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김민석 민주당 의원 인터뷰 “동교동이 당의 뿌리 ”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입력2005-05-20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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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그랬을까?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김민석(金民錫) 의원이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며 서명파 의원들과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을 공격한 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단순히 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제기였을까? 기자는 일단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한 견제설, 동교동계와의 유착설, 차세대를 겨냥한 정치적 포지셔닝(Positioning)…. 정가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김민석 의원입니다.”

    11일 오후. 인터뷰를 요청한 지 1시간여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민주당 사태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을 의식해 우선 안부부터 물었다.

    ―여러 가지로 복잡하시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나 복잡하겠죠.”

    의례적인 인사였지만 김의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6월14일 오후로 인터뷰 약속을 잡고, 그 동안 취재해온 파일을 정리했다. 초재선 의원들의 서명파동과 김의원의 워크숍 발제, 정최고위원과 정균환(鄭均桓) 특보단장의 진실게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민주당 각 계파의 의견, 그리고 과거 김의원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던 ‘동지’들의 관전평….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된 경희대 강연

    6월11일 오후. 김의원은 경희대에서 ‘청년문화론’ 과목의 초청강사로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연은 일부 학생들의 반대와 담당 강사의 연기 요청으로 취소됐다. 김의원은 “정치 이슈가 민주당 내부 문제로 집중되고, 일부 학생들이 피케팅을 하겠다는 얘기가 있어서, 담당 강사가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학련 의장을 지낸 80년대 운동권의 ‘대표’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반개혁세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유는 물론 5월31일 민주당 워크숍에서 김의원이 제기한 ‘질서 있는 쇄신론’ 때문이다.

    ―학생운동 선배로서 느낌이 특별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없어요. 일부 학생들이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 수 있겠죠. 다음날(6월12일)은 국민대 가서 강연 잘 했어요.”

    ―학생들이 김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김의원이 지금껏 걸어온 행보를 봐도 왠지 어울리지 않고.

    “저는 그렇게 안 봐요. 그 동안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잖아요. 그리고 이번 건은 약간 과장된 부분도 있어요. 하여튼 괘념하지 않습니다.”

    김의원은 5월31일 워크숍에서 당의 쇄신과 더불어 절차의 정당성을 지적했다. 김의원은 두 가지 사안을 균형있게 얘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언론은 ‘절차론’에 무게를 실었다. 이는 5월24일부터 이어져온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과 정최고위원의 정풍운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개혁 성향으로 분류돼온 김의원이 직격탄을 날린 속사정이 궁금했다.

    ―김의원이 발제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5월24일 1차 성명 이후 31일 워크숍까지 전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 처지에서 우선 절차의 문제가 제기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번 과정이 소수의 사적 목적에 의해 정치적으로 변질됐고 그 과정에 제가 매우 분노했기 때문이죠. 만일 그날 제 견해를 밝히지 않았으면, 아마 병이 났을 겁니다. 요즘 ‘털어놓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고 사람들한테 얘기해요.”

    모든 일에는 객관적 사실이 중요하다.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사건의 본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서명파와 반(反)서명파는 접점이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명파는 “어떠한 상황논리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서명파는 조직적인 음모설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면담의 성사 여부, 2차성명 유보의 진실, 정최고위원의 개입설 등에 관한 실체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보면 천정배(千正培) 의원이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김의원은 비판의 비중을 정최고위원 쪽에 더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톡 까놓고 얘기하면 진실을 100% 규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하나이기 때문이죠. 전 이 부분에 자신이 있어요. 천의원이 앞에 나서서 일을 했다지만, 정최고위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정최고위원이 이번 사태의 핵심 포스트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전과정을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정최고위원은 초재선 의원과 거리를 두고 행동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미 그렇지 않았다는 게 다 드러났어요. 대통령 면담을 함께 추진하다가 면담이 성사되니까 그걸 무시하고 2차 성명을 주도한 과정, 그 후 전후사정을 부인하는 과정,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이후의 과정까지 사실상 정최고위원이 주도한 거 아닙니까?”

