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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1주년 특별기고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최장집 < 고려대 교수·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미국의 한반도정책,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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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의 신방위전략 아래서도 남북한 평화공존 관계는 발전할 수 있다.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에 따라서는 남북한 관계의 자율적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이 남북관계를 규정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 화해협력 평화공존이라는 공감대를 이룬다면 부시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금년 초 미국 공화당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는 한국의 대북 화해평화공존정책과 남북한 관계를 전망해보면서, 지난해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 의미를 되새겨보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건은 얼마나 빨리 성사될 것인가 하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 거의 자동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부시 정부는 방위전략을 세계적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대북 및 동아시아정책을 클린턴 정부의 포용정책과는 확실히 대조적인 강경기류로 급격하게 바꾸어놓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적대와 증오로 얼룩진 남북한 관계를 평화공존, 화해협력 관계로 전환하려는 한국정부나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개방적 자세로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북한정부에 중대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초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양국정부의 대북정책이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대통령의 방미는 한 미국언론의 표현처럼 “미국과의 불화로 상처받은 방문(troubled visit)”이었는지 모른다. 한국 여론은 그 성과에 대해 압도적으로 비판적이었고, 특히 언론들은 재난 혹은 그에 가까운 실패로 평가하는 등 극도로 부정적인 비판을 쏟아내면서 여론을 주도했다.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하나? 이러한 문제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작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의미를 짚어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적 자율성 연 남북정상회담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작년에 있었던 1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냉전을 해체하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계기였다. 2차세계대전 후 냉전의 확대발전이나 1980년대 말 이래 냉전 해체는 모두 유럽과 아시아의 두 축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 점에서 독일과 한국은 두 진영간 갈등과 변화의 핵심적인 지역이었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유럽의 냉전해체가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된다면 아시아냉전의 해체는 6·15남북정상회담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이는 남북한관계의 변화가 전략적·전술적 차원의 변화이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남북한이 평화공존, 화해협력을 중심으로 한 관계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거나 극히 협소한 외교적 자주성 내지 외교적 자율의 공간, 즉 남북평화관계의 전제조건으로서 ‘북방외교’와 대조되는 ‘서방외교’ 공간을 열었다.

노태우 정부 시기의 북방외교는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해체에 발맞추어 자율적으로 대북정책의 영역을 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방외교는 과거 북한의 배후지원국가였던 러시아·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새로이 발전시키고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배후에서 포위하는 패권적 대북관계, 즉 일종의 북한고립화 전략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방외교는 남북한간 평화협력 관계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중국, 소련은 물론 지금까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연합과 유럽국가들과의 외교관계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중심내용으로 한다. 이는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실시된 서독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에 비유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심에 두되, 이에 대칭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소련·폴란드·체코를 필두로 한 동유럽과의 관계개선이 동·서독 관계발전의 전제조건이 된 당시 독일 상황과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율적 외교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정치지도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탈냉전과정에서 얻은 필연적 부수효과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냉전이란 양대진영으로 분할된 영역 내에서 패권적 초강대국을 정점으로 위계적 권력관계 구조를 갖는 체제다. 이러한 구조 내에서 진영을 구성하는 성원의 자율적 외교공간은 진영간에 냉전적 대립이 강할수록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해체와 탈냉전 세계화의 구조는 이러한 위계적 관계가 느슨해지는 만큼 국제관계의 성원들에게, 아무리 약소국가라 하더라도, 자율적 공간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게 마련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면서 자율 공간을 만들어내고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남북한간 화해협력, 평화공존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이를 한반도판(版) 데탕트 단계, 즉 평화공존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남북한간 협력적 파트너십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평화공존관계 설정, 즉 남북한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냉전 후 남북한관계의 최소목표임을 뜻한다.

그 동안 남북관계는 힘에 의한 것이든,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든 통일이 궁극적 목표였다. 이는 또한 자신의 체제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과 증오(적대)는 하나의 짝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이를 평화관계로 바꾸려면 화해, 관용, 공존, 오랜 시간과 전망이 필수적이다. 남북한관계의 철학과 비전이 바뀌어야 이것이 가능하다. 즉 화해와 공존은 일방적 승리의 포기, 즉 최대 목표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평화공존 이후의 관계발전 방향을 계속 열어두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한관계에서의 탈냉전의 비전은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에 민족주의가 가장 긍정적이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어떤 통일된 이상사회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극한대결과 전쟁을 통하여 경험했던 것과 같은 최악의 재난을 방지하는 평화 관리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남북한관계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념적이기보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 체제와 관련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신념 또는 도덕적 판단, 집단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낭만적인 정서와 이념, 신념의 체계들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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