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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모리·김정일 北日정상회담 불발내막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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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7월15일 모리 일본총리는 문명자씨가 묵고 있는 캐피털 도큐호텔을 찾았다. 문명자씨가 김정일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써주면 전달하겠다고 하자 모리총리는 자신의 명함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를 원하며 일본·북한 정상회담을 가지면 두 나라 외교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는 내용을 써주었다.
“문명자 기자, 이 친서를 김정일에게 전하시오!”
끊임없이 자질 시비를 겪던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가 지난 4월6일 공식적으로 사임의사를 밝혔다. 그에 대한 자질 시비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 도화선에 불을 댕긴 사건이 바로 모리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시도하다 좌절된 ‘친서 파동’이다.

사건은 2000년 6월 하순에 시작됐다.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에게 모리 총리가 국제전화를 걸어 축하했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 통화에서 “모리 총리께서도 평양으로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아시아 평화와 일본·북한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6·15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뒤 서울과 도쿄, 워싱턴 외교가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클린턴 대통령과 모리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2000년 11월 ‘아세안+3(한·중·일)’정상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11월27일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AS) 주최로 열린 ‘싱가포르 렉처(세계 저명인사 초청 강연회)’에서 연설한 뒤 한 참석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본 문제는 내가 모리 총리하고 북한 사이에서 약간의 심부름을 했다. … 나는 문제를 풀려면 모든 결정권을 한손에 쥐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로 풀라고 권했다. 그래서 모리 총리는 그 후로 김위원장에게 친서도 보내고 식량도 50만t을 보내는 결단을 내렸다. 다만 북·일 사이에는 과거 식민통치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고, 일본이 주장하는 납치 인사 생사·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일본 정부가 노력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잘 진행되고 특히 북·미 관계가 잘되면 북·일 관계도 좋은 결과를 향해 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린턴 대통령과 모리 총리가 평양 방문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인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까지 평양을 방문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야당이던 공화당의 반대 등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클린턴 본인은 평양행을 무척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리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려고 했던 것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 전말이 바로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가 중개했던 ‘친서 파동’이다.

세계최초 김정일 단독 인터뷰

2000년 6월 말 김대통령과 모리 총리가 전화통화를 하던 그 순간,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는 평양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평양에 들어간 것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보름 전인 5월27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된 실무협의 과정에서 난제 중 하나가 취재기자를 80명으로 할 것인가, 40명으로 할 것인가였다. 이것도 한국기자에 국한된 것이었고, 외신기자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방침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문명자씨는 외신기자로는 유일하게 정상회담 취재를 허가받았다. 이후 문씨는 6월30일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6시간 동안 원산초대소에서 김정일위원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서방 기자로 김정일위원장을 단독 인터뷰하기는 이것이 세계 최초였다. 그는 이 내용을 월간 ‘말’2000년 8월호에 게재했다.

북한은 김정일위원장과 문명자씨의 인터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00년7월1일자 ‘로동신문’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재미녀류기자 문명자녀사를 접견하시였다’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6월30일 조국에 체류하고 있는 재미녀류기자 문명자녀사를 접견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용순비서가 여기에 함께 참가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저명한 녀류기자인 문명자녀사를 반가이 맞이하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석상에서 문명자녀사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그토록 분망한 속에서도 친히 자기를 만나주시고 환대하여 주신데 대하여 가장 뜨거운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명자녀사를 위하여 오찬을 마련하시고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통일신보’도 문명자씨에 대해 다음과 같은 관련 기사를 썼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6월30일 재미녀류기자 문명자녀사를 접견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 서거 후 만나주신 외신기자로서는 문명자녀사가 처음이다. 사실 세계의 이름 있는 언론사들은 한결같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회견을 신청하고 있었다. 그이께서 과연 누구와 가장 먼저 회견할 것인가는 전세계 언론계의 최대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여러 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견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명자녀사가 질문한 북남최고위급회담과 서울방문, 조미관계, 조일관계 등 많은 국내외문제들에 대해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으며 그를 위해 오찬을 마련하시고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김정일위원장과 인터뷰를 마친 문씨는 중국으로 나왔다가, 일본으로 날아갔다. 누구의 부탁(?)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문씨에게는 특별 임무가 있었다. 도쿄에 도착한 문명자씨는 자민당 본부 인근의 캐피털 도큐(東急) 호텔에 머물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 모리 총리를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이때 문명자씨가 활용한 사람은 모리 총리가 단골로 드나들던 도쿄 긴자의 고급요정 ‘마담’이었다. 현재 30대 중반인 이 여인은 모델 출신으로 상당한 미인이다. 모리 총리는 평의원 시절부터 이 여인과 친했고, 친해진 뒤부터는 아예 따로 살림을 차려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 총리가 요정을 좋아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4월5일 지난 1년간 모리 총리의 일정을 조사한 결과 야밤에 요정을 드나든 것이 무려 90일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모리 총리가 자신이 속한 당내 계파 의원들로부터 “요정 출입을 그만둬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마담의 전갈을 받은 모리 총리는 7월15일 문씨가 묵고 있는 캐피털 도큐호텔을 찾아가 그를 직접 만났다. 이때 문명자씨는 모리 총리에게 김정일 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써주면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일본 언론은 이에 동의한 모리 총리가 자신의 명함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를 원하며 일본·북한 정상회담을 가지면 두 나라 외교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을 써서 주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모리 총리는 8월1일 김대중 대통령과 다시 전화통화를 했다. 이와 관련해 2000년 9월30일자 일본 도쿄(東京)신문은 김대중 대통령이 모리 총리에게 “김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의사를 전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모리 총리가 8월말 도쿄 프린스 호텔에 묵고 있던 문명자씨를 다시 만나 베이징에서의 정상회담을 타진하는 친서를 건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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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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