    정최고위원, 신뢰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가의 시각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바로 김의원이 정최고위원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공조 속 경쟁’ 관계를 유지했지만, 희비가 엇갈렸다. 정최고위원은 5위로 당선되고 김의원은 9위로 떨어졌던 것. 이때부터 정최고위원이 민주당 재선그룹의 리더로 부상하자 김의원이 정최고위원을 견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정최고위원을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모토는 거북이에요. 저는 일찍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에 서두르면 조사(早死)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걸 선호해요. 정최고위원을 특별히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라이벌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왜 라이벌이 될 일이 없다는 것입니까.

    “선의의 라이벌이 될 일은 없을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에 라이벌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게 부적절한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정최고위원은 “언젠가 김의원이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 분들이 자기 자리를 떠난 거죠.”

    절차와 내용.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김의원은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명파 의원들은 절차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민주당의 모습은 절차를 따질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당시 김의원을 지지했던 김성호(金成鎬) 의원도 김의원이 워크숍에서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절차보다 쇄신의 내용이 더 절박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제가 절차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건 발제의 특성상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저는 절차를 무시하는 과정에 담겨 있는 또 하나의 본질, 즉 특정인의 사적인 목적에 대한 비판이 7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절차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며, 권력누수를 예방해야 할 집권 후반기에 당의 기강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쇄신하는 것도 중대한 과제지만, 개혁을 마무리해야 할 집권당이 규율을 유지하고 대오를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죠.”

    ―김의원이 절차를 강조하면서 쇄신의 내용은 사그라지고, 절차를 문제 삼아 서명파를 공격하는 논리가 득세했습니다.

    “전적으로 언론에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제 발제문은 쇄신과 절차를 같은 비중으로 담았어요. 앞에서 쇄신의 내용과 방향을 언급했고, 뒤에서 절차의 중요성을 얘기한 거죠. 또 워크숍 현장의 분위기를 보세요. 제 발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그날의 결론은 ‘쇄신은 반드시 하되, 앞으로는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론이 발제문과 현장의 분위기를 왜곡했다고 봐요. 동교동과 서명파의 대립? 이런 식으로 워크숍에 참석한 다수 의원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왜곡했습니다.”

    ―어쨌든 동교동 의원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까.

    “동교동뿐만 아니라 중도적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겁니다. 다수 의원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왔겠습니까? 다수 의원은 ‘질서 있는 쇄신론’에 공감했어요. 물론 동교동 의원들도 거기에 공감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동교동이 나섰기 때문에 동교동의 의견대로 정리됐다? 그건 동교동에 속해 있지 않은, 또는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의 의견을 왜곡하고 모독하는 겁니다.”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기 힘든 상황에서,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의원이 발언을 했기 때문에 파급 효과가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했느냐보다 내용이 어떠했느냐를 봐야 합니다. 현장 분위기로 보면 제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도 동교동이 뭐 어떻게 해서 반격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체적인 현상을 왜곡하는 거죠.”

    서명파 의원들이 제기한 ‘시스템 쇄신론’은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다. 멀게는 지난해 민주당 소장파들이 주도했던 ‘13인의 반란’이나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장한 ‘권노갑(權魯甲) 퇴진론’ 등이 있었으며, 올 들어서도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꾸준히 논의해왔다. 김의원 역시 ‘바른정치모임’의 멤버로 참여해왔다. 적어도 이번 파문이 생기기 전까지 김의원과 서명파 의원들은 ‘쇄신’이라는 차원에서 같은 배를 타고 있었던 셈이다.

    ―서명파 의원들의 쇄신론과 김의원이 말하는 쇄신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잘하자는 뜻의 쇄신으로 보자면, 김민석이든, 1차 서명에 참여한 의원이든, 또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 의원이든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국민들은 뭔가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당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뭔가 변해야 한다는 데는 차이가 있을 수 없죠.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람마다 약간씩 다를 겁니다. 심지어 서명파 의원들조차 단일한 의견을 내지 못했잖아요. 저는 솔직히 서명파의 쇄신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쇄신파는 비선라인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기에서 말하는 비선라인이 뭡니까? 누구를 의미하는 겁니까?”

