사이, 그는 청중인 대의원들을 이렇게 불렀다.

“평생동지 여러분!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무감각한 사람은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평생동지’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민정당 출신 신한국당 대의원들에게는 이 표현이 일종의 암호처럼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동지는 민정당의 상징 단어요, 스스로를 민정계로 규정짓는 식별부호가 아니었던가.

다시 시간을 뒤로 돌려 2001년 3월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회실. 중년의 신사들이 속속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뜻 보기엔 고교 동창회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행사장 입구에 놓인 화환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화환을 보낸 주인공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 민주국민당 김윤환(金潤煥) 대표 등이었다. 그 한편에는 직함이 없이 이름 세 글자만 적힌 화환도 있었다. 보낸 이는 이번에도 이한동(李漢東) 총리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민정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의원, 사무처 요원, 중앙위원회 간부 등. 그러니까 민정당의 ‘OB모임’이었다. 행사 이름도 ‘평생동지의 밤’이었다. 언뜻 현역의원들도 눈에 띄었다. 박희태 한나라당 부총재와 무소속의 강창희 의원이었다.

정호용 전의원이 모두를 대표해 인사말을 했다. 행사중간쯤 박희태 부총재는 축사를 하며 “마치 몇십 년만의 동창회에라도 나온 것 같다”며 건배를 제안했다. 좌중은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두 현역의원 외에 채문식 정호용 강선영 권정달 김용태 박준병 권해옥 이치호 김종기 최재욱 이찬혁 김현자 이용택 전의원 등 한때를 풍미했던 정객들도 참석했다.

이날 참가자는 대략 340여명. 주최측은 500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전날까지도 참석이 예정됐던 한나라당 민정계 출신 당직자들이 대거 불참해 참가 인원이 줄었다고 한다.

이날 민정계 인사들은 5월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회장도 정하지 않았고 회칙도 마련하지 않았지만 다음 모임에서는 제대로 골격을 갖추자고 결의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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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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