    ―일단 권노갑 전최고위원을 지칭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권전최고위원이 현재 당의 운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지 않는데요. 서명파 의원들도 처음엔 비선을 지칭하면서 문책을 요구했지만, ‘그쪽이 아닌 것 같다’면서 사실상 뒤로 뺀 것 아닙니까? 저는 만일 비선이 존재한다면, 그건 전체적인 시스템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봐요. 그것이 유일무이한 핵심적인 문제다? 그것이 풀리면 다 해결된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김의원은 권전최고위원이 당 운영이나 인사문제 등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보시는 거군요.

    “‘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아니죠. 저는 권전최고위원이 좌지우지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지금 민주당 운영은 김중권 대표가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당에 대표가 있고, 최고위원이 있고, 총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권전최고위원이 다 좌지우지하고 있다면, 도대체 뭘 얘기하는 겁니까? 당의 인사를 결정한다는 겁니까? 아니면 당론을 결정하기 위해 재가를 받는다는 겁니까? 비선라인이 도대체 누구를 얘기하는 겁니까?”

    ―예를 들어 이번 법무부 장관 인사의 경우 비선라인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올라와서….

    “이번 인사가 그렇게 됐다는 결론이 나왔습니까? 지금 근거 없이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전체적인 시각에서 이른바 비선라인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게 첫째 주장입니다. 둘째, 근거 없이 권전최고위원이 다 했다고 단정하고 그것만 해결하면 다 풀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옳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의원이 보기에는 비선라인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비선라인이야 있을 수 있죠. 공선이 아니면 다 비선 아닙니까? 현재 정부와 청와대와 당에서 공적인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전부 사적 관계입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비선이죠. 다만 그것이 조직적인 임무를 가지고 당과 정부에 항상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걸 비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 동안 사적인 영향력을 가진 권노갑 전최고위원이 있었다? 이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조직적 형태로 당이든 정부든 모든 공식 라인을 무력화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대목에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하는 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근거 없이 비선이 모든 국정혼란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건 균형 잡힌 사고가 아니죠.”

    권 전최고위원은 착한 분

    정치권에서 김의원이 권전최고위원과 가깝다는 소문이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지난해 4·13총선 때는 386세대 정치인들이 김의원을 통해 권전최고위원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주목받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꼽히는 김의원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동교동계의 수장인 권전최고위원.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을 두고 끊임없이 유착설이 나도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권노갑 전최고위원을 자주 만나십니까.

    “회의 때 보는 것말고는 드물어요. 명절 때 인사 가서 보는 정도겠죠. 제가 그 양반하고 정치 토론할 군번도 아니잖아요. 회의 빼고 나면 같이 밥 먹는 거 포함해서 기껏해야 1년에 두세 번이나 볼까요. 작년에는 정최고위원과 함께 식사한 적도 있어요.”

    ―권노갑 전최고위원을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세요.

    “하하하. 제가 그 선배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어쨌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걸어온 분이라고 봐요. 인간적으로는 남들한테 잘해주는 착한 분이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겠죠. 마포사무실에도 그렇게 사람이 많다면서요.”

    김의원은 시중에 나도는 권전최고위원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원칙이 아니면 절대 따르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이쯤에서 기자는 김의원의 속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김의원은 절차의 정당성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가에서 김의원의 말을 그대로 믿기 보다는 막연하게나마 뭔가는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중 하나가 김의원과 동교동계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일 것이다. 김의원은 “동교동계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그를 ‘친동교동계’의 범주에 넣고 있다.

    ―발제문에 ‘중도통합’ 얘기가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첫째, 우리 당은 중도개혁주의 정당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중도개혁 노선이라는 겁니다. 극단적으로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 중도개혁적인 주류가 최대한 통합해서 당을 끌고 가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동교동은 다 빠져라’ 이런 시각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지금 역량을 총동원해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할 우리가 차 떼고 포 떼면 뭐가 남겠습니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할 때 동교동은 어떻게 됩니까.

    “저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 당이 잘 가려면 동교동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교동은 우리 당의 뿌리고 정권창출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요. 동교동은 앞으로도 당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정권 재창출을 하는 과정에 지원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김의원은 앞으로 동교동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실 계획입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요. 다 동지니까. 원칙적으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모든 분들과 협력해야죠. 다만 어떤 특정 세력에 얹혀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동교동계가 앞으로 간판으로 내세울 정치인이 없다, 그래서 김의원이 장기 포석으로 총대를 멨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동교동 간판이요? 뭐하러 그럽니까. 하하하. 뭐하러 그러냐고요. 내가 동교동 사람도 아니고, 동교동계 할 생각도 없고. 저는 그런 거 안 해도 우리 당 젊은 사람 중 괜찮은 사람의 하나로 끼어요. 내가 뭐 아쉬워서 스스로 좁혀가면서 동교동 간판으로 갑니까. 그건 진짜 웃기는 얘기 아닙니까. 제가 동교동의 지원을 받으면서 세력을 키울 수 있겠어요.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김의원과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독특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김의원의 ‘주류지향성’에서 답을 찾았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 P씨는 “김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끊임없이 한국 사회의 주류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의 합법·비합법 논쟁, 90년대 초반의 현실정치 참여논쟁, 95년의 국민회의 창당 논쟁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끊임없이 ‘주류’라는 정치적 공간을 찾아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저는 항상 국가경영을 한다는 입장에서 생각하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보수를 이해해야 한다고 봐요. 단순한 비주류로 남아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반드시 주류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내 의견을 다수화하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정치하는 것을 ‘주류’로 본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의원과 한때 학생운동이나 재야운동을 함께 했던 분들은 김의원이 80년대 후반부터 현실정치의 ‘거물’들과 빠르게 인간관계를 터 나가는 과정이 놀라웠다고 합니다.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이기택(李基澤), 이한동(李漢東), 이종찬(李鍾贊)….

    “글쎄요. 인간관계에 대한 평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누구를 줄줄 따라다니거나 어떤 계파에 속한 적은 없습니다.”

    ―92년 선거를 앞두고 김의원의 홍보물에 이종찬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의 추천사가 실린 적이 있잖아요. 이런 점을 두고 ‘김의원은 동년배 정치지망생보다 일찍 기성 정치인과 관계를 맺고 앞서간다. 멀리 보고 일찍 준비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웅배(羅雄培)라는 여당의 거물하고 붙는데 어디 비빌 데가 있어야죠.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냥 이종찬 원장의 아들이 서울대 운동권 선배잖아요.”

    ―낙선한 뒤에는 민자당 김종필(金鍾泌) 총재와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도 찾아가셨죠.

    “95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진짜 보수의 본령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JP에게 면담을 신청했던 거죠. 1시간 정도 농담도 하고 토론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식량을 싣고 북한에 들어가던 우리 배에 인공기를 달아야 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을 때였는데, 제가 김종필 총재에게 어떻게 보냐고 물으니까 자기 같으면 화끈하게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비록 노선은 다르지만 DJ와 JP가 공통된 면모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박태준 전총리는 그분이 YS정부 시절 망명생활을 할 때 미국에 있는 제 형의 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했잖아요. 그분이 보궐선거에 나왔는데 형이 부탁하기에 선거에 대한 아이디어를 알려주는 차원에서 식사를 한번 했어요. 그때 이러이러한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지금도 저는 그분의 국가경영에 대한 경륜과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동년배 집단에서 볼 때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 것 같은데.

    “글쎄요. 우연히, 어떤 때는 궁금해서, 또 어떤 때는 조직관계 속에서 그렇게 한 겁니다. 제가 특정한 계파에 속한 것도 아니고, 계획을 갖고 움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봐요.”

    ―이번 사태를 두고 ‘김의원이 장기적 포석에서 정치적 포지셔닝을 새롭게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일이 저에게 득이 된다? 혹시 모르겠어요. 원대하게 장래에는 득이 될지도. 하지만 당장 보세요. 객관적으로 손해보고 있잖아요. 그 동안 별로 친하지도 않던 분들이 잘했다고 하는 바람에 졸지에 ‘동교동 경호원’이란 소리까지 듣는 거 아닙니까. 제 정신이면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옳다고 보았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의원이 가장 자주 언급한 단어는 ‘팩트(fact)’와 ‘원칙’이었다. 서명파의 주장에는 ‘팩트’가 없고, 자신은